불자도 아닌데 불교적인 것에 너무 깊이 닥아간다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불교는 종교나 철학이기보다는 삶의 fullfillment를 위한 지혜와 깨우침의 복음일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평화로워지고 자유로워지는 불교적 비움에 대한 이해, 진리를 찾아가는 사색등 소중한 만남이 되고 있습니다.
불교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경을 불자친구가 보내주었던 것인데 함 공유할까 합니다.
연기경(緣起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室羅筏〕에 계시어 제타숲〔誓多林〕외로운이 돕는 동산〔給孤獨園〕에 머무시면서 한량 없는 무수한 성문과 보살과 하늘·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마땅히 그대들에게 연기(緣起)의 처음과 차별된 이치를 말하리니 그대들은 응당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할지어다. 내가 지금 그대들을 위하여 분별하고 해설하겠노라.』
여러 비구들은 말하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듣고싶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연기의 처음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긴 것이니,
이른바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을 반연하고 지어감은 의식識〕을 반연하고 의식은 이름과 물질〔名色〕을 반연하고 이름과 물질은 여섯 감관〔六入〕을 반연하고 여섯 감관은 닿임〔觸〕을 반연하고 닿임은 느낌〔受〕을 반연하고 느낌은 욕망〔愛〕을 반연하고 욕망은 잡음〔取〕을 반연하고 잡음은 존재〔有〕를 반연하고 존재는 나기〔生〕를 반연하고 나기는 늙어 죽음〔老死〕을 반연하여 근심과 괴로움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순전히 큰 괴로움이 쌓임이라고 하며, 이와 같은 것을 연기의 처음 이치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연기의 차별된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무명이 지어감을 반연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무명(無明)이냐. 말하자면 과거에도 알음〔知〕이 없고 미래에도 알음이 없고 과거에도 알음이 없으며
안에도 알음이 없고 밖에도 알음이 없고 안팎에도 알음이 없으며,업에도 알음이 없고 이숙(異熟)에도 알음이 없고 업과 이숙에도 알음이 없으며 부처님에도 알음이 없고 법에도 알음이 없고 스님네에도 알음이 없으며,괴로움에도 알음이 없고 쌓임에도 알음이 없고 사라짐에도 알음이 없고 도에도 알음이 없으며, 원인에도 알음이 없고 결과에도 알음이 없으며,
원인이 이미 생긴 모든 법에도 알음이 없고 착한 일에도 알음이 없고 착하지 못한 일에도 알음이 없으며 죄가 있음에도 알음이 없고 죄가 없음에도 알음이 없다.
그리고 응당 닦아 익히는 것에도 알음이 없고 응당 닦아 익히지 않는 것에도 알음이 없으며, 열등한 것에도 알음이 없고 최상 미묘한 것에도 알음이 없으며, 검은 것에도 알음이 없고 흰 것에도 알음이 없고 다름이 있는 것에도 알음이 없으며, 인연이 이미 생길 것과 또는 여섯 닿임의 곳에도 그대로 일관하여 알음이 없어서 이와 같이 그 곳마다 철저하게 알음이 없다. 그리고 식견도 없고 나타나게 관찰함도 없어서 어리석고 어두어 밝음이 없나니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이 지어감〔行〕이냐. 지어감이란 세 가지가 있다.
몸의 지어감〔身行〕과 말의 지어감〔語行〕과 뜻의 지어감〔意行〕그것이니 이것을 지어감이라 하느니라.
지어감이 의식〔識〕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의식이라 하느냐. 여섯의 의식 자체를 말한다.
첫째는 눈의 의식〔眼識〕이요, 둘째는 귀의 의식〔耳識〕이요, 셋째는 코의 의식〔鼻識〕이요, 넷째는 혀의 의식〔舌識〕이요, 다섯째는 몸의 의식(身識)이요, 여섯째는 뜻의 의식〔意識〕그것이니 이것을 의식이라고 하느니라.
의식이 이름과 물질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이름이라고 하느냐. 네 가지 형체가 없는 쌓임을 말한다.
무엇을 물질〔色〕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있는바 모든 물질로서 온갖 四대(大)의 종류와 및 四대의 종류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의 물질과 앞의 이름을 통털어서 하나로 하여 이름과 물질이라고 말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과 물질이라고 하느니라.
이름과 물질이 여섯 감관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여섯 감관〔六處〕이라고 하느냐. 말하자면 여섯 가지 받아들이는 감관이다.
첫째는 눈으로 받아들이는 감관이요, 둘째는 귀로 받아들이는 감관이요, 셋째는 코로 받아들이는 감관이요, 넷째는 혀로 받아들이는 감관이요, 다섯째는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관이요, 여섯째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감관이니, 이것을 여섯 감관이라고 하느니라.
여섯 감관이 닿임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닿임〔觸〕이라고 하느냐.말하자면 여섯 가지의 닿임이니
첫째는 눈으로 닿임이요, 둘째는 귀로 닿임이요, 셋째는 코로 닿임이요, 넷째는 혀로 닿임이요, 다섯째는 몸으로 닿임이요, 여섯째는 뜻으로 닿임이니 이것을 닿임이라 하느니라.
닿임이 느낌〔受〕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느낌이라고 하느냐.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즐거움의 느낌〔樂受〕과 괴로움의 느낌〔苦受〕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인 그것이다. 이것을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느낌이 욕망〔受〕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욕망이라고 하느냐. 욕망이 세 가지가 있으니 욕심의 욕망〔欲愛〕과 형상의 욕망〔色望〕과 무형의 욕망〔無色愛〕그것이다. 이것을 욕망이라고 하느니라.
욕망이 잡음〔取〕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잡음이라고 하느냐. 네 가지의 잡음이 있다.
첫째는 애욕〔欲〕의 잡음이요, 둘째는 소견의 잡음이요, 셋째는 계율의 잡음이요, 넷째는 나의 말〔我語〕이라는 잡음이니 이것을 잡음이라고 하느니라.
잡음이 존재〔有〕를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존재라고 하느냐. 존재는 세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욕심의 존재〔欲有〕· 형상의 존재〔色有〕· 무형의 존재〔無色有〕그것이니 이것을 존재라고 하느니라.
존재가 남〔生〕를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나기라고 하느냐. 말하자면 저들의 중생이 저들의 중생에게 서로 태어나고 서로 나아가 향하여 현재의 몸을 자아내고 十팔 계(界)와 十이처(處)와 五온을 얻게 되며 생명의 감관이 생기고 나타나게 되나니,이것을 나기라고 하느니라.
나기가 늙어 죽음을 반연한다 함은 무엇을 늙음이라고 하느냐. 말하자면 터럭이 쇠하고 변하며, 피부는 늘어지고 쭈그러지며 쇠해지고 손괴되었으며 몸과 등은 꾸부러지고 굽었으며, 검은 점이 몸의 여기저기에 있고,숨결은 매우 급하며, 모습은 앞으로 꾸부러져서 막대에 의지하며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감퇴되고 쇠퇴하였고 모든 감관은 노화되어 공력도 무너지고 모든 행동도 부자유 스러우며 그 형체는 볼 모양 없나니 이것을 늙음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죽음이라고 하느냐. 말하자면 그들의 중생이 그들의 중생들과 같이 나중에는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어 목숨과 따뜻함을 버리어 그 생명이 끊어지며 모든 쌓임을 다 버리고 죽을 때가 닥쳐와서 사라지나니 이것을 죽음이라고 하느니라.
이에 죽음과 앞의 늙음을 통털어서 하나로 하여 늙어 죽음이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은 것들을 연기의 차별된 이치라고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이미 그대들을 위하여 표시한 바 연기의 처음과 차별된 이치를 말했노라.』
그 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연설하시니 성문과 보살과 하늘이며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전에 없던 일을 얻게 되었으며 믿어지니고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