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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황혼 (감사 감성일기)
-어지러운 시대의 강을 지혜롭게 건너려는 한 개인의 미시적(微視的) 역사-
‘따뜻한 외로움’을 50편으로 마감하고, ‘어쩌다 황혼’이란 제목으로 일기를 계속 이어간다. 언제까지 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일주일에 한두 편씩 삶을 복기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1. 2025.12.13.(토)
유난히 포근한 주말. 겨울이 잠시 숨었는지 좋다. 오늘은 초등 동기 C와 점심 약속이 있다. 지하철 3호선 서문시장역에 내리니 발 디딜 틈이 없다. 약속 장소인 ‘만남의 광장’ 가는 길에는 사람의 홍수다. 따뜻한 날씨에 휴일이라 그런가. 길게 늘어선 노점 국숫집과, 길거리 호떡집엔 손님들로 시끌시끌하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사람을 피해 걷는 것도 힘이 들지만 싫지 않다. 마치 1970년대, 통행금지가 하루 없는 크리스마스 날 밤에 동성로를 걷는 기분이랄까. 역시 재래시장의 맛은 간단한 길거리 먹거리가 으뜸이다. 우리는 늘 찾던 ‘선아 국숫집’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아직은 가게가 붐비지 않아 다행이다. 재직할 때부터 즐겨 찾던 국숫집이다. 퇴직 후에도 친구와 서문시장에서 모임을 하면 자주 찾는 단골집이다. 여기서 이따금 Y 선생, S 교장 등 옛 직장동료들도 우연히 만날 때도 있다. 그들도 재직할 때의 옛 맛과 추억을 잊지 못해 찾는 듯하다. C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기서 미팅한다. 오늘도 뜨거운 칼국수로 배를 달래고 일어섰다.
커피는 길 건너 서문교회의 ‘카페 블레싱’이 좋다. 시장 안의 카페는 장소도 좁고 사람이 많아 너무 어지럽다. 잠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와 멀다. 교회에서 직영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값은 대형 커피점과 비슷하다. 넓은 장소에 편안한 의자, 깨끗하고 높은 천장은 조용하게 담소하며 휴식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파동에 같이 살았던 C와는 지내온 안부로 시작해 속에 있는 깊은 얘기도 털어놓으며 서로 힐링하는 사이다. 생각의 결이 비슷하다. 비교적 건강한 체질이지만 그도 조금씩 낡아가는 건강을 털어놓는다. 최근에는 마음의 안정이 되지 않는단다.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자주 생겨 의욕이 떨어지고 정신이 가라앉는 느낌이란다. 아무에게나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제일 좋은 답은 끝까지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경험을 설명하며 긍정적인 길로 안내한다. 칼럼에서 공부한 얘기도 하고, 나름대로 치유한 방법을 편한 마음으로 주고받다 보면 정답이 아니라도 많은 힐링이 된다. 결국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걱정이 있으면 걱정하고, 그냥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다. 한 겹 껍질을 벗겨보면 다들 비슷하게 고민하고 살아간다. 종종 내 안의 불안을 내려놓고 기쁨을 방해하는 두려움과 맞서는 것이 좋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훌쩍 시간이 달아난다.
오후 2시 30분 귀가했다. 참, 오늘은 2시부터 ‘청춘탁구클럽’ 송년회 날이다. 빨리 오라고 관장님의 재촉 전화가 왔다. 급히 구장에 도착하니 푸짐한 먹거리 상이 준비되어 있다. 관장님과 여회원들이 며칠 동안 준비했다. 행운상 상품도 두둑하다. 송년회 모임은 경기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놀고먹는 것이 우선이다. 오전반, 오후반, 저녁반이 함께 섞어 조를 짜 복식 게임으로 시작했다. 단식 게임은 없다. 20여 명이 참가해 복식 10개 팀을 A팀과 B팀으로 나누었다. 다시 실력이 비슷하게 조를 짠다. 나는 B팀으로 청도 소방관인 A 님과 한 조가 되었다. 토너먼트로 4게임을 해서 승률로 우승 팀을 뽑는 방식이다. A팀 우승 조와 B팀 우승 조가 결승에서 마지막 승자를 가린다. 나는 사실 복식 게임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상대 팀과 실력이 크게 벌어지면 힘들지만, 팀의 조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공격형이면 실수가 잦고, 수비형이면 득점에 어려움이 많다. 한쪽이 공격형이고 다른 사람은 수비형으로 조를 이루면 제일 좋은 성적을 낸다. 나름으로 열심히 뛰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척추협착증으로 석 달이나 놀았기에 실력 부족이다. 다시 모두가 같이 즐기는 색다른 게임을 시작한다. 전체를 10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경기하는 청백 게임이다. 이 게임은 처음 해 본다. 처음에 양 팀이 순서대로 한 명씩 나와 경기를 시작한다. 점수를 잃는 팀은 다음 선수로 교체한다. 잃는 팀이 먼저 공격한다. 점수를 계속 따는 선수도 5점을 따면 교체한다. 이렇게 죽 돌아가며 순서대로 해 전체 점수가 42점을 먼저 내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고수가 실수하기도 하고 하수가 네트플레이나 모퉁이 맞는 행운으로 점수를 얻으니 박장대소하며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수 출신인 관장님의 제안으로 재미있는 게임 방법을 체험했다.
오후 6시. 행운권 추첨도 끝낸 뒤풀이 시간에 슬그머니 집으로 왔다. 피곤했기에 몸이 힘들다고 신호가 왔다. 끝까지 함께 즐겼으면 좋지만,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종일 함께 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맑고 환하다. 기적 같은 소소한 삶을 아름답게 누렸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고맙습니다.
2. 2025.12.15.(월)
별 볼 일 없이 사는 듯해도 바쁘다. 낮 12시. 수성못 ‘쿠우쿠우’에서 모임이다. 얼마 전 초등동기 L이 모친상을 당해 잘 치렀다는 감사로 초대한 날이다. “에고! 안 해도 되는데”라고 사양 문자를 보내도 거듭 얘기한다. 고맙게 승낙했다. 동기 얼굴도 보고 살아가는 모습, 겸사겸사 수다를 즐길 시간이다. 승용차보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편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통해 좋아하는 칼럼도 감상할 수 있고, 유튜브로 전문가의 하모니카 강습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성 6번’을 타면 50분 걸리는 거리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경치와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갑자기 우리 집 새 식구가 된 달팽이를 떠올린다. 이 미물을 언제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생명이기에 정성과 관심을 쏟아야 좋은 결과가 온다. ‘따뜻한 외로움’ 내 글을 읽은 한 대학 동기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예전에 키우던, 예쁘고 도도한 고양이의 매력을 잊지 못해 기회가 되면 다시 ‘먼치킨’이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 ‘먼치킨’을 검색해 봤다. 작고 보잘것없는 달팽이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된다. 크기나 값이나 생명력이나 큰 차이가 있다.
얼마 전 달팽이 가출 사건을 떠올리다가, 달팽이가 사라졌을 경우와 고양이가 명을 다했을 때의 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당연히 대부분은 달팽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때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이란 수필을 떠올렸다. 손님과 내가 대화하는 형식의 글이다. 손님은 “개(犬)가 죽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蝨)라는 미물이 죽는 것은 하찮다.”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화로에 이를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나는 다시는 이를 잡지 않겠다.”라고 내가 반론한다. 손님은 다시 “개는 크고 이로운 짐승이지만 이는 미물이고 해로운 것인데, 이를 개와 같다는 것은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모든 생명은 크든 작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개와 이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내가 당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나는 대답한다. 크기와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사실(표면)만 보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모든 생명체는 크기와 관계없이 소중하다는 보편적 깨달음, 사물의 본질(이면)을 보라는 이야기이다. 이 고전 내용을 잘 알면서도 나는 아직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제쯤 철이 들까? 여든이 넘어도 철이 들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흐른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수성못에 도착했다. 살랑거리며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따스해 겨울 같지 않다. 상화동산의 상화시비 곁을 지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눈으로 감상한다. 주말의 행사 준비로 무대장치를 만든다고 쿵쾅거린다. 못 둑을 천천히 걸어본다. 눈 가는 곳 따라 마음도 시원하고 맑다. 아름답다. 좋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유럽 이름난 어떤 호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곳이 아닌가. 일렁이는 물결에 윤슬이 반짝이고, 물가 가장자리 허리 굽혀 인사하는 억새들의 몸짓에 미소로 화답하며 산책길을 어슬렁거린다. 평일 한낮이라 사람이 적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소근대며 걷는 발걸음 소리에 을사년은 천천히 저물어간다. 멋지게 단장된 데크길 사이로 보이는 노랗게 물든 가로수의 물결은 한 장의 겨울동화이다. 그때 저쪽에서 얼굴이 익은 사람이 걸어온다. 같이 근무한 S 교장이 아닌가.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근처 파동 코오롱 아파트에 사는 S 교장은 운동 겸, 도보로 지하철 3호선 수성못역으로 가는 길이란다. 서문시장 ‘선아 칼국숫집’에 모임이 있다고 한다. 내가 가까운 파동에 살 때는 수성못에 자주 왔지만, 이사로 몸이 멀리 떠나니 마음도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지만 현실은 어렵다.
낮 12시. 식당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넘친다. 북적거리는 서문시장 노점의 국숫집에 온 것 같다. 초밥코너에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오찬 25,900원. 온갖 종류의 초밥 음식이 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우리나라가 정말 잘 사는 것 같다. 아니, 잘 사는 사람만 여기 오겠지. 점심 약속을 대부분 11시 30분 정도로 잡기에 사람이 벌써 넘친다. 나도 지금 여기 있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새벽 운동을 나갈 때 간혹 마주치는 파지 줍는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따금 K 복지관에서 점심 먹을 때 긴 줄을 이루는 노인들의 표정도 되살아난다. 빈익빈 부익부가 대를 이어가니 어쩔 수가 없다.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해야지. 세 테이블에 10여 명이 자리 잡았다. 여자 동기 일이고 평일 낮이라 여자 친구가 많이 왔다. 남자는 겨우 4명. 평소 소식하는 체질이지만, 본전 생각이 나서 접시에 몇 번 담아오니 과식했다. 후회하고 반성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시간이다. 식탐은 크게 없어도 고치기가 어렵다. 오늘 음식 중 ‘앙크루트 스프’가 색다르다. 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철학박사인 풍수 대가 N의 조상 모시기와 명당 이야기도 재미있고 수긍이 가지만, 20년, 50년 후의 세상을 그려보면 고개를 갸웃한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K의 생활철학도 좋고, 종친회 회장을 맡아 문중의 궂은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지내는 H의 보람 있는 삶도 자랑스럽다. 다들 세월의 흐름에 물결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간다. 다시 창밖으로 수성못이 안긴 수성호텔 ‘카페 NOC’로 자리를 옮겼다. 카푸치노와 라테 한잔으로 뒤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을 풀어낸다. 자질구레한 잡담과 수다도 즐겁다. 고희를 훌쩍 넘긴 세월이 아닌가. 동기들의 지난 추억의 일도 돌아보니 아스라하고 재미있다. 내가 쓴 ‘따뜻한 외로움’을 자세히 읽은 친구가 소감도 간단히 전해주며 격려해 준다.
A 의 승용차로 ‘용지’ 역에 내렸다. ‘수성 6번’을 타고 시지로 귀가하니 어느덧 오후 4시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L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청춘탁구클럽’에서 출석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피곤해서 그냥 쉬었다. 아직 완쾌되지 못한 몸이라 조심한다. 쉬엄쉬엄 어슬렁어슬렁 살아가자. 이런 주문을 자주 외우면 실천하리라 생각된다. 기적은 고목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별일 없이 어제처럼 아침마다 눈 뜨고 감사한 하루를 여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자잘한 기적의 시간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 2025.12.19.(금)
구름 많은 흐린 날씨다. 아침부터 뭔가 부족한 듯 마음이 찌뿌둥하다. K ***에서 꽃게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대학 구내식당의 학식을 먹는 기분이다. 지난주 복지관의 모든 문화 강좌가 종강했기에 경로식당은 전보다 조용하다. 줄 서서 기다릴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통계학으로 보면 여자들이 장수하지만, 여긴 대부분이 남자다. 연로한 분도 많지만 젊어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혼자 사는 분도 많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는 괜찮은 듯하나 끼니 해결은 어려운 것이 노년의 남자다. 그들의 삶이 고난했다는 것을 하회탈 닮은 표정으로 읽게 된다. 배식 때 밥 양을 보면 하루 한 끼로 해결하는 분도 있는 듯하다. 서글프고 안타깝다.
마음이 불편한 날은 미술관을 찾는다. 간송미술관으로 차를 몰았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가로수들이 말 잘 듣는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정렬해 있다. 입구에 오니 즐겁다. 천천히 미술관 계단을 내려갔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몇 번 봐도 잘 모르지만, 예술 작품 앞에 서면 경건함이 생긴다. 문학이나 미술이나 학문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장대한 문학작품을 쓴 ‘스티븐 킹’이나 ‘시드니 셀던’ ‘조정래’ ‘박경리’ ‘최명희’ 같은 사람의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어떻게 저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뿐이다. 일생을 신념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산 흔적이 아닌가. 며칠 지나면 ‘삼청도도’ 특별기획전도 마감한다. 1전시실에 전시된 산수화 작품 위치가 전과 조금 바뀌었다. 현재 심사정의 ‘여산유서’(여산에 숨어살다.)부터 자세히 감상한다. 초가집 창가에 앉은 선비가 밖의 풍경을 보고 있고, 건너편 절벽 아래 시동과 손님이 개울의 외나무다리를 건너오는 그림이다. 중앙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배경이 된 첩첩 산세가 압권이다. 작품과 해설을 번갈아 보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림에 들어간다. 오원 장승업의 ‘난천청산’(요란한 폭포와 푸른 산)은 긴 족자 형태의 산수화이다. 구름 같은, 검고 뭉클뭉클한 바위 모양의 산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진다. 절벽 사이사이에 이상향 같은 기와가 세 채, 아래쪽에는 아담한 초가가 한 채 있고, 개울가 다리 위에는 주인이 왼팔을 들고 손님에게 길을 안내하는 듯한 모습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좋다.
건너편에 있는 서예 작품은 관심이 많다. 한때 나도 열정을 바쳐 20여 년 심취한 분야이다. 원교 이광사의 유려한 행서 작품은 언제봐도 자유롭고 호탕하다. 글씨도 좋지만, 글의 내용도 마음에 든다. ‘높은 누각에서 새벽에 꽃 한 송이 핀 것을 보고, 봄빛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것을 문득 알았네. 따스한 햇살과 갠 구름이 차례로 이를 것이니 동풍이 다시 봄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리.’ 당나라 시인 영호초의 ‘유춘사’라는 작품이다. 이광사는 당시 대중적 인기와 관심을 최고로 받은 작가이다. 옆의 ‘원교진첩’은 이광사가 당나라 시성 두보의 시를 예서와 전서로 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전서는 마음에 드나 예서는 좀 그렇다.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의 ‘황화주실’이란 작품을 대한다. 전형적인 예서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추사체의 글씨다. 무궁무진한 예술의 세계에서 수박 겉핥기 감상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중앙의 청자와 백자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두 점은 국보이기에 더 관심이 간다. 지난번에 대충 봤지만,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려니 직원이 바로 제지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청화백자인물문팔각병’은 둥근 병을 물레로 성형하고 팔각으로 깎아 만든 각병이다. 문양은 대나무숲에서 거문고를 타는 선비와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앉은 인물을 그려 넣었다. 산뜻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크게 멋진 그림은 아니라고 소개한다. 작품 한번 보고, 해설 보고, 다시 작품 보고, 해설 보고,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눈이 침침하고 힘들지만, 몰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냥 그냥 지내는 것도 편안하고 좋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는 삶의 맛도 괜찮다. 무위(無爲)의 행위가 최선일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엿보고 호기심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취향이다. 4전시실의 ‘삼청도도’는 지난번에 자세히 보았기에 한번 쭉 둘러보고 나왔다.
대구미술관에 들어가려다가 눈이 피곤해 돌아섰다. 산책로 소나무 숲에 앉아 건너편 팔공산 능선을 우러렀다. 잿빛 구름에 가린 정상은 잘 안 보여도 마음은 편안하다. 조상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며, ‘사람은 가도 예술은 영원하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잠시나마 선인들의 시대와 교감한 시간이 좋다. 오늘도 고마운 날이다. 지금 여기 내 뜻대로 다닐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고맙습니다.
4. 2025.12.24.(수)
지난 며칠은 우울했다. 주말에 또 비보가 전해왔다. 대학 동기인 L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올해 벌써 몇 번째 슬픈 소식인가? 동기와 지인 선배 후배까지 7명이나 된다. 을사년은 마지막까지 정말 잔인하다. 그는 10여 년 전 위암 수술 후 남은 위장으로 힘들게 살았다. 자기 먹는 속도가 느려 불편하다고 모임에도 참석을 꺼렸다. 몇 년 전, 서울 거주할 때는 여자 동기들과 산행도 자주 했다. 앞장서서 산길을 인도하고 힘든 친구의 배낭도 들어주며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구에 와서도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것으로 알았다. 동기 카톡에 이따금 소식도 올리더니, 순간 별똥별로 사라졌다. 조문 후 친구들과 지하철 반월당역 만남의 광장 2층 ‘브리스톳’ 카페에 앉았다. 포항, 경주, 대구의 친구 5명이 자리했다.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을 얘기하며 아쉬움을 달래다가 우리 또래의 평균 생존율이 얼마일까 설왕설래했다. 한 친구가 AI로 바로 검색했다. 남자 70세 이상 살 확률은 85%가 나온다. 80세 이상은 63%이고, 90세까지도 살 확률은 25%나 된다. 평균수명이 참 길어졌다. 죽음은 언제 누구에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먼저 별이 된 친구 삶은 안타깝고 슬프다.
L과 나는 대학 1학년 때 겪은 추억이 색다르다. L과 지금 창원의 K교장 그리고 나, 셋이 여름방학 때 청하 보경사 내연산으로 1박 2일 등산을 갔다. 당시 우리는 과 산악회 ‘암충(岩蟲)’이란 동아리 회원이었다. 1972년도 우리가 가진 등산 장비는 정말 열악했다. 무거운 군용 A텐트, 군용 모포, 알코올버너 등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장비로 어떻게 갔을까 생각할 정도로 빈약했다. 나는 3학년 때 스웨덴 제품인 ‘스베아’ 석유 버너도 구입했다. 푸른 청춘이라는 패기 하나로 살았던 시절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포항에 내려, 다시 터덜거리는 버스로 보경사 입구까지 갔다. 보경사 경내를 구경하고 상생폭포 무풍폭포 출렁다리 관음폭포와 연산폭포까지 12폭포를 올라갔다. 당시는 구름다리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폭포 옆 가파른 산길을 어렵게 올라가면 거짓말같이 다시 평탄한 곳이 나타난다. 소금강 쪽으로 가다 날이 저물어 멀리 향로봉을 바라보는 적당한 곳에서 야영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새 소리와 계곡물 소리 검푸른 숲만 친구가 되었다. 당시 야영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산을 좋아하고 자주 갔기에 야영의 즐거움에 빠질 때였다. 텐트 속 잠은 힘들었지만, 새벽 여명의 숲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이른 새벽 희뿌연 햇살이 소나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황홀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은 금상첨화였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귀갓길에 포항 북부해수욕장에 들렀다. 해수욕은 하지 않고 백사장만 돌아다녔는데, 문제가 생겼다. 어쩌다가 총무를 맡은 L이 남은 회비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비상금을 톡톡 털어 대구행 저녁 통근 완행열차 차표를 사니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돈은 없고 처량했다. 포항역 광장 모퉁이에서 알코올버너로 라면 하나를 끓여 셋이 나눠 먹었다. 꿀맛이었다. 지친 몸을 싣고 탄 열차 안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통근 열차 마지막 칸은 해병대 군인들이 탄 열차였다. 해병대 헌병 둘이 우리 칸에 들어왔다. 등산 배낭을 본 그들이 검문한다고 열어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고 배낭을 풀어 보이니 모포가 군용이라고 압수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정을 해도 소용없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잠시 뒤 K가 가만히 못 있겠다고 헌병을 찾아 마지막 칸으로 갔다. 대구 도착까지 걸리는 2시간 내내 K가 오지 않았다. 기차가 반야월역에 도착할 무렵 K가 환하게 웃으며 모포를 들고 돌아왔다. 군용 칸에서 K는 모포를 돌려받으려고 살아온 얘기부터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지내다가 결국 받아 온 것이다. 새삼 그의 끈질긴 집념과 열정에 L과 나는 부러움과 경탄한 일이 어제처럼 아스라하다.
오늘 저녁 7시 30분. ‘제7회 수성빛예술제’가 막을 연다. ‘행복수성 뉴스레터’로 검색한 나는 며칠 전부터 손자들을 데리고 갈 계획을 세웠다. 근데 날씨가 차다. 어떻게 할까? 괜히 잘못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다. 한참 망설이다가 혼자 가기로 했다. 잔병치레를 잘하는 아이들이라 득보다 실이 많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옳다. 마음으로는 화려한 빛예술제와 멋진 ‘드론아트쑈’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내년을 기약했다. 주말에 경주 풀빌라 여행을 간다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수성못 행사 참가는 주차가 어렵다. 혼자라 ‘수성 6번’ 버스를 탔다. 천마타운 앞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완전히 무장한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엄마와 함께 우르르 탄다.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니, 그들도 ‘수성빛예술제’에 가는 모양이다.
저녁 7시쯤 도착하니 개막식장 못 둑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다. 크리스마스이브라 교인들은 오기 어려워 덜 붐빌 줄 알았건만 예상과 다르다. 빛예술제의 백미는 ‘드론아트쇼’이다. 예전에는 폭죽쇼가 대세였으나, 요즘에는 수백 대의 드론이 빛과 움직임으로 입체적인 온갖 형상을 만들며 비행하는 ‘드론아트쇼’가 축제의 절정이다. 너도나도 멋진 비행에 탄성을 지르며 동영상 촬영에 바쁘다. 사실 귀가해서 블로그로 검색하면 본인이 찍은 것보다 멋진 동영상이 많이 나온다. 누구나 그냥 그냥 찍는 재미일 것이다. 기를 써서 찍는 자체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강물에 작은 물결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참석하고 촬영함으로써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존재의 기쁨일까. 내년 1월 4일까지 매일 점등식과 빛예술제 전시는 계속된다. 좀 따뜻해지면 손자들과 다시 와야지 생각하고 8시 30분에 시지행 버스를 탔다.
차 안에서 갑자기 재미있게 사는 것이 뭘까? 언젠가 읽은 신문 칼럼이 떠올랐다. 우린 누구나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근데 사는 것은 원래 재미가 없다고 한다. 재미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재미있게 살려면 재미에 대한 기초가 필요하다. 작은 악기 하나 연주도 재미를 느끼려면,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재미없는 지루한 반복의 고통을 이겨내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멋진 소리와 함께 성취의 기쁨과 재미를 느낀다. 기쁨과 쾌락은 다를 것이다. 비슷한 도파민 현상이지만 쾌락은 쉽게 얻어지기에 순간적이고, 기쁨은 힘든 노력의 결실이기에 지속적이다. 내가 흘린 땀이 즐거움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재미가 생긴다. 재미와 기쁨은 함께 다닌다. 석양의 나이에는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힘들고 어렵고 귀찮아서 재미를 찾기 어렵다. 때론 그냥 그냥 사는 것도 좋다. 그럴수록 아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기심과 단순함이란 무기로 새로 바라보면 좋다. ‘싱크 어게인’에서 애덤 그랜트는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뒤죽박죽 잡생각을 풀었다 감았다 하는 사이, 버스는 집 근처 정유소에 얌전히 도착한다. 오늘도 기적의 감사한 날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5. 2026.01.01.(목)
기척도 없이 새해가 열렸다. 몇 년 전까지 새해 일출을 보러 다녔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다들 가는 데, 나만 가지 않으면 무엇인가 뒤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바닷가 일출은 번잡고 힘들어서, 청도 팔조령 정상으로 자주 올라갔다. 올해도 가까운 천을산이나 욱수골로 갈지 망설이다가 접었다. 새해 일출 나들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지난해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슬픈 소식이 줄을 이었고, 척추협착증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행복과 불행을 많이 곱씹었다. 곰곰 생각하면 둘은 샴쌍둥이처럼 공존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손바닥 뒤집기와 같은 일이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피부로 느낀다.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행복이다. P 소설가의 글에서 삶을 마감하기 전 후회하는 일의 목록을 살펴봤다. 대부분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많다. 첫째, 너무 일만 하고 살아온 일,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일, 셋째,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았던 일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편안함으로 고맙게 여겨야겠다. 어려움을 다행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삶이 펼쳐진다고 한다.
병오년 첫날이다. 추위가 대단하다. 종일 영하의 날씨다. 아침을 먹고 범물동에 있는 어머님 집에 갔다. 살짝 문을 여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요양보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는다는 말이 없었기에 기다리던 어머니가 “왜 안 오느냐?”라고 요양보호사에게 전화하니, 새해 초하루라 혹시 가족들이 올까 해서 오지 않았다고 답이 왔다. 소통이 안 된 상태로 결근이다. 어머니 얼굴은 깔끔하고 정신이 맑으시다. 뵐 때마다 얼굴을 살피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집사람과 잡다한 가족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대화해야 소통이 된다. 대화에서 빠진 나는 혼자 벽에 걸린 ‘반야심경’ 액자를 보며 눈으로 암송한다. 별일 아니지만 두어 번 암송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새벽마다 어머님이 암송하는 ‘금강경’은 엄두도 못 내지만, 반야심경은 교양 수준이라 입으로 흉내는 낸다. 시 암송을 좋아하는 내 DNA도 어머님께 받은 좋은 유전자이다. 95세. 백수를 향해가는 나이지만 언제나 존경스럽다. 휠체어 도움으로 사시지만, 화장실이나 부엌에는 조심스레 혼자 다니시는 어머님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탈 없이 살아가는 복은 당신의 존재 때문으로 생각된다. 차 조심하라는 어머님의 당부가 늘 마지막 인사다.
목요일은 신매장날이다. 집사람이 카트를 끌고 나선다. 10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라 운동 삼아 혼자 걸어가려고 한다. 근데 날씨가 너무 차다. 갈 때는 빈 카트지만 올 때는 가득 채울 게 아닌가. 자존심으로 속마음은 내놓지 않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힘들지 싶다. 작년에 개장한 신매시장 주차장 시설이 좋다.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함께 가기로 했다. 정월 초하루라 노전은 조용하고 붐비지는 않는다. 장날은 장날이다. 유명한 족발집에 길게 이어진 줄이 세상 살아가는 장날 맛을 보여준다. 카트를 끌고 따라 다니느라 바쁘다. 짐꾼으로 다니는 기분도 괜찮다. 부딪치는 사람 사이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묵직하다. 사과, 당근, 파, 옥수수, 감자 등 일주일 부식이 가득하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혼자보다 둘이서가 아름답고 편하다. 나이 들어서는 작은 일에도 힘들 때 도와주면 서로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늦은 오후에 동구 반야월에 있는 신서화성파크드림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오래되었지만, 지인이 결혼 예물로 장만해 쓰던 것이라며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깨끗하게 사용한 장식장이다. 차에 실을 수 있을까? 크기를 재어보니 승용차에 억지로 들어갈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어렵게 뒷좌석에 실었다. 조심스럽게 낑낑거리며 싣고 와 작은방에 정리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해 아들 둘이 아빠를 위해 좀 큰 승용차를 샀다. 나는 전에 타던 현대 소나타가 좋아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했지만, 연비는 좋지 않아도 안전이 최고라며 둘이서 작당을 한 결과물이다. 그게 요즘은 종종 짐차가 되었다. 본래 기능이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지만, 자주 큰 짐을 실어야 하니 좀 그렇다. 무엇이든 필요에 따라 싣고 이동하는 것이 본분이 아닌가 달리 생각하니 괜찮아진다. 모든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 삶의 편리를 위한 승용차가 아닌가. 등소평의 백묘흑묘(白猫黑猫) 이론도 떠오른다. 어쩌다 작은 방은 손자들 책방으로 변신했다. 집사람과 의견이 계속 충돌했다. 내 이론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다고 하고, 집사람은 그래도 집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심으로 구입한 책이 양 벽면에 가득하다. 읽어야 할 손자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서관이 내 서재이고 마트가 내 냉장고라 생각하면 좋지만,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가 없다.
새해 첫날부터 허둥지둥 보냈다. 올해는 ‘느리게’와 ‘천천히’를 화두로 삼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제일 힘든 것이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천성은 바꾸기 힘들어도 습관은 노력하면 고쳐진다. MBTI가 예전에는 ISFJ였는데 최근에는 ESFJ로 바뀌지 않았는가. 내향적인 성격이 노력하니 외향적으로 변했다. 좀 무심하게, 급하지 않게, 한번 생각하고 시작하기, 잘 들어주기, 상대 관점에서 바라보기 등 너무 많아서 체할 것 같다. 바로 실천은 되지 않아도 마음으로 다독이면 언젠가 근처까지 도달하리라. 기적의 하루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고맙습니다.
6. 2026.01.02.(금)
아침 일찍 고산3동 행정센터에 들러 경로우대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올해 대구는 만 72세 부터 가능하다. 시내버스를 타도 ‘사랑합니다’ 소리와 함께 복지혜택을 받는다. 가슴이 철렁한다. 어쩌다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가? 기쁨보다 서글픔이 들었다가 지나간다. 세월이 날개를 달고 지나간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새롭게 시작하라는 시기다. 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잘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나는 시작보다 지속을 좋아한다. 탁월함보다 지속성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다. 큰 재능은 없다.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장점인 성실함이 내 무기이다. 습관으로 단련된 끈기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모든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경산 처형 부부와 시지 ‘낙동생오리’에서 모임을 가졌다. 언제 와도 실망하지 않는 집이다. 깔끔한 오이절임과 물김치, 부추겉절이, 궁합으로 구운 생오리가 입맛을 살려낸다. 주인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블로그의 후기도 많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상냥하게 대하면 상대도 좋은 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처형이 카페는 못 가본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가까운 대구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덕천 418’카페가 떠올랐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건너편 길에 차가 줄지어 주차한 것을 보고 검색은 해 본 곳이다. 수성구 삼덕동으로 중구 삼덕동과 동네 이름이 같다. 추운 날씨라 조용하다. 입구에서 바라본 규모에 입을 딱 벌리게 한다. 노란색으로 치장한 대문이 인상적이다. 제주도 전통집 대문처럼 중간에 세 개의 봉이 걸려있다. 실제 입구는 옆에 작게 따로 있다. 대지 전체가 천 평이 훌쩍 넘어 보인다. 멋지게 키운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푸른 하늘을 이고 손님을 맞이한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아담한 3층 건물이 보인다. 정원의 풍경에 비해 카페 건물은 가정집처럼 밋밋하고 멋이 없다. 2층에서 주문을 하고, 주로 1층과 3층을 이용하지만, 실내는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한여름과 한겨울이 아니면, 넓은 정원 곳곳에 자리한 야외 탁자와 벤치에서 차 한 잔의 운치가 그려진다. 3층 야외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도 도심 속의 시골 분위기이다. 북으로는 멀리 팔공산 능선이 굽이치고, 남쪽으로는 미술관 너머 대덕산과 범물동 뒷산인 용지봉으로 연결된다. 참 자리를 잘 잡았다. 카페라테 한 잔을 음미하고 있노라니, 건너편 눈에 익은 사람이 앉는다. 옛 직장동료인 행정실 K 실장이다. 점심을 먹고 친지들과 바람 쐬러 왔다고 한다. 반갑다. 얼굴이 예전 그대로다. 전혀 시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지낸다고 하니 세월도 비껴가는가보다. 안부를 묻고 건강 덕담을 주고받았다. K 실장은 내 초등학교 3년 선배다.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 때 만나 동창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아들 절친 J 의 모친이 어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들은 늦은 밤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자정 무렵 잠깐 집에 왔다. 이제 겨우 60대 초반의 나이다. 큰 병도 없었는데 며칠 전부터 체한 현상이 있어 방치했다가 심근경색이 왔다고 한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공기업에 다니는 두 아들은 출가시키고, 이제 편한 여생을 보낼 시기인데. 안타깝고 슬프고 황당하다. J 는 고등학교 시절 아들과 가창에 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잘 아는 사이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하늘에 달렸다는 종교적인 답만 가능하다. 아들은 내일 운구도 도와주고 장지까지 갈 예정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와 시간의 차이만 있는 인생! 혼자 남은 J 의 아버지 생각을 하니 아득하고 막막할 뿐 눈물만 나온다.
다른 큰 사건(?)이 생겼다. 간밤에 달팽이들이 알을 50여 개 낳았다. ‘라라’와 ‘민트’ ‘코코’ 누가 낳았을까? 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자웅동체(암수 한몸)라 두 마리만 있어도 많은 양의 알을 낳는다. 사육 통 한쪽 모퉁이에 작은 팥알 크기의 살색 알이 소복이 쌓였다. 좋은 소식일까? 내일 사육 통을 큰 것으로 바꿔 어미들은 큰집으로 옮기고, 알만 작은 집에 두려고 한다. 보름쯤 지나면 새끼들이 태어난다. 대략 70-80% 정도 부화된다고 알고 있다. 상상만 해도 감당이 안 된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저 징그럽고 한편 신비하다. 집사람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으니, 새끼는 남에게 분양하겠단다.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새해 둘째 날도 훌쩍 잘 지나간다. 눈 뜨니 아침이 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날이 저문다. 올해는 맑은 소식만 많이 들리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별일 없이 소소한 하루를 감사히 보냈다.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7. 2026.01.09.(금)
아침부터 많이 망설였다. 집사람은 약속이 있어 나가고, 혼자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다. K ***으로 낙점했다. 혼자 밥 먹기도 좋지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 탐구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여기는 먹고 나서 속이 편한 것이 장점이다. 가성비가 높은 실비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내를 거치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여기서 먹는 것이 옳을까? 자존심, 체면 등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아닌가? 마음 가는 대로의 삶이 좋다. 배식받으니 남자 쪽은 자리가 없어 여자들 틈에 자리가 났다. 맞은편과 옆에 70대 후반쯤 친구로 보이는 여자들은 작은 소리로 계속 소곤거린다. “오늘 탁구장에 누가 왔다.”든가, “잘 오던 그 친구는 보이지 않네.” 등 식사 중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앞쪽에서 “콰다당” 소리가 났다. 아니, 이럴 수가! 몸피가 있는 한 여자가 어쩌다가 식판을 바닥에 엎었다. 바닥에 음식이 낭자하다. “저 여자 밥 많이 달라는 여자네.” “삼 년 동안 왔지만, 식판 엎은 것은 처음 보네.” 여기저기서 수군댄다. 그때 내 옆의 아저씨가 “오늘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군.” 한다. 그러자 앞에서 “뭐, 천당과 지옥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는데.”라고 여자가 되받는다. 혼잣말로 내면을 드러내 주고받는 말이지만, 알 수 없는 씁쓸함에 입안에 든 김치를 오래오래 씹게 한다. 직원이 황급히 물걸레로 뒤처리하니, 조용하던 식당 안에 밀려온 거센 물결이 이내 잠잠해진다.
식사 후 근처 고산도서관으로 갔다. 이사 오기 전에는 파동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파동은 대구 신천 강변에 있어 산책하다가 갈 수 있어 좋았다. 여긴 파동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장서량도 많다. 처음 이사 와서는 자주 와야지 마음먹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좋아지길 소망한다.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과 최근 발간된 ‘히든 포텐셜’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읽기가 잘 안된다. 욕심 많게 두꺼운 책 두 권을 뽑아 왔기에 대충대충 수박 겉핥기로 훑어봤다. ‘싱크 어게인’은 앞부분 내용을 몇 번 보았지만, 뒷부분은 걸음마이다. 노안이라는 핑계로 책을 멀리 한 게 원인이다. 글을 쓴다고 긁적거리면서 정작 중요한 독서는 게을리하는 사이비가 내 본모습이다. 많이 고민을 하지만, 깊은 사유가 들어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가벼운 신변잡기가 내 한계이다. 무리를 하면 좋지 않다. ‘싱크 어게인’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핵심 내용을 도표나 삽화로 정리해 놓아 이해를 돕는 것이 마음에 든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눈이 아프다.
귀가하면서 좋아하는 소설가 백영옥의 에세이 ‘힘과 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대출받았다. 요즘 집에서 중국 무협 드라마 ‘소오강호’에 빠져 있기에 책을 잘 읽을지 의문이다. 무협 드라마는 언제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라 더 정감이 간다.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의 출생, 갖은 고난 속에서 성장, 죽을 고비에서 귀인을 만나 무공과 실력이 일취월장, 절대로 죽지 않고,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우리 고전소설과 비슷한 점이 많기에 편하고 부담이 없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고, 많은 갈등의 사건 구성을 통해 재미있게 즐기면 된다. 007 영화나 고전 서부영화도 같은 맥락이라 즐겨 본다. ‘소오강호’도 여러 버전이 있지만, 요즘은 2018년도 37화로 된 작품에 빠져 있다. ‘소오강호’란 중국 음악 연주곡인데 제목으로 삼아 멋있다. 덕분에 ‘소오강호’ost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연주를 듣는 맛도 좋다. 책도 좋지만, 재미있고 즐기는 삶과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오후에 간송미술관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모처럼 파동 용두골 숲에 가려다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송미술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광복 기념행사인 ‘삼청도도’ 전시는 지난 12월에 마무리했고 상설 전시중이다. 가을부터 다섯 번째 방문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전에 없던 새 회화가 보인다. 풍속인물화로 유명한 혜원 신윤복의 그린 두 점의 산수화이다. ‘계명곡암’(시냇물이 소리쳐 흐르고 골짜기가 어둡다.)이란 산수화는 깊은 산에서 시냇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다. 위 상단에 ‘시냇물 소리쳐 흐르니 바람은 물 위를 스치고, 계곡이 어두워지자 비는 산으로 이어진다.’라는 제사를 음미하며 자세히 살핀다. ‘송정관폭’(소나무 옆의 정자에서 폭포를 바라본다.)은 정자에 앉아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렸다. 자연에 푹 빠진 선비의 즐거움에 고요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란 해설이 곁들인다. 이 두 작품은 혜원 신윤복의 자세하게 묘사한 풍속인물화가 아니라서 또다른 매력을 준다. 좁은 소견이지만,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또는 오원 장승업의 산수화는 구도나 크기가 굉장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듯하지만, 이 작품은 크기도 작고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그게 또 색다른 끌림이 아닐까. 다시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한 점씩 다시 보면서 해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좋다.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자세히 오래 여러 번 조금씩 살펴보는 것이 기쁨을 배로 주는 방법이다. 힘찬 한석봉의 글과 세심하게 쓴 안평대군의 서예 작품도 멋이 있다. 중앙의 도자기는 국보로 고려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조선을 상징하는 ‘백자청화철재동채초충난국문병’이 마주 보고 있다. 음식이나 차, 술 등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하나 실제는 알 수가 없다. 이는 고려 귀족과 조선의 왕족이나 선비들의 감상용이 아니었을까 나름 짐작한다.
5전시실에서 영상으로 재해석한 ‘감응’과 ‘흐름’을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에 기대어 편안하게 감상한다. 하지훈 디자이너가 제작한 ‘자리’이다.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는데 마음에 든다. ‘감응(感應)’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사군자 작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해석했다. 180도 반원형의 커다란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의 파노라마는 선비의 마음이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듯 표현하고 있다. 사군자에 담긴 오묘한 느낌과 뜻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해석한 다양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사군자에 숨어있는 선비의 사유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10여 분이 지나, 이어서 ‘흐름’이 상영된다. 흘러가는 하루,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인간의 삶과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한 선비가 쪽배를 타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영상이 인상 깊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무 설명도 없이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대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신윤복의 ‘미인도’, 이인문의 ‘총석정’ 등 아름답다. 20여 분이 꿈결같다. 깔끔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듯 훈훈하고 황홀하다. 다시 석양의 시간이다. 올해 화두는 ‘느리게’ ‘천천히’로 삼았건만 쉽게 되지 않는다. 수양 부족이다. 언제쯤 느긋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열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자. 탈 없이 보낸 이 멋진 기적의 날이 고마울 뿐이다. 내일 아침 밝은 해를 기다리며 하루를 접는다. 고맙습니다.
8. 2026.01.16.(금)
어제저녁에 갑자기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암사 쪽은 산행 시간이 길다. 아픈 다리를 생각하면 짧은 거리가 좋다. 나는 오르막은 잘 올라간다. 뒤쪽 와촌면 선본사 주차장을 검색하니 승용차로 50 여분 걸린다. 혼자 가면 대중교통도 괜찮다. 버스를 검색하니 ‘수성 6번’을 타고 반야월역, 지하철로 하양역에 내려 ‘803번’을 타면 1시간 20분 거리이다. 버스 환승 시간을 고려하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물과 간단한 간식도 준비했다. 모처럼 혼자 산행에 들뜬 마음이었다. 새벽에 문제가 생겼다. 집사람이 계속 코피를 쏟는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지혈이 잘 안되어 애먹다가 다행 아침에 그쳤다. 병원 가보자고 하나 알아서 한다고 한다. 모세혈관이 파열되었던 모양이다. 아픈 사람을 두고 혼자 갓바위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쉬웠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사람을 위해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파동 오거리에 있는 ‘샤브향’으로 낙점했다. 이 집은 다른 ‘샤브샤브집’ 보다 깔끔하고 번잡하지 않아서 즐겨 찾던 곳이다. 오랜 시간 영업을 계속해 온 이유는 손님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11시 30분.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휙 돌아보니 준비된 신선한 채소가 마음에 든다. 전에는 육수를 매운맛, 맑은 맛 반반했지만, 오늘은 탁한 것을 싫어하는 집사람을 위해 맑은 육수만 신청했다. 기본과 풍성한 채소 샤브샤브 요리를 푸짐하게 먹었다. 점심 후, 처음에는 간송미술관에 가서 ‘흐름’과 ‘감응’ 영상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모처럼 전에 살던 고향 동네에 왔기에 나는 용두골이 가고 싶었고, 집사람은 대자연아파트 옛 지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용두골 입구 대구 신천에는 허옇게 얼음이 얼었다. 오래전에 네 식구가 여기서 스케이트 타던 추억이 생각난다. 30여 년 전 집사람은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서 열린 ‘생활체육 전국빙상대회’에서 ‘대구애빙회’회원으로 홀로 3관왕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오늘은 스케이트는 탈 정도의 투명한 얼음은 아니다. 물막이 보를 건너가니 아래쪽에 오리 대여섯 마리와 왜가리 두 마리가 한가롭다. 사람이 옆을 지나가니 왜가리는 날개를 활짝 펴 훌쩍 날아오르지만, 오리들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반응이 없는 고놈들이 귀엽다. 산길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뭄 탓인지 바싹 마른 낙엽들만이 흙먼지 속에 나뒹군다. 20 여분 올라가니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잠긴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친하게 지냈던 Y 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졌다. 이사 가기 전에는 거의 매일 산에 오면 이 근처에서 운동도 하고 하모니카 연주도 한 곳이다. Y 님과 많은 이야기도 나눈 곳이다. 공을 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회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Y 님과는 생각의 결이 비슷했기에 얘기가 잘 통했다. 만나지 못해 섭섭했다. 다시 밤나무 숲 쪽으로 올라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원래 산행 목적이 아니었기에 중간쯤 가다가 돌아섰다. 하산길은 왼쪽 숲속 오솔길로 할지 망설이다가, 새봄이 오면 진달래가 활짝 폈을 때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올라온 길로 내려왔다. 저 멀리 아치형 다리 입구에서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썼지만, 눈에 익은 사람이다. 아니, Y 님이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세상에! 이렇게 만나다니. 다시 같이 배드민턴장으로 올라갔다.
지난해 봄에 뵙고, 처음이다. 구장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기에 이유를 물었다. Y 님이 한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가을에 자칫 저승에 갈 뻔한 사건이다. 뱀에게 물려 죽을 뻔했다고 한다. Y 님의 손자는 우리 집 첫째 손자 **와 같은 또래이다. 천천히 사연을 털어놓는다. 지난가을 어느 날 일이다. Y 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뱀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하루는 Y 님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게임 쉬는 시간에 왼쪽 밤나무 숲에 들어갔다. 그때 발밑에서 80cm 정도 되는 뱀이 한 마리 스르르 지나가는 게 아닌가. 보통 때 같으면 그냥 피했지만, 그날은 갑자기 손자 말이 생각나 뱀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한참 서로 노려보다가 한쪽 발로 뱀의 중간 부분을 꽉 밟고 있으니 계속 꿈틀거리다 축 늘어졌다. 지친 뱀의 머리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 꽉 잡았다. 머리 바로 밑을 잡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약간 뒤쪽을 잡았다고 한다. 뱀이 갑자기 머리를 돌려 순식간에 오른쪽 둘째 손가락을 물었다. 금세 피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깜짝 놀라 뱀을 떨쳐내고 계곡에 내려와 흘러내리는 피를 씻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보더니 여기서는 어렵다고 급히 119를 불렀다. 몇 군데 대학병원에도 받아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형 병원 평리동의 ‘더 필병원’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물린 손가락이 새까맣게 탔고 오른팔 전체를 압박붕대로 꽉 묶었지만, 퉁퉁 부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뱀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뱀인지 확인하니 최고의 독을 가진 살모사가 아닌가. 본인은 까치 독사인 줄 알았다. 백방으로 해독약을 구해보지만, 빨리 구하지 못하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 절망 속에서 빛이 들었다. 어렵게 해독약이 구해져 주사를 맞으니, 다음날 부은 곳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사는 독이 목 근처까지 가서 멈췄기에 천운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완치해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듣고 있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어떻게 뱀을 손으로 잡으려는 마음을 가졌을까? 정신이 보통 상태가 아니라고 치매 검사도 했단다. 다행 치매는 아니었다. Y 님은 나보다 세 살 연장자이다. 중년 시절 한 때는 관광버스를 열두 대나 운영한 사업가였다. 지금은 다 접고 손자 돌보고 공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날 이후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한다.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지난 화요일은 갑자기 첫째 **가 유치원에서 독감이 걸렸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치료한다고 오지 않았다. 한번 오지 않았는데 그새 보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둘째 **이와 작은방에서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다. 로켓을 그려달라고 한다. 안 보고 내가 그릴 수가 있나? 이럴 때 AI를 사용해야지. 제미나이로 검색하고 그림을 갤러리에 저장했다가 보면서 손을 잡고 함께 그렸다. 다시 살살 구슬려 쉬운 과일 그림책을 펼쳤다. 감, 포도, 사과, 복숭아를 책 보고 그리니 좋아한다. 얼마 후 태권도학원을 다녀온 첫째 **가 들어왔다. 오자마자 할아버지와 알까기를 하고 싶단다. 구석에 있던 바둑판을 오랜만에 폈다. 그가 즐겨 읽는 만화 삼국지의 전투 장면처럼 양쪽에 흑과 백 10개로 서로 진을 쳤다. 손자는 아직 손가락 놀림이 둔해 알이 똑바로 퉁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판의 형세에 따라 일어서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알을 튕긴다. 낙방해도 웃어가며 소리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세 판을 해서 1승 2패로 내가 이겼다. 싫증이 나는지 이번에는 오목을 두자고 한다. 줄기찬 공격과 33 전법으로 5판을 했다. 손자가 3판 이기게 하니 좋아한다. 이제 TV 보는 시간이다. 정확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아쉽다고 계속 보려고 떼를 쓰건만 나는 OFF를 누른다. 집에 갈 시간이다. 둘째 이준이는 가기 싫다고 바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요놈 참.’ 달래려고 옆에서 내가 노래를 만들어 놀렸다. “**이 동생은 삼준이”라고 하니 “동생 삼준이 없어” 대꾸한다. 나는 계속 “삼준이 동생은 사준이, 사준이 동생은 오준이…….” “구준이 동생은 누구일까?” “열준이, 십준이” 어느새 정신없이 까르르 웃으며 돌아선다. 문밖에서 차렷 자세로 인사받고 엘리베이터에 태운다. 깨알같이 소소하고 어영부영한 하루가 저문다. 이게 평범한 소시민의 자잘한 하루이다. 뭘 했는지 몰라도 시간은 잘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별것 같은 하루이다. Y 님 사건이 충격이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 와 다행이다. 늦은 오후 청춘 탁구장에서도 즐겁게 보냈다. 승률은 보통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나이에 함께 경기한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자랑스럽다. 잘 보낸 하루가 고맙다. 감사합니다.
9. 2026.01.19.(화)
어느덧 김용의 원작 ‘소오강호’드라마 35부를 봤다. 조금씩 보다가 벌써 여기까지다. 이제 뜸 들이고 봐야겠다. 갈등이 최고에 도달한 절정의 막바지다. 37부가 종결이니 마지막 사건의 전개가 예상은 되지만 궁금하다. 고교 시절 무협 소설에 빠졌을 때다. 와룡생의 ‘비룡’ 전집 5권을 머리맡에 두고 무림에 빠졌다. 마지막 5권을 읽을 때는 무척 아쉬웠다. 이제 더 읽을거리가 없다는 허전함에 아껴 읽은 기억이 아스라하다. 정파와 사파의 싸움에서 정파가 이길 것은 뻔하지만 재미있다. 주인공 화산파 제자 ‘영호충’과 마교 교주 딸인 ‘임영영’이 어떻게 맺어질지, 사파의 최고수 ‘동방불패’와 오독교 교주 ‘남봉황’이 사랑이라는 가면 속에 속고 속이는 반전의 재미에 정신이 얼떨떨하다. 인간 세상의 추악함과 사랑, 음모와 배신, 끝없는 권력욕을 그와 대비되는 진정한 자유를 그린 작가가 존경스럽다. 정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화산파의 교주 ‘악불군’은 별명이 ‘군자검’이지만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의 권력욕이 절정에 비로소 드러난다. 겉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정파가 더 추악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묻고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요즘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그들도 이런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문득 달력을 보니 정월도 어느새 19일이다. 19라는 숫자에서 아득한 과거가 살아난다. 타짜가 아닌데 19라는 숫자에서 화투장이 떠오르는 내가 비정상일까? 중학교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배꼽마당 안쪽 끝에 사는 J 군의 집에 자주 모였다. 4명의 동갑 친구는 골목에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 흥미를 잃으면 J 집 골방으로 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전방의 군인 장교였기에 부모님은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숙제한다는 핑계로 모였으나, 숨어서 화투 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은 달부터 외웠다. 솔은 1월, 매조는 2월, 벚꽃은 3월……. 몇 달이 지나니 우리는 어른들이 하는 화투 놀이의 기초를 다 습득했다. 두장문 ‘섰다’부터 ‘도리짓고땡’, 놀음의 꽃(?)인 속칭 ‘구삥’까지, 영악하게 배웠고 딱지로 즐겼다. 숫자놀이와 게임 등 호기심이 유난히 강했던 나는,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확 빨려 들어갔다. 알리, 독사, 구삥, 장삥, 장사, 사륙(12,14,19,01,04,46)등 족보도 외우고 놀음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카드 놀이에 푹 빠졌었다. ‘포커’ 게임도 ‘하이 로(high Low)’와 ‘와일드’게임 등 변수가 많은 것을 좋아했다. 당시 속칭 총재인 K 음악 선생님에게 많은 방법을 배우고 함께 즐겼다. ‘훌라’ ‘런던 브리지’ ‘십자’ 등 카드 게임 하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카드의 매력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내 패보다 상대의 패를 잘 읽고 가능성에 따라 배팅한다. ‘포커페이스’의 마음을 읽어보는 첩보전과 비슷하다. 완전히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임이라 더 좋아한다. ‘구삥’에서 1과 9를 손에 잡으면 소위 ‘구삥’이라는 최고의 끗발이다. 넉 장의 화투장을 깔아놓고, 판돈을 걸고 패를 돌리면서 선을 잡은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끗발이 바로 1과 9를 받는 것이다. 지금 그때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골목과 골방의 추억이 아련하고 짠하다. 어쩌면 내 삶에서 호기심과 경쟁력 그리고 몰입의 재미와 즐거움의 출발점도 화투 놀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도 해본다. 순전히 놀이의 경지에서 탈선하지 않고 즐긴 내가 자랑스럽다.
저녁에 집사람이 달팽이 ‘라라’ ‘민트’ ‘코코’를 깔끔하게 목욕시켰다. 제 집에 넣기 전에 사각 쟁반에 올려놓았다. 반들반들한 패각이 보석보다 예쁘다. 금와인 ‘민트’와 ‘코코’는 밝은 황금색에 흰 몸이라 보는 사람이 눈부시다. 반면 백와인 ‘라라’의 패각은 호랑이 같은 지그재그 무늬가 선명해 또 다른 맛이다. 거실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사육 통을 밀고 가출한 일이 있기에 어느 정도 속도로 가는가를 보고 싶었다. 세 마리가 20여 분 동안은 쟁반에 붙어 꼼짝을 않는다. 그때이다. ‘민트’와 ‘코코’가 쟁반 가장자리에서 조금 움찔한다. 10여 분 지나니 두 놈이 바닥에 내려왔다. ‘어, 요놈들 봐라.’ ‘민트’는 화장실이 있는 서쪽으로, ‘코코’는 베란다 방향인 동쪽으로 앉았다. 나는 TV는 건성으로 보면서 요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거실 바닥은 흰색 큰 바둑판무늬라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하는 기분으로 기다린다.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이동한다. 10여 분에 10cm 속도로 배를 밀고 전진한다. 한 시간쯤 지나니 바닥 무늬 한 칸을 지났다. 정중동(靜中動)이다. 석양에 산 넘어 가는 해보다 훨씬 느리다. 달팽이 걸음을 보면서 ‘느리게’와 ‘천천히’를 생각한다. 내 삶도 이제 저렇게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느리게’를 외치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나를 돌아본다. 삶의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잡느냐가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평범한 사람도 나름대로 과속이 많다. 멈춘 듯하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슈퍼 카’도 핵심은 강렬한 엔진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달팽이 걸음을 관찰하며 내일의 삶을 예측하고 그려보는 재미도 맛깔난다.
오늘은 어쩌다 이상한 일기가 되었다. 삶의 복기 과정에서 별것이 다 나왔다. 거짓이 없는 생생한 민낯이다. 돌아보니 지난날은 다 고마운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도 이런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쭉정이면 어떨까? 관점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거짓과 위선이 아니면 괜찮다고 여긴다. 돌아보고 누릴 수 있는 지금과 여기가 있어 고맙다.
10. 2026.01.24.(토)
춥다. 춥다. 영하의 날씨가 이렇게 계속되긴 오랜만이다. 며칠 전부터 갓바위에 가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선다. 카카오맵으로 대중교통만 검색했다. 하양역에 내려 803번 타는 것은 두 번 갈아타야 한다. 근데 한 번 환승으로 영남대역에서도 가능하다. 급행 803번이 하루에 5번 운행하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좋을 듯하다. 날이 풀리기만 기도한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 어제 친구와 약속도 미루었다. 이럴 때 독서해야 하지만, 휴대전화로 검색하거나 TV 채널만 돌리고 있다. 공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빈둥빈둥 지내는 것이 좋을까?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어렵다. 빈둥빈둥 삶이 내 길이다. 마음 가는대로 살고 건강한 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한 국가가 떠오른다. 한때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였던 ‘부탄’이다. 히말라야산맥 티베트고원 최남단에 있는 인구 80만이 안 되는 곳이다. 객관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국민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점이 부럽다. 최첨단 AI 시대에 국왕이 통치하고, 첫눈 오는 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독특한 전통을 가진 낭만적인 나라다. 이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눈싸움하거나, 따뜻한 음식과 차를 마시며 자연의 변화를 즐기는 날이 된다. 한편으로는 눈이 농사에 필요한 물과 땅의 해충을 없애주는 ‘축복’이자 ‘길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유년 시절 시골 외가에 간 날,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외사촌과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불러온다.
사흘 구장에 결석했다. 사실 이 기회에 푹 쉬면 컨디션이 더 좋아지리라 생각했다. 천천히 쉬면서 한 박자 느리게 지내보자. 아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일까? 예상과 다르다. 루틴이 깨어지니 몸도 정신도 맑지 않다. 오늘부터 운동해야겠다. 3시쯤 구장에 가니 왁자지껄하다. 아니, 오는 날이 장날인가? 임펙트 동호회 시합 날이다. 단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중이다. 마음속으로 반가웠다. 오늘 고수들의 시합을 보며, 한 수 배울 멋진 기회가 아닌가? 청춘클럽 오후반 회원은 Y 선생님과 A 님뿐이다. 우린 한쪽 탁구대에서 한 시간쯤 우리끼리 경기를 하다가 고수들 경기를 관전했다. 대부분은 셰이크 라켓을 사용하지만, Y 선생님과 나는 펜홀드 라켓을 사용한다. 펜홀드로 치는 고수들 경기는 보기 어렵다. 마침, 펜홀드를 사용하는 W 사장님의 결승 게임이 벌어졌다. 두 분은 각각 3부와 4부 실력으로 탁구선수 출신이다. 처음부터 주고받는 공이 환상적이다. 비슷한 실력으로 공이 좀처럼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감탄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력한 드라이브와 백 드라이브가 주된 공격 무기이다. 특히 계속되는 백 드라이브에는 손목을 많이 쓰는 펜홀드의 장점을 살려 좌우로 회전하며 공격하고 방어한다. 저 경지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끝까지 공의 회전을 살핀다. 10여 년 열심히 구장에 다녔지만 8부나 9부 실력인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이다. 생활체육의 한계라 부럽기는 하지만 따라하기는 어렵다. 젊은 나이에 강습받고 시작했으면 좀 나아졌겠지만, 그땐 다른 일에 몰두했으니 별로 아쉽지는 않다. 지금 이 정도나마 즐길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저녁에 집사람이 둘째 손자 **이와 책을 읽는다.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 갑자기 공부를 시키고 싶은 집사람이 펼쳐진 쪽의 숫자를 묻는다. “14”라고 정확히 대답한다. 다시 뒤쪽을 펴서 묻는다. “26” 잘 대답한다. 그러다가 끝부분의 “79” 쪽을 펴서 묻는다. 그때 손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것 좀 묻지 마.” 순식간에 한 방 맞은 기분이다. ‘뭐, 요런 놈이 있나?’ 안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애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터인데……. 조금씩 나름대로 잘 배워나가건만 어른의 조바심이 아닐까. 다음에 내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봐야겠다. 나는 입으로 휘파람 부는 기술이나, 혀를 ‘똑딱’거리는 소리로 유혹한다. 입 오므리는 것이 잘 안되어 힘들지만, 똑딱거리는 것은 조금 되니 재미있어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하모니카 불어주세요.” 하며 거실 탁자 위에서 하모니카를 가져온다.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경쾌한 ‘체리핑크맘보’를 분다. 그때 만화 삼국지를 읽던 첫째 손자 **가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아이고, 요놈들 봐라.’ 그냥 미소 짓고 그만둔다. 알 수 없고 질서 없는 사건이 줄지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우왕좌왕 천방지축인 기적의 시간이 흘러간다. 답답한 듯, 답답하지 않은 하루다. 별일 없이 그냥 그냥 지나가는 삶이 다행이고 행복이다. 정제되지 않은 감성의 언어들만 전장의 총알처럼 쏟아붓는다. 민낯의 일상이다.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11. 2026.01.28.(수)
시골의 공기는 맑고 차갑다. 하빈 큰집 한글 강습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문양역 가는 ‘성서 2번’ 버스 기다리는 내내 얼굴이 얼얼하다. 차창 밖의 텅 빈 들판을 바라보다가 수업 중 잠깐 주고받은 말과 과정이 떠오른다.
M 님은 모범생이다.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는다. 열심히 해도 어렵다고 침울하다. 장기수인 그는 운동시간 외에는 한글 공부에만 몰입했다. 방 동료들은 바둑이나 장기 등, 잡기에 빠져도 그는 오직 책만 봤다. 노력한 만큼 진전이 없어 힘들어한다. 어언 수강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숙제해 온 글도 첨삭 과정에서 맞춤법이 많이 틀리니 어쩌면 좋으냐고 반문한다. 내가 보니 처음보다 제법 발전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70대 노인이 아닌가. 나는 다른 이야기로 비유해 용기를 준다. “발전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옷이 젖는 줄을 모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푹 젖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되는 것과 같지요. 지금 조금씩 젖어 들고 있는 과정입니다.”라고 다독인다. 매주 지나온 과거를 자서전처럼 쓰게 했다. 과제로 써온 글 내용도 좋아졌다. 솔직하지만, 감방 동료들에게 오해와 질시를 자주 받는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자기가 터득한 세 가지 원칙으로 대처하며 견딘다. 첫째 쳐다보지 않기, 둘째 말하지 않기, 셋째 적을 만들지 않기다. 오늘은 중년 시절 보일러 사업하던 이야기를 써 왔다. 고향 사람들과 모임 중, 그에게 온 전화 통화 내용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통화 중 사업비 계약서 작성에 “이억 오천만’이란 말이 오갔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네가 무슨 수억짜리 계약을 한단 말이고? 사기꾼 아닌가?” 하며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글도 잘 모르는 놈이 우리한테 과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M 님은 기가 막혔다. 분을 참지 못한 그가 몇 달 뒤 체결한 정식 계약서를 들고 와서 다시 한바탕 큰 소동을 부리고 통쾌하게 마무리한 사건이었다. 이런 얘기를 적고 있는 그를 지켜보던 방 동료가 또 비웃기 시작한다. “왜 거짓말을 지어서 쓰느냐?”라며 빈정댄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아니면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겠느냐?”라고 항변해도, 믿지 않고 쪼아대니 한숨이 난다고 한다. 보지는 못해도 감방의 풍경이 눈앞에 겹친다. 바깥 사회도 불신이 심한데 감방 안은 더 요지경 세상인 것 같다.
L 님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내가 제일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분이다. 초등 신입생 수준이라 늘 안타깝다. 일 년 전에는 겨우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다. 50대 후반의 건장한 체격을 지녔지만, 문맹이었다. 결석이 잦다. 처음에는 의욕 부족이나 게으름이 원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연을 들으니 안타까울 뿐 내가 도울 방법이 없다. 방에 있는 동료들과 봉투 붙이는 공동 작업을 하기에 혼자 빠지기가 힘들다고 한다. 눈치가 보여서 이따금 결석한다.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만 배려해 주면 좋지만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려심이 실종된 환경이 두렵고 안타깝다. 그 나이에 한글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있을까? 잔인하고 피폐한 감방의 일상이 그려진다. 꼭 필요한 공부이니 동료들에게 사정해서 양해를 얻으라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지 않은가? 마음이 편치 않다. 독방 생활하는 40대 K는 강습자 중 유일하게 경쾌하고 말이 많다. 혼자라 외롭고 적적한 까닭이지 싶다. 차근차근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가니 진도가 빠르다. 요즘은 시집 한 권을 가지고 읽고 쓰고 해설하면서 학습한다. 모르는 한자어나 용어는 예를 들어 설명하니 맞장구치며 즐겁게 따라온다. 운전면허도 있기에 그가 할 얘기도 많다. 밖에서는 눈치로 살다가 큰 일에 연루되어 들어왔다. 재잘대지만 재미를 붙이고 의욕적이라 기분이 좋다. 세 사람의 이야기만도 가득하다.
오후에 S 내과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아침에 채혈한 혈액검사 결과 때문이다. 한 달 전에 심장이 문제가 있어 CT를 찍었다. 평소 심근경색 비슷한 증세가 있어 늘 걱정하며 살았다. 몇 달 전에 비슷한 증세로 갑자기 심장에 스턴트 시술을 한 J 님과 상담하고 검사를 했다. CT 결과는 심장동맥 좌, 우, 중간의 세 군데 큰 흐름길에서 각각 13%, 13%, 20% 정도의 동맥경화가 왔다고 진단받았다. 시술은 80% 정도의 경화가 왔을 때 시행한다고 한다. 의사는 이 년 뒤에 다시 검사를 권한다. 결과지를 가지고 내과에 갔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를 조심하고, 특히 중성지방과 저밀도 LDL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S 내과 J 원장의 혈액검사 설명을 들었다. 다른 항목은 다 좋아졌다. 중성지방과 저밀도 LDL이 70보다 낮았다. 근데, A1C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매년 A1C를 정기적으로 관리했다. 항상 5.9에서 6.4정도 당뇨 전 단계로 나왔기에 조심 중이었다. 지난번에는 6.0에서 이번에는 6.5가 나온 것이 아닌가. 두 번 이상 이런 수치가 나오면 당뇨약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평소대로 지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실망도 되고 두렵다. 다른 방도가 없다. 지금부터 조심하고 6개월 후 좋은 수치가 나오길 기대할 수밖에. 지나간 일은 잊고 내일을 생각하며 살자. 고희를 넘은 나이라 병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노화라 조금씩 낡아가는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큰 병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건강하게 기본 수명을 누리며 사는 것이 천복이다. 천천히 살아가자. 자주 듣던 얘기 중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빈 큰집 이야기와 혈액검사 결과로 고민한 자잘한 서민의 하루를 보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이라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지만, 나는 사실 복기에도 허덕인다.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만 앞설 뿐 제자리걸음이다. 그냥 그냥 살아가자. 내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지금, 여기, 더불어 숨 쉴 수 있는 기적에 고마움을 가지자. 빈둥빈둥 속에 새해도 한 달이 훌쩍 사라진다.
12. 2026.02.03.(화)
어제저녁, 새끼 달팽이 열 마리와 부화되지 않은 알 40여 개를 분양했다. 엄마와 함께 온 초등 여학생에게는 새끼 여섯 마리와 몇 개의 알을 주었다. 멀리서 온 젊은 아가씨에게는 새끼 네 마리와 알 30개 남짓 분양했다. 그녀는 예전에 달팽이를 키운 경험이 있었다고 해서 좋았다.
달팽이알을 낳은 지 5주가 지난 월요일이었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다. 자세히 살펴야 보이는 새끼는 앙증맞고 귀엽다. 다슬기 새끼 같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가 꼼지락거린다. 처음에 두 마리가 보이더니, 며칠 지나니 열 마리가 넘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본 나는 처음에 부화를 강하게 반대했다. 부화가 시작되면 새끼 수십 마리가 꼬물거리며 연이어 나온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이 나오니, 일찍 대처하라고 키워본 사람이 경고한다. 집사람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거니? 계속 알에서 나오는데 다 키울 자신이 있느냐?” “몇 마리만 남겨 놓고 분양시키면 된다. 요놈들이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관찰하려고 한 일이다.” 태평하게 얘기한다. 결국 손자들이 커 가는 것을 보라고 세 마리 새끼만 딴 통에 넣고 기르기로 했다. 이제 집에는 어미 세 마리, 새끼 세 마리만 키운다. 예쁘고 귀엽기는 하지만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달팽이 키우는 데 정성을 쏟는 집사람에게 손자들은 ‘달팽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배설물이 가득한 사육장 청소, 상추와 호박 등 먹거리 준비, 단단한 패각을 유지하기 위해 삶은 달걀껍데기도 작은 절구에 찧고 분말처럼 갈아서 먹이에 섞어 준다. 삶은 껍질은 일일이 흰 막을 걷어내야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고 흡수가 된다고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집사람과 ‘간송미술관’ 산책길에 나섰다. 얼마 전에 일주일 휴관을 했다. 작년에 전시한 작품들을 걷어내고 새 작품으로 교체 전시하기 위해서다. 예전에 전시된 작품은 여러 번 갔기에 나름대로 상세히 감상했다. 화요일 오후라 주차장이 한산하다. 입구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의 일부인 ‘주사거배’(술집에서 술잔을 들다) 걸개그림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술집에 모여든 술꾼들의 순간을 포착했다. 도포 차림의 선비와 노란 초립을 쓴 붉은 옷의 무예청 별감, 깔때기를 쓴 나장까지 서로 다른 계층의 인물이 한 자리에 어울렸다. 담장에 핀 분홍 꽃과 대청에 들어가는 선비가 조화를 이룬다. 주모의 산뜻한 남색 치마가 혜원 특유의 섬세한 인물 묘사와 색채감각이 어우러져 조선 후기 활기찬 생활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전시실에 들어서니 작가 미상의 ‘봉황도’가 첫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19C 유숙이 그린 호랑이 그림 두 점이 반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용맹함을 상징하고 마을을 지키는 산신으로 여겨졌다.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의 기능이 있어 부적이나 그림으로 그려 집에 걸어두기도 했다. ‘심곡쌍호’(깊은 골짜기의 한 쌍의 호랑이)는 호랑이와 표범을 그렸지만, 간결한 배경처리로 호랑이를 돋보이게 한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세밀한 필선으로 털의 질감과 무늬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옆의 ‘포유양호’(젖먹이는 어미 호랑이)는 호랑이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다. 그림 속의 호랑이는 새끼를 지키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는 긴장감 어린 모습이다. 이어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몇 점이 기다린다. 길거리에서 나들이 나온 여인들에게 탁발하는 승려를 그린 ‘노상탁발’과 입구에서 본 ‘주사거배’ 또 다른 두 점의 그림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관객을 유혹한다. 국보로 지정된 《혜원전신첩》은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와 행락, 기방의 세태와 여인들의 생활, 남녀 간의 연애 등 풍속을 그린 30여 점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중 네 점만 선보였다. 서예는 자하 신위의 71세 작품이 돋보인다. 행서 대련으로 웅혼한 필치에 감동한다. 당시 고희를 넘긴 나이에 이렇게 멋진 필력을 보이니 존경의 마음이 절로 난다. 중앙에 새로 선보인 청자와 백자도 아름답지만, 내 생각으론 예전의 작품이 더 좋았다고 여겨진다.
2전시실에 들어섰다. 이번의 특별전시는 오원 장승업의 명작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이다. 자유 분망한 성격인 장승업의 일화는 미소짓게 한다. 병풍을 그리라는 고종의 어명을 어기고 궁궐을 세 번이나 뛰쳐나간 이야기와 술과 미인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천하의 풍류객으로 알려졌다. 성격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삼원 중의 한 명이 아닌가? 스승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천재 화가이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서예가 오세창은 “오원은 그리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신운(神韻)이 생동한다고 큰소리쳤는데 그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평하였다.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앞에 한참 머물렀다. 중앙 왼쪽에 신선 닮은 세 사람이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오른쪽에는 남색 상의를 입은 동자가 낮은 자세로 앉아 개울을 바라본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기암과 산세를 여백의 미를 살려 조화롭게 배치해 놓았다. 왼쪽 위에 심전 안중식 화가의 발문이 있다. “이는 장승업 선생이 중년에 그린 작품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평생 그린 인물이 많지 않지만, 이 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휘호하시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오원의 생애 중 1897년에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는 동농 김가진이 ‘三人問年圖’라고 제목을 써 놓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노인의 나이 자랑 이야기다. 어릴 적에 천지를 만든 창조신 반고와 친했던 기억이 있다는 첫째 노인,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집에 두었는데, 그것으로 만든 집이 10채가 되었다는 두 번째 노인,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고 버렸는데 그 복숭아씨가 곤륜산의 높이와 같아졌다고 자랑하는 세 번째 노인의 자랑이다. 이 허풍 가득한 대화는 끝없이 깊고 넓은 세상사에서 한낱 나이같이 사소한 것마저도 이겨보겠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전하기 위해 쓴 글이다.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역설적이다. 노인의 이야기만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이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전한다. 멋있고 재미있다. 작품의 배경과 시대, 그림이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감상한다. 세세한 설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기웃거리는 일도 작은 기쁨이다.
정조 때 유한준 님이 김광국의 화첩인 《석농 화원》에 써준 발문에서 유홍준 선생이 의역한 글을 떠올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앞으로는 더 사랑하는 눈으로 세상을 봐야겠다. 오늘도 작은 기적의 날을 재미있게 보냈다.
13. 2026.02.09.(월)
어제 오후에 갑자기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베란다에서 넘어졌는데 움직이기가 힘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예, 알았어요. 곧 가겠습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정신없이 범물동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평소 허리가 좋지 않아서 휠체어 도움으로 사시는 분이다. 일요일은 요양보호사도 쉬는 날이라 혼자 계신다. 이제 넘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던데. 정신이 아득했다. 빨리 가서 119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아파트 문을 열었다. 다행이었다. 당신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눈만 감고 계셨다. 사실은 3일 전에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엉덩이와 머리를 부딪혔으나, 병원 진료 후 조금 좋아지셨다고 한다. 왜 그날 바로 연락하지 않았냐는 말에 내가 걱정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팠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내 손자만 신경을 더 쓰지 않았던가. 부끄럽고 슬프다.
월요일 10시. 정형외과 의사는 두 번이나 찍은 X-레이 사진을 돌려본다. 지금은 큰 문제가 없으니 약 잘 드시고, 금요일까지 상태를 지켜보다가 계속 아프면 그날 CT를 다시 찍어보자고 한다. 노화가 주범이다. 다리 근육이 없으니, 서 있다가도 언제 푹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절대로 맨몸으로 움직이지 마시라고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 정신은 맑으나, 몸이 너무 낡아 삶의 조화가 되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작은 마찰이 있었다.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는 늘 자식 걱정으로 살아간다. 평생 김천 직지사 말사인 S*암에 기도를 올리고 사신 분이다. 신심이 너무 강한 탓일까? 끊임없이 날아오는 기도행사에 적극적이다. 아무리 자식들 안녕을 위한 일이라도 지출은 좀 줄이라고 만류하지만 어렵다. 당신 먹거리는 몇천 원도 아끼면서, 기도비는 수십만 원씩 보낸다. 노령연금으로 생활하시는 분이 너무 과하다고 해도 강한 신념은 꺾지 못한다. TV를 즐겨보던 당신은 지난해는 아동보호 도움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직접 전화해서 매달 3만 원 자동이체도 한 분이 아닌가. 의지대로 사시는 마음의 행동이라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못하고 통하지도 않는다. 따라가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마음만 까칠하고 힘들다. 움직일 때 반드시 실버카를 잡고 움직이고, 계속 조심하라는 당부만 남기고 돌아섰다.
삶에서 걱정 없이 살 수는 없다. 잠시 잊고 지낼 수는 있다. 돌아오는 내내 여러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당신은 근육이 고갈된 상태이다. 70대 후반에 큰 허리 수술을 한 후 지팡이에 의지해 몇 년 동안은 고만고만하게 지내셨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소멸 직전이다. 억지로 지탱해 온 다리 근육이 텅 빈 상태가 아닌가. 살짝 만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마른 낙엽 한 줌 같다. 언제 가만히 서 있다가도 푹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건강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장수 시대는 무늬만 요란한 침대 위 삶이다. 걱정만 앞설 뿐 대책이 없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라는 ‘윌 로저스’의 말만 머릿속에 맴돈다.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지금 당장 입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며칠 동안 달팽이 ‘라라’가 사육 통 바닥 흙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민트’와 ‘코코’는 부지런히 사육 통 위에 붙어 재롱을 부리는데 ‘라라’는 흔적도 없다. 아뿔싸! 통을 뒤집어 본 집사람이 탄식한다. 뽀얀 알이 수십 개가 모여 있다. 요놈들이 돌아가며 알을 낳는다. 지난번에 부화된 새끼를 분양한 것까지 합치면 벌써 4번째로 알을 낳았다. 달팽이 할머니가 너무 열심히 돌봐준 탓일까? 내가 처리하지는 않지만, 너무 자주 알을 많이 까니 미운 생각이 든다. 요놈들의 마음을 누가 알겠냐? 그들도 생존본능의 법칙에 알을 낳았을 것이다. 부화해도 이젠 분양할 곳도 별로 없다. 당근 알림에 공지해도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 하트만 몇 개 날리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 생명체를 올렸다고 경고만 받고 바로 내렸다. 안타깝지만 지난번에 하던 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주만 지나면 구정이다. 당분간 어머님 상태는 매일 살펴봐야겠다. 진통제와 주사 도움으로 조금씩 좋아지셨지만, 내일은 알 수가 없다. 기도하고 찾아뵙고 순리대로 풀리기만 소망한다. TV에 소개되는 효자 아들 같은 효심이 없는 나는, 그저 “어머님 죄송합니다.”라는 빈말만 가슴에 안고 산다. 싸늘한 겨울 하늘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만 허허(虛虛)하다.
14. 2026.02.14.(토)
오늘은 신나는 날이다. 한 달 전부터 마음만 먹던 일을 실행했다. 경산 와촌 선본사 쪽에서 갓바위 부처님 참배 가는 길이다. 예전에 검색한 ‘803번’ 버스는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하고 하양역에서 차 출발시간 맞추기가 좀 힘들어 보였다. 운행노선을 다시 검색하니 영남대역에서 ‘급행 803번’이 하루에 5번 운행하고 있다. 두 번째 출발시간인 ‘9.15’분 영남대역에서 ‘급행 803번’ 버스를 탔다. 경유지가 주로 ‘압량읍 행정복지센터’ ‘진량읍 행정복지센터’ ‘와촌면 행정복지센터’ 등 관공서를 거쳐서 가는 코스이다. 미세먼지가 심해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별로였지만 팔공산에 접어드니 모든 것이 새롭다. 10여 년 전 아들이 잠시 공부했던 ‘최신 고시원’을 스쳐 지나니 마음이 울컥했다. 마지막 갓바위 주차장에서 내린 손님은 9명뿐이다. 모녀간에 온 듯한 여자 두 분과 나머지는 60대 이후의 남자 등산객이다. 10.25분, 갓바위 정류장에 얌전히 도착한다. 천천히 배낭을 점검하고 산길을 걸었다.
팔공산은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중 갓바위가 있는 관봉은 날개에 속해 경사가 다른 곳보다 가파르다. 내가 갓바위 부처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이다. 불교 신자인 아버지를 따라 갓바위를 처음 올라간 기억이 아스라하다. 그 당시는 산행길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인 공산면 백안에서 내렸다. 동화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북지장사(?) 쪽으로 가기도 하고, 좁고 긴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 갓바위 부처님을 뵈러 간 추억이 있다. 대학 1학년 때 과 등산 모임인 ‘암충’에서 갓바위를 같은 코스로 올랐다. 지금은 관암사나 경산 선본사 방향을 통해 가장 많이 쉽게 올라간다.
갓바위까지 거리는 1km가 되지 않는다. 선본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를 지난다. 비스듬히 누운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좌우로 길게 이어진 석등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잠시 올라가니 왼쪽 능선으로 임도 형식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선본사 옆 포장된 계단길로 올라갔지만, 오늘은 지난해부터 대중 공양간 공사 중이라 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흙길은 다듬어진 세련된 길이 아니라 정감은 있지만, 좁고 바닥에 딛는 통나무가 미끄러워 노인이나 아이에게는 위험하다. 20여 분 오르니 마지막 철계단으로 이어진다. 임시로 연결된 길이라 좌우 폭이 좁고 경사가 심해 노약자들은 조심조심 오른다. 정체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철계단이 끝나는 곳의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어놓고 숨을 고른다. 이제 100여m 거리이다. 선본사 대웅전 앞 석탑에는 10여 명의 불자들이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빈다. 유리광전(琉璃光殿)을 돌아가니 드디어 갓바위 부처님을 접견한다. 10.55분. 좁은 길에 힘들게 치고 올랐지만, 복잡해서 30분이나 걸렸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 천여 번의 봄, 가을이 지겨웠을까? 당신도 언제부터인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부처님도 세상이 고달파서 그런지 알 수 없다. 자신에게 변화를 바라면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꽃 피고 낙엽 지는 계절 따라 엎드린 중생들을 굽어보시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나는 오늘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고개를 들어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우러러본다. 수인은 석가모니와 같이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이나 우리에게는 약사여래불로 더 익숙하다. 어머님의 건강도 빌고, 척추 협착으로 힘든 나도 빌고, 가족들 안녕을 빌어야겠다. 근데 이 많은 욕심을 들어주실까? 하나만 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지? 이런저런 상념 자체가 신심이 부족한 내 민낯이다. 그냥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정성껏 절하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리고 내려가자. 사실은 아픈 다리로 여기 올라온 것이 벌써 부처님 복 받은 일이 아닌가?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또 다른 복이다. 다음에 계속 올라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된 것도 큰 행운이다. 받은 복이 가득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뭘 더 바랄까?
내려오는 길은 고맙고 경쾌한 발걸음이다. 17분 걸렸다. 다리가 좀 아파도 오르막 내리막은 예전과 같이 다닌다. 아파트 16층 계단 오르기 습관 덕분이지 싶다. 선본사 입구 벤치에서 집사람이 싸준 점심을 먹었다. 따뜻한 물과 전복죽, 과일 맛이 꿀맛이다. 12.00시 정각 ‘803번’ 버스를 타고 하양역에 내려, 지하철로 환승 해 반야월역에 도착했다. 다시 ‘급행 10번’으로 갈아타서 시지역에 13.30분에 정확히 안착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귀가했다. 고맙다. 내일도 오늘 같기를 소망하며 갓바위 부처님 참배를 마무리한다.
15. 2026.02.20.(금)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감사의 날이다. 오후 2시. 맏손자 우주의 고운유치원 졸업식에 갔다. 태어난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우리 집안의 큰 축복이다. 삶이란 강물같이 유유히 흐르지만 돌아보면 빠르고 신비롭다. 손자 유치원 졸업 참석을 얘기하는 바보 할아버지가 한편은 부끄럽고, 한편 자랑스럽다. 남들은 “뭐 그런 하찮은 일에”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평범한 소시민인 내게는 이 또한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이지 않은가? 먼 이웃의 큰 사건보다도 의미가 깊은 일이다. 나는 조부님 얼굴도 보지 못했다. 6.25 전, 부모님이 결혼하시기 전에 조부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맏아들 민수도 두 살 때 자기 할아버지가 하늘의 별이 되셨다. 2대가 할아버지 기억도 없고 얼굴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우주와 나는 인연의 단단한 끈이 이어졌기에 오늘 같은 고마운 날을 누린다.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다. 미래의 운명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존재이다. 앞날도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도드린다.
13.50분. 유치원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부모가 참석하고 나처럼 조부모까지 축하하러 온 사람들로 식장은 가득하다. 무슨 명문대학이나 박사학위 졸업도 아니건만 축하객의 표정에는 웃음과 행복이 넘친다. 요즘은 결혼도 많이 하지 않고 아이도 잘 낳지 않는 시대라 아이의 유치원 졸업은 더 뜻깊은 모양이다. 졸업생이 40여 명이나 된다. 어엿하게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받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다. 식장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 화면을 보면서 원가도 제창하고 졸업생 답사도 참새처럼 읽는 모습이 대견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지만 한글은 읽힌 듯하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몇몇 아이는 가만히 있질 못한다. 담임선생님만 울컥해 말이 막히지만, 천방지축인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댄다.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그들의 본모습을 보며 참 지도하기 힘이 들겠다는 생각만 든다. 귀엽게 보면 좋지만, 걱정도 된다. 준비해 간 축하 꽃다발을 안고 생긋 웃는 손자가 오늘따라 훨씬 예쁘고 어른스럽다. 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선생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귀가했다. 다음 화요일에는 둘째 이준이도 어린이집 졸업을 한다.
요즘 티브이위키로 중국 드라마 ‘측천무후(왕이 된 여인)’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측천무후와 관련된 드라마는 많이 보았지만, 이번 편이 마음에 쏙 든다. 대부분 중국 최고의 수사관인 적인걸의 행적과 연관된 것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40부작은 오직 측천무후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이야기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궁녀에서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당 고종 이치의 황후로 등극하여 전개되는 드라마이다. 측천무후의 성품이나 자질은 완벽하게 미화한 부분도 많지만, 마음에 드는 점은 무대나 궁궐의 어전 모습이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1,500여 년 전 일이 아닌가. 후궁들의 시기와 암투, 신하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벌이는 지략싸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조선 왕조 때 왕비열전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도 든다.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나지만, 탄탄한 고증을 거친 사실을 바탕으로 뼈대를 세운 듯하다. 황제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현실 정치인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는 극이라 생각된다. 오늘 30살에 황후가 되기까지 11부 정도 보았지만, 이어질 전개가 무척 기대된다. 측천무후는 66살에 황제가 되어 80살에 삶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50여 년을 권력의 정상에서 통치한 전무후무한 여걸이다.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오니 떨어져 있어도 한집에 사는 느낌이다. 먹거리를 준비하는 집사람이 고맙고 대단하다. 벌써 일 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어쩌다 일이 생겨 못 오는 날이 있으면, 다음 날에 바로 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다고 손자들이 대체 휴일 챙기듯이 안 빠지고 온다. 정이 그만큼 많이 들었다는 증거라 힘이 들어도 기분이 좋다. 오늘도 둘째 손자 **이는 먼저 오고 첫째는 5시에 태권도학원에 갔다가 왔다. 한창 밖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닐 시기지만 현실은 허용하지 않는다.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쩔 수가 없다. 잡다한 것을 전수하려는 내 욕심도 과하지만, 미지의 세상에서 뒤처진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미있고 건강한 삶이 최우선이다. 평범한 삶의 주문을 외우지만, 평범의 기준 그 자체가 높아 쉽지 않다. 8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하루가 정리된다.
9시쯤 난데없이 보이스톡이 울렸다. 자세히 보니 미국에 사는 초등 동기 Y이다. 크게 친하지도 않고 평소에 연락도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그녀는 젊은 시절 미국에 이민가서 자수성가한 친구이다. 카카오톡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따금 소식을 전한다. 몇 해 전 한국에 왔을 때 하모니카에 대해 통화한 기억이 있다. 자기가 사는 곳에는 강습하는 곳이 없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내가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연주했기에 아는 정보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연주에 필요한 하모니카 종류를 묻는다. 주로 복음인 트레몰로로 연주하지만, 크로매틱이나 다이아토닉에 대해서도 알고 싶단다. 3월에 한국에 오면 자세히 알려 주기로 했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니, 요즘은 태국 치앙라이에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는 태국서 3개월 지내고 봄에 잠깐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에서 7개월 지내는 모양이다. 골프를 좋아하기에 치앙라이는 겨울 한 시절은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내게 골프를 즐기면 오라고 한다. 내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친구도 있구나’ 하며 쓴웃음 짓는다. 오후반 청춘 탁구클럽에나 열심히 다녀야겠다. 이 나이에 즐겁게 탁구 경기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적적한 시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하모니카 부는 할아버지’로 삶을 즐긴다. 별일 없이 보낸 기적의 하루가 고맙다.
16. 2026.02.28.(토)
이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늘은 쾌청하고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아파트 담벼락의 백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린 지 제법 지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홍매화를 찾아 나선다. 탐매(探梅) 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홍매화 하면 양산 통도사 영각 앞의 ‘자장매’를 먼저 찾는다. ‘자장매’는 보통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통도사까지 갈 여건이 되지 않은 나는 달성군 ‘남평문씨인흥세거지’의 홍매화를 주로 찾는다. 여기 홍매화는 3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중순에 만개한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모진 추위를 겪어야만 맑은 향기를 내는 꽃으로 알려져 누구나 좋아한다. 문득 매화 사랑이 남다르다고 전해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생각난다. 매화를 인격체로 대하고 유교적 덕목을 얘기한 분으로 매화에 대한 일화가 많다.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선생을 흠모했던 기생 두향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이별의 정표로 그녀가 준 매화를 선생은 도산서원에서 극진히 보살핀 일화도 떠오른다. 지금도 도산서원에는 ‘도산매’란 이름으로 봄마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매화가 유명하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는 퇴계의 유언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수목원 입구 ‘동이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세거지에 도착하니 벌써 주차장은 빼곡하다. 원래 인흥사라는 명당 절터에 문익점의 18대 후손이 구획 정리하여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흥사 삼층 석탑만 홍매화 정원에 남아있다. 주말에다 모처럼 날씨가 쾌청하기에 가족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목화밭 앞 문익점 선생 동상 옆길을 돌아가면 삼층 석탑과 함께 홍매화 정원을 만난다. 가장자리의 대여섯 그루의 홍매화가 만개해서 은은한 듯 타오르는 붉은 꽃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불러온다. 중앙의 수십 그루 홍매화는 아직 꽃망울만 맺고 만개할 날만 뜸들인다. 아마 한두 주쯤 지나면 활짝 피지 않을까. 천천히 가까이서 보고, 향기도 맡아보고 또 멀리서 보면서 나름대로 감상한다. 그냥 ‘좋다’라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본다. ‘광거당’ 쪽으로 걸어가니 예쁜 앵무새 두 마리를 데리고 온 부부를 만났다. 홍매화 앞에 자세를 취한 앵무새가 깜찍하다. 전문 사진작가들이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른다. 촬영대회는 아니지만 요즘은 곳곳마다 취미로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많다. 틈새에 끼어 휴대전화로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뭐 작가가 따로 있나? 요즘은 휴대전화 사진 화소가 많기에 화질이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구도만 잘 잡고 창의성이 있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은 ‘인수문고’가 있는 ‘수봉정사’ 문도 활짝 열어놓았다. ‘수봉정사’는 독립운동가 문영박선생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지어졌다. ‘수백당(守白堂)’ 앞마당 가운데 용트림 하는 듯한 멋진 소나무가 관광객을 맞이해 더 고풍스러운 멋을 준다. 평일에는 잘 개방하지 않았는데 활짝 열린 마당에 들어오니 기분이 좋다. 매년 여러 번 방문하지만 여기 들어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흙탑으로 쌓은 굴뚝도 내가 사랑하는 건축물이다. ‘수백당’ 골기와와 지붕너머 ‘광거당’ 주변의 소나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조화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마치 서울의 궁궐 한쪽 모퉁이에 서 있는 기분이다. ‘수백당’ 마루에 앉아 건너편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아늑하고 평화롭다. 순간순간이 내 삶의 절정이다. 지금 여기 앉아 멍하니 있는 것도 기적이고 꿈결같다. 문밖을 나와 매력적으로 이어진 좁고 긴 흙담 길을 산책한다. 지금도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이 많아 조용히 돌아봐야 한다.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 님이 사는 집은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방이 단정한 예서체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수봉정사’ 서쪽에 인흥원이란 연못이 있다. 푸른 하늘과 묵은 한옥,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물에 비치는 환상적인 연못이다. 못을 돌아 입구의 목화밭을 따라 천천히 살펴보면서 세월을 산책한다. 다시 홍매화 정원에 발을 멈춘다. 관람객도 많아졌고 그새 좀 더 핀 느낌이다. 가까운 사문진 나루터나 마비정을 방문하려다가 다른 일이 생겨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 안에서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花一生寒不賣香)”라는 말을 곱씹으며 삶을 다시 생각한다. 맑고 푸른 새봄의 정취를 만끽한 멋진 하루였다. 정원 전체 활짝 핀 홍매화를 즐기려면 보름 뒤쯤 다시 와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먼저 핀 매화는 지겠지. 기적의 하루에 감사드린다.
17. 2026.03.13.(금)
몇 달 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던 일을 오늘 실행했다. 지난해부터 병석에 계신 노모를 봉양하려고 시골 고향에서 살고있는 친구 S 집을 방문하는 일이다. 며칠 전에 만날 날을 약속했다. 오전 9시 20분. 경남 합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합천은 진주로 가는 중간 경유지이다. 평일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10시 10분. 합천 터미널에 도착하니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읍에서 좀 벗어난 용주면 용지리가 그의 집이다. 오는 차를 예매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으나, 대구행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오후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있어서 괜찮지 싶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고향 집이 있다. 친구 시골집 방문은 세 번째이다.
꿈 많던 아득한 대학 2학년 시절, 1973년 초여름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 친구 K와 합천에 있는 S의 시골집에 초대받았다. 어쩌다 여자 동기 C도 함께 가게 되었다. 과 동기 세 명은 털털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합천군 용주면 그의 집에 도착했다. 집 앞으로는 황강이 넓은 백사장을 안고 유유히 흐르고 수려한 악견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골이었다. 지금은 큰 시멘트 다리가 놓였지만, 당시에는 예천의 뿅뿅다리와 같은 수 십m 긴 철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갔다. 내 기억으로는 큰 강을 끼고 있는 시골에는 대부분 그런 다리가 있었다. 지금의 합천댐이 생기기 전이라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은 우리가 놀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얕은 물가에 뛰어다니면서 은어도 잡고 멱도 감으면서 시골의 맛을 즐겼다. 해 질 녘 합천의 명소인 상류에 있는 용문정(龍門亭)으로 갔다. 한창 피 끓던 젊은 청춘 시절이 아닌가? 강가의 오솔길을 한참 행군하듯 걸어서 도착한 그곳은 또한 별천지였다. 큰 너럭바위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강을 끼고 바라보는 정자는 옛 선비들이 풍류를 읊던 곳으로 유명했다. 우린 큰 바위에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도 부르며 정담을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그날의 추억은 또렷하다.
악견산이 훤히 보이는 친구 시골집 거실에 앉았다. 구순 모친은 주간보호센터에 가고 계시지 않았다. 부부 교사였던 그는 부산의 T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도 매일 전화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의 안부를 묻고, 주말에 한 번씩 다녀가곤 하면서 별일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삶을 흔들었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어머니의 심장에 이상이 왔다고 한다. 당시 백신의 부작용에 말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맞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맞았더니 그만 탈이 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심장 기능만 아니라 인지능력도 함께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작년 봄부터 혼자 고향에서 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다. 다행 올해부터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모시지만, 나머지 시간도 참 고행이다. 자유로운 친구의 시간은 낮에 대여섯 시간뿐이다. 시골에서 끼니마다 먹거리 준비도 어렵지만, 종일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더 힘들다고 씁쓸해 한다. 기다리고 최선을 다하며 순리대로 살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와 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답답해한다. 듣고 있는 내내 내 마음이 짠하다.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나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다. 나는 그래도 어머님이 도심서 혼자 살고 있지 않은가? 요양보호사가 매일 돕지만 감사할 뿐이다. 정신력과 삶의 자세가 새삼 존경스럽고 자식으로 송구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황매산이 보이는 합천댐 둘레 데크길을 함께 걸었다. 짙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둥둥, 에메랄드빛 물빛을 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 길가 십 리가 넘는 가로수 늙은 벚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면 눈이 부셔 걷기도 힘이 들 듯하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고 아찔한 길이다.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의 카페 Lowful 이층에 앉았다. 통유리 창에 펼친 정경이 신선 세계이다. 댐 기슭 키가 큰 외래종의 누런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며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우리 삶은 고행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네. 받아들이고 즐겨야하네. 관점과 해석이 있을뿐이지 않은가? 그냥 그냥 지금처럼 비우며 살아가시게." 흰 구름과 코발트 빛 하늘의 하모니도 소리 없는 자연의 연주이다. 꿈 속에서 꿈을 점치는 풍경이다. 말없이 창밖을 보며 차를 홀짝거린다. 카페라테 한 잔에 녹아있는 세월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이 순간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고, 걱정도 없고, 욕심도 없고 무념무상의 시간과 풍경에 풍덩 빠진다. 지금 여기가 내 삶의 절정이 아닐까?
15시 20분.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뿔싸! 대구행 승차표가 하나도 없다. 한 시간 간격으로 차가 있어서 방심했더니 다 매진이다. 겨우 마지막 시간 19시 50분 승차표를 구했다. 지금부터 혼자 4시간 반 동안 뭘 하지? 처음엔 살짝 당황했으나 오늘 ‘세라비를 경험하는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해외여행에서 비행기가 연착해서 10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많지 않았던가. 나름대로 계획을 잘 세워 살아간다고 자부했으나 순간 틀어졌다. 원래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니 별 일이 아니다. 이제 남는 시간 무엇을 할까? 카페에 갈까? 그냥 돌아다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합천시네마’가 10분 거리에 있는 것도 알았다. 다리가 좀 아팠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합천의 삶을 둘러보았다. ‘합천왕후시장’도 가까이에 있어 좋았다. 한 친절한 학생의 도움으로 ‘합천시네마’를 쉽게 찾았다. 17시 10분 상영 시작하는 영화가 ‘매드댄스오피스’(스텝을 밟으니, 인생이 풀린다.)이다. 염혜란 주연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 리듬 되찾기 프로젝트’ 영화다. 오늘 내 상태와 비슷해 나름 재미있게 봤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시간대가 저녁 식사 시간과 겹쳐서인지 70석 좌석에 나 혼자 황제처럼 관람한 것이다. 꼬인 일정이 도리어 행복이다. 세라비! 내 평생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끝나고 나올 때 보니 다음 시간 프로는 ‘왕과 사는 남자’라 기다리는 사람이 퍽 많았다.
19시 50분. 10여 분 늦게 도착한 차 안은 합천에서 세 사람만 탔지만,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진주에서 출발해 오는 차이기에 합천에서는 예매하지 않으면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하! 그래서 앞 차들도 다 매진이 되었구나.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살아간다.’ 앞으로는 매사에 더 꼼꼼히 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무사히 집 현관에 도착하니 21시 40분이다. 오늘 옛 벗을 만나 서로 힐링이 된 보람 있는 하루를 기적처럼 보냈다. 감사하며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18. 2026.03.28.(토)
한참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기 때문일까? 어느 날 불현듯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생각보다 흐린 마음이 강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삶이 한없이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감사의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오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초등학생이 몰아서 일기 쓰듯이 몇 날을 복기하며 삶을 돌아본다.
21일(토). ‘대구문인협회’에서 문학기행을 갔다. 집결지인 문화예술회관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힘들었다. 올해 여행지는 보성 벌교 지방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과 ‘순천만국가정원’ 탐방이다. 작년에 계획하였는데 경북 산불로 취소하고 올해로 미루었다. 멋진 날, 좋은 곳에, 아름다운 분들과 하루 나들이는 늘 설렌다. 내가 탄 2호차는 수필가들이 주축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느끼지만 버스에서 5분 말하기를 통해 만난 탁월한 분들의 입담도 즐겁다. 긍정적인 면을 본받고 싶은 분들이 많아서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문인협회기행은 기분 좋은 추억이 많다. 재작년은 ‘왕사남’의 배경인 영월 청령포에 갔었다. 그때도 4행시 즉석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지 않았던가? 상금으로 일천만원(일천원+만원)의 작은 행운을 누리기도 한 추억이 아스라하다.
‘태백산맥문학관’은 10년 만에 두 번째 왔다. 우뚝하고 날렵한 현대식 문학관 옆쪽으로 돌아갔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무당 ‘소화의 집’이 먼저 반긴다. 아담한 집 뒤의 풍성한 대나무 숲이 정감을 준다. ‘작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이 집의 신당에서 주인공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을 시작한 곳이다. 소설은 워낙 오래전에 읽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의 건물은 오래전 태풍으로 사라지고, 이 건물은 2008년도에 보성군에서 복원한 것이다. 다시 오른쪽에 ‘현부자네 집’이라고 알려진 큰 기와집을 만난다. 이곳은 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멋진 곳으로 생각되는 희한하게 생긴 명당으로 소개된다. 대문이나 안채는 한옥풍이나, 들어가 보면 곳곳에 일본풍의 맛이 물씬 풍기는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다. 소설 ‘태백산맥’을 펼치면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또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고 대청마루 모서리에 홀로 앉았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한쪽 귀로 흘리고, 막 만개한 뽀얀 목련과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꽃만 눈에 품는다.
현대식 건물 문학관 입구로 왔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는 조정래 작가의 말이 현판 아래 적혀있다. 좋은 전시물 구경도 멋지지만 다들 대충 훌쩍 보고 기념사진 촬영에 바쁘다. 최근 들어 SNS의 발달로 사진찍기가 대세이다. 나도 아주 좋아한다. 작가 구성 노트나 메모 수첩에서 치열한 작가정신도 본받고 싶지만, 관광이 목적인 나는 별 감흥은 나지 않는다. 그저 힘들고 어렵고 대단하다는 감탄만 할 뿐이다. 독자들이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한 것을 모아놓은 방에 들어갔다. 수북이 쌓여 있는 필사품이 대단하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너무 우상화하지 않았나 하는 반감이 더 강하게 든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글도 대하소설에서는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산책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 아무 생각 없이 유유자적하게 힐링하는 곳이다. 튤립, 히아신스, 수선화 등등의 울긋불긋한 꽃 정원은 나그네의 마음을 한층 환하게 한다. 훌쩍 꿈같이 즐거운 세 시간이 지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춘향가 중 ‘사랑가’와 심청가에서 ‘심봉사 눈뜨는 장면’ 판소리 한 자락으로 마무리한, 맑고 푸른 하루가 아름다웠다.
27일(금). 사계절 팀에서 금오산 탐방을 했다. 봄이 미리 푹 익어가는지 수은주가 25도를 오르내린다. 승용차는 두고 대경선을 타고 갔다. 경산서 구미까지는 한 시간 거리이다. 평일인데도 ‘대경선’은 북적거린다. 점심은 ‘구미도시공사’ 맞은편 ‘辛사랑방’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맛나게 먹었다. 관공서 근처에 직장인을 위한 맛집이 존재하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연식이 있어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걷기로 했다. 모처럼 올라간 ‘대혜폭포’는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 가늘게 흩뿌린다. 아쉽다. 작년 2월에도 대경선을 타고 집사람과 왔다. 그때는 길에 눈도 많았고, 폭포는 빙벽을 이루어 감탄하던 곳이다. 신라말 도선선사가 득도했다는 ‘도선굴’ 가는 길은 아찔하지만, 기암괴석 사이로 탁 트인 경치는 일품이다. 하산길에 힘이 더 든다. 여행은 즐겁지만 이제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28일(토). 하늘이 맑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 최씨 종택 ‘백불고택(百弗古宅)’을 찾았다. 이곳은 봄꽃도 좋지만, 가을이 더 멋진 곳으로 생각된다. 사흘 전 퇴직 교사 모임에서 K 박사님과 얘기를 나눈 곳이다. 예전에 L 선생님과 답사와서 장손의 서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기억에 저장되지 않았다. 매호동 집에서 4차 순환도로를 타고 둔산 IC로 빠지니 25분 거리이다. 백목련과 노란 산수유가 먼저 반긴다. 봄의 절정을 알린다. 여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길로 알려진 흙돌담 길이 가장 매력적이다. 느린 걸음으로 반 시간이면 넉넉하게 돌아본다. 화원 ‘남평문씨세거지’의 흙돌담 길과 비교하니 약간 다른 맛이 난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화원은 정제된 여성미로 깔끔하고, 이곳은 좀 거칠고 투박한 남성미가 엿보여 아름답다. 화원은 다보탑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고 옻골은 석가탑같이 중후한 분위기이다. 상상의 날개를 더 펼쳐 비교해 보면, 화원은 당진의 도기를 보는 기분이고, 옻골은 문경 장인의 찻사발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입구의 400여 년 된 회화나무와 숲이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천천히 돌아다녔다. 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점심시간이다. 어디서 점을 찍을까? 이곳저곳 검색하다가 역시 집밥이 최고라 생각하고 매호동으로 귀가했다. 어영부영 보낸 하루가 고마울 뿐이다.
19. 2026.03.29.(일)
오전에 범물동 어머님 댁을 방문했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X-레이를 찍은 결과 가슴의 작은 뼈가 이상이 생겼단다. 진통제와 주사의 힘으로 약간 좋아지셨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단잠을 깨울까 봐 방바닥에 조용히 앉았다. 말없이 어머님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40kg의 아담한 체구에 겨우 숨이 붙어 있는 것처럼 가쁜 호흡을 하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저 몸으로 당신은 5남매를 키우시느라 평생 호강 한번 하시지 못하고 고생만 하시지 않았던가. 10여 분이 지났다. 놀란 듯 눈을 뜨시며 왜 깨우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신다. 어제는 셋째 동생이 다녀간 모양이다. 재취업을 좋은 곳에 했다는 반가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준비해 간 호박죽과 좋아하시는 모시떡을 침대 위에 놓아드렸다. 바쁜 데 왜 자주 오느냐는 말씀에 죄송스러운 마음만 든다. 움직일 때마다 힘이 들고 아프다고 하신다. 듣고 있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의사의 처방대로 하고 지내시라는 말밖에 나로서는 다른 답이 없다.
집에 갈까 하다가 용두골 진달래가 보고 싶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용두골 오솔길에는 진달래가 산을 점령한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꽃이 좀 늦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막 피기 시작한 용두골 진달래 사진을 J의 카톡으로 배달받았다. 꽃이 폈다고 먼저 가보고 보내준 벗이 있어 행복하다. 예전에는 보름달이 떴다고 전화로 전해온 글벗도 있지 않았던가? 감성의 결이 비슷한 벗과의 교류는 언제나 내 삶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범물동에서 수성 5번을 타고 파동으로 갔다. 숲길에 들어서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오솔길 좌우로 붉게 타고 있다. 용두골 솔숲 사이에 펼쳐진 구불구불 산길은 영원한 보물창고이자 그리움과 감성의 곳간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분홍빛 수줍은 꽃들이 속삭이듯 일렁거린다. 천천히 욕심을 비우고 건강만 잘 지키고 살아가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봄노래를 흥얼거린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능선 너럭바위에 앉아 이름 모를 산새의 노래와 숲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방에서 나를 포위한 진달래의 향기에 푹 취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숲에 잠긴다. 오르는 걸음걸음이 경쾌해진다. 다시 사랑가 한 자락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히 이히히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가창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급행 10번’을 한참 기다리는 중이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온 차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귀에서 윙 소리가 난다. 이게 웬일이지? 아뿔싸! 이명현상이다. 몇 년 전에 심했다가 요즘은 좋아졌는데 또 재발한 모양이다. 크게 무리한 일도 없는데 왜 이럴까?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혹시 돌발성 난청이 온 것이 아닐까? AI로 검색하니 증세가 비슷하다. 귀가 먹먹해지고 잘 들리지도 않는 기분이다. 공휴일이라 병원도 쉬지 않는가. 즐겁던 마음이 금세 우울해진다. 천국에서 바로 나락에 떨어진 느낌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수양이 된다는데 나는 언제쯤 그렇게 될까. 지금처럼 살아가면 죽을 때까지 어렵지 싶다. 이순(耳順)이 넘어도 순간순간 바뀌는 마음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언제쯤이면 초연해질 수 있을까? 집에 와서 가만히 누워 안정을 취했다. 조금 잦아진 듯하다. 상태를 보고 내일 아침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병원에 가는 수밖에.
일요일은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탁구장에서 조금 일찍 게임을 끝내고 아이들을 한참 기다렸다. 6시가 다 되어서 소식이 왔다. 너무 많이 놀아 피곤해서 오늘은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런? 조금 일찍 연락을 주지. 식사 준비를 다 해 놓은 아내가 섭섭해한다. 첫째 손자 우주는 아쉬움이 많은 듯하다. 전화로 “할머니, 오늘 못 가니까 다음에 하루 더 보충해서 갈게요.” 한다. 귀엽고 깜찍하다. 그래도 요놈들이 더 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듣고 있는 나도 마음이 풀린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냄에 감사드린다. 작은 기적의 날이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 아닌가.
20. 2026.04.03.(금)
나이 탓일까? 성격 탓일까?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뇌종양의 부작용일까? 요즘은 이따금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는 우울한 날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캐서린 메이’의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책 구절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 책의 원제목은 월동(越冬)을 뜻하는 ‘윈터링’이다. “인생이란 숲을 통과하는 꾸불꾸불한 여정이다. 한여름 잎이 울창한 날이 있고, 삭풍이 몰아치고 잎이 떨어져 앙상한 뼈만 드러내는 겨울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누구나 한 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드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휴한기이다.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혹독한 겨울은 때로는 우리에게 이롭게 작용한다. 겨울은 실재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한다. 고독과 사색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더 메마르고 더 외로운 시간에 기대어 보는 것이다.” 난 아직은 인생의 겨울이 아니지 않은가?
수요일 하빈 큰집 한글교육반 교실은 서예교육반과 함께 사용한다. 큰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중간에 성인 가슴 높이 정도의 칸막이로 경계가 되어있다. 오전과 오후 강습 시간이 다르기에 강습생끼리 마주칠 일은 없다. 서예는 나도 오랜 시간 심취한 적이 있었기에 이따금 습작품을 엿보기도 한다. 한글반과 달리 서예반은 장기수 몇 명만이 수업 중이다. 성취가 그만큼 어렵고 오랜 세월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자 진보 학계의 경제학자이고 문학가인 신영복 씨도 20여 년의 옥중 생활에서 서예를 공부해 그만의 독특한 한글 서체를 완성한 서예가이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수형자들의 서예전도 개최한다. 출품 준비로 연습한 습작품이 몇 점 벽에 걸려있다. 그중 단정한 해서체로 쓴 7언 대련의 글이 늘 눈에 안긴다. 한 획 한 획에 힘과 혼이 들어간 글씨다. ‘水流任急 境常靜 (수류임급 경상정) 花落雖頻 意自閑 (화락수빈 의자한)’ “물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주변의 환경은 변함없이 고요하고, 꽃이 비록 자주 떨어져도 그 덧없음에 마음은 동요 없이 한가롭다.”라는 채근담에 나오는 글이다.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와 여유를 강조한 내용이다. 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는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도 이 명제를 골라 쓰면서 오랜 시간 마음의 중심을 세우고 가다듬고 있지 않았을까? 요즘은 부지불식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구절을 암송하는 습관이 들었다. 가르치러 왔지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른 아침 베란다 밖 멀리 보이는 유건산에 봄빛이 완연하다. 파릇파릇한 연두빛 향기가 밀려오는 듯 아찔하다. 길가 스타벅스 앞 가로수도 여린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아름답다. 자연의 섭리는 질서 정연하고 환상적이다. 좁은 마음에 빠진 흐린 생각이 부끄럽다. 비교 지옥에 빠져,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인 줄 모르고 사는 자신이 부끄럽다. 비판과 부정 편향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원초적인 사고지만, 세상은 둥글고 순리대로 흐른다. 멀리서 본 옆집 잔디가 더 푸르지는 않을 것이다.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 마지막 구절을 살펴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순간순간이 기적이라고 여기며 감사하고 감사하자.
21. 2026.04.07.(화)
햇살 통통 튀는 맑은 아침, 대학 동기 모임 날이다. 아니, 벌써! 돌아보니 올해가 졸업 50주년이 아닌가? 가슴이 설렌다. 1976년 2월에 졸업했으니 지난 세월이 꿈결 같다. 어저께 날씨를 검색하니 유성의 기온이 2~13도로 나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랄까? 쌀쌀한 날씨라 얇은 옷은 바람직하지 않다. 11시 10분까지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예매한 ‘9:53분-10:34분. ktx 020. 1호 11D’에 앉았다. 40분이 잠깐 순간이동 한 듯 지나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의 반가운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다. 점심은 유성온천역 부근 NC백화점 10층 ‘애슐리 퀸즈’에 12시 예약이다. 대전역에서 지하철로 24분 거리, 12정거장 지난다. 그리운 동기 12명이 고풍스러운 도자기가 전시된 벽 쪽의 예약된 자리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점심 식대는 19,900원. 음식 맛과 종류는 그런대로 가성비가 괜찮다. 평일 낮이라 크게 붐비지 않고, 너무 썰렁하지도 않아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에 취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동학사’가 종점인 107번 버스를 탔다. 개개인이 바코드 찍고 타기가 번거럽다고 창원의 Y 교장이 카드로 12명을 한꺼번에 결재했다. 고맙다. 35분 남짓 걸리는 길이다. 대구는 어제 비와 우박이 내려 꽃이 많이 졌건만, 여기는 한창 절정의 순간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입구 가까이 가니 ‘동학사 벚꽃 축제 중’이라 진입로 양쪽이 시끌벅적하다. 차창으로 스쳐본 품바 공연장이 3곳이나 된다. 전국 곳곳에서 원정 온 모양이다. 축제로 버스가 좀 밀리기는 했지만, 장사꾼이 더 많고 관광객은 드문드문 보인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이 절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구니 전통 강원을 운영한다.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때 ‘회의 화상’이 건립했는데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고 했다. 오래된 절집이라 조금 다른 자료도 있다.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중창하며 고려왕조의 국운을 기원하고 사찰이 커지면서 동학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절집 올라가는 길 계곡물 소리가 유난히 맑고 청아하다. 어제 비가 온 탓일까? 수량이 제법 많다. 하얗게 부서지며 반짝이는 비늘을 드러낸 물살이 바위와 숨바꼭질하듯 감칠맛 나게 흐른다. 툭툭 갈라진 너럭바위 위를 찰랑거리며 흐르는 물결, 부서지는 물거품은 뽀얀 소금을 뿌린 듯이 톡톡 튀며 봄날을 노래한다. 그들도 길가의 벚꽃에 취해 즐겁게 흐르는 것이리라. 짙푸른 하늘 알싸한 바람, 산책에는 최상의 날씨이다. 도란도란 기념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문밖에서 눈을 감고 합장해 가볍게 참배했다. 은선폭포까지 가려고 같이 출발했으나, 조금 올라가다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도중에 돌아섰다.
동학사! 여러 번 왔고 추억이 많이 깃든 절이다. 1980년 초, 같은 서실에 다니던 S와 답사한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와는 다른 곳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좋아했지만, 인연의 끈은 이어지지 않았다. 30대 풋풋한 시절 ‘보이스카우트’ 지도교사를 맡을 때이다. 여름방학 때는 동해안을 3박4일로 야영 다녔고, 겨울에는 계룡산과 속리산을 2박3일로 돌아다녔다. 첫날은 동학사 근처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동학사-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속리산’으로 연결된 여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속리산에서 민박 후, 다음날 ‘법주사-세심정-문장대-법주사’를 거쳐 저녁 버스로 귀가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많이 누렸다. 내 기억으로는 계룡산 코스는 4번쯤 다녀왔기에 지금도 그 길이 눈에 선하다. 늘 눈이 많이 와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산행하던 그 시절이 아련하지만 또렷하다. 그때 그들도 지금은 지천명의 중반을 넘는 나이가 아닌가? 민박집에서 석유 버너를 피워 밥을 해 먹던 추억, 밤마실 나와 산책하며 군밤을 사 먹었던 기억, 조금 사서 맛만 보았는데 서로 맛있다고 K군이 “선생님 더 사 주세요.”라는 말에 못 들은 척 사 주지 못했던 일이 후회되고 아쉽다. 지금 다시 만나면 듬뿍 사 줄 수 있는데……. 동글동글한 얼굴에 유난히 쾌활하던 K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만 든다. 오늘은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녁은 숙소 부근의 ‘띠울石갈비집’에서 돼지갈비로 만찬을 누렸다. 대형 음식점이라 손님도 많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집이다. 재료 탓일까? 고기가 좀 타기도 했다. 나오면서 보니 주방 옆에 참숯불도 있건만, 우리가 먹은 것은 비싸지 않은 돼지고기라 참숯불에 굽지 않고 다른 연료로 굽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참숯불은 소갈비를 주문하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니 씁쓸하다. 숙소인 ‘베가시티 레지던스 호텔’ 402호와 404호에 짐을 풀었다. 유성온천역에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27평형 아파트 구조로 된 깔끔한 무인 호텔이다. 일찍 예약했기에 숙박비도 합쳐서 336,000원으로 저렴하다. 친구들이 준비한 과일과 음료를 거실 탁자에 놓고 정담에 빠진다. 내가 늘 준비하던 하모니카를 가져가지 않았기에 친구들이 조금 섭섭한 모양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울까? 예전에 심취한 판소리 한 자락을 선보였다. ‘심청가’에서 ‘심봉사 눈 뜨는 장면’ 창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404호 여자 친구 방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겨 걱정한 C에게 같이 가서 문을 열어 주고, 비상시 밖에서 문 여는 방법을 전수했다. 그 사건 때문에 코이카 일원으로 외국 거주 중이던 K의 일화가 또 나왔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밤중 잠시 베란다에 나갔다가 안에서 문이 잠겼다. 속옷 차림으로 밤새 모기에 헌혈하며 베란다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는 웃으며 들었지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일 일정 때문에 부산의 L, 서울의 S와 나는, 저녁 8시 40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여유를 두고 나왔다. 시간이 촉박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겠다. ‘21:49분-22:31분. Ktx 산천 221. 7호 8D.’ 동대구역을 향해 열차는 어둠을 뚫고 천천히 대전역을 출발했다. 멋진 곳에서 정든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잘 보낸 하루가 멋지고 고맙다.
22. 2026.04.13.(화)
며칠 전 모란이 살짝 눈을 뜬 사진이 카톡에 떴다. C 님이 올렸다. “벌써 모란이 피었네요.” “올해 처음 핀 모란입니다.” 주고받은 덕담 뒤에 초대장이 날아왔다. “네, 혹시 4월 13일 점심 식사 같이하실래요? J 님과 함께 정원에서 삼겹살 파티 합시다.” 보름 전이다. C 님의 정원에 동백나무를 심은 소식이 전해왔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당 모서리에 오빠들과 함께 16년생 홑 동백을 이식하고 있었다. 잠시 대화 끝에 “모란이 필 때 한번 놀러 오세요.” “예. 기억해 놓을게요. 집에 모란이 피면 카톡에 올리세요.” “그때 현충로역으로 달려갈게요.” 그날의 약속이 오늘 이루어졌다.
매호동에서 그녀의 집까지 도착시간을 계산하니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반월당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현충로역에 내렸다. 약도를 보고 내비에 검색하니 골목이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국적인 예쁜 철 대문, 우측 빨간 우체통 위에 ‘봉보나나’라는 문패가 싱그럽고 정감이 간다. 자기 이름이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하는 내게 엄마와 본인 그리고 두 딸의 이름 중간자를 빼내 지었다고 설명한다. 우와! 글쟁이답게 참신하고 멋있는 문패가 아닌가? 평소에 효심이 지극한 그녀의 생활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갑자기 달성군 하빈면의 ‘육신사’ 옆 ‘삼가헌’ 방문한 기억이 난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이 지은 집이다. 그 집 대문 문패가 ‘도덕과 평화’라 되어있었다. 무슨 뜻이지? 한참 궁금했었다.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라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그녀와 글쓰기 인연으로 맺은 세월이 15년이 훌쩍 넘었다. 예천 시골 출신으로 참신하고 맛깔스러운 그녀의 글처럼 정원도 주인을 닮아 아담한 꽃나무가 줄을 잇는다. 며칠 사이에 활짝 펴 흐드러진 붉은 모란이 먼저 눈에 안긴다. 깔끔한 성격으로 마당에 잔디는 심지 않고 예쁜 벽돌로 아기자기하게 단장하였다. 남쪽 담을 따라 모란, 치자나무, 사철나무, 붉고 흰 영산홍 두 그루, 산초나무, 제피나무, 그리고 보름 전에 이식한 동백이 듬직한 주인처럼 자리 잡았다. 마당 한쪽에 차려진 긴 식탁, 간이 의자들, 예닐곱 명이 모여서 파티할 수 있는 넉넉한 자리다. 식탁 위에는 무공해 나물로 요리한 몇 가지 반찬과 삼겹살과 목살이 손님을 기다리며 차려 있었다. 오늘의 백미는 좋은 분들이 왔을 때만 준비한다는 완두콩이 올려진 노란 치자밥과 사골탕이다. 정성스러운 주인장의 마음을 읽는 듯 눈이 부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 이런 정성스러운 접대 받을 자격이 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울컥한 것이 올라온다. 앞으로 더 열심히 세상을 탐구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하여튼 고맙다. 예전에 함께 강의하던 문우인 P 님도 보고 싶어 연락했지만, 치과에 진료하러 가기에 참석이 어렵다는 답이 왔다.
맛깔난 식사 후, 내가 준비해 간 하모니카 연주 시간이다. 크게 잘 불지는 못해도 10여 년 공부하고 좋아했기에 모임이 있을 때는 지인과 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오늘같이 정원에서 멋진 음식을 먹고 은은한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펼친 연주는, 부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보통 트레몰로 하모니카 6개를 준비한다. C, Am, G, A, F#m, G# 이다. 곡에 따라 음정의 높낮이가 달라 분위기에 맞게 연주하려면 각각 다른 것이 필요하다. 제일 좋아하는 ‘바람’이라는 곡으로 문을 연다. 이 곡은 2002년쯤 방영된 ‘외출’이라는 SBS 아침드라마의 OST로 즐겨 연주되는 곡이다. 색소폰이나 첼로 등으로도 많이 연주되지만, 하모니카는 주로 다이아토닉으로 연주한다. 나는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배우지 못했기에 트레몰로로 연주한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미흡하지만, 좋은 분들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은 꿈결 같다.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 아닌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비 내리는 고모령’ 등등. 그리고 김인배 님의 곡, 트럼펫 연주로 많이 하는 ‘석양’도 좋다. ‘석양’은 인생 노년의 잔잔하고 은은한 분위기가 숨어있는 연주곡이다. 잃고 지내던 순수한 소년의 감성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곡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인연이란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생산적 인연’이 있는가 하면 ‘파국적 인연’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일체유심조’를 생각한다. 남은 삶에는 언제나 멋지고 즐거운 생산적 인연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의 조화가 중요하다. 호불호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자에 더 큰 비중을 주고 싶다. 자기만의 글이 좋다. 뻔한 이야기보다 다른 삶의 엿보기가 감동은 적더라고 재미는 있지 않을까? 한번 맺은 고운 인연을 나는 잘 이어간다. 모란이 피었다고 초대해 준 C 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낮에 바빠 못 간 ‘청춘탁구클럽’은 저녁에 갔다. 파트너가 없어, 양손을 쓰는 관장님의 왼손으로 두 경기를 했다. 두 게임 다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해서 즐거웠다. 오늘도 멋진 기적의 삶에 고마움을 보낸다.
23. 2026.04.17.(금)
갈등 없는 삶이 있을까? 어저께부터 ‘청춘탁구클럽’에서 소모임 문제로 말이 많다. 마음 맞는 몇몇 또래 회원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토요일 오후에 경기 공지가 떴다. 주로 오전반 고수들이 주축으로 조직되었다. 끼리끼리 즐겁게 경기하면서 실력 향상도 하고, 주말에는 시내 리그전에 참석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오후반 회원 몇몇이 동참하는 데서 일어났다. 소외된 다른 회원들이 섭섭한 모양이다. 구장의 궂은일을 자기 일처럼 봉사한 묵은 회원은 마음이 크게 상한 듯하다. Y 님이 관장님과 마주 앉았다. 한쪽의 감정이 격해지니 큰 소리가 나온다.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옆에서 중재하려고 해도 힘이 든다. 내 생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쉽게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것 같다.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 팩트는 명확하다.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해결의 답이다. 갈등(葛藤)이란 한자어를 살펴본다. 칡을 의미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말하는 등(藤)으로 되어있다. 각각 강한 줄기를 가지고 있어, 서로 얽히고 엉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하는 법은 서로의 뜻을 잘 알고 중재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상호 양보를 끌어내 수용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이다.
아침부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구장 갈등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런 날은 어디로 갈까? 미술관 산책이 좋다. 간송미술관을 검색했다. 며칠 전부터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로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한참 뒤 미술관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다. 젊은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과 함께 온 열댓 명의 관람객만 보인다.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가, 대표작인 세한도 그림을 배경으로 반긴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면, 좋지 않다. 여러 번 자주 와야 한다. 특별기획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예닐곱 번은 와야 하지 싶다. 오늘은 추사 글씨 몇 점과 매화를 주제로 한 작품만 감상하기로 했다. 4전시실 입구의 첫 작품이 <계산무진>(溪山無盡 -계산은 끝이 없구나.-)이란 서예이다. 이 작품은 추사체의 완성을 보여주는 글씨로 알려진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점획을 독창적으로 변형하고 재결합하였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와 우뚝 솟은 산의 형상을 반영해 회화미도 살리고, 의미와 형태에 맞춰 글자를 배치해 균형미를 극대화한 글씨로 설명한다. 다음 서예 작품도 멋지고 재미있다. <삼십만매수하실>(三十萬梅樹下室 –삼십만 그루 매화나무 아래 집.-)이란 작품이다. 추사 예서의 꽃으로 19C 매화서옥도 제작의 유행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알려진다. 수직과 수평의 안정적 구도 안에 획의 굵기와 삐침 등의 변화를 주어 유려한 미감을 더했다. 처음 제목을 한글로 읽었을 때, 작품을 ‘삼십만 원에 살 것인가?’ 라는 바보 같은 엉뚱한 생각도 한 작품이다.
다른 작품은 다음에 와서 감상하기로 하고 매화 작품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한철의 <매화서옥도> 병풍을 만난다. 송나라 시인 임포의 고사를 바탕으로 그렸다. 간결하고 단아한 필치로 우봉 조희룡의 거침없는 매화와는 맛이 다르다. 화사한 채색의 가옥과 선비의 모습이 묵법 위주의 배경과 대비를 이룬다. 당시 중인 계층의 심미적 취향이 반영된 작품으로 소개된다. 임포는 중국 서호의 고산에 20여 년 은거한 시인이고 서예가이다.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고, 시를 짓고 매화와 학을 기르고 살았기에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여기며 산 시인-으로 알려진다. 조희룡의 깔끔한 한 쌍의 백매도 아름답다. 추사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중년 이후의 작품으로 느낌이 산뜻하다. 드디어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를 만난다. 기량이 절정에 이른 50대 후반의 역작이다. 화면 가득 채운 거칠고 호방한 바위산 아래의 서재에 앉아 있는 선비를 그렸다. 흰 호분으로 눈송이처럼 피워 흩날리는 매화는 화면 가득 살아 움직이는 함박눈이다. 생동감이 넘치고 눈이 황홀하다. 우봉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명작이다. 그는 “만 그루의 매화가 빽빽하게 얽히고 비치어, 향기로운 눈의 바다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얘기했다. 또 다른 매화 작품이 걸음을 잡는다.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이다. 추사의 문하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재 화가이다. 19C 중반에 제작된 설산에 만개한 백매가 어우러진 대작이다. 하늘을 어둡게 하여 흰 꽃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고, 짧고 강한 필치로 매화의 생태를 살린 작품이다. 고람 전기의 최고 작품인 <매화초옥도>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살짝 다르다. 두 작품 모두 매화가 눈처럼 펄펄 내리는 날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매화초옥도>는 지난번 전시에서 감상했다.
오후에 손자 돌보는 날이다. 15:50분. ‘하늘 유치원’에서 둘째 손자 **를, 16:00 시에 ‘꿈나라 태권도장’에서 첫째 손자 **를 데리고 나온다. 16:30분. 도착한 집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바둑 알까기 게임 10분, 포켓몬 카드놀이 10분, 실내 야구 10분, 숫자 바르게 쓰기 10분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즐기고 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점심은 잘 먹지 않는 느낌이다. 살짝 물어보니 매워서 안 먹었다고 한다. 아이고, 요놈들! 비슷한 친구도 많다고 한다. 점심을 굶었으면 저녁이라도 쉽게 먹으면 좋으련만, 요놈들의 입이 짧은 탓인지 어렵다. 밥 먹이기가 매일 전쟁이다. 그때마다 집사람은 내 탓을 한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밥을 먹지 않았다고 어머님께 들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조금씩 먹였다고 한다. 좋은 버릇은 닮지 않고 나쁜 점만 잘 닮는가? 19:00 시. 겨우 저녁을 다 먹이고 한숨 돌린다. 이제 좋아하는 TV 만화영화 ‘카봇’을 세 편 보여준다. 제일 얌전하고 조용한 시간이다. 집사람과 나는 파김치가 되어 한숨 돌린다. 19:50분. 퇴근한 아들 내외에게 인수인계한다. 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받고 들어와 눕는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사는 게 바람직 한 일일까? “이게 아닌데?”를 곱씹어보지만, 다음 날도 되풀이될 것이다. 정답이 없는 삶이다. 어렵다. 욕심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소시민 일상의 복기 과정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자랑스럽다. 잡문이지만 나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 아닌가? 도덕으로 포장한 글이 아니라 맨얼굴 생생한 일상의 순간이니까 개인적으론 더 좋다. 탈 없이 보낸 하루에 감사한다. 행복하다. 고맙게 내일을 살아가자. 내가 즐겁고 멋진 하루라 생각하면 이 또한 기적의 삶이 아닐까?
24. 2026.04.25.(토)
‘수필문예대’ 문학기행 날이다. 엊저녁부터 살짝 설렘으로 잠을 뒤척였다. 웬일일까? 모든 것이 시큰둥해진 시절이건만, 아직 이런 감정이 살아있다니……. 움츠렸던 마음의 물결이 잔잔히 출렁인다. 얼마 전 순천, 벌교 지방의 ‘대구문인협회’ 문학기행에서도 느끼지 못한 묘한 기분이다. 기다림과 호기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통영 문학기행이 얼마 만인가? 20여 년 전 ‘수문대’ 입문하던 가을에도 통영 문학기행을 왔기에 더 감회가 새롭다. 내일 통영 날씨를 검색하니 8도~22도이다.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까?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낮에는 덥다. 상의는 화사한 원색 파란 패딩으로 골랐다. 옷이 밝으면 마음도 맑고 쾌활해진다. 무엇보다 기념사진이 상큼해 아름답게 삶을 인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는 옛 어른이 말이 가슴에 닿는다. 유치한 것과는 다르다. 원숙해지고 수양이 된다는 말은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고 판단에 신중함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비운 마음에 단순하고 경쾌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통영!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이란 관청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따온 도시이다. 한때 충무공의 도시로 충무로 불렸으나 지금은 다시 통영시로 이름을 찾았다. 세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니 길가에는 벌써 이팝나무꽃이 지천이다. 휴게소에서 직전 학장인 S 님의 설명은 세월의 흐름이 신비롭다. 예전에는 이팝나무꽃 축제를 오월에 했으나 이젠 날짜가 훨씬 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벚꽃도 일찍 피고,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순서 없이 펑펑 터진다. 지구온난화 부작용인지 지구의 몸살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변한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박경리기념관’ 앞에 얌전히 주차한다. 건너편 푸른 바다가 수줍은 듯 신록 사이로 손바닥만큼 보여준다. 아담한 2층 양옥으로 된 기념관이다. ‘박경리문학관’은 원주에 크게 지어져 있다. 통영은 박경리 선생이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고 근처에 묘소도 있다. 몇 번 왔기에 대충 돌아보았다. 정원의 작은 연못엔 어린 금붕어 몇 마리, 옆의 아담한 동상이 편안하다. 동상 아래 기반석에 새겨진 마지막 책 이름이 우리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유고 시집 제목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의미 있고 묵직하다.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멀리 푸름의 풍경 사이로 펼쳐진 바다가 환하다. 눈 머무는 곳마다 벅찬 그리움이고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예쁜 오석에 세로로 새겨진 <삶>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본다. “ -전략- 애닯게 우는 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슬픔도 기쁨도 찬란하다고 노래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흐느끼는 처절함이 역설적이고 치열하지 않았을까?
‘전혁림미술관’은 꽃 잔치 중이다. 불두화가 한창이고 담을 끼고 오르는 담쟁이, 목향장미 넝쿨이 봄을 감싸고 웃는다. 붉은 장미와 흐느끼는 작약까지 신록의 계절이 오월이 아니라, 사월로 당겨진 느낌이다. “그는 색으로 쓰는 문장의 화가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색으로 먼저 태어난다. 강렬한 색채는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다. 우리는 눈으로 글을 읽고, 마음으로 색을 해석한다.”라고 해석한 작가이다. 흰 벽에 예쁜 타일로 모자이크한 아담한 건물이 귀엽다.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코발트 색으로 된 계단을 올라 미술관에 들어선다. 흑백 모자이크로 된 바닥을 밟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미술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남들 따라 그냥 작품 앞에 잠깐 보고 스쳐 지나간다. 소품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벽을 가로로 세운 작품과, 세로로 세운 작품이 경이롭다. 옆 동에 있는 책방도 멋지다.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으로 소개되는 책들이 전시되고 판매도 한다. 아담한 옆방에는 ‘책 읽는 부엌’이란 제목으로 책이 전시되어 있다. 책방 밖 벽에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 시인의 캐리커처가 그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직전 회장 K님과 흡사하다. 아니, 똑 닮았다. 멋지고 재미있다.
‘이순신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탁 트인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안긴다. 짙푸른 하늘과 비췻빛 바다의 조화는 물감을 엎은 듯 환상적이다. 잠시지만 원 없이 바다 바라기로 할 수 있어 좋다. 녹음과 어우러진 바다는 무엇인가 말하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도 이런 풍경이었을까? 멀리 충무공이 왜적과 싸우던 전장이 눈앞에 펼친다. 전투 장면이 드라마처럼 되살아난다. 북을 둥둥 울리며 쉰 목소리로 지휘하는 환상이 겹친다.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충무공의 마음을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겉 맛만 본 난중일기에도 그의 절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욕심만 가득한 지금 위정자들이 그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본받으면 좋을 텐데……. K 님과 긴 데크 길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다에 왔으면 물에 손이라도 담그고 가야 하지 않나. 아이들 몇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번번이 실패다. 좋은 기회인데 나도 동참해야지. 납작한 돌은 없고 뭉툭한 돌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어 번 시도했으나 허탕이다. 세 번째 드디어 퐁, 퐁,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세 번 튕겼다.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좋은 날을 축복하는지 햇무리가 진다. 둥글게 반짝이는 햇무리를 이순신 동상 배경으로 촬영하니 멋진 기념사진이 된다.
‘청마문학관’에 들어섰다. 여러 번 와본 곳이라 익숙하다. 교과서에 실린 <깃발>과 <행복>이라는 시가 많이 애송되는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중략-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라는 문장은 얼마나 많이 회자했던가? 문학관 탐방을 끝내고 잔디밭에 앉아 삼행시 시상과 행운상 추첨이 있었다. 언제나 맛깔나게 진행하시는 Y 선생님의 입담이 부럽고 재미있다. 86세의 나이도 잊은 멋진 화가로 언제나 젊은이처럼 사시기에 본받고 싶은 분이다. 삼행시 백일장은 15년 만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에는 강의를 맡았기에 제외되었다. 오늘은 평회원으로 상금에 눈이 멀어 참가했다. 이 욕심을 언제 버릴 수 있을까?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 활은 시위를 떠났고, 과녁 점수만 살피는 시간이다. *상! 녹슬지 않은 감성은 확인했으나, 사회자로부터 주의를 들었다. 시인이 참여하는 것은 반칙이란다. 이게 삼행시 마지막 참석이라 생각하자.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앙시장을 찾았다. 시끌벅적한 길에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이 시간은 관광객들이 넘쳐 포항 죽도시장이나 대구 서문시장보다 더 붐빈다. 짧은 거리에 걸음 옮기기가 어려워도 싫지는 않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삶이 살아 통통 튀는 곳이다. J 님과 동피랑 언덕으로 올라갔다. 중턱 쉼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세상모르게 널브러져 자고 있다. 그도 관광객 물결에 지쳐 쉬고 있을까? 바닷바람을 솔솔 맞으며 오늘을 복기해 본다. 맑고 화창한 봄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우들과 꿈과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의 소풍이 아니던가?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고맙다. 그렇게 그렇게 내 생의 봄날은 간다.
25. 2026.04.29.(수)
봄 날씨가 춤을 춘다. 어제까지 따뜻하더니 오늘은 쌀쌀하다. 하빈 큰집 강의 날이다. 달성군은 시골이라 공기가 더 맑고 차다. 11시에 강의를 마치고 종합민원실에서 잠시 휴식 중 갑자기 ‘육신사’에 가고 싶었다. 하빈에서 강의하면서 매년 봄, 가을, 두 번쯤 방문한다. 11시 20분쯤 교도소 앞 정류소에서 육신사행 버스가 있다는 것도 검색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로 가깝다. 11시 30분. 육신사 종점에 도착했다. 다음 문양 행 출발 버스 시각은 13시 5분이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다. ‘육신사’와 ‘삼가헌’ 탐방 시간으로 충분하다.
‘육신사’!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의 손자 박비가 이곳 묘골에 터를 잡고 살았다. 어느 날 박팽년의 현손이 제삿날 꿈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 서성이는 것을 보고, 나머지 다섯 분의 제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묘골마을은 순천 박씨 집성촌으로 마을 입구부터 고풍스러운 한옥이 줄지어 있다. 멋진 솟을대문을 지닌 고가는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 많다. 몇몇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다. 기와를 이고 있는 흙돌담 길을 걸으면 옻골마을이나 남평문씨세거지 담길도 떠오른다. 담 아래 미소짓는 낮 달맞이꽃도 반갑고 붉은 꽃잎이 바닥에 흐드러진 작약도 황홀하다. 형형색색 봄꽃이 정원마다 눈부시다.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평일이라 방문객은 아무도 없다. 집주인도 보이지 않아 고요의 숲에 들어온 듯 적막한 느낌도 든다. 몇 번 와본 곳이기에 천천히 걸음과 눈을 옮긴다. 길 양쪽의 한옥을 둘러보며 100여m 걸어가면 붉은색 기둥과 대문으로 우뚝 선 ‘육신사’ 정문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면 붉은 홍살문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보물로 지정된 ‘태고정’을 만난다.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성종 때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아담한 규모로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태고정(太古亭)’과 ‘일시루(一是樓)’라는 해서로 된 현판이 아름답다. 예스러운 품격이 물씬 풍긴다. 대청 입구에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눈에 거슬린다. 대청 앞에 서서 앞을 내려다보았다. 묵은 골기와를 인 한옥들과 멀리 녹음의 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에는 건물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속인의 답사 재미는 적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의 조화가 좋다. 세월의 무상함이랄까 허허한 마음만 든다. 홀로 사색하고 걸으면 좋다고들 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색은 아무나 할까? 보통 사람에게는 정신적 사치가 아닐까?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숭절당’과 ‘도곡재’ 주위를 그냥 그냥 돌아보았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주말에는 이곳도 좀 붐비지 않을까 생각된다.
‘삼가헌(三可軒)’을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차도로 걸어가면 2km 거리지만, 논 옆으로 난 산길로 넘어가면 600m 거리이다. 몇 해 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걸어간 기억이 있기에 추억을 더듬어 산길로 갔다. 짧은 거리지만, 아무도 없는 컴컴한 산길 중턱에는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오르막 산길은 예전보다 잘 다듬어졌기에 쉽게 넘어갔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인 박광석이 건립한 주택이다. 작년에 왔을 때는 대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근데 ‘개조심’이란 팻말에 살짝 겁이 난다. 대문 왼쪽 기둥에 양 손바닥만 한 검은 쇠판으로 된 문패가 인상적이다. ‘도덕과 평화’이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예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주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세상에나! 지금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란다. 그때 느낀 산뜻하고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전해와 미소를 짓고 살며시 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개가 요란스럽게 짖는다. 깜짝 놀라 주춤했지만, 다행 목줄로 매여 있어 “안녕” 눈인사하고 지나쳤다. 나그네만 보면 본능적으로 짖는 모양이다. 대청 아래 섬돌에 주인의 흰 고무신이 얌전히 놓여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당에서 슬쩍 돌아보고 ‘삼가헌’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당인 ‘하엽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자 앞에 ‘파란 연잎이 떠 있는 연못’이란 뜻의 ‘하엽정(荷葉亭)’. 샛문 사이로 보이는 배롱나무와 연못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연꽃도 배롱나무꽃도 피지 않아 적적하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몽환적이다. 절정에 이른 수국이 푸른 녹음과 어울려 정자를 감싸고 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에는 수련과 형형색색의 낙엽이 세월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적막과 아득함만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정자 툇마루에 앉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연못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다. 사색도 필요 없고 멍때리듯 있어도 신선이 부럽지 않을 듯 멋진 곳이다. 연못 위에 길게 걸쳐놓은 통나무 위에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정자와 나무, 물, 하늘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 속의 그림이 된다. 여기서는 아무도 없으니 더 운치가 있고 더불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
문양 행 버스 출발시간까지 30분 여유가 있다. 육신사 입구의 한옥 감성 카페 ‘묘운’(竗雲)에 들어갔다. 박팽년 선생의 22세 손 박상혁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시간의 오묘함과 공간의 절묘함을 살린 곳이다. 긴 돌담과 풀밭 정원이 고궁 같은 카페이다. 명경지담(明鏡之潭)이란 아담한 연못에는 20여 마리의 붉고 노란 잉어가 세월을 즐긴다. 겉모습만 한옥 구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전통을 보존하며 현대식 가치를 추구하는 곳으로 지었다고 한다. 통유리창과 감각적인 조명이 멋진 갤러리에 온 느낌이다. 가구와 소품은 전통공예 작품으로 전시 중이란다. 오늘 비로소 관광객 10여명을 만났다. ‘육신사’와 ‘삼가헌’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다녔는데? 좀 아이러니하다. 카페라테 한잔을 앞에 놓고 지친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트가 그려진 라테아트를 보며 홀짝홀짝 커피 향을 음미한다. 느림과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카페라테와 함께 받은 종이를 읽어본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은 줄어도 향은 처음과 같네- 라는 황정견의 『산곡문집』에 있는 글귀이다. 비록 전통차가 아니라도 차향의 품격을 높인다. 친구와 연인들로 보이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3시 5분. 문양 행 버스에 홀로 앉아 출발했다. 14시 50분 매호동 도착. 몸과 마음이 나른하다. 계획하지 않은 멋진 시간이 잘 흘러갔다. 고마움의 정신이 흐릿해지는 나를 일깨우는 좋은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