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대학문화 또는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청바지와 통기타를 드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 와서는 유신체제의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반항의 표상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들이 60년대 후반 서구와 미국을 휩쓴 베트남 참전반대투쟁, 인종차별반대투쟁,여성해방운동과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서구사회의 기성새대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된 '스튜던트 파워'는 정치적인 좌절과 함께 청바지와장발, 밥 딜런의 저항노래, 그리고 히피문화를 낳았고, 우리나라에는 통기타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와 장발을 창출했다. 이런 세대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가요가 70년대 한국의 한 주류를 이루면서 위력을 떨쳤다. 김민기·한대수·양병집·서유석·하남석·김정호·이필원·박인희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포크계열의 노래들이 그것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학사가수'들이었고, 스스로 자작곡을 지어 불렀다고 해서 '싱어 송 라이터'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 김민기의 「친구」, 송창식의 「고래사냥」, 양희은의 「아침이슬」, 양병집의 「세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은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담았다고 하여 금지곡이 됐지만, 대학가에서는 꾸준히 불리었다. 대학의 시위현장에서는 「아침이슬」이, 술자리에서는 「친구」나 「물 좀 주소」가 으레 불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적인 성격의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은희의 「꽃반지끼고」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박인희의 「모닥불」, 이장희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같은 서정적인 노래들도 있었고, 둘 다섯·이종용 같은 가수들도 있었다. 70년대 가요세계는 금지곡의 시대였다. 송창식의 「왜불러」, 이장희의 「그건너」는 물론이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신중현의 「미인」, 심지어는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도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울음도 거짓말"이라고 했던 김추자의 노래는 위정자들이 제 발이 저린 꼴이었고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는 노랫말이 "아빠가 월남파병 용사로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빗댔다."고 지레 짐작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정권 홍보를 위한 이른바 '건전가요'나 '국민가요'가 장려되고 록음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70년대 대중가요의 한 특징이었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로 시작되는 「잘 살아보세」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의 「님과 함께」 송대관의 「해뜰날」같은 것들은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는 건전가요·국민가요로 장려되었다. 군가였던 「향토예비군가」가 대중가요처럼 자리잡은 것도 이 시절이었다. 60년대의 가수들이 퇴조하고 통기타 가수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등장했지만 이들은 규제와 방송금지, 대마초파동 등으로 대중적인 힘을 잃었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 이전부터 주류를 이루어왔던 트로트 계열은 70년대에도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70년대 트로트 가요를 주름잡은 두 라이벌, 남진과 나훈아의 등장은 트로트의 위력을 더해 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트로트 창법의 나훈아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낸 남진의 대조적인 모습은 뭇 여성팬들을 열광적으로 사로잡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개성에다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 대표성까지 가미되어 상업성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훈아와 남진 외에도 이미자는 여전히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가수였으며,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 김상진의 「두고온 고향」,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등은 새마을운동과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시대상황의 도움으로 크게 히트한 트로트 곡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또 한 사람. 1979년 「그때 그 사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심수봉. 그녀는 1979년 10·26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박정희가 죽은 뒤 사회 일각에서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개사하여 부르기도 했다. 심수봉은 그 사건 이후 한동안 가요계를 떠났다가 80년대 후반에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 인기가요
70년대의 대학문화 또는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청바지와 통기타를 드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 와서는 유신체제의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반항의 표상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들이 60년대 후반 서구와 미국을 휩쓴 베트남 참전반대투쟁, 인종차별반대투쟁,여성해방운동과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서구사회의 기성새대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된 '스튜던트 파워'는 정치적인 좌절과 함께 청바지와장발, 밥 딜런의 저항노래, 그리고 히피문화를 낳았고, 우리나라에는 통기타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와 장발을 창출했다. 이런 세대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가요가 70년대 한국의 한 주류를 이루면서 위력을 떨쳤다. 김민기·한대수·양병집·서유석·하남석·김정호·이필원·박인희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포크계열의 노래들이 그것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학사가수'들이었고, 스스로 자작곡을 지어 불렀다고 해서 '싱어 송 라이터'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 김민기의 「친구」, 송창식의 「고래사냥」, 양희은의 「아침이슬」, 양병집의 「세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은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담았다고 하여 금지곡이 됐지만, 대학가에서는 꾸준히 불리었다. 대학의 시위현장에서는 「아침이슬」이, 술자리에서는 「친구」나 「물 좀 주소」가 으레 불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적인 성격의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은희의 「꽃반지끼고」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박인희의 「모닥불」, 이장희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같은 서정적인 노래들도 있었고, 둘 다섯·이종용 같은 가수들도 있었다. 70년대 가요세계는 금지곡의 시대였다. 송창식의 「왜불러」, 이장희의 「그건너」는 물론이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신중현의 「미인」, 심지어는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도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울음도 거짓말"이라고 했던 김추자의 노래는 위정자들이 제 발이 저린 꼴이었고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는 노랫말이 "아빠가 월남파병 용사로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빗댔다."고 지레 짐작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정권 홍보를 위한 이른바 '건전가요'나 '국민가요'가 장려되고 록음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70년대 대중가요의 한 특징이었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로 시작되는 「잘 살아보세」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의 「님과 함께」 송대관의 「해뜰날」같은 것들은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는 건전가요·국민가요로 장려되었다. 군가였던 「향토예비군가」가 대중가요처럼 자리잡은 것도 이 시절이었다. 60년대의 가수들이 퇴조하고 통기타 가수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등장했지만 이들은 규제와 방송금지, 대마초파동 등으로 대중적인 힘을 잃었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 이전부터 주류를 이루어왔던 트로트 계열은 70년대에도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70년대 트로트 가요를 주름잡은 두 라이벌, 남진과 나훈아의 등장은 트로트의 위력을 더해 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트로트 창법의 나훈아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낸 남진의 대조적인 모습은 뭇 여성팬들을 열광적으로 사로잡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개성에다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 대표성까지 가미되어 상업성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훈아와 남진 외에도 이미자는 여전히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가수였으며,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 김상진의 「두고온 고향」,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등은 새마을운동과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시대상황의 도움으로 크게 히트한 트로트 곡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또 한 사람. 1979년 「그때 그 사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심수봉. 그녀는 1979년 10·26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박정희가 죽은 뒤 사회 일각에서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개사하여 부르기도 했다. 심수봉은 그 사건 이후 한동안 가요계를 떠났다가 80년대 후반에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 인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