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빛을 받고 있는 군산화물역 역사 건물.
군산화물역은 군산화물선(群山貨物線)과 옥구선(沃構線)의 페역(영업하지 않고 폐쇄된 역)으로 2008년 이전에는 군산선(群山線) 의 시발역인 군산역으로써 여객열차가 운행되는 군산시의 중심 철도역이었다. (군산선은 군산-익산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으로 장항선 철도의 지선이며, 옥구선은 군산역에서 시발하여 옥구까지 약 8.9km 연결되는 짧은 철도이다.)
그러나 2008년 장항선이 금강을 건너 익산까지 연장, 전라선, 호남선 철도와 연결되면서 장항역과 군산역은 원래 있던 위치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외곽에 말끔한 신역으로 새로 지어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옛 군산역과 장항역은 더 이상 여객열차용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되어 항구와 연계된 화물전용 철도로 역할이 바뀌었고, 구 장항역은 장항화물역, 옛 철로는 장항화물선으로, 구 군산역은 군산화물역이 되었다. 그나마도 군산화물역은 올해 7월 1일부로 화물역으로써의 역할마저 신 군산역에 넘겨주고 더 이상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완전한 페역이 되었다. (신 군산역 옆에 가득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은 군산화물역의 현재 입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는 금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최대 곡창이었던 남쪽의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다량의 곡물을 배로 실어나르기 좋은 곳이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시절 군산항은 식민지를 수탈하던 공출(식량을 빼앗아 실어가는 일)의 중심지로 많은 일본인들이 살고 있었고, 구 시가지에는 일본식 건축 등 그 흔적들이 아직도 숱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와 함께 1912년 처음 영업을 시작한 군산역은 한국전쟁때 한번 소실되는 아픔도 겪었으나, 그 명맥만은 계속 유지해 오다가 올해로 거의 한 세기, 96년의 역사를 마치고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군산시는 새만금 방조제의 완공과 함께 서해안 지역의 여러 중심 도시 중의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느낌도 무척 많이 달랐다.)
내가 군산역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06년 1월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여객열차 영업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군산역에서 화물을 싣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구 시가지의 좁은 통로를 따라가는 단선 철로를 느릿느릿 서행하는 화물열차의 모습은 참 인상적인 사진거리로 유명했다. 특히 군산역에는 기관차의 방향을 바꾸는 로터가 없어 익산에서 앞쪽(단폐단 방식)으로 달려온 기관차는 회차시에는 긴 엔진부를 앞쪽으로 돌리고(장폐단 방식) 시야가 극히 나쁜 반대 방향으로 주행해야 하는데. 이때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가기 때문에 눈부신 전조등이 환히 켜진 육중한 기관차의 앞쪽 트랩에서 두 명의 신호수가 서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느릿느릿 인가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군산역을 상징하는 정말 유명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정말 눈으로 보고 싶었으나, 이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번 방문 때에, 군산역의 이름이 화물역으로 바뀐 것도 놀랐지만, 그 역이 폐쇄되어 있어서 더더욱 놀랐고 정말로 아쉬웠다.
(옛날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덧붙여 둔다.)
2006년 1월 군산선 군산역사. 역의 정문이 활짝 열려 있고, 전광판에는 기차 편성표가 흐르고 있었다.
좌측의 낮은 건물에서는 소화물 택배 영업소도 문을 열고 있었고, 광장도 훨씬 깨끗했다.
현재 역사가 폐쇄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 자리에는 군산시 관광안내도가 붙어 있다.
여객열차 운행이 끝난지 벌써 9개월이 넘었는데, 아직도 여객열차 광고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역 앞에는 역이 폐쇄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고, 역사 내력을 소개하는 비석도 만들어져 있었다.
군산시의 구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역 광장은 이제 나이드신 분들의 장소가 되었다.
군산화물역 앞 교차로. 원래 이 부근에는 큰 고가도로가 있었으나, 그 고가도로도 대부분 철거되었다.
그 덕에 전망은 시원하게 뚫렸다.
역사 옆쪽의 골목과 낡은 블록 담.
역사나 철로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통로는 모두 폐쇄되었으나, 나는 블록 담의 무너진 틈으로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군산화물역사의 플랫폼. 완전 낡고 퇴락한 채 죽어가는 무언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공식적으로 역이 폐쇄된 것은 이제 두어 달 남짓이지만, 열차운행은 오래전에 뜸해졌는지 철로는 온통 녹이 슬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멀리 역전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있다.
플랫폼과 건널목. 잡초가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
플랫폼 위의 사인 디자인은 한국철도의 새로운 푸른색 톤 스타일이라서, 이 역이 최근에 폐쇄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역사 건물 뒤쪽.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는 것이 이채로왔다.
여기에 붙은 거울은 도대체 어떤 용도로 쓰였을려나.
잡초와 쓰레기만 한가득. 저 앞 레일이 끝나는 곳이 군산선 철로가 끝나는 곳이다.
철로는 신기하게 무늬 모양으로 녹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플랫폼 너머로 보이는 낡은 건물들.
군산선 철로 종점 방향으로 바라본 군산화물역 풍경.
군산화물역사 방향. 이리로 계속 달리면 익산 방향이다.
철로 옆에 쌓여진 예비 레일들.
플랫폼 옆쪽의 예비 철로. 관 속에서 뼈만 남은 채 썩고 있는 시신의 모습 그 자체다.
자연은 이렇듯 인간의 흔적을 쉬이 덮고 가려 버린다.
플랫폼의 붉은 보도블럭 사이에 난 작은 잡초.
누가 그랬던가, '소멸이야말로 탄생의 시작이지.' 라고.
녹슨 트랙 옆에 있는 수동 전철기. (선로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
흰 페인트 칠이 아직 선명하다.
무성한 잡초 수풀에 완전히 덮여 버린 선로들.
이곳이 거진 100년이나 존재하던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이 실로 무색하다.
침목과 자갈 사이에서도 무수한 잡초들이...
오후의 석양을 받아 빛나고 있다.
황금빛 태양 아래, 옛 플랫폼.
수많은 사람들이 저 곳에서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을 테지.
그들의 두런거리던 이야기는 어느 새 간 곳이 없다.
역사의 밀봉된 창문에는 KTX 고속열차가 미끈한 자태로 달리고 있다.
이 역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현세의 흔적이었다.
건널목.
역전 고가도로 철거 공사.
역전 교차로. 오후의 햇빛은 그 사이 완전히 황금빛이 되었다.
군산화물역 역전종합시장.
비록 이제는 폐쇄되었지만 한 세기나 지속된 역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 시장의 규모는 실로 대단해서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결국 끝까지 가 보는 것을 포기했다)
역전시장 내부의 모습.
시장 안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4,000원짜리 맛있는 콩나물 국밥이었다.
전라도 아니랄까봐! 반찬들의 맛이 무척 강해서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그러나 반찬 중 하나는 (뚝배기에 가려졌지만) 무려 홍어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