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마을 수무동 하나쯤
芝山 박용구
알싸한 가을 아침이 간밤에 구름 낀 하늘 티 없이 말갛게 닦아 색 고운 파란 하늘을 선물한다. 하루의 첫 출발이 좋다.
12명의 唐詩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현장수업을 받기 위하여 오전 9시에 중국고전연구회 앞에 모여 차량 3대에 나누어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청도 매전면 하평리 수무동 이장우 교수의 집을 찾아갔다.
고속도로를 달려 청도 IC에서 내려 경주 쪽 방향으로 가다가 길가에 하평리라는 간판을 조금 더 지나 산길로 오르면 수무동 가는 길에 들어선다. 깊은 골짜기 계곡 가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팔 벌려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청도 명물인 반시가 푸른 하늘을 등지고 반짝반짝 가을 햇살에 익어 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을입구에서 왼쪽 길을 돌아 올라가니 학일산 능선을 타고 차분하게 내려앉은 작은 봉우리의 칠부 자락을 병풍삼아 황토로 지어진 이장우 교수의 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잔디로 다듬어진 마당에 서서 앞을 보니 웅장하게 솟은 산봉우리와 양 옆으로 나지막하게 내려선 능선의 흐름이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함을 준다. 명당자리가 따로 없다.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사색을 하기엔 금상첨화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뒤에는 오죽이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입구의 키다리 감나무 두 서 너 그루에는 노랗게 익은 반시가 옹골차게 달려있다. 느낌 좋은 한 폭의 한국화 같은 풍광이다.
마중 나오신 이교수님의 안내로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벽에는 사모님이 만드신
敎受 ‘非先生勿入 見來客不起’라는 한지공판에 만든 글 판이 장식 되어 있었다.
敎受란 임금님이 내린 글을 말하며 이것은 규장각 입구에 붙여진 정조대왕의 글로 ‘선생이 아니면 들어오지 말 것이며, 손님이 온다고 일어서지 말 것이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규장각 안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그대로 나타낸 글이라 생각되었다.
이장우 교수 別墅 서재앞 한지서각(사모님작품)
안쪽에 방이 두 개가 있고 다락방도 두 개를 두어 책을 보관하고 부엌과 뒤쪽에 작은 창고가 있는 알뜰하게 만들어 놓은 별장 겸 서재였다. 지금부터 5년 전 대지 600여 평을 구입하여 앞쪽의 반은 제자인 J선생이 맡아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선생님을 닮은 안정되고 차분한 그런 집이였다. 집에 현판이 없어 허전한 감이 들어
“이 집에 어울리는 현판을 다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 말씀을 드렸다.
이사 오기 전에 위쪽에 있던 집에는 현판을 붙이지는 않았으나 이름이 있었는데 이집에 붙일 현판은 아직 생각 중이라고 하셨다.
내 생각으로는 靑鶴堂, 靑學樓, 靑鶴齊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淸道의 淸자를 靑으로 바꾸고 黃鶴樓의 鶴자를 넣으면 푸른 학이 훨훨 날아오를 것 같은 그런 운치가 들기 때문이다.
차와 과일로 목을 축이고 농부의 손길이 되어 감 따는 가을걷이 체험을 하였다.
감을 따는 아낙들은 그 옛날 추억속의 소녀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가 끝이 없다. 역시 가을의 공기와 풍광이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것 같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예부터 감 따다가 떨어진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하는데 다들 사다리에 올라가 감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감을 잘도 따 내렸다.
隱山亭 현판 이장우교수 강의 蒼空秋山滿紅枾
비닐하우스 앞 감나무에 달려있는 홍시를 따서 맛을 보니 어릴 적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시자(땡감을 쌀독이나 석작에 넣어 2,3개월이 지나면 홍시가 되는 감) 생각이 났다. ♫ 생각이 난다~~·홍시가 열리면 ♬ 나훈아가 작사 작곡하여 부른 ‘홍시’가 생각나 흥얼흥얼 콧노래로 불러 보았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새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새라
험한 세상 넘어 질 새라 사랑땜에 울먹일 새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달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어느 누구나 다르겠는가? 홍시가 익어가는 이 가을에 한번쯤 불러 볼만하지 않는가?
선생님이 종이 박스를 몇 개나 가져다주어 모두 많이들 따 담았다. 고생하여 지어놓은 농사를 입만 가진 학생들이 와서 죄다 망쳐놓은 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홍시도 맛보고 감도 따고, 탐스럽게 달린 감나무 가지하나도 꺾었다. 보고 있던 학생들이 한마디씩 하며 놀린다. “나뭇가지 꺾으면 안 되는데~~.”그 말이 맞다 . 하지만 견물생심을 이기지 못한 소인인 것을 어찌 할 것인가? 집에 가져와서 서재에 걸어 놓고 보니 이장우 교수님의 ‘청학’(?)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좋았다.
감 따는 유희를 끝내고 마을 탐방을 떠났다.
이 마을 이름이 수무동인데 숨어있는 마을 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큰길에서 보면 보이지 않지만 계곡 안쪽으로 돌아 들어오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무동 길, 정다운 우리말의 냄새가 나서 좋았다. 처음 간 곳이 ‘청학당’(아직 허가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죄송하다)에서 마당 왼쪽 길을 따라가면 바로 동곡막걸리 사장집이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 한다. 담장이 품새 좋게 치장이 되어 있고 안마당에는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있으며 들어가는 대문에 붙은 행랑채 그리고 안채에는 隱山亭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쪽마루 안쪽 방문위에는 시를 쓴 3점의 현판이 있는데 그 첫째 판을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좋은 집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아 풀이 우거지고 먼지가 끼어 보기에 안타까웠다. 이 마을도 주민이 많이 살 때는 40여 호가 생활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20여 호, 그것도 칠순의 나이를 먹은 사람이 절반인데다 젊은이 축에 들어간다고 하니 이 마을도 세월과 함께 묻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한전 맥가이버씨 뒷뜰 정자 현판 맥가이버씨 댁 전경
그 집을 나와 아래쪽 길로 내려와 개울을 건너 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한전’집에 갔다. 한전에 다니다가 정년하시고 직접 집을 짓고 이곳에서 사는 부부인데 전기나 다른 문제도 잘 고치고 해결해주는 동내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널찍하게 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에는 큰 가마솥이 걸려 있어 무슨 요리를 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캠프파이어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텃밭은 작게 나누어 고추도 심고 채소도 가꾸고 어느 곳이나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역시 사랑으로 가꾸어진 곳에는 생명도 살아 춤을 추는 것 같다.
작은 연못에 물이 흐르고 위쪽 정자도 손수 만든 흔적이 보여 더욱 정감이 가는 아늑하고 사람냄새가 폴폴 나는 집이었다.
다시 올라가 영남대 금속공학과 교수(이장우 교수님 친구 분으로 이곳에 10여 년 전 같이 들어왔다고 함)집을 거쳐 MBC H 국장의 두 평짜리 별장을 구경하였다.
두 평으로 삶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기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집에 집착을 하여 평생 동안 집을 장만하고 늘려가기 위하여 시간과 투자를 많이 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았던 집도 가꾸지 않으니 이미 집으로서의 구실을 상실하여 가고 있고 소박한 집이지만 알뜰히 정붙이고 손 때 묻으면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살아있는 집이 되는 것 같다. 대문에서부터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넓은 정원과 커다란 집을 가진 헐리우드 스타들의 집도 두 평짜리 집이 품은 넉넉함을 따라올 수 없다. 그 두 평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집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그 집이 어찌 두 평의 공간에만 그칠 것인가. 두 평 집 밖이 모두 내 정원인 것을......
사람에게 있어 집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동네 탐방 길이었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집 앞 마당에서 대구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대동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이 선생님이 내오신 경산 포도향기로 입가심하는 호사를 누렸다.
덩기덕 쿵 덕쿵
오랜만에 멍석위에 앉아 류선생의 장구 장단에 맞추어 태평가를 배웠다.
‘짜증을 내어서 무얼 하나, 성화를 가지어 무얼 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들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 날아든다.‘
학생들이 양편으로 갈라 앉아 국악선생의 반주와 지휘에 따라 일절을 몇 번이고 불러 본다. 고음은 역시 따라 하기가 힘이 든다.
마당 아래 감나무 사이에 심어진 대추밭에서는 동내 노부부가 대추나무를 장대로 두들겨 대추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가야금 연주 같아 국악선생의 장구소리와 학생들의 멋들어진 말아 감는 노래청과 함께 수무동 마을을 감싸 안았다.
그냥 건성으로 들어왔던 태평가인데 그 가사를 한 구절 한 구절 떼어 생각하면서 불러보니 맛이 있고 정감이 갔다. 2절의 가사는 더욱 좋아 적어본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공수래 공수거하니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
니나노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들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 날아든다.’
2평짜리 호화주택 류선생의 국악수업
맑고 깨끗한 가을 날씨에 수확이 풍성한 청도 매전 수무동 시골 풍광을 보고 느끼고 듣고 우리 가락을 노래 부르니 모처럼만에 사람답게 산 것 같은 여유롭고 뜻 깊은 하루였다.
수무동, 수무동, 수무동...... .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때론 혼자이고 싶고, 지치고 싫증났을 때 숨어들 수 있는 곳.
온전히 나를 받아주고 쉬어가게 하는 선물 같은 마을, 숨어있는 마을, 마음의 수무동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구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갈 때는 수성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청도에서 내려가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으나 올 때는 남천으로 난 샛길을 달려오니 더욱 빨리올 수 있었다.
이 모든 선물이 당시 300수부터 시작했으니 지도교수인 이장우 선생님과 총무 산농씨 그리고 교육 동료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지난 시간에 배웠던 秋月이라는 시가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스무동 가을 길을 노래한 것 같아 적어 본다.
秋月(程 顥 作)
淸溪流過 碧山頭 맑은 시내 흘러서 푸른 산머리 지나니
空水澄鮮 一色秋 깨끗한 하늘 맑은 물이 일색의 가을일세
隔斷紅塵 三十里 뿌연 먼지 떠나서 삼십 리를 나와 보니
白雲紅葉 共悠悠 흰구름 단풍 잎새만 서로 한가롭구나
첫댓글 지산 교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맛있게 보이고 맛나게 들립니다. 청학이 헐헐 날아 들겠습니다. 출입을 허용하셨기에 제가 비로소 '선생'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마치 신문을 스크랩하여 올려놓으신 듯..대단하시군요. 당일 청도 못가신 분들도 현장에 있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사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니 다 각각~ 제가 가르침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ㅋㅋ
배산임류 구지환잡 하는 명당터를 돼지냄새로 오염 시키고 사는 제처지의 시골과는 전여 다른곳인가 봅니다. 2학기 휴학하는 처지지만 목요일이면 오늘 당시는 뭘까? ?? 항시 미련속에 빠져있네요. 정말 귀한 구경 하신것 같네요 .
여기서라도 만나네요. 처음 강의시작했을때 지난학기 수강생중 유일하게 빠진 분이라 아쉬웠는데요. 잘 계시죠. 그래도 요즘 돼지값이 비싸서 좋다고들 하던데요. 우리 연구소는 그야말로 열린대학이죠. 누구의 강요도 없고 내가 시간되면 신청해서 공부하고...멋지죠.
그날 일을 활동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기록하셨습니다. 초대해주신 선생님, 수고해주신 이, 조선생님, 태평가로 분위기띄워주신 류선생님 모두 감사힙니다.. 내년에 다시 불러주시면 감나무 아랫부분은 남겨놓고 따기힘든 윗쪽을 따겠습니다. 그것이 뉘늦게 죄송스러웠습니다.
선생님 너무 소상히 이야기 해 주셔서 그날 수고롭게 간 사람들 보다 앉아서 선생님 글 본 사람들이 더 수무동을 잘 알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확실히 차이가 나는것은 그날 우리 민요반 선생님의 육성 창... 요것만은 그날 간사람만이 누릴수 있었던 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