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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 시단의 문제에 대하여
이승하
한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미래파’에 대한 논란은 최동호 전 고려대 교수의 말대로 “미래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로 결론이 났다. 2005년 『문예중앙』 봄호에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이 「미래파」라는 글을 씀으로써 촉발된 미래파 논쟁은 그가 거론한 시인들, 예컨대 황병승ㆍ장석원ㆍ김민정ㆍ유형진의 활동이 주춤해진 이후, 그만 힘을 잃고 말았다. 미래파야말로 우리 시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며, 계속해서 신선한 바람몰이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권혁웅은 그 글을 썼지만 미래파로 일컬어진 일군이 시인들이 우리 시에 가지고 온 ‘功’보다는 ‘過’가 많다고 사람들이 말함으로써 미래파 시인들은 동네북이 되다시피 하였다. 미래파의 후속 세대로 각광을 받은 김경주ㆍ김승일ㆍ박성준ㆍ박장호ㆍ이민하 등의 활동도 부진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미래파는 2018년 현재 과거의 인물이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이들이 다시 우리 시단에 경종을 울리면서 부활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 글의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지면에서 우리 시의 장형화와 산문화를 우려하는 말을 하였다. 우리 시가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다, 산문조로 씀으로써 소설의 일부 같은 느낌을 준다고 숱하게 지적했지만 크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독자와의 소통을 허락하지 않는 난해함도 아주 심해 역으로, 베스트셀러 시집을 낸 대중시인을 따로 만들어 왔다. 이해인과 류시화와 서정윤이 1세대 대중시인이라면 용해원ㆍ이정하ㆍ원태연을 2세대 대중시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달 만에 수십 쇄의 시집을 찍은 하상욱을 3세대 대중시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시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들의 시집은 가벼운 재담이나 연애담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하였다. 현대시가 갖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 애매성과 다의성인데 현대인들은 쉬운 시, 위안이 되는 시, 운율이 있는 시를 원하고 있다. 세대는 다르지만 나태주 시인이 새로운 대중시인으로 급부상한 것은 그의 시가 쉽고 위안이 되고 운율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로 접어들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시단에 나타난 몇 가지 현상으로 시낭송의 유행과 시조시단의 대약진, 그리고 인터넷 시 카페의 난립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필자 개인의 체험을 곁들여 설명하고, 우리 시단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1. 시낭송의 유행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에서 봄 학기 수강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는데 시낭송과와 시낭송지도자과정 반이 무려 9개나 개설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25개 반 중에 9개가 시낭송 반이니 36%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시, 시조, 수필, 소설 ‘창작’반에 비해 시 ‘낭송’반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수강을 신청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정말 많은 사람이 시를 낭송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등록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놀랄 일이 아니겠는가.
작년 12월 2일, 안양문화원 4층 강당에서 제 22회 전국시낭송대회가 열렸다. 심사위원 의뢰를 받아 가서 심사를 했는데, 강당을 가득 메운 뜨거운 열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경기도 안양시가 문학의 메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회는 22년째 열리고 있었고, 예선을 거쳐 이날 본선대회에 참가한 사람의 수가 50명이었다. (불참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안양까지 올라와서 경연대회에 참가한 것인데, 서울과 경기도 외에 대전, 대구, 창원, 제천에서 온 참가자가 있었다. 거의 다 한복을 입고 오거나 싸들고 와서 곱게 차려입은 상태로 대회에 임하였다. 시의 이해도, 발음의 정확도, 감정의 표현, 무대 매너, 관객 반응을 각 20점씩 준다는 심사 기준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들 다년간 시낭송가를 길러내는 사숙에서 배우며 기량을 닦아서 그런지 완전히 프로급 솜씨였다. 우열을 가리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5명이 윤동주의 시를 낭송했고 서정주ㆍ정호승ㆍ이기철 시인의 시를 3인 이상이 낭송했다. 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상 1명이 50만원, 금상 1명이 20만원, 은상 1명이 10만원, 동상 2명이 5만원, 장려상 10명이 3만원이니 동상 이하는 차비도 안 될 상금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를 응원해주기 위해 온 가족의 열기는 꽉 찬 강당을 뜨겁게 달구었다.
큰 사고가 났다. 시상식이 끝난 며칠 뒤에 주최측인 (사)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의 관계자가 전화를 해왔다. 금상 수상자의 수상 취소를 요구하면서 누군가 제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2시간 이상 진행된 전 과정을 녹음한 제보자는 금상 수상자가 시의 한 연을 빠뜨렸다면서 녹음한 파일을 보내왔다고 했다. 심사위원이 제대로 심사를 못한 것이었으므로 난감하였다. 수상자는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이었고, 심사위원 5인은 이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숙의 끝에 수상자 본인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상장과 상금을 회수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고.
일종의 해프닝이 일어난 셈인데, 이 일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대회 진행 과정 전부를 녹음하여 다시 들으며 연구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은 시낭송대회가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본다. 이런 대회에서 큰 상을 타면 ‘시낭송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고,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겨난 시낭송반의 지도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상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2016년 9월 4일 거제시에서 청마문학제가 열렸는데 행사의 일환으로 청마 유치환의 일대기를 주제로 하는 시극 공연이 펼쳐졌다. 시 낭송가 김미숙ㆍ노연숙ㆍ이숙례ㆍ임지숙 네 명이 유치환의 시 10편을 시극 형태로 낭송하는 행사였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는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청중의 반응이 이를 입증해주었다. 야외공연인데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고 박수에, 찬탄에, 환호에……. 네 명은 (주)재능교육에서 근 30년째 해오고 있는 시 낭송대회에서 입상한 이들로서 경상도 쪽의 대표적인 시낭송가들이었다. 남녀노소 수많은 청중이 완전히 몰입해 공연을 볼 정도로 시극 공연은 수준이 높았다.
4년 전 대학로에 있는 재능교육 본사에 가서 특강을 했는데, 그때 청중은 ‘재능 시낭송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회원들 간에 사이가 아주 돈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시낭송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었다. 이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필자는 시낭송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집을 사서 읽는 독자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시낭송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눈으로 읽는 시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고, 입으로 읊는 시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시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은유와 상징의 기능보다는 파악 가능한 운율과 고저장단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시조시단의 대약진
작년에 세 군데 시조문학상의 심사를 했다. 하나는 천강문학상의 시조 부문을, 또 하나는 가람시조문학상 본상과 신인상을, 다른 하나는 인산시조평론상을 심사한 것이다. 이 상들의 의의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작년에 제 8회를 맞이한 천강문학상은 의령군에서 천강 곽재우 장군을 기려 제정한 상인데 시조 부문만을 보면 본상 상금 700만원에 우수상 상금 300만원이다. 기성과 신인을 망라하여 투고할 수 있다. 본심 심사평의 일부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21명의 작품을 재독, 삼독하면서 느낀 것은 시조시단의 변화였다. 시조의 틀(형식)은 여전히 지키고 있지만 언어 표현이 대단히 세련되고 상상력이 기상천외해서 그런지 구태의연한 시조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조의 형식은 정형이지만 내용은 열려 있는 총체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예 시조시인들이 시조시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고, 이것은 시조시단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1명 예심 통과자들의 수준이 높고 고르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즉, 우리 시조시단의 수준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20, 30대 시인 지망생 중 시조를 쓰는 인구가 늘어났음은 중앙일보의 중앙시조백일장이 잘 말해주고 있으며,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의 낮아진 연령층이 입증해주고 있다. 제자가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었는데 그때 나이 26세였다.
익산시 문화관광과에서 주관하는 가람시조문학상은 작년에 제 37회를 맞이하였다. 다시 말해 이 땅의 뛰어난 시조시인들 중 이 상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심사평의 일부다.
추천위원들이 올린 본상 심사 대상은 18명의 작품 23편이었습니다. 우리 심사위원은 개인적인 친소관계나 학연, 지연, 등단지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쓴 시인을 3명씩을 추천했습니다. 그 결과 오종문 시인이 가장 많은 표가 나왔고 박권숙과 신필영 시인이 동점 차점자로 나왔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심사위원이 한 명도 없었으므로 제 37회 가람시조문학상은 오종문 시인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추천위원들이 올린 신인상 심사 대상은 16명의 작품 21편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택회 시인이 5표를, 최재남 시인이 4표를 얻어 얻었습니다. 1표 차여서 심사위원은 공동수상을 운영위원회에 건의했지만 모집 공고에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이택회 시인 1명으로 수상자를 내기로 했습니다. 최재남 시인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이 정도로 엄격한 심사 과정이 있었다. 추천위원들이 올린 본상과 신인상 후보자의 근작들을 보니 이 또한 시조시단의 일취월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시조시단이 이렇게 대약진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시에 관심이 좀 있는 일반 독자라면 시가 어렵고 길고 지루하면 읽지 않는다. 반면에 시조는 간결하고 함축적이니까 읽는 것이다. 시조 지망생들이 늘고 있고, 당연히 시조시인들은 힘을 내고 있다.
작년에 제 6회 인산시조평론상 심사도 하였다. 이 상은 죽염을 개발해 갑부가 된 인산 김일훈 선생이 사비를 내놓아 제정된 것으로, 시조 비평가에게 주는 국내 유일의 상이다. 이 상의 심사평도 내가 썼다.
시조문학의 부활 조짐이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시조 전문 문예지의 종수가 늘기도 하지만 한국시조시학회의 출범, 청도국제시조대회 개최, 세계시조시인포럼 개최 등을 통해 시조의 세계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분들이 있다. 특히 (사)한국시조시인협회는 서울시내 한복판에 사무실을 마련해 시조시인들의 사랑방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 외에도 우리 시조시단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을 낸 태학사 외에 고요아침, 동학사, 만인사, 목언예원, 책만드는집 등에서 시조집을 시리즈로 내고 있어서 21세기인 지금 시조시단은 아연 부흥기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인산 김일훈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인산시조평론상이 제정된 이후 시조비평의 활성화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역대 수상자 박철희ㆍ장경렬ㆍ엄경희ㆍ유성호 씨는 모두 처음부터 시조평론을 했던 분이 아니다. 시평론을 주로 하다가 시조에 매력을 느껴 시조평론을 겸하게 되었다. 이런 분들의 비평작업은 우리 시조에 대한 짙은 애정에 기인한 것이기에 때로는 질타의 매를 들기도 했고 때로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원론비평과 현장비평을 겸하는 이분들에 의해 한국 시조시단은 이제 튼튼한 성채를 구축하게 되었다.
전통의 시조 문예지가 『시조문학』『한국시조문학』『시조시학』『열린 시조』『시조21』『시조생활』『시조춘추』『현대시조』『오늘의 시조』『개화』『화중련』『나래시조』『어린이 시조나라』등 10종이 넘는데 근년에 『정형시학』『시조미학』『좋은 시조』『한국동시조』『국제시조』창간되었다. 시 전문지『시와 소금』종합지『문학청춘』등에서는 시조 코너를 따로 마련해 시조를 실어준다. 시조는 동인도 많아 각종 동인지가 해마다 다수 나오고 있고 문인협회나 작가회의의 각 지부에서 펴내는 기관지에도 시조는 빠짐없이 실리고 있다.
3월에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학 번역 워크숍에서 데이비드 매켄 교수는 자신이 창간한 한정판 영문 시조잡지 『Sijo』를 소개했다. 그는 기자에게 “시조를 통해 한국의 문학, 문화, 역사가 미국 사회에 보다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일본의 하이쿠가 미국에서 일본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처럼 시조가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문 시조 잡지를 창간했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인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국 시조의 매력을 십분 느꼈기 때문에 사비를 털어 잡지를 발간한 것인데, 한국번역원에서 매켄 교수를 후원해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이 하이쿠 세계 전파에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가 시조에 기울인다면 우리 시문학 전반에 대한 외국의 평가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3. 인터넷 시대, 시의 위상
인터넷에 들어가서 ‘이승하’라는 이름과 내가 지상에 발표한 시의 제목, 시집에 수록한 시의 제목을 쳐보면 거의 대부분 시의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이 뜻밖에 대단히 부지런하여 내가 쓴 시를 타이핑해 인터넷상에 올려놓아 널리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시집은 팔리지 않는데, 이 책임을 누가 지는가? 아무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내 시의 애독자(?)가 타이핑한 시마다 오자가 많고 행과 연 구분이 엉망인 채로 유포됨으로써 원작이 훼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시의 전문이 제대로 타이핑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시 동호인들의 문학 카페에 들어가 보면 유명 시인들의 시가 많이 나와 있는데, 그 시들도 보면 오자가 많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시인이 열과 성을 다해 쓴 시를 대충 타이핑해 올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너무나 많다.
예전에는 시에 한자가 많이 나왔고 그 한자들이 괄호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노출되었다. 그래서 한자를 잘 모르는 독자가 시를 타이핑하면서 한자를 엉터리로 한글로 옮겨 적는 경우가 아주 많다. 무성의하게 시인의 작품을 타이핑하면 그 작품은 누더기가 된 채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의 깨끗한 옷은 지구상에서 그 무모한 애독자의 손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본다. 다음 카페 ‘함수 복수초’에 들어가 보았다. 나의 시 「혜초의 시간」이 제목부터 잘못되어 있다. 시를 옮긴 사람은 혜초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해초의 시간
ㅡ투루판에서 둔황까지
또 다시 황사바람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세월 부서지고
돌이 모래가 되듯 시간 쌓였으리
둔항 막고굴에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
그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 눈물 없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항벽의 그림을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
둔항 가는 길다리 아파 밤하늘 우러르니
캄캄한 저 하늘에 자물가물 별빛 하나
고개 끄덕이며 내 가슴에 불 밝힌다
제목에서는 ‘해초’라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혜초라고 바르게 썼다. 둔황이 맞는 표기법이고 한자로 쓰려면 돈황(敦煌)이라고 써야지 맞는데 ‘둔항’이라고 쓰고 있다. ‘가물가물’을 ‘자물가물’이라는 쓰고 있다. 시집에는 ‘또다시’ ‘그 동안’이라고 썼는데 옮긴 이 나름대로 ‘또 다시’, ‘그동안’이라고 쓴 것은 큰 잘못이 아닌데 “둔황 가는 길 다리 아파”를 “둔항 가는길 다리 아파”로 써 뜻도 바꿔버렸다. “둔황 벽의 그림을”을 “둔항벽의 그림을”로 써놓았다. 둔항벽이라는 낱말은 이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아래에 시를 3편 소개하는데, 모두 각 시의 제 1연이다. 시를 쓴 이의 이름은 이승하이다.
얼음장 밑으로
유리알처럼 흐르던 물이
차마 출렁이지 못했던 계절을
힘겹게 보내고서야
엄마 냄새 따라 봄을 나섰다
―이승하, 「물속 세상」 제 1연
시침과 분침이 매달린 기다림은
야금야금 어둠을 먹고
신경은 짜증과 핏대로 곤두선 채
내뱉은 쓴소리
아린 화살 되어 가슴팍을 헤집는다
―이승하, 「당신」 제 1연
바람이 수선스러운 길목에
밀랍인형처럼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삶을
좌판 위에 널어놓고
겹겹이 목도리 두른 세월
가난이 주는 고달픈 삶
검은 비닐봉지마저 곱은 손 위에 뺀질거린다
―이승하, 「난전」 제 1연
이들 시를 쓴 시인이 1명인지 2명인지 3명인지 알 수 없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내가 쓴 시가 아님을 나는 알지만 이 시를 인터넷을 통해 읽는 독자들 거의 대부분이 내가 쓴 시로 알고 읽을 것이다. 이 사람 요즈음 들어 시가 이렇게 확 바뀌었구나.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NAVER 지식백과에는 이승하(李承河) 시인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1941년 경남 함안(咸安) 출생. 현대시인. 본명은 기만(基萬). 1961년 부산사범을 거쳐 1964년 동아대학 경제과, 1973년 동 대학 국문과 졸업. 1973년 『풀과 별』에 시 「파도」로 추천 완료, 「오늘」 「돌」 「정오」 「춤추는 여자」 「밤」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나는 아직 이분을 만나보지 못했다. 위에 예시한 3편 중에 이분이 쓴 시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글로 쓰면 구분이 되지 않고, 밝힐 방도가 없다. 또 다른 동명이인 시인이 작년에 첫 시집 시의 순간을 냈는데 원래는 수필가였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들어가 약력을 살펴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이승하(李承夏)
1952년 충청남도 조치원에서 태어났다. 서울 교동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 숭실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외환은행 지점장 및 수석준법관리역 등을 지냈다. 펴낸 책으로 『That 70’s Song』(삶과꿈, 2007), 『완섭이네 놀러 가기』(꽃갈피, 2017년)가 있다.
두 권의 수필집을 내고 나서 첫 번째 시집을 낸 것인데, 평생교육원 제자가 찾아와서 책을 사고 보니 선생님 책이 아니어서 당황했다고 말한다. 내 이름의 한자는 李昇夏인데 인터넷 시대에 너나없이 한글로 이름을 씀으로써 구분이 가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조치원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초, 중, 고를 어디서 나왔는지 꼭 밝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래도 나는 목사는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을 통하여 본 이승하의 목회신학 이야기 『목회자 『성숙해 가는 신앙인 『사랑의 순례자들의 저자 이승하 목사와는 독자들이 혼동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쓴 시가 오자투성이의 시로 바뀌어 여기저기 인터넷상에서 미아처럼 떠돌고 있는 것을 본 경험, 동명이인이 쓴 시가 내 시인 양 여기저기에 올려져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본 경험을 계속하고 있으니 난감하지만 어디 호소할 데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웹진 시인광장’을 비롯한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시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웹진, 웹사이트에서 시인에게 원고료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신작을 청탁받아 시를 실을 때는 꼭 원고료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시인의 창작물을 ‘퍼담을 때’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나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 해설의 글을 올릴 때 작자에게 연락해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이 또한 인터넷 시대의 음영 가운데 그림자 부분에 속하는 것일 게다. 시인이 존중받지 않고 시가 귀하게 여겨지지 않은 데는 편리를 추구하는 인터넷이 역기능을 하였다. 시낭송대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낭송을 할 때도 원작자인 시인에게 (소액일지라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 땅의 시인과 시전문 문예지의 편집인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시집이 안 팔린다, 시의 시대가 간 것 같다,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하며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시조시단의 변화를 보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시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독백이기 때문이다. 소통 불능의 시가 너무 많다. 시가 독자와 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지만 소통이 안 되는 것 자체가 시의 특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시가 암호를 던져놓고 해독을 해보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나 반성해보아야 한다. 운율을 완전히 상실한 산문조의 줄글을 써놓고 시라고 강변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해보아야 한다. 한 편의 시가 시집 3쪽을 넘기면 제법 긴 시라고 할 수 있는데 20〜30대 시인이 낸 시집 중에는 이런 긴 시가 너무 많아서 읽기가 솔직히 부담스럽다. 2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시집도 들고 읽기가 부담이 된다. 시조가 21세기 들어와 크게 각광받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21세기다. 혹자는 이 시대를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라고 하고 혹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한다. 디지털혁명 이후 영상매체의 시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정보통신의 시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독자가 서점이라는 데를 가서 시집을 사서 읽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사회에는 시인도 많고 문예지도 많다. 시집도 많이 간행되고 있다. 시를 시집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가 난해하다면? 시가 무진장 길다면? 운율을 완전히 잃고 산문과 다를 바가 없다면? 우리는 이제 자폐의 시가 아닌 공감의 시를 써야 할 것이다. 외국 어느 나라도 시집의 상품성을 인정해 인세를 주고 시집을 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몽땅 자비출판이라고 한다. 심지어 노벨문학상 수상 시집일지라도 서점가에서 안 나간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시인이 있고 많은 시집이 나오고, 심지어 그중에 베스트셀러 시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경악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문예지의 종수를 보자. 엄청나다. 시전문지가 얼마나 많으며, 문인협회와 작가회의 각 지부마다 내고 있는 종합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시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는 사실과 시집이 도통 팔리지 않는다는 엇박자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간극을 좁히려 애를 써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