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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재위 BC 336년~323년)은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까지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4세기(BC 323~AD 31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그리스 식민지에서 나온 양식을 특별히 지칭해 '헬레니즘 미술(Hellenistic Art)'이라고 한다.
'헬레니즘(Hellenism)'이란 말은 1863년 독일 드로이젠의 저서, '헬레니즘사'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폭넓게는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만나면서 질적으로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동서양 문화가 섞여 탄생한 '헬레니즘 문화'
알렉산더 대왕 사후부터 AD 31년, 그리스가 로마에 흡수되기까지의 약 300년간을 '헬레니즘(Hellenism)'시대라고 한다. 그리스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들이 소아시아, 인도 국경, 이집트까지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에 동서양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되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코린트 건축 양식처럼 화려하고 강한 표현기법이 나타났다.
문헌학,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고 문학은 쇠퇴해, 역사가에 따라서는 그리스 문화의 창조성이 사라져가는 '그리스 문화의 쇠퇴기'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융합적 보편화와 확산의 시기로 평가하는 시각도 많다. 또 문화사적인 개념에서 볼 때 헬레니즘 문화는 세계화된 그리스 문화를 일컫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은 그리스 미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그리스 미술이 그리스를 넘어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미술에서는 기존의 도리아,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다. 그리스 고전주의 전통은 동방 오리엔트 국가의 이국적인 전통과 섞여 변화를 가져왔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에서는 고전기의 그리스 조각에서 보이는 조화와 세련미, 이상미 대신에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기까지 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나타난다. 나체의 여성과 여신상이 작품에 많이 등장했다. 이 시대의 조각상은 그리스 미술의 모토인 이상적인 면은 약해지고 육체와 정신의 격동성을 선호했다. 현실적인 인간미를 추구해 자유로운 포즈와 표정으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했으며 고전시대와는 다른 격한 비장미의 표현도 늘었다. 관찰과 묘사가 세밀해진 초상조각이 발달하고, 그리스 고전기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노인, 다른 인종, 동물이 나오는 등 소재의 폭이 넓어졌다.
◆엄청난 역동성과 비장미를 표현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헬레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으로는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시모트라케 섬의 '니케의 여신', 밀로스 섬의 '비너스', '죽어가는 갈리아인' '페르가몬 제단' 등이 있다. 모두 조화와 균형보다는 극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효과에 치중한 경향을 보인다.
1506년에 발견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태양신 아폴론을 섬기는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트로이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木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해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4m의 거대한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해 죽어가는 라오콘과 불행한 두 아들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섬뜩한 죽음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은 그리스 에게 해의 끝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클리투스 등 3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일보 20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