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소리 박태옥
늦게 잠을 청하고 늦게 일어나는 게 나의 일상이다. 앞마당에서 개 짖는 소리가 새벽 단잠을 깨운다. 까악~ 청아한 까마귀 울음이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우리 집은 대명동 앞산 아래다. 골목길은 바둑판처럼 반듯하다. 지난날엔 부자 동리였다. 집마다 베르사유 정원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철 따라 피는 꽃들은 담벼락을 멋지게 장식한다. 우정과 헌신을 의미하는 노란 장미, 사랑과 맹세의 의미를 담은 분홍 장미, 선홍 줄장미가 눈부시게 수놓는다.
바로 앞, 우뚝 솟은 앞산은 자체가 큰 정원이다. 오월이면 아카시아 꽃향은 안방까지 스며든다. 온갖 새들이 앞마당 향나무에 날아들고, 촘촘한 나뭇가지에 지저귀는 그들의 소리는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자연이 창조한 교향악단이다. 까불고 나불대지만 부딪침 없는 새들의 질서를 확인한다. 그에 질세라 앞집·옆집·뒷집에서 달그락 달그락, 아침을 여는 소리, 평소엔 소음으로 들리지만 오늘 따라 정겹다. 일체유심조라 하였던가.
어릴 적 시골의 새벽 풍경이 떠오른다. 동트기 전, 성질 급한 닭들은 '꼬끼오 꼬꼬댁' 홰를 치며 목청을 뽐낸다. 현대판 알람이다. 그 소리는 '동녘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어느 시인의 노랫말처럼 개으른 농부를 일깨우는 소리다. 닭소리에 놀란 멍멍이는 약속이나 한 듯 짖어댄다. 그 소리에 맞춰 아버지는 들판으로, 어머니는 부엌으로.
아버지는 새벽이슬에 바짓가랑이 적셔가며 풀 한 짐 베어 온다.일용할 양식을 아는지 마굿간 소는 굵은 눈 굴리며 음무~하며 반갑게 운다. 엄마가 아침밥 짓고자 불은 지핀다. 굴뚝엔 연기가, 밥솥엔 밥 내음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돼지는 먹을 것을 찾아 꿀꿀거리며 주둥이로 여기저기를 찝쩍인다. 시커먼 옷에 똥 액세서리 한 돼지가 마당을 누비지만, 밉지 않았다. 시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도심과 시골의 새벽 여는 소리는 모두 정겹다. 새 울음, 동물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면 멋진 화음을 이루지 않을까. 아름다운 상념에 잠긴다. 오늘 아침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