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安養] - 극락정토의 도시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정조대왕께서 부친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가설한 만안교의 안(安)자와 함께, 양(養)자는 후세사람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짐작한다.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구복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이다
안양 문화관광
http://www.anyang.go.kr/anyang.jsp?conCode=AC00009261&PATH=F010000
안양시 사이버향토사박물관
http://museum.ayct.net/
안양역사정보관
http://history.anyang.go.kr/
안양8경
관악산 망해암 일몰(1경)
삼막사 남녀근석(2경)
평촌 중앙공원(3경)
만안교(4경)
수리산 최경환성지(5경)
안양예술공원(6경)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7경)
안양1번가(8경)
관악산 망해암 일몰(1경)
망해암(望海庵)은 동안구 비산동 산19번지에 위치한 전통사찰로서, 봉은사말사지(奉恩寺末寺誌)에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때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가람고(伽覽考)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조선 순조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洪大 妃)께서 중건(重建)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만안교(4경).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만안교(萬安橋)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生父)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참배 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화산(華山)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 노변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의 형(兄) 약로(若魯)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하여 시흥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 것은 7번째 능행부터이다. 이 다리는 처음에는 나무로 다리를 놓아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경기관찰사 서용보에 의해 돌로 이를 대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長臺石)을 깔아 축조하였다.
왕의 행차에는 임시로 길을 닦고 나무로 된 다리를 놓았다가 행렬이 지난 이후에 다시 철거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잦은 행차 때마다 다리를 놓고 철거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한 정조의 명에 따라 1795년 9월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長臺石)을 깔아 축조하였다. 정조는 다리가 완성되자 교량을 건설한 편의가 만백성에게 미쳐 원근의 짐꾸러미들이 이 튼튼한 다리를 통하여 만년 동안 편안하게 건너게 된 것을 기린다는 뜻에서 ‘만안교(萬安橋)’란 이름을 직접 지었다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7경)
병목안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워진 안양9동의 마을 명칭이다. 이곳은 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며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목안을 거슬러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산이 수리산으로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코스를 이루고 있다.
삼막사 남녀근석(2경)
삼막사(三幕寺)는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男女根石)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1983년 9월19일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풍화된 2개의 자연암석인데 그 모양이 남녀 성기 (性器)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수리산 최경환성지(5경)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 (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던 중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안양예술공원(6경)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우어 주던 곳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행락객의 꾸준한 증가와 계곡주변에 무허가 주택과 음식점 등이 무질서하게 형성되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열악한 시설과 낙후된 환경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유원지라는 명맥만 유지해 왔다.
평촌 중앙공원(3경)
중앙공원은 119,667㎡의 공간에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를 함양시키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심공원의 미래상을 조명하며 공원내 수경시설은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 바닥분수)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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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와 공공디자인 시범도시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예술도시 안양’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위해 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도시 예술화 프로젝트다. 2005년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안양예술공원에 54점의 영구 작품을 설치했다. 이어 2007년 제2회 프로젝트에는 평촌신도시에 34점을 설치해 시민들이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향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공공디자인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안양1번가 조선조 제22대 정조 임금께서 1795년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에 사도세자인 부왕의 묘에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으신 후 화산능행의 노정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안양~수원의 노정으로 바꾸면서 유래정 뒤(안양1동 674-67)에 안양 행궁을 짓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안양역이 생기자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로 발달된 안양1동에는 1917년 7월에 호계2동에 있던 서이면사무소가 (구)안양1동사무소 옆으로 이전하여 면사무소 업무를 보게 되었다. 그후 1924년 에는 안양금융조합과 안양연초조합, 우체국들이 속속 이곳에 세워졌고, 광복 후에도 시흥군청사와 안양경찰서, 안양읍사무소 등 공공 기관이 들어서자 관가의 거리로 되었다.
안양역사정보관 http://history.anyang.go.kr/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부응해 안양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발자취와 시정의 각종 행정기록 등 다양한 역사자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안양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발전하는 모습을 후대에까지 전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시스템으로 안양의 다양한 역사자료를 연도, 유형, 기관 등 분야를 세분화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자료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향토사박물관 http://museum.ayc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