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읽은 후, 세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왜 한국인이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책......
다시 읽으니 지금의 세상에 더 필요한 책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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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 1950년 6.25, 1997년 IMF. 10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세 번을 죽다 살아났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민족 자체가 자칫 인류 역사에서 잊혀버릴 수도 있었던 위기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그럭저럭 위기를 수습해왔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참담했던 과거를 잊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를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민족' '하면 되는 민족'으로 위안하며 대견스러워 했다. 그러나 50년이 멀다 하고 되풀이되는 이 역사적 사건들이 그저 우연한 것이었을까? 언제나 새로운 각오로 출발만 하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일까? 이런 위기의 연속에는 우리들 내부에 숨어 있는 어떤 필연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나는 마흔을 넘어섰다 마흔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해서 '불혹이 라 부른다던가? 그런데 나는 마흔이 되면서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다는 건 뭘까? 역사란 뭘까? 그리고 국가란 개인에게 무엇일까?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도대체 뭔가? 나는 새로운 답은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답을 공자의 유교에서 찾아냈다. 유교 사회 속에서 성장했고 그것을 공부했던, 그래서 한때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생각 했던 나에게 찾아낸 이 답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건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작은 희망이기도 했다. 한일합방을 부른 무기력한 정부와 위선적 지식인들, 6.25를 부른 우리 문화 속의 분 열 본질, 그리고 IMF를 부르고만 자기 기만과 허세. 그것들은 도덕의 가면을 쓴 유교 문화 속의 원질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위선, 분열 본질, 자기 기만과 허세, 그 것들은 바로 우리 사회가 그토록 즐겨 부르짖던 도덕적 가치, 단일 혈통의 우월성, 그 리고 무거운 권위들의 벌거벗은 뒷모습이었다. 단지 그것들이 도덕적으로 위장되어 있 었고 정치적, 사회적 권위에 의해 보호되어 왔기에 쉽사리 알아채거나 지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오늘도 어렵지 않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한일합방 류의 협잡과 6.25식의 동족 죽이기와 분열, 그리 고 허세와 자기 기만으로 인한 IMF 형 파산이 연속되고 있다. 사건이 달라 보이고, 크 기와 규모와 영역이 달라 별개의 사건들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우리 문화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원인 때문에 지속되는 것들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내면을 한 꺼풀만 젖히고 들여다보면 언제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커먼 곰팡이, 바로 유교라는 곰팡이 때문이다. 장이 나쁘면 얼굴에 시도 때도 없이 여드름이 돋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화장을 해도 소용이 없다.
유교는 처음부터 거짓을 안고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유교의 씨앗 은 쿠데타로 왕권을 쟁탈한 조갑이라는 한 중국인 사내의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 적 아래 뿌려진 적이었다. 기원전 1300년경 황하 유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현장을 우리는 고대 동양 문화의 실록인 갑골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이 정치적 사건은 교묘하게 도덕적으로 위장되어 전해오다가 공자라는 한 사나이에 의해 후대에 전해졌 다. 물론 그 당시 공자는 사건의 내면에 숨겨진 불순한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한 채 도덕만을 외쳐댔다. 그 결과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 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이 이방인의 문화는 조선 황실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 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 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 기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공자의 도덕은 '힘있는 자'와 '돈 가진 자'를 위해 봉사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수시로 우리 눈앞에서 휘두르는 '도덕성 회복'이나 '민본주의 사상' 등의 유교적 깃발들은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가부장적 독 재와 밀실 야합, 그리고 불평등의 가치를 옹호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조선 왕조 의 긴 역사와 중국 왕조들의 반복된 실패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우스꽝스런 모습들은 바로 공자의 유교 문화 속에서 살아남 아야 했던 구조적 위선자들이 만든 필연적 졸작들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오늘도 이 시대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며 목청을 돋우는 이 땅의 위선적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을 보면서 현기증을 느낀다. 차라리 이젠 그만 '한국호'에서 내리고 싶은 심정이다. 맑고 순수한 '사람' 이었던 우리,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한 '사람' 이었던 우리는 유린되고 세뇌되며 '유교적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공자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비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공자가 제시하는 도덕 속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의지 와는 상관없이 구조적 위선자로 변해 가고, 우리들의 삶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안타 깝다. 유교문화의 이러한 해악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역사 속에서 겪은 고난들을 우연 으로 치부하거나, 몇몇 개인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또 지정학적 근거를 통해 어설픈 남의 탓 지적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슴 답답함의 실체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들은 계속될 것이다. 하루만 지나면 엉클어지는 줄서기나 신호위반 단속, 그리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전진대회'의 구호 속에서 답을 찾는 한 재앙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위선의 색깔은 점점 더 진해져 갈 것이다. 결국, 문화적 토양이 바뀌고 생각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노력과 구호도 우리의 아름 다운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유교를 버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 미 100여 년 전 시작된 혁명들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사람 잡아먹는 유교'를 버 리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제 새로운 길을 향해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기고 있다 조금 덜그럭대긴 해도 방향은 제대로 잡은 셈이다. 역 시 100여 년 전, 일본은 유교를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날선 칼로 공자를 베어버렸 고 메이지유신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 그들 역시 적지 않은 고통 을 감내했다. 나는 우리 민족이 그 동안 시련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아픈 교 훈은 필요가 없다. 이제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을 옥죄어온 도덕의 그 더러운 변질 과정을 파헤쳐 드러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신봉했던 역사와 문화들이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려 놓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할 때가 되 었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권위와 도덕적 가치들 뒤에 숨겨진 정치적 협잡과 역사적 속 임수를 끄집어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100여 년이 늦은 오늘, 더구나 21세기의 문턱에 서서 이런 글을 쓰는 자체 가 무척 쑥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제는 유교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할 시 점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모든 껍 질을 벗고 자신의 모습에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독자들이 정말 한 번쯤 삶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으면 한다. 이제까지처럼 허풍으로 가득 찬 '아, 아, 대한 민국'이 아닌 , 유교적 허세문화와 정치적 허세에서 벗어난 맑은 삶의 옷을 말이다. 1999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