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8호선을 타면 몽촌토성역이 있다. 이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가면 웅장한 올림픽공원의 정문이 보인다. 이 정문 위에는 잔잔한 호수가 있고 석양에 호수물이 가벼운 청색 물결로 하늘하늘 찰랑거린다. 그리고 그 뒤에 몽촌토성길이 당시의 현물대로 복원을 해 놓아 시민들에게 정감넘치는 산책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쪽에는 서울시립의 한성백제박물관이 있어 여름철에는 9시까지 개관을 한다니 시민을 위한 정성이 갸륵함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몽총토성의 골조를 보여주는 성곽의 설명도가 우리를 압도한다. 흑으로도 단단한 성을 쌓는 방법을 백제인은 터득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토성이라고 하면 산등성이의 자연형태를 이용하여 일부의 흑을 깍아내는 방법으로 만든 부족국가시대의 산성을 연상해 왔다. 그러나 평지에 도시의 읍성을 쌓으려면 흙으로 쌓을 경우에도 단단하게 하기 위해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고 황토나 진흙을 잘 다지면 돌로 쌓은 석성처럼 오랜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인이 이런 토성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근에서 돌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일까? 토성에는 돌을 왜 섞어서 만들지 않았을까? 석성을 이해하게 하는 많은 토기류가 박물관 진열장에 가득하다. 토성의 비밀을 여러가지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구상해야할 것이다.
하남 위례성이라고 한 점에서 한강, 한수라고 칭한 외에도 한하(漢河)로 칭하였던 것임을 짐작할수 있고, 위례성이 정치적 중심도시가 풍납리토성이라면 식량, 군사무기 등을 저장해두는 산성과 같은 것이 몽촌토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시기적으로는 원래부터 풍납리토성이 축조되고 다른 필요에 의해서 몽촌토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몽촌토성이 조금 늦을 수 있다. 풍납리토성은 인근에 주민들의 아파트로 꽉차 있어 앞으로는 조사나 유적 복원이 어려운 상황에 비하여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보존상태가 훨씬 좋은 형편이고 연구에도 훨씬 편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 수도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교통로는 한강의 수로였을까? 백제인의 특징은 말을 잘타는 기병과 배를 이용하는 선군 수군의 힘이었을까? 그리고 수도를 한강을 북쪽에 둔 것은 가상의 적은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예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토성을 지키려면 얼마의 군사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백성들은 어떤 생활을 하였을까 하는 수많은 문제가 꼬리를 물고 줄지어 있다.
백제가 지배층의 왕족은 부여의 예맥계이고 피지배층은 한족이라면 이 두개의 종족이 절충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유물로서 보여주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한에 대하여 기록된 문헌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백제건국과 같은 시기에 이웃에 어떤 나라가 있었는지에 대하여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백제사에서 꼭 밝혀야할 일은 문자활동에 대한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마음대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지만 백제문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는 이런 기록활동 문자활동에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한성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처음부터 그리고 공주, 부여시대에도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국제적 분위기가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황해를 통해 중국문화의 수용, 그리고 낙랑과 대방을 통한 접촉, 고구려, 가야 왜와의 수로를 통한 왕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백제의 국제적 개방성은 문화의 선진화에는 기여했지만 고대국가의 장패에서는 신라에 져서 나라를 망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우리가 세계화라고 외치면서 개방화를 적극 추진함이 비록 문화의 선진화를 가져온다해도 결국 한국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묻는 정체성의 문제에 부닥히면 당혹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개인이 일생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죽을 무렵에 자기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를 되짚어볼 때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고 스스스로 후회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까?
몽촌토성과 한성백제박물관을 들러보면서 이런 공간이 우리에게 갖추어진 인프라 구축에 감사하면서 이에 구축되어야할 내용은 어떤 것일까 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개관한지 2년밖에 안된 박물관이지만 국민에게 많은 것을 재미있게 보여주려고 열심히 연구하고 일하는 박물관이라는 인상을 유물 전시실, 자원봉사의 해설사, 어린이 교육에 전념하는 모습 등이 강하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 사실의 복원인가? 아니면 현재의 문제를 과거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의 대상인가?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인가.라는 역사학 본연의 기초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한강과 위례성, 당시 백제의 위상은 무엇이었는지 오늘의 견지에서 역사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역사가는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우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