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4공화국 政治秘史 제23회》
☆수출 1억불 돌파와 감격의 눈물을 흘린 박정희 대통령☆
5.16 혁명과업은 조국근대화였고 그 제1목표는 경제발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는 치약으로 이빨을 닦는 가정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치솔을 한두번 이용하면 솔이 빠지고 치약통은 옆구리가 터져 치약이 밖으로 삐져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형편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 있는 사람들은 미제나 일제를 몰래 사서 쓰는 풍조가 있었고 어린 아이들 조차도 물건을 쓰다가 고장나거나 부러지면 "에이. 국산이 그렇지 뭐!"라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경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한 JP는 기업인들을 만나서 여행경비를 마련해줄테니, 외국기업에 출장을 가서 무슨 기술이든 기술을 배워 오라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다행히 기업인들이 발벗고 나선 결과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라면공장이 생긴 것은 이때였습니다.
나중에 삼양라면 사장이 된 전중윤씨가 라면은 값싼 양식이라며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생산하면 부족한 양식을 보충할 수 있으니 5만달러를 빌려달라고 중정으로 JP를 찾아왔습니다.
JP는 쾌히 승락하고 농림부에 부탁하여 5만달러를 빌려주어 63년 9월에 라면이 출시되었는데 이것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군부대에서 매주 일요일 점심식사로 활용하였으며 점점 시중으로 판매처를 늘려 한봉지에 10원 하는 라면은 날개돋친듯이 팔렸으며 농림부에서 빌린 5만려도 금방 갚아버렸습니다.
1962년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할 때 우리의 수출액은 4,200만 달러였습니다.
그때 세운 1차5개년 계획목표연도(1966년)의 수출목표액은 1억1,750만달러였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였지요.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다는 풍조였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1964년 12월 1일 박충훈 경제기획원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하! 어제(11월 30일)날짜로 수출액이 1억달러를 돌파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봐라! 하면 되지않느냐.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당시 신문을 보면 이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때 수출목표액 1억달러는 목표연도 보다 2년을 앞당긴 쾌거였습니다. 그리고 수출목표 1억달러를 기록한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는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벌자는 의욕이 각 기업마다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65년부터 "수출진흥확대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직접 주재하였습니다.
그 회의는 79년 서거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회의 내용은 국제경제 전망과 우리의 수출계획, 그리고 신제품 견학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출의 날 기념식을 열고 우수기업체에 대해 금탑산업훈장, 은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하면서 경쟁심을 부추겼습니다.
이와같은 노력의 결과 2025년 9월말 헌재 우리의 수출액은 5천 1백 97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
불과 60년 만에 5천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그 수출의 날은 1990년 부터 "무역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여 매년 12월 5일 기념행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