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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 여행6 - 후시미에서 기차로 후시미 이나리역에 내려 이나리진자를 구경하다!
2019년 4월 9일 교토에서 전철을 타고 남쪽 우지(宇治)시 에 도착해 뵤도인 平等院(평등원)
절을 보고 강변에 윤동주 시비 에 참배한후 우지가미진자 와 11세기에 세계최초의 여류
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 뮤지엄을 구경하고는 케이한 전철을 타고 주소지마 中書島 역에
내려서는 마을을 지나서 강변에 사케의 명가 겟게이칸 (月桂冠 월계관) 을 찾아서 구경합니다.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 가 자객에게 칼을 맞았다는 데라다야 寺田屋(사전옥) 여관을
찾아 료마의 자취를 회상해 보고는..... 후시미 마을을 걸어 택시를 타고 산 마루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만년을 위해 지은 후시미모모야마성 伏見桃山城 에 도착해
임진왜란때 포로로 끌려와 지극히 호화스러운 후시미성 을 구경한 강항 을 떠올립니다.
강항 이 떠난후 후시미성은 바로 전란에 휩쓸리니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 인데
이에야스의 무장 도리이 모도타다 는 불과 2천의 병력으로 이시다 미쓰나리측
4만 대군을 맞아 무려 13일 동안이나 분전하며 이 성을 사수 하는 바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성과에 힘입어 세키가하라 전투에 승리 한걸 회상해 봅니다.
그러고는 성을 걸어 내려와서는 시가지에 이르러 JR 모모야마역 을 지나 더 내려오다가
큰 사원 을 지나고 긴테쓰 고료마에역 도 통과해 내려오니 길가에 테니스 용품점
이 보이길래...... “참새 방앗간 그냥 못지나 간다” 고 잠시 서서 구경을 하는데
동양에서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가 나오지 못하니... 오사카 나오미 가 유일 합니다!
가게 안쪽을 살펴보니 숍에는 테니스 뿐만 아니라 정구(庭球) 용품도 파는 것 같은데
내가 어릴때 동네에서 “호무라” 라고 부르는 놀이를 했는데..... 서울에서는
“찜뽕” 이라 부른 놀이로 바로 약식의 야구 를 한 것이니...... 야구공 대신에 저
정구공 을, 나무 배트 대신에 주먹으로 쳐서 야구 를 했던 기억이 문득 되살아 납니다.
19세기 후반에 일본이 서구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던 가운데.... 서양에서 들어온 테니스 는
일본에서는 테니스공등 용품을 구하기 어려운데다가, 테니스가 왜소한 체격의 일본인
에게는 너무 과한 운동이라...... 공을 고무공 으로 바꾸고 라켓도 새로 고안해 동양인
에게 맞는 스포츠로 바꾸니 마당에서 하는 놀이 라는 뜻으로 이름도 정구(庭球) 라고 했습니다.
정구(庭球) 는 스키나 야구, 배구, 축구, 농구 등 운동 처럼 일본에서 시작해 조선으로
전해졌으니 조선은 1923년에 동아일보에서“전국여자정구대회”를 열었는데, 여성들
만의 운동 대회는 파격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발상 이라? 놀라움의 도가니 였으니 댕기
머리를 한 여학생들이 무명치마를 입고 코트 위를 뛰어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때문에 1923년 조선여자 정구대회는 가족과 대회 임원 외에는“남자들은 입장불가” 라는
조건을 달고서야 간신히 대회를 개최 할수 있었다고 하는데... 경기가 열리자 25만
경성(서울) 인구의 10% 가 넘는 무려 3만명 관중이 몰렸는데, 남자는 입장할수 없는
지라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 위나 산에 올라가서 멀리서 관전을 했다고 합니다.
서양 스포츠 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7년 영국 함대가 인천 에 입항해 수병들이
축구경기를 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야구 는 1903년 서울 종로에 YMCA 를 세운 미국인
선교사 질렛이 YMCA 회원들 에게 야구를 가르쳤는데... 1905년에는 한성고등학교
의 다카하시 라는 일본인 교사가 야구팀 을 만들었으니 두 팀이 시합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니스 는 서양인들이 직접 서울에 선을 보였으니 고종 은 선교사며 서양 영사들이
땀을 흘리며 테니스 시합 을 하는 것을 보고는 "저런 힘든 일은 아랫 것이나 시키지"
왜 신사들이 더운 여름날 직접 고생하느냐고 혀를 찼다는 일화가 있으니, 승마와 축구 등
육체 운동을 상스럽게 여겼던 고종을 비롯한 대신과 사대부들의 생각 을 알 수 있겠습니다?
하기사 1896년 5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때 민영환(閔泳煥) 과 윤치호 등이
사절로 가는데... 상하이에 갔으나 유럽행 배를 놓친 바람에 다시 배로 일본 요코하마
에 가서는 태평양을 건너고 기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한후 배로 대서양을 건너고 기차로
유럽대륙을 통과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모스크바 로 가는데 역관 김득련의 기록 입니다.
“청중이 모인 자리에 웬 신사가 목살에 힘줄이 돋칠 정도로 소리를 지르니(성악 테너)
모두들 그를 우러러 보더라. 서양에서 군자노릇 하기란 원래 저리 힘든가 보다?
벌거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소녀가 까치발 을 하고는 빙빙 돌며 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데(발레) 가녀린 낭자를 학대하다니 서양 군자들은 참으로 짐승 이로구나.”
“양반 진지상에 웬 쇠스랑(포크)과 장도(나이프) 는 등장하는가? 입술이 찢기지 않으면서
접시의 물건을 입에 넣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 이구나. 희고 눈 같은 것(설탕) 이
달고 달기에 이번에도 눈 같은 것(소금) 을 듬뿍 떠서 찻종지에 넣으니 그 갈색 물
(커피)은 너무 짜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더라!”사신들 참으로 곤혹 스러웠겠습니다?
이질적 서양문화의 충격 이니 공맹과 주자의 주자학과 주역에 중국만 알던 조선이이라? 주역 은 “역경
(易經)” 이니 점복(占卜)을 위한 것으로 흉운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지혜인데 태극 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 으로 이루어지니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등 사물과 현상들은
양· 음 으로 구분되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으로 왕필은 복희씨(伏羲氏) 가 황허강 黃河 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을 보고 계시를 얻어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 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케이한 전철 후시미 모모야마역 으로 들어가 간사이 쓰루패스 로 전철을 타고 5번째 후시미
이나리역 伏見稲荷(복견도하) 에 내려서 이나리진자 (稲荷神社 도하신사) 를 구경하러
올라 가는데....... 작은 강에 놓인 다리에 올라서서는 강변에 벚꽃이 한창 만개한걸 구경
하는데 언덕길은 이나리 진자 를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부딪히니 늦은 시간임에도 번잡합니다.
신사를 보러 올라가는 관광객으로 거리는 미어 터지니 복잡하기 그지 없는 가운데 문득
떠오르는게 오늘날 일본에는 12만개의 신사 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일본인에게
가장 친숙한 신사가 바로 여우상 과 붉은색 도리이 鳥居(조거) 가 상징인 3만
2천개 의 이나리 신사 이니 우리가 찾아가는 후시미 이나리신사 도 그 중에 하나 입니다.
3만여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은 교토 후시미 이나리대사 伏見稻荷大社 로 서기 827년 에
'정일위 이나리다이묘진 正一位稻荷大明神' 라 하여 신들의 모임에서 자리매겨진
이나리신사의 제신은 우카노미타마노카미 宇迦之御魂神 인데 일체의 "식물" 을
관장하는 식물신으로 식물의 원조인 벼의 생산과 풍요를 수호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나리 는 '벼의 생장' 을 뜻하는 말로 여우는 일본 민간에서 신의 사자 로 간주되었는데
여우와 동일시 되기도 하는 이나리신 은 근세 이후 상공민의 신 으로 널리 받아들여
졌으니그 기본은 도작 농경민의 신 으로서 흔히 일본인의 민족성에 딱 들어맞는 신 입니다.
드디어 이나리진자 에 도착하는데 붉은색 신사 건물이 인상적 이며 이나리
신사 앞에는 반드시 서 있는 여우 동상 도 우리 시선을
잡아끄는데...... 이나리 신사는 다른 말로 여우 신사 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전국에 3만개나 된다는 이나리진자 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신사 입구에 늘름하게
앉아 있는 저 물건이 개인지 여우인지 늑대 인지.....
헷갈릴테지만 신사가 이나리진자 (稻荷神社) 라면 이나리신의 사자 "여우" 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의 이웃집 토토로 에는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시골집으로 아빠와 함께
이사오는데 엄마는 입원중이다. 메이는 어느날 숲속에서 대지의 정령 토토로 와 만난다.
토토로는 한밤중에 자매를 찾아와서는 나무를 키워주고 하늘을 날며 세상 구경을 시켜준다.”
“그후 메이 는 엄마를 찾아 가겠다고 나가 행방불명 이 된다. 그런 동생을 찾는
사츠키 앞에 토토로가 나타나 고양이 버스 를 빌려준다. 이렇게 해서
동생을 찾은 사츠키는 함께 고양이 버스를 타고 그리운 엄마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사츠키가 처음 토토로를 만나는 버스정류장 이름이 “이나리신사 앞 稻荷前”
라는 이름의 정류장인데 메이 가 무서워하면서 이나리신사 를 엿보는 장면 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웃의 토토로”에서 다른 신사가 아닌 이나리신사 가 등장하는 데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으니 미야자키 감독 에 의하면 예전에 일본 국토는 신도의 8백만 신 들이
사는 곳이었다는데.... 현대 일본인들은 신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원령공주 등 미야자키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숲에 대한 외경심 을 일깨움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금 회복 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숲에는 흙이 있고 나무가 자라며 샘물 이 흐르니... 태극과 8괘 등 중국 에서 발생한 오행
(五行)사상 에는 물이 나무를 낳고 나무는 불을 낳으며 불은 흙을 낳는다고 말하는데
이 중에 불의 기운은 붉은색 에 해당되어 흔히 대지의 정령을 일깨우는 색깔 로 간주됩니다.
한국과 일본은 문자 를 만들지 못했으니.... 중국에서 한자 와 함께 들어온 태극과 5행사상
에서는..... 여기 이나리 신사 를 상징하는 붉은색 도리이 는 바로 대지의 정령
토토로 를 일깨우는 데에 필요한 하나의 암시적 소도구 로 설정되어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교토 후시미 이나리신사 는 3만개 이나리진자 (稲荷神社 도하신사) 의
총 본궁 이라고 하는데..... 이나리(稻荷)산 정상을 향해
천개의 붉은 도리이가 구불구굴 터널을 이룬 길 이 장관을 이룹니다.
장쯔이 가 주연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 이 이곳 후시미 이나리 신사 에서
촬영됐으니 아이가 붉은 도리이 사이를 뛰어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꼭대기 까지 오르는 데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교토 남부 이나리(稻荷)산 은 가을이면 단풍나무 가 늘어선 아름다운 숲길이라고
하는데 711년에 이로코노하카노카미가 이나리산 3개 봉우리에 수호신을
모신데서 유래했다니.... 이후 지난 1,300년간 일본인들의 순례 길 이었다고 합니다.
본전은 내란이 발생해 교토 시내에서 10년간 전투 가 벌아짐에 따라 시내가 절반이나
불타버린 오닌의난 때 소실 되어 1499년에 재건했다고 하며 여우 는
이나리 오카미의 사자 라 해서 모습을 세웠는데 달리 박코상 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원래 이나리신은 벼 등 오곡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 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외연이
넓어졌으니 지금은 오곡의 풍요 외에 사업의 번창과 안전의 수호신 이라고도 합니다.
이나리 산을 오르는 길 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수 있는 수수한
길이었다지만.... 자연을 가로지르며 더욱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붉은 도리이 길" 입니다.
도리이길 초반부를 지나면 두 길 로 나뉘어 지는데 우측통행 을 하니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이 부딪힐 염려는 없으며 붉은 도리이에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저마다 소원 성취를 위해 기부 했을 것인데... 한번씩 찾아오면 감회가 남다르겠지요?
붉은 주칠을 한 도리이 가 산기슭에서 부터 꼭대기의 후시미 이나리신사
까지 구불구불 이어진다는데 4㎞에 이르는 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고요한 연못과 작은 폭포, 아름다운 묘지 들이 즐비하다고 하네요?
일년 365일 24시간 개방 되어 있어 언제든 마음대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으며 꼭대기
까지 올라가는데 넉넉잡아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상에 오르면 스펙터클한 교토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한낮에 보든 네온사인이 휘황한 밤중이든 똑같이 멋지다고 합니다.
이 길은 계절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니 봄에는 벚꽃 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 이
짙은 숲과 도리이가 그늘을 만들어주며, 겨울에는 도리이가 눈을 막아 주어
안전하게 산을 오를수 있다는데 여름에는 녹색을 배경으로 선명한 주홍색, 겨울
에는 순백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한 레드 이니 어느 쪽이든 황홀한 것은 마찬가지랍니다.
내려오다가 울 마눌이 지붕의 처마 아래 풍경 처럼 생긴 물건 옆에 쇠사슬 이 길에
내려와 지면에 닿을듯이 보이는 저게 뭘 하는건지를 묻는데.... 모르겠다고
하니 비가 와서 낙숫물이 땅에 바로 떨어지면 땅이 패이니 물이 저 쇠사슬 을
타고 돌면서 내려오며 힘이 약해져 그럴일이 없을거라고 말하는데 듣고 그런가 봅니다?
그러고는 케이한전철 후시미 이나리역 京阪電鉄 伏見稲荷駅 에 도착해서는 전철을 타고
북쪽으로 달려서 교토 시치조역 에 내려 도요쿠니 진자 豊國神社(풍국신사) 와
그 옆에 있다는 임진왜란 14만 영령의 귀와 코 가 묻힌 귀무덤 耳塚 (이총) 을 찾아갑니다.
첫댓글 저도 어렷을때 찜뽕이라고 해서 나무배트대신 주먹으로 쳐서 야구놀이 비슷하게 햇습니다.
원래 테니스 외국에서 들어와서 일본에서는 일본사람들 체구에 맞게 고무공이나 라켓도 바꾸엇군요.
정구,스키,야구,배구등 모든 구기종목운동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도 전해졋군요.
고종임금님이 땀을 흘리면서 테니스치시는 모습을 보고 저런 힘든일은 아랫것들을 시키지 왜 저렇게 힘들게
하는지 궁금해하셧다는게 신기합니다.
이나리신사가 전국에 3만2천개정도가 잇군요. 엄청납니다.
여우동산의 여우신사 특이합니다.
장쯔이가 나온 "게이샤의 추억"은 후시미 이나리신사에 촬영햇군요.
일본에 이나리 신사가 3만개가 넘는다니....
엄청난 숫자이지만 알고보면 납득이 가는게
일본은 농어국가인지라 자연히 작물의 성장을
도와주는 신을 모시는 신사가 많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