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한국인들은 반드시 봐야하는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
참고자료 인용처 : 책읽는 사자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goiDaoLG_W4
참고자료 인용처 : SAM TV- https://www.youtube.com/watch?v=u0f9kqVBnhA
참고자료 인용처 : 수언성도 순복음교회- https://cafe.daum.net/saintfullgospel/NqOe/8439?q=1919+%ED%95%84%EB%9D%BC%EB%8D%B8%ED%94%BC%EC%95%84&re=1
참고자료 인용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1NNYzva3Xc
103년 전인 1919년과, 오늘 2022년 사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토요일에 연극을 하나 보고 나서, 한국인으로서 감동에 참을 수가 없어 몇 줄 썼네요.
공연 평과 감상문 중간쯤 되는 시시한 글이니 그냥 삭제를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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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3년 전인 1919년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는 말할 수 없이 의미 깊은 해이다. ‘미국’ 이라는 나라가 최초로 ‘독립선언’을 발표한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한민족 150여 명이 최초로 ‘의회(議會)’를 결성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선언’을 발표한 해이기 때문이다.
1919년 2월, 일제 강제점령 치하의 일본 동경에서 당시 한인(韓人) 유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독립(獨立)’을 선언했고, 3월1일에 전국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났으며, 곧이어 만주와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19년 4월14일에서 4월16일까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미주지역에 거주 또는 유학 중인 한인 청장년 약 150인이 모여서 제1회 ‘한인자유대회’를 열고 ‘의회(議會)’를 결성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서울 압구정동 압구정역 인근에 위치한 광림아트센터에서 지난 4월14일부터 5월1일까지 공연중인 “1919 필라델피아” 라는 연극은 이 ‘한인대회’의 회의(會議)를 소재로 한 음악극이다. 이 음악극의 공고를 보고서 나는 필라델피아 한인대회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냥 하나의 방(房)에서 사흘간 진행된 회의(會議)에 연극으로서의 의미와 재미를 부여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좀 걱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내가 그 연극을 직접 관람을 해 보니 정말 의미심장하면서도 즐거운 연극이었다. 극중 중간중간에 적절히 삽입된 나라를 찾기 위한 애절한 내용 또는 우렁찬 노래와 악기연주 역시 극의 효과를 크게 높였다. 무대 위의 분위기는 지극히 엄숙하면서도 활력이 넘쳤고, 배우들은 모두 1세기 전 나라의 지도자들 역할을 긍지와 열의를 갖고 열정적으로 잘 연기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인물도 좋았지만 자세가 진지하고 당당해서 좋았다.
극중에서 서재필은 회의의 의장으로서 품격있게 그러나 권위적이지 않게 미국 전 지역과 유럽에서까지 와서 모인 내로라하는 한인사회 리더들의 지혜와 식견을 이끌어 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선언문, 미국 대중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과 우리 한인들에 투쟁의 명분을 알리는 호소문,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에 대한 결의문, 그리고 양식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서한문을 작성토록 해서 민주적인 토의과정을 거쳐 선포되도록 했다.
이 회의는 당시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던 서재필박사와 유태교의 랍비이면서 미국인 신문기자였던 조지 베네딕트가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조직한 것이었다. 서재필은 당시 20세의 약관에 나이로 갑신정변을 주도한 6인의 한 사람이었다가 거사(擧事)실패 후 참담한 심정으로 머나먼 미국에 망명하여 고학으로 의사자격증을 따고 10여년 후 더욱 위태로워진 고국에 돌아와 독립협회를 조직해서 국권강화와 국민의식계몽에 애쓰다가 다시 신변위협을 느끼고 도미해서 필라델피아에 거주하고 있었고 베네딕트기자는 한국민족의 수난사를 그즈음에 처음 알게 되었으나 자신의 동족 유태민족의 수난사에 비추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한국민족의 자주독립을 목숨을 걸고라도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이 조직한 한인대회는 잘 짜여진 회의순서와 명문의 선언문들, 미국사회 저명인사들의 격려사와 기도, 그리고 종결 후 필라델피아 리버티 홀까지의 시가행진 등 모든 면에서 지극히 성공적인 회의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이승만박사를 비롯해서 조병옥, 유일한, 임병직, 민찬호, 정한경, 조안우, 노디 킴 등 후일 쟁쟁한 한국의 리더가 된 인물들이었고 미국 빌라노바 대학총장, 오하이오 주립대 총장, 헨리 버코비츠 랍비 등은 외빈으로 축하, 격려사, 기도를 해 줌으로써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이 전 세계 여러 분야와 종교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증빙해 주었고, 몇몇 미국언론은 이 회의(會議)의 내용을 당일로 보도했다.
이 회의의 주 어젠다였던 결의문과 호소문은 각각 3인의 그룹이 작성해서 공개적으로 낭독하고 전체의 의견을 물어서 수정/보완을 거쳐서 공표하는 식이었다. 당대 한인사회 최고의 지성들이 작성해서 너무도 훌륭한 문서들이었지만 서재필의장은 적정 절차 준수가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참석자 전원의 의사가 반영된, 그리하여 명시된 수신인들 뿐 아니라 전 인류를 감동시키고 한국인의 독립의지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불후의 명문으로 완성하기에 힘을 쏟았다.
첫날 오후 회의에서 채택된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은 후에 한국이 독립을 회복하고 나라를 세웠을 때 나라의 근간이 될 평등보통선거권, 의회제도, 자유무역, 의무교육, 후생사업, 언론/출판의 자유를 천명하고 참석자 전원이 생명이 남아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이 원칙들을 실행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회의는 좌중이 그들이 채택한 ‘독립선언서’를 합창하며 종료된다. ‘독립은 시대의 뜻/ 정당한 우리의 권리/ 자유는 하늘의 뜻/ 존엄한 인류의 행진.’ 이 선언문을 대하고 통곡하지 않은 한국 백성이 있었겠는가.
이 대회는 삼 일간 회의의 종료 후에 모든 참석자가 (필라델피아 시 당국의 협조 하에) 회의장에서부터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미합중국 헌법이 논의되고 선포된 리버티 홀까지 행진하였고, 서재필박사는 미국의 헌법을 논의할 때 조지 워싱턴이 의장으로서 앉았던 그 의자에 이승만을 앉게 했다. 그리고 일행은 모두 미국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자유의 종’을 애절한 감동으로 함께 어루만지며 쓰다듬었다.
103년 전의 1919년, 그 삼엄한 일제 강제점령의 치하에서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한 목숨과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멀리 이국에서까지도 주저없이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그처럼 처절하고 용기있게 선언했다.
서재필 (1919년 4월14일 당시 55세)
- 우리는 조국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정부를 만드는 것은 국민의 의지입니다!
- 우리 한국인들의 목표와 열망들이 우리의 방안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략)
- 우리에게는 두가지 소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양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주 의를 전하는 것입니다.
-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해서 더 큰 규모로 선교 사역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승만 (1919년 4월14일 당시 44세)
- 우리의 대의는 하나님과 법 앞에 정의로운 것입니다.
- 우리의 목적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입니다.
- 우리의 희망은 보편적인 기독교 정신입니다!
유일한 (1919년 4월14일 당시 24세)
- 우리는 세계 모든 국가들과의 자유무역을 믿는다.
- 우리는 모든 나라의 시민들과 한국인들 사이 상업 및 공업을 증진할 공평한 기회와 보호를 허용한다.
- 우리는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믿는다!
노다킴 (김혜숙 1919년 4월14일 당시 21세)
- 우리는 하나님이 정의와 자유 편에 서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도 압니다.
- 우리는 맨주먹으로 막강한 힘과 싸우는 작은 나라로서 하루에 세 번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 저는 진정어린 기도에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진지하면서 감동적인, 그리고 경쾌함도 가미된 가슴이 울컥한 기분 좋은 음악극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 한민족의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 저토록 훌륭한 지도자들이 그렇게 간절히 염원하고 간구하여 이룩한 주권회복과 민주주의 체제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오늘날 어떻게 이렇게 처절하게 골병든 것 같은 부패공화국 처럼 되었을까...?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붕괴되는 중이고 민주주의는 이제 개표부정이 심각히 의심되는 선거제도로 겨우 허울만 유지되고 있다. 참으로 호부견자(虎父犬子)가 아닌가. 이렇게 부끄럽고 죄스러울 수가! 103년 전인 1919년 그 당시 한인대회 참가자분들께서, 오늘날 우리나라 국기문란사범을 수사할 검찰마저도 여야 공모로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여 생매장하려는 듯한 지금의 대한민국에 현상을 보면 그 슬픔과 노여움이 과연 어떠하실까! 자못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조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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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30.
아라리오 홍사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