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국립박물관 뒷편 양지마을 고청 윤경렬 선생님 고택을 끼고 5분도 채안되는 거리에 음지마을에 도착 오늘은 남산연구소 수요답사반 첫개강일이지만 날씨는 새초롬하다 음지마을에서 주차하고 우측 농가옥을 기고 곧장오르면 ,불곡 감실부처 혹 할매부처님이 계신다.
할매부처 가기전 옛날 절터였음을 보여주고, 요사체 자리가 존재 했음을 짐작하게한다. 잠시 동안의 신위대 숲을지나고
날씨탓에 조금은 어두워보인다.
바위 앞면에 홍예형(虹:무지개 霓: 무지개 形: 형상 )으로 감실(龕: 감실)을 파고 그속에 부처를 새겼으니 부처님은 목조 전각에 있지 않으시고 돌집에서 1400년을 피곤한 기색조차도 보이지않고 선정의 모습을 보이고~
7세기경에 조성 되었을것으로 추측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석굴사원의 시원(始原)양식이기도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기에는 이 편한 할매부처에 반하여 텐트를 치고 밤을 세웠다는 일본인도 있었다고하고.
하지만 이 부처님은 거의 일년내내 밝은 햇살을 받지 못하는데 동짓날 해뜨면 그 햇살이 부처님 상안(像顔)에 비로소 비친다는 이 할매부처님, 동적인 모습을 하면 갑갑했을 부처님 ~ 편안하게 정적으로 앞으로 약간수그리면서 앉으신 평안한 모습이 오히려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낀다. 이 부처님은 정남에서 30도 치우쳐 앉아 계신다 그리고 골굴암 ,석굴암 본존불도 같은 방향으로 앉아 계신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위해 작고하신 고청(古靑) 윤경렬 선생님은 나침판들고 동짓날 살에는 새벽에 긴수건으로 두귀를 두르고 아내 순이와 함께 이곳에서 그 장면을 보시고 감격의 희열를 느끼신점을 그의 저서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에서 밝히고 있다 고청 윤경렬 선생님은 가고 없지만 거의 정신과 얼은 이렇케 살아 있음을 느낄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ㅡ 희포크라테스의 말이 페부를 찌른다.
올해 동짓날 12월 22일 달력에 조심스레 동그라미를 쳐본다. 그날에 나도 오르리라~~
부처님과 석굴내부는 아직도 붉게 칠했던 기운이 아직도 완연하다 그리고 사람 손자국 같으시다던데~
모든 부처상은 남성얼굴을 하고 계신데 ~ 이곳은 완전히 여성상인데 일설에 전하는 선덕여왕을 이렇케 신격화 시킨것일까? 아님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심장에 불난 지귀의 열렬한 작품일까
우리보다 한발 앞선 무속인들의 무속행위가 행해지고있다. 죽은 영혼을 청하는 강신의 주문을 외우는듯하다
3월~6월 매주 수요일 오후2시~6시 남산야외수업이 있으며 그리고 나머지 유의사항을 전하시는 김구석 소장님 뒤늦게 찾아오신 작년까지 경주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 윤정수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ㅎ 비가오던 아니오던 무조건 야외 강의가 된다는 점을 강조 회원 상호간 자기소개가 있고 포항.울산에서도 오시고 ~~대단한 열정이시네요 ㅎ 수업도중 접신에 성공하여 빙의하는 무속인: "날도 진데 말라고 오노"하면서 다른사람 목소리를 빌어 내고있고~` 수많은 사연을 듣고 계시는 할매부처님의 선정은 계속되고
서울 사시는 김문억 시인이 이곳에서 감흥을 받았던 詩를 직접 낭송해주시는 김구석 선생님 ~~ 몇번이고 이 詩를 읽어 본다 이제야 알듯 말듯하구나 살포시 눈감은 이 할매부처님은 내가 부처님 맘 같아야 아마 눈을 뜰것 같구나
선정(禪定)에 드신 부처님의 수인 모습이 소매속에 들어가 있는 자세
양손을 두손을 가지런하여서 선정(禪:고요할 定 :정할 )든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아마 이곳 부처님은 약간 변형이지만 역시 선정의 모습일것으러 여겨진다
우측 옷소매의 선이 간략하지만 정성과 세련히 겸비된듯하다
석굴사원의 시원양식이지만 그위에는 비바람을 막기위해 전각을 세웠음을 짐작할수 있는 기왓장 파편들이 아직도 천년의 향기를 피우며 여기저기 세월의 잔재를 보여주고 있다.
" 이위에 전각을 세?을 당시 모습을 지금 낭산옆 능지탑가는길에 중생사에 가면 볼 수 있다고 " 강의도 하신다. 신라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열심히 사진 촬영하시는 경주 씨니어 클럽 이용호 회장님 화이팅!!!
석굴안쪽에는 사람의 손가락 형태가 있다 하시며 ~~그 흔적이 아직도 존재...
할매부처님을 붉게 화장시킨 흔적이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고있다
원근에서보면 저 밑에서 바위돌이 마치 꿈틀거리면서 용솟음치다 그 절정의 바위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겼다. "신라인들은 자연을 훼손하며 조각한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로운곳에 바위신앙더불어 불교의 부처님이 바위에 계산곳을 찾아서 조각했는것이 놀랍다" 할매부처에서 옥룡암으로 3분여 이동하여 본당을 맞이한다 옥룡암 본당에 오르는 수요 답사반들 옥룡암 뒷편에 위치한 탑곡 마애조상군은 흐린날씨에도 불구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는것 같다. 34점의 도상들이 새겨져있다 북쪽면의 9층탑과 7층탑 그리고 천계 아래의 부처님이 새겨져있다
북면 맨아래의 좌측에는 암사자가 새겨져있고 북면 우측 맨아래에는 갈기가 달린 숫사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자는 부처님을 지키는 동물이라서~~
북면 중앙에는 앙연대좌위에 두둥실 구름위에 떠있는 보주형광을 하신부처님
북면 우측의 7층석탑은 상륜부는 이제 세월의 흔적을 간진하고
북면우측의 9층석탑은 상륜부가 약간위로 치켜올려서 다시새긴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9층모습이 반드시 황룔사9층 목탑을보고 모델로 했다는 역사적 사료는 없고 다만 이런 모습을 ?을것이라는 추정의 근거가되는 귀중한 사료인것 같다
동면의 모습과 1기단의 삼층석탑은 묵묵히 인사하고
좌측으로부터 부처상,보살상,승려상으로 신앙적 접근법으로 조각상의 크기가 다르다 열강,열공하시는 수요답사반원들
보주형광의 부처님 보살상
등향로 바치는 승려상 이 흡사한 모습이 일본 호류사에도있고 ,중국에도 있다고~~
동면 좌측 윗부분에 급강하는 비천상
동면 우측 윗부분 급강화하는 비천상 동면 중앙 상단부분 부처상 동면 우측 하단 희미하게 남아있는 보살상 굿은날씨에도 전통무예 연습중인 시민
남면의 마애여래불상,보리사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
출처: 달빛청암의 경주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달빛청암
첫댓글 만월이 되는 보름날 한번 가보시지요.
기가 막힌 풍경을 접하게 되더이다....
어디메 말인교 감실부처,마애조상군
감실부처에
닻빛이 비추이면
온화한 미소가 온누리에 번지고....
옥룡암 뒤로 올라가는데 맞지요
서울 살때 답사전문가 반에서 왔네요,
문화재이바구는 청암이
우메 기살어
경주역사는 청암이 다 꿰고 있는거네~~ 계림친구?ㅎㅎㅎㅎ
ㅊ ㄱ ㅅ 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