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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1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태복음 6장 9절).
우리의 구주께서는 주의 기도를 두 번 가르치셨는데, 한 번은 산상 설교를 듣던 무리에게 하시고, 또 한 번은 그로부터 몇 달 후 제자들만 있는 데서 하셨다. 제자들은 잠시 그들의 주님과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고 계시는 그분을 발견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시는 듯 계속 큰 소리로 기도하셨다. 구주의 얼굴이 하늘의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분의 바로 면전에 계신 듯 하였으며, 그분의 말씀에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강한 능력이 있었다.
경청하는 제자들의 마음은 깊이 감동되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서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시는 것을 흔히 목격하였다. 그분께서는 당신께로 밀려드는 무리에게 봉사하고 랍비들의 신빙성 없는 궤변을 폭로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셨다. 이처럼 계속적인 수고로 극도의 피곤을 보이시자, 그분의 모친과 형제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그분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 고된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의 시간에서 돌아오실 때,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서 평화의 모습, 곧 전신을 휩싸고 있는 듯 한 상쾌함을 보았다. 그분은 아침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을 전하기 위해 나가셨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과 사업의 능력이 그분의 기도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제 그분의 간구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들은 마음이 위엄에 눌려 겸비해졌다. 그분께서 기도를 그쳤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장 1절) 하고 부르짖은 것은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가르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전에 그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반복하신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희는 내가 이미 알려 준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너희가 아직 깨닫지 못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 기도문의 말씀들을 꼭 그대로 사용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성을 쓰신 분으로서 기도에 대한 당신의 이상을 제시하시되, 말은 어린아이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명석한 사람들도 그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는 포괄적인 것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감사의 찬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필요를 아뢰고, 죄를 자백하고, 그분의 약속에 따른 자비를 구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누가복음 11장 2절).
예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치신다. 그분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히브리서 2장 11절). 구주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하고 간절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사용해야 하는 첫 번째 말로 거룩한 관계를 보증하는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게 하신다.
여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신다는, 용기와 위로로 가득 찬 놀라운 진리의 선언이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한 당신의 마지막 기도에서 하신 말씀, 곧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요한복음 17장 23절)신다는 말씀이다.
사단이 권리를 주장하며 폭정을 일삼아 온 이 세상을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한 위대한 업적을 통하여 사랑으로 안으시고 다시 여호와의 보좌와 연결시키셨다. 그룹과 스랍과 타락하지 아니한 모든 세계의 무수한 무리들은 이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 하나님과 어린양을 향해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과, 세상이 죄의 저주에서 속량될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직접 받게 된 자들은 얼마나 더 기뻐해야 되겠는가!
어찌 우리가 의심과 반신반의의 마음을 가지며 자신을 고아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신 것은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평화와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이 되셨다. 우리는 하늘에 중보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의 죄짐을 스스로 져야 하는 고아로 버림을 받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한일서 3장 2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장 17절).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한일서 3장 2절).
하나님께 나가는 첫 단계는 그분께서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사랑을 알고 믿는 것이다(요한일서 4장 16절).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이끌려 그분께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이기심을 버리게 된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모든 자녀를 우리의 형제로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이리저리 얽힌 거대한 인간 사회의 한 부분이며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우리는 무엇을 간구할 때 자신과 함께 이웃도 포함시켜야 한다. 자신만을 위하여 축복을 구하는 사람은 올바로 기도한다고 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그대로 하여금 그분께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라. 세상의 그 어떤 부모도 우리를 지으신 분께서 죄인을 위해 호소하시는 것처럼 열렬하게 호소한 적은 없다. 아무리 다정하고 관심이 많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이처럼 따뜻한 초청의 손길을 뻗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도처에 계신다. 그분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들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각 사람의 슬픔과 실망을 맛보시고, 우리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매와 친구와 이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 주시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끊임없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는 그분의 사랑에 변함이 없음을 알고 자신을 그분의 지혜로 인도함을 받고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는 그분의 자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생애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품성과 그분의 가족과 그분의 사업을 최고의 관심의 대상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대가 가지게 된 하늘 아버지와 그 가족의 모든 구성원과의 관계를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며 귀히 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한 가족이 된 자들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면, 비록 미천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거이 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로 바라보도록 명령하시는 이분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시편 115편 3절)다. 우리는 그분의 보호 아래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편 56편 3절)고 말하면서 안전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장 9절).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지존자(至尊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존경심을 가지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편 111편 9절).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의 칭호나 명칭을 경솔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도로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알현실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경외심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한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가리운다. 그룹과 빛나고 거룩한 스랍들도 더할 수 없는 존경심으로 하나님의 보좌로 다가간다. 그렇다면 유한하고 죄 많은 존재인 우리는 한층 더 경건한 태도로 우리의 창조주이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외관상으로 최대의 경건을 나타내면서도 그분의 이름을 계속적으로 모독할 수가 있다. “여호와의 이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며…“악과 과실(過失)과 죄를 용서”(출애굽기 34장 5~7절)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것으로,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예레미야 33장 16절)는 기록이 있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유업이다. 가족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불리어진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심한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예레미야 14장 9절) 하고 기도하였다.
이 이름은 하늘의 천사들에 의하여,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거민들에 의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할 때, 그대는 그 이름이 이 세상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그대 자신에 의해서도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대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셨으므로,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야고보서 2장 7절)손상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상에 내보내신다. 그러므로 생활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야 한다. 이러한 간구를 드리려면 하나님의 품성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생활과 품성으로 하나님의 생애와 품성을 나타내지 않으면, 그대는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그분을 이 세상에 나타낼 수 없다. 그대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마태복음 6장 10절).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서 사랑하고 돌보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또한 우주의 크신 왕이기도 하다. 그분의 나라의 유익이 곧 우리의 유익이므로, 우리는 그 나라의 설립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영광의 나라가 즉시 임하기를 고대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당장은 그 나라가 건설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되 미래의 사건으로 알고 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간구는 그들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그 나라의 임함을 당대에 이루어질 사건으로 볼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일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 것은 그 나라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시간에 기필코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은 죄와 반역으로 충만해 있는 마음들이 그분의 사랑의 주권에 날마다 굴복함으로써 지금 건설 중에 있다. 그러나 그분의 영광의 나라의 완전한 건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다니엘 7장 27절) 될 것이다. 그들이 “창세로부터”(마태복음 25장 34절)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위대한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실 것이다.
하늘의 문들이 다시 들리며, 우리 구주께서 천천만만의 거룩한 무리들과 함께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타나실 것이다. 여호와 임마누엘은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스가랴 14장 9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요한계시록 21장 3절)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재림이 있기 전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마태복음 24장 14절)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은혜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전에는 그분의 나라가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할 때, 우리는 그분의 나라가 빨리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직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장 8절)라고 말하면서 안 보이는 눈을 뜨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사도행전 26장 18절)기 위하여 그분의 사업에 투신하는 사람들, 이들만이 “나라이 임하옵소서” 하고 진실하게 기도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장 10절).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표현되어 있으며, 이 율법의 원칙은 곧 하늘의 원칙이다. 하늘의 천사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가장 높은 지식을 얻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이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봉사를 할 때 율법주의 정신으로 하지 않는다. 사단이 여호와의 율법을 거역하였을 때, 천사들은 마치 전혀 의식하지 않던 것을 갑자기 떠올리듯 율법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했다. 천사들은 봉사할 때 종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한다. 그들과 그들의 창조주는 서로 완전히 연합되어 있다. 그들에게 순종은 고역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를 기쁨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편 40편 8절)라는 그분의 말씀이 울려 퍼진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간구하는 것은 이 땅에서 악의 통치가 끝나고, 죄가 영원히 소멸되고, 의의 나라가 건설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때에는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모든 선을 기뻐”(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첫댓글 https://youtu.be/juVrgkliR6M?si=eE4d63R2s3UZ9P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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