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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사기의 가벌성: 삼각사기로시의 소송사기
1. 기망과 착오
_ 기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 그 수단과 방법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나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행위이다.주52) 어떠한 경우에 법원에 대한 기망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
주52)
_ 먼저 단순히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허위의 증거나 자료를 제출하였다면 행위자가 적극적인 사술을 사용하여 피기망자인 법원을 기망한 경우이므로 기망행위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는 별 어려움이 없다. 예컨대 채무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위조된 차용증 등의 문서를 제출하는 경우나 증인으로 하여금 위증을 하게 하는 경우이다.주53)
주53)
_ 문제는 특정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인 사술을 사용한 경우로 보아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사기죄의 기망행위는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당사자의 진실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는 민사소송의 이념상 단순히 허위의 사실을 진술한다거나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사기죄의 기망행위로 볼 수 없다.주54) 그러나 허위의 사실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법원이 착오에 빠지게 함에 족한 정도이면 기망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주55) 그것은 판사는 허위의 사실주장으로 인해 심증형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착오에 기해 잘못된 판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사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소송당사자 일방의 주장에 따라 판결을 한다면, 물론 이러한 판결이 잘못된 것이고 판사의 행위는 직무에 위반한 것이라 하더라도, 판사의 직무위반행위가 앞서의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여 법관을 기망하는 행위와 법관의 착오간의 인과관계를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다.주56) 허위의 사실주장이 판사의 착오, 그리고 그에 따른 판결에 적어도 공동으로 (즉 판사의 의무위반행위와 공동으로) 작용한 경우에는 착오에 피기망자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망행위와 착오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만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소송당사자에게 판사가 반드시 증거제시를 요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면 이는 전적으로 법관의 잘못이다. 따라서 판사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주장한 행위자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즉 이러한 경우에는 비록 행위자의 행위가 법원 판결의 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발생한 결과(잘못된 판결)를 행위자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으며,주57) 이는 전적으로 판사의 책임영역하에 있다고 하겠다.주58) 결론적으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것도 기망행위가 될 수 있다.주59)
주54)
_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한 법관의 착오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특별히 어려운 문제점이 없다. 판사가 행위자의 허위의 증거나 사실주장에 기인하여 판결을 내리거나 적어도 그러한 사유와 공동으로 다른 원인에 기인하여 판결을 내렸다면 이는 판사가 행위자의 행위에 의해 잘못된 생각을 가졌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망행위와 착오간의 인과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
2. 재산처분행위
_ 사기죄의 재산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에 의해 착오에 빠진 상대방이 기망자에게 재물을 교부하거나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행위로, 재물의 점유를 직접 이전하는 교부(행위) 외에 행위자가 재물을 가져가는 것을 묵인 내지 수인하는 것도 처분행위이다.주60) 처분행위가 있다고 하려면 주관적으로는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또는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주61)
주60)
_ 삼각사기에 있어 재산처분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이는 재산처분행위와 관련된 학설에 따라 그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_ 먼저 처분행위자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유언집행인 등 법률에 의해서나 또는 피해자와 계약을 맺어 대리권을 갖게 된 경우와 같이 법률행위로 인해 처분권한이 있는 경우, 즉 처분행위자가 점유이전을 할 유효한 법적 권한이 있는 경우에만 삼각사기를 인정하는 권한설주62) 이 있다. 권한설은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해 처분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피기망자와 피해자간에는 회사의 대리나 대표의 경우처럼 어느 정도 동일성 내지는 일체성이 있어야 한다.주63) 다음으로 처분행위자와 피해자간의 법적 처분권한보다는 약한 것이지만 단순히 사실적인 작용가능성보다는 강한 것으로, 처분행위자가 공동점유자이거나 사실상 가까운 사이(밀접한 관계)여서 사실상 점유이전을 할 수 있는 지위, 이러한 의미에서 피기망자가 피해자의 권한범위 내지 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지위설(영역설)주64) 이 있다. 판례는, "피기망자와 재산상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 피해자를 위하여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이나 지위라 함은 반드시 사법상의 위임이나 대리권의 범위와 일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의사에 기하여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서류 등이 교부된 경우에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설사 피해자의 진정한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위와 같은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주65) 고 하여 지위설을 취하고 있다.
주62)
_ 권한설은 사기죄의 성립범위를 명백하게 한정지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재산처분행위는 사실상의 개념이므로 법적 처분권한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지위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사기죄의 재산처분행위와 관련하여 위의 견해 중 어떠한 견해를 취한다 하더라도 소송사기의 가벌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사실상의 영향력이나 지위설에 따르면 재산처분행위자인 피기망자는 행위자보다는 피해자와 더 밀접한 관계에 있을 것을 요하기 때문이며, 권한설에 따를 경우 판사의 판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소송당사자 일방에게만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대표나 대리처럼 소송의 일방하고만 일체성을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_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존의 지위설과 관련하여 피기망자가 행위자 보다는 피해자와 더 밀접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요건은 소송사기의 경우에는 충족되지 않는다. 판사는 공평해야 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판사는 피해자와 더 밀접한 관계를 인정하여 소송의 당사자 중 어느 일방의 사실상의 재산처분행위자로 인정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주66) 법관은 양 소송당사자에 대해 중립적인 제삼자의 지위에 있으며 당사자간의 분쟁을 판단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한다. 이러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로 인해 판사는 소송당사자의 일방과 더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는 없으며 피해자의 편에 있거나 영향력하에서 피해자의 대표로서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법관이 판결을 하는 것은 소송당사자 일방을 위한 것이거나 일방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판사는 양 당사자를 위해 동등하게 행위한다고 하겠다.주67)
주66)
_ 아울러 민사소송의 특성상 판사는 일방 소송당사자의 재산에 대해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있지만 반대로 다른 소송당사자의 재산상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처분도 할 수 있다. 판사가 소송당사자 중 누구의 재산도 처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동일하다. 따라서 법관이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양 소송당사자에 대해 있는 것이며 이것이 다른 삼각사기와의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법관이 대리인이나 회사의 대표처럼 피해자의 대표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한설에 의하더라도 법원의 판결을 '재산처분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주68)
주68)
_ 따라서 위의 어느 견해에 따르더라도 법원의 판결행위를 사기죄의 처분행위로 인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결론을 피하기 위해 Lackner의 견해처럼 피해자와 행위자의 밀접한 관계를 소송사기의 경우에만 포기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처벌의 흠결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한 것이며 기존의 통설적 견해로는 소송사기의 가벌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_ 그러나 법관이 재판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다면 법관의 판결을 재산처분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는 지위설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으면 지위설에 의하더라도 당연히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법관은 소송당사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법률 규정에서 나온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문제는 법관이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은 반드시 소송당사자 일방과의 동일성, 일체성을 가져야 재산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법원은 법률규정상 양 소송당사자의 재산에 대해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문제는 양 당사자 모두와 관련하여 그러한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권한을 행사하여 판결한 경우', 이는 소송당사자 중 일방(피해자)을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즉 행위자의 기망으로 인해 착오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경우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분행위를 한 것이며, 따라서 피해자와의 밀접한 관계나, 피해자를 위한 법적 처분권한 모두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관은 법률규정상 소송당사자 쌍방의 재산에 대해 처분할 권한을 갖지만, 실제로 행위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재산감소를 유발시키는 재산처분행위가 있게 된다. 즉 기망으로 인한 착오가 있고, 착오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행위가 재산처분행위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재산처분을 할 법적 권한이 있고 그 권한을 행사하여 피해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경우, 법원의 판결은 재산상의 감소를 가져오는 재산처분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소송사기의 경우에도 재산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고, 법적 권한이 있는 이상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지위도 당연히 인정된다고 하겠다.
3. 재산상의 손해
_ 참고로 재산상의 손해여부를 살펴보면, 사기죄의 기수를 인정하는 데에 재산상의 손해발생을 요하는가에 대해 판례는 불요설의 입장이지만 통설적인 견해는 재산상의 손해를 사기죄의 묵시적 구성요건요소로 인정하고 있다.주69) 이는 사기죄의 재산범죄적 성격상 당연하다고 하겠다. 필요설에 따르면 법원의 재산처분행위로 인해 소송당사자 일방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직접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재산상의 손해는 재산처분행위의 전후 상황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그리고 사기죄의 재산손해는 현실적인 손해발생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발생과 '동등한' 구체적인 손해발생의 위험으로 족하다고 하겠다. 손해와 동등한 위험이 발생했느냐는 생활상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결정될 수 있다. 즉 재산처분행위가 피해자의 재산에 구체적인 위험을 발생시켰고 이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피해자의 불이익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이러한 위험은 이미 재산상의 손실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70)
주69)
_ 먼저 처분행위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라는 처분행위의 직접성을 인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겠다. 판사의 판결이 재산처분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러한 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재산에 손해가 발생할 '구체적인' 위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강제집행 등의 판결이 내려지면 피해자의 재산에 손해가 발생할 구체적인 위험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발생의 위험의 형태로 손해를 인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하겠다.
_ 대법원은 피고인이 타인과 공모하여 그를 상대로 의제자백 판결을 받아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경우는 재산처분행위가 없어 부동산을 편취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법원을 기망하여 의제자백 판결을 한 경우 법원의 판결이 재산처분행위가 될 수 있으며 소유권이전등기가 완료되었다면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할 구체적인 위험이 있다고 보아 사기죄를 인정할 수 있다.
4. 실행의 착수 및 기수시기
_ 소송사기의 또 다른 문제점은 언제 실행의 착수 및 기수시기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_ 소송사기에 있어서도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는 데에 있어 기준이 되는 것은 실행의 착수에 대한 통설적 견해인 주관적(개별적) 객관설에 따라 행위자가 행위자의 범행계획에 따라 구성요건적 행위를 개시하였거나 구성요건의 실현을 위한 직접적인(밀접한) 행위를 한 때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적 실행행위가 있거나 실행행위와 장소적·시간적으로 밀접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주71) 허위의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기망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주71)
_ 문제는 소제기만으로 소송사기의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재산상의 이익을 위해 법원을 기망할 의사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이다. 이에 궐석재판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소제기만으로도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가능성이 있지만 통상적인 경우에는 소제기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적어도 허위의 사실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소제기시부터 허위의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로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는 구두변론시를 기준으로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을 기망할 의사를 가지고 소를 제기하기만 하면 사기죄의 미수 처벌이 가능하며 이는 처벌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민사소송에 있어 소장은 일반적으로 구두변론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예고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장제출 자체가 기망행위이거나 기망과 밀접한 행위로 볼 수는 없다.
_ 실행의 착수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점은, 행위자의 진실에 반하는 허위신청에 의해 법원이 가압류하는 경우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수 없느냐 하는 점이다. 판례에 따르면 가압류는 강제집행의 보전방법에 불과하고 그 기초가 되는 허위의 채권에 의해 실제로 청구의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소의 제기 없이 가압류신청을 한 것만으로는 사기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주72) 통설적인 견해도 판례에 동조하고 있다.
주72)
_ 그러나 허위의 사실을 법원에 제출하거나 주장해서 이에 기해 법원이 착오로 판결을 내렸다면 사기죄의 기망과 착오를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고 법원의 가압류결정은 재산상의 손해를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 위험이 있는 행위, 즉 재산처분행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사기죄를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즉 가압류는 채권실행의 보전에 불과하지만 종국적으로는 피해자의 재산이 감소할 재산손해의 구체적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허위의 증거제출과 마찬가지로, 허위의 가압류신청을 하였다면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_ 마지막으로 기수시기와 관련하여서는, 확정판결을 받은 때에 기수를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기죄가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해 상대방이 착오에 빠지고 그 착오에 기해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고 그 결과 재물, 재산상의 이익이 이전되어야 한다.
_ 통설이나 판례의 견해와는 달리, 확정판결이 있기 전이라도 법원의 승소판결이 있으면 재산이 감소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미 손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확정판결이 아닌 승소판결시를 기준으로 기수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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