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기관의 문화 정책은 공공성에 근거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며 참여 가능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 민주주의에 근거할 때 문화적 다양성은 보장될 수 있다. 또한 공적 기관의 문화 행정은 일방적이어서도 안 된다. 일방적이지 않은 상호 소통 속에서 공공성과 다양성은 유지되고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시의 문화 행정은 소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담보되어야할 문화적 공공성과 다양성의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충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는 시민의 세금 10억여 원이 투여된 공공문화기반시설이며,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도심 속의 문화 공간이다. 이미 1만 3천여 명의 서울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으며, 많은 창작자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활력연구소는 이러한 시민들과 창작자들의 호응 속에서 이벤트적 공간이 아닌 일상적인 문화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활력연구소는 서울시의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편의주의적 문화행정에 의해 더 이상 그 의미를 지속시킬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1월 20일 서울시는 충무로영상센터와 어린이 미술마당의 위탁운영자 공모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공모 계획의 발표는 활력연구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합리적인 운영 계획을 요구한 문화예술계의 입장을 무시한 일방적인 행정이었으며, 게다가 발표된 공모 계획에는 “서울시의 운영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단체 및 개인에게 2004년 1월 1일부터 1년간만 위탁운영을 맡기겠다는 내용만이 제시되어 있을 뿐, 응당 있어야할 사업의 목적 및 방향이 제시되지 않은 졸속적인 것이었다.
서울시는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공모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
11월 26일, 서울시와 한독협의 면담 자리에서 안승일 문화과장은 “활력연구소를 설치한 서울시의 애초의 사업 목적과 방향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서울시는 충무로영상센터의 운영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으며, 전문적인 지식도 없다. 따라서 공모 및 사업 설명회를 통해 그런 것을 정해 나갈 것이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는 발표된 공모가 졸속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고, 서울시는 활력연구소 설치의 목적이나 공공성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며, 만들어 놓은 시설물에 대해 내용적 고민 없이, 임기응변식 해결만이 목적임을 드러낸 것이다.
안승일 문화과장 말대로 서울시는 충무로영상센터의 사업 설명회를 개최할 정도의 전문지식이나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공간 설립에 대한 애초의 계획도 없다면 서울시는 과연 무엇을 근거로 위탁운영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인가? 이 공모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충무로영상센터와 어린이 미술마당 공간 설치에 대한 서울시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계획적이고 일방적인 위탁운영자 선정 계획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공공 문화 진흥의 의무를 방기하지 마라 !!
제대로 된 문화정책 없이 “위탁 운영비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한다는 위탁운영 조건은 공적 기관이 다하여야할 의무를 방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공공성과 내용성이 가장 큰 전제 조건이 되지 않고 운영예산만을 전제로 삼고 있는 현 공모안 대로라면, 운영 예산에 준하는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사업 계획이 제출되어야 할 것이고, 안정적인 공간 운영을 위해서는 가장 많은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사업계획을 제출하는 사업자가 위탁운영자로 선정되어야 하는 논리를 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수익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계획은 공간의 공공성을 심하게 훼손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활력연구소의 진행 경과를 살펴볼 때, 공공성과 내용성을 갖춘 운영자라 하여도, 또다시 원칙 없는 서울시 행정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의 세금이 투여되는 모든 문화사업은 공공 문화 진흥의 의무가 있다. 서울시가 본래적 책무인 공공 문화 진흥에 원칙적인 입장을 갖지 않는 한, 활력연구소 사태에 대한 서울시의 모든 계획은 모면책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는 공공문화 진흥의 의무를 방기하지 마라.
안승일 문화과장은 사퇴하라 !!
활력연구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울시 안승일 문화과장이 보인 태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안승일 문화과장은 스스로의 입으로 “서울시는 문화행정이 없다”고 말을 할 뿐, 제대로 된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간과해왔다. 더구나 서울시의 문화행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에 대해 터무니없는 비난을 가하였음은 물론이고, 앞에서 말한 이야기를 뒤에서 뒤집는 거짓 행정을 일삼았다. 안승일 문화과장이 보인 태도는 행정 기관에서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이의 태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작태다. 안승일 문화과장은 자신의 터무니없는 비난과 거짓말을 스스로 반성하고, 공적 문화 행정을 방기한 것에 대해 사죄해야 할 것이다.
에 소속된 문화예술단체 및 개인은 서울시가 졸속으로 발표한 공모 계획의 즉각적인 철회를 다시 한번 요구한다. 내용성과 공공성을 갖춘 새로운 공모 계획을 만들어야 할 책무를 방기하지 말라. 우리는 충무로영상센터를 비롯한 지하철 문화공간의 공공적 성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있도록 하는 문화 정책의 제안과 문화 행정의 감시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