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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10. 7. 11(일) 06:00, 하루 내내 비오다, 22.3℃. 25℃(부산)
□ 곳 : 큰재(320m)~회룡재(340m)~개터재(380m)[봉산재. 효곡재. 왕실재]~윗왕실재~
백학산(白鶴山, 615m)~개머리재(295m)~지기재(261m)~신의터재(280m)
□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9기-12구간
□ 걷는 데 걸린 시간 : 09:16~16:17⇒7시간 1분(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간추린 일정(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9:16 큰재(해발 320m) 나섬
○ 09:40-30 (시멘트) 목장 길
○ 10:15 회룡재(해발 340m), 흙길
○ 10:20-50 옛 고개, 과수원길
○ 10:41-40 개터재(해발 380m)
○ 10:52-20 윗 왕실재(해발 400m)
○ 11:54~12:09-30 점심
○ 13:04-30 백학산(白鶴山, 615m)
○ 13:19-40 산길[임도]
○ 13:57-45 고개. 임도
○ 14:14 개머리재(해발 295m)[소정재], 2차선 아스팔트 길
○ 15:01-30 지기재(해발 261m), 2차선 아스팔트 길
○ 16:17 신의터재(해발 280m), 2차선 아스팔트 길
큰재(옥산초등학교 안성분교가 있던 곳으로 「백두대간 생태 교육센터」 공사 중인 곳)
목장 들머리(시멘트 목장 길)
목장 들머리(시멘트 목장 길)
목장 들머리(시멘트 목장 길)
이 고개를 넘어가면 목장이고, 대간 길은 고개 닿기 전 오른쪽 산으로 오른다.
회룡재
회룡재
회룡재
개터재
개터재
개터재(쏟아진 비로 인해 흙탕물이 흘러 내린다)
개터재(아래 회룡재 글자는 떨어져 나갔다)
개터재
백학산(사진기에 습기가 차 희미하다. 모두 떠나버려 사진을 부탁할 사람도 없었다)
백학산(서낭재란 글자가 떨어져 나갔다)
백학산 지나 대포리로 이어지는 산길[임도]
대포리 고개를 지나 모처럼 비가 거쳐 건너 산을 담았다
대포리 고개를 지나 모처럼 비가 거쳐 건너 산을 담았다
개머리재 조금 못 미쳐
개머리재 조금 못 미쳐 길 왼쪽에 있는 인삼 밭
개머리재
지기재(서낭재와 신의터란 글자가 떨어져 나갔다)
지기재(오른쪽에 보이는 시설은 버스 정류장 시설 - 이곳에서 다른 산악회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지기재(금강. 낙동강 분수령 푯말. 백두대간 안내 푯말)
지기대
지기재 지나 금은골 가기 조금 전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신의터재
□ 줄거리
큰재(해발 320m)는 동쪽으로 경북 상주군 공성면과 서쪽으로 상주시 모동면을 잇는 68번 국도로,
2차선 아스팔트 길이다.
큰재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옥산초등학교 안성분교가 문을 닫은[폐교된] 채로,
학교 뒤쪽 화령재 쪽으로 가는 길에는 사택도 몇 채 있었고, 학교 맞은 편 길가에는 할머니가 살던 작은 집이 있었는데,
2008년 여름에는 할머니 집 처마에 큰 말벌 집이 있어 말벌들이 계속 들어 들어 우리는 불안했는데,
연세가 많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할머니는 말벌을 상관하지 않았고,
어쩌면 무서운 말벌과 한 식구가 된 듯이 그렇게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평화스러운 모습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몇 푼의 보상비를 받고 어디로 거처를 옮기셨는지 알 수 없고, 할머니가 말벌과 공생하시던 집과
옥산초등학교 안성분교는 헐리고, 학교 터 일대에는 경북 상주시가 67억 원을 들여
2009년 7월부터 2010년 11월 완공을 목표로「백두대간 생태 교육센터」를 짓고 있었다.
지난 4월 25일(일) 추풍령~큰재 구간을 걷고 봤을 때 공정 그대로인 듯했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백두대간 생태 교육센터」 공사장을 지나는데, 황토 흙길이 그야말로 진창을 이뤄 처음부터 우리 발길을 붙잡는다.
시골에서는 규모가 작은 초등학교를 통합하여 온 나라에서 폐교되는 학교가 많아 왠만한 시.군이 아니면
한 면(面)에 초등학교 한 개꼴 밖에 없는 실정으로, 시골이나 중소 규모 시라도 인구가 계속 줄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적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방에 고루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특별한 시책이 필요할 것 같다.
큰재를 나서(09:16) 24분쯤 가면 시멘트 길이 나오는데(09:40-30), 목장으로 가는 길이다.
바로 가면 목장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이 길을 따라 2분쯤 가다가 오른쪽 산으로 올라선다.
산으로 들어서 30분쯤 가면 흙길인 회룡재(해발 340m)에 닿는데(10:15),
회룡재에서 50분쯤 더 가면 옛고개에 닿고(10:20-50), 여기서 20분쯤 가면 개터재(해발 380m)에 닿고(10:41-40),
개터재에서 여러 개의 턱과 오른쪽 왼쪽으로 자주 휘어지는 길을 따라 1시간 10분쯤 가면
야생 동물 이동 통로가 있는 윗 왕실재(해발 400m)에 닿고(11:52-20),
시멘트 동물 이동 통로 아래에서 비를 피하여 점심밥을 먹었다.(11:52-20~12:09-40)
윗 왕실에서 점심을 먹는 사이 어느새 모기 한 마리가 내 귀에 붙어 재빠르게 내 귀한 피를 빨아 먹었는데,
어찌나 날쌔든지....
산골에서 피 맛보기 어려웠을텐데, 맛있는 피로 보신하였고, 내가 멀리 경북 상주 산골에 가서
모기에게 헌혈을 한 셈이었다.
윗 왕실재를 나서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을 1시간 10분쯤 가면
작은 푯돌과 쉼용[휴게용] 나무 걸상 2개가 있는 백학산(615m)에 닿는다(13:04-30).
백학산이란 이름이 “산을 하얗게 덮을 정도로 백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백학이란 두루미를 이르고 풀밭에 주로 살며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로
시베리아에서 번식한다고 하는데, 두루미는 긴 부리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깃들어 사는 둘레[주위]에 내(川)가 있어야 하는데, 백학산 남쪽 직선 거리로 4~5km쯤에
상판저수지와 동동남쪽으로 소곡지와 내동저수지, 거의 서쪽으로는 대표저수지가 있는데,
두루미는 강이나 내(川)에 서서 물고기 움직임을 봐가며 물고기를 잡아먹지, 큰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고, 이들이 깃들어 사는 곳도 물가에서 가까운 나무 위인데,
설혹 저수지에서 자맥질을 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하여도 가까운 숲을 두고 높은 백학산까지 멀리 날아가서
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 ‘백학’ 이라는 글자에서 무리하게 해석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그 둘레[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두루미를 좋게 생각하여
백학산에 두리미들이 깃들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하기야 땅. 산 이름 같은 것 가운데 전설에서 따온 이름도 많은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학산에서 유래하는 어떤 전설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학산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15분쯤 가면 산길[임도]을 만나는데(13:19-40),
북서쪽으로 경북 상주시 내서면 대포리. 노류리. 학말골과 동남쪽으로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를 잇는 산길[임도]이다.
이 산길에서 35~37분쯤 가면 해발 400m인 대포리 고개에 닿고(13:57-45),
여기서 15~16분쯤 가면 2차선 아스팔트 길인 개머리재(해발 295m)[소정재]에 닿는데(14:14),
개머리재는 남서쪽으로 경북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 도안리와 북서쪽으로 상주시 내서면 대포리 함박골을 잇는 길이다
개머리재에서 대간 길은 앞에 보이는 과수원 사이 길로 바로 나아가지 않고
아스팔트 길을 오른쪽으로 5m쯤 가다 왼쪽으로 가야 한다.
개머리재를 나서 40~45분쯤 가면 포도. 사과나무 밭 따위가 있는 금강. 낙동강 분수령인 2차선 아스팔트 길인
지기재(해발 261m)에 닿는다(15:01-30)
지기재는 남서쪽으로 경북 상주시 모서면과 동쪽 내지 동북쪽으로 경북 상주시 내서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이곳에서 빗물이 서쪽으로 떨어지면 금강으로, 동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지기재를 나서 사과나무 밭을 지나 오른쪽으로 금은골 마을이 보이는 시멘트 길로 내러서 요즘 보기 드문 버드나무가
서있는 논 가를 지나, 지기재를 나선지 30분쯤 가면 통 바위와 오른쪽에 밧줄이 쳐진 곳을 지나고(15:32-50),
이 통 바위에서 11~12분쯤 더 가면 마치 시멘트를 비벼 만든 인공 구조물처럼 보이는 통 바위를 지나는데(15:44-15),
전북 진안 마이산과 비슷한 구조처럼 보인다.
이 통 바위에서 1시간 30분쯤 가면 길 안내판이 나오고(15:14-50), 2분쯤 더 가면 또 길 안내판이 있는데(15:47-50),
앞에 나오는 것과 뒤에 나오는 길 안내판 내용이 잘못 표기되어 뒤에 있는 안내판에 신의터재는 더 멀어지고,
지기재는 거리가 더 가까워지는 모순이 발견된다. 앞뒤 어는 것 하나는 틀린 것으로,
안내판을 만들어 세울 때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신의터 2.5km(55분), ....」 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10분쯤 더 가면 또 길 안내판이 나오고(15:57),
다시 길 안내판 2개를 더 지나(16:01, 16:09-10) 왼쪽에 철탑이 나오고(16:11),
이 철탑에서 5~6분쯤 가면 2차선 아스팔트 길인 신의터재(해발 280m)에 닿는다.
신의터재는 경북 상주시 서쪽으로 화동면 이소리. 만곡리와 동쪽으로 상주시 내서면 낙서리를 잇는 길로서,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진왜란 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무찔러 선조 25년(1592년) 4월 25일 장렬하게 전사한 사실이 있은 뒤부터
‘신의터재’ 라 불리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어산재’ 란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 뒤인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옛 이름인 ‘신의터재’ 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는 내용을 푯돌에 새겨놓았다.
일제가 개악한 땅. 산. 고개. 마을 이름을 고운 우리말로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앞으로 가게 될 이화령은 원래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통로로 새재[조령]를 이용했는데,
높고 험하고 불편하다는 이유와 오랜 우리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이화령을 뚫어 이용하게 했다” 고 적고 있다.
악랄한 일제 강점기 사람은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땅과 산. 마을
이름을 얼마나 많이 개악했는지 그 수를 셀 수조차 없는데, 이곳 신의터재도 그런 아픔을 겪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산행 내내 비를 맞았다. 처음에는 세차게 내리다가 뒤로는 그쳤다 내렸다 반복했고,
내리더라도 많이 내리지는 않았으나 안개는 걷히지 않아 둘레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산에 가다보면 눈. 비를 맞는 날이 많다. 옛날에야 비 맞는 것이 귀찮고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산에 자주 가다 보니, 이제 비를 맞고 걷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적고, 눈이나 비가 오면,
자연이 부리는 조화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럴 바에는 오히려 눈. 비를 즐기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 오는 날 산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안개가 끼면서 둘레[주위]를 구경할 수 없다는 것과,
그나마 찍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진기를 꺼내 찍기를 하면 얼마 뒤에는 습기가 차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과,
미련하게 종이에 여러 가지를 적어야 하는데, 볼펜도 젖고, 종이는 비와 비를 피하려 입은 비옷으로 말미암아
땀이 많이 나 온통 젖는 바람에 글씨가 잘 써지지 않고, 써놓은 것도 볼펜 잉크가 번지면서
나중에 보면 내가 쓴 글자도 판독이 굉장히 어려워 애써 적은 것도 헛일이 될 때가 많은 점이다.
이번에는 비를 대비하여 비나 땀에 종이가 들 젖게하기 위해 마늘 즙을 담은 얇지만 단단한 비닐 포장지를
등산 셔츠 왼쪽 호주머니에 맞게 잘라 넣고 볼펜으로 적을 때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모자 쓴 머리로 비 가리개를 하고, 걸음도 멈추고 적었건만, 그래도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므로,
적은 종이를 등 가방[배낭]에 넣고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므로,
비옷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비옷이라도 완벽한 방수는 되지 않고, 비옷 호주머니에 습기가 차서 종이가
한 덩어리가 되고 물기 맣은 종이를 접기 때문에 종이가 한 덩어리가 되고, 잉크는 번져 나중에 판독하기가 쉽지 않아
오롯이 기록이 보전하지 못해 좀 더 충실한 기록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
비가 한창 퍼부을 때 대간 길이 도랑으로 변하여 물이 흘러내렸는데, 이럴 때 산길이 패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길 중간에 빗물 삐는 시설이 필요한데, 이번 구간에는 그런 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내 발걸음도 대간 길을 패게 하는데 일조(?)를 하여 미안한 마음이었다.
큰재~지기재 사이 구간에는 있는 주요 식물로는 희부연 철쭉. 진달래. 신갈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특히 노간주나무. 옻나무. 초피나무가 많았고, 그밖에도 싸리. 리기다소나무. 낙엽송, 잣나무. 망개나무. 찔레.
줄기로 된 딸기나무 따위가 있었다.
옻나무는 낙남정맥 길에는 지천으로 널리다 시피 많아 아주 귀찮았는데, 이 번 구간에도 제법 많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세웠는지 아니면 경북 상주시에서 세웠는지 몰라도
길 안내판을 많이 만들어 놓아 고맙기는 한데 세월이 지나면서 깨어진 것이 많았으나
세우고 나서 순찰을 하지 않은 듯 보수를 하지 않아 아쉬웠다. 빨리 보수했으면 좋겠다.
길 안내판뿐만 아니라 대간 길 방향을 완만하게 하얀 푯말로 곳곳에 세워 두어 초보자라도 길 찾기가 좋을 것 같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나 요즘도 비오는 날 산에 가면 지렁이가 많이 나와 있어
그 녀석들을 밟지 않으려고 주의를 하고, 옛적 시골에서는 개구리도 많이 보였는데,
이번에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였으나 개구리는커녕, 지렁이 한 마리도 구경 못했다.
경북 상주 지방에는 개구리나 지렁이가 없는 곳인가, 아니면 다른 곳도 요즘 오염이 심하고,
사람들이 자연에 가혹한 짓을 많이 해서 그런 생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인지 궁금했다.
□ 주요 시간대 별 이동 구간 따위 : 제 블로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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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속이 꽉찬 산행후기입니다..해박한 지식에 감탄할 따름입니다..(사진 사이즈가 조금 만 더 컸으면 더욱 좋을텐데요..가로1000∼1200으로 맞춰보세요)..
사니조아님은 매우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더욱 풍성하고 중요한 지점을 놓치지 않으시는데 견주면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사진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이말밖엔 최~~~고입니다 늘 감탄만 하고 갑니다 행복한 한주 되십시요
뭐 별것 아닌데 좋게 평가해주셔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지렁이 5~6마리 정도 백학산 오름길에 있는 계단에서 봤습니다. 까투리 두마리도 만났구요. 언제나 꽉찬 산행기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담 산행에서 또 뵙겠습니다~
역시 건각들이라 먼저 가면서 동식물들을 모두 도망가게 하거나 움츠리게 했나 봅니다.
앞으로는 좀 천천히 가시면 사진에 한 번쯤 담기라도 할텐데....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숙제를 마무리한듯합니다
아마도 시험치면 9기팀 모두 합격할겁니다
덕분에 큰재
선생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적토마를 닮았는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밖에 뵐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가시면 내 사진기에도 한 장면이라도 담을 수 있을텐데...
그런 기회 어렵겠지요?
고생하셨고, 두 분 행복한 모습 늘 보고 기쁩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