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직의 분배적 정의론
1. 노직의 기본입장
노직(R. Nozick)의 자유주의 사회정의론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 덕목으로 간주한다. 그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재화를 취득하고 또 그 과정이 공정하다면 정의가 구현된 사회로 본다. 그러므로 정형적 정의론과 같이 국가가 일정한 공식에 따라 인위적으로 재화를 재분배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노직의 입장을 뒷받침 해주는 사상적 근거는 소유권 이론과 최소 국가론이다.
소유권 이론은 로크가 가장 먼저 정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로크는 먼저 각 개인의 몸과 마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는 천부인권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유한 권리가 바로 소유권이다. 그러므로 소유권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억압되거나 착취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라고 로크는 주장하였다.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해 자유롭게 생산과 분배방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도모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국가와 같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 내에서 스스로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조절된다는 말이다. 다만 국가는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였을 때, 이들을 처벌하는 야경국가적인 최소의 권한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최소 국가론이다.
2. 최종결과적 정의와 역사과정적 정의
분배적 정의에 대한 최근의 문헌은 주로 경제적 이익과 부담의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저의의 개념이 이해함에 있어 최근에 주목할 만한 발전 중의 하나는 최종 결과적(end-state) 정의론과 역사과정적(historical) 정의론의 구분을 시도한 노직(Robert Nozick)의 입장이다. 최종 결과적(end-state) 정의론을 대표하는 이론은 공리주의이다. 이들은 비역사적인 결과주의에 입각해서 모든 분배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결과하도록 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과정적 정의 원리는 사람들의 과거 여건이나 행적이 재화에 대한 상이한 권한과 서로 다른 응분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과정적 방법은 분배에 있어 고정된 목적이나 기준을 부과하는 최종 결과적 접근방식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노직에 의하면 비역사적 이론이 이론적으로 결함을 갖는 것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중요한 역사과정적 요인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종 결과적 이론은 정의로운 분배에 대한 어떤 구조적 원칙에 의해 판정되는 바, 미래지향적(forward-looking)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과정적 이론은 과거 회고적(backward-looking)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과거 여건이나 행위가 재화에 대한 서로 상이한 권한이나 서로 다른 응분을 산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역사과정적 입장을 지지하는 노직에 있어서 정의는 일정한 종류의 결과를 가져다 줄 어떤 사회 체제나 제도에 의거하지 않는다. 정의는 오히려 개인 각자의 과거 및 현재의 여러 고려사항과 관련된 것이다.
3. 정형적 정의와 비정형적 정의
노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정형적(patterned) 정의원리와 비정형적(unpatterned) 정의원리 간의 구분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정형적 원리는 분배가 이루어져야 할 방식을 규정하는 어떤 특성을 선정함으로써 공식화된다. ‘각자에게 그의 X에 따라서’라는 공식에 일정한 특성 X를 정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입장이 정형적 이론이다. 노직은 모든 정형적 원리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분배를 어떤 정형적 틀에 맞추고자 하는 시도를 불가피하게 사람들의 자유를 어떤 식으로 침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형에 맞는 분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분배(redistribution) 과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노직은 이처럼 재분배에 의한 자유의 침해를 중대한 문제로 보고 그러한 분배 체제에서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세금의 징수를 강요된 노동(forced labor)과 마찬가지라고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노직은 정형적 분배를 달성하려는 시도들이 우리의 자유권에 대한 침해를 내포하는 까닭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정형적 정의론자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분배적 정의를 논할 때 그들은 보통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첫째, 그들은 그들 사회의 현행 분배 상태가 재화나 책임이 분배되어야 할 방식에 대해 미리 규정된 정형에 부합되지 못할 경우 부정의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들은 현행 체제가 자신들의 기준에 보다 잘 부합하도록 변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끝으로 정형에 의해 요구되는 분배는 자발적(voluntary)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재분배를 위한 통상적인 방식으로서 세금 역시 강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 노직의 소유권 이론 : 취득, 양도, 시정의 원리
노직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응분의 권한을 가진 것을 소유할 경우 정의가 실현된다고 하며 이러한 응분의 권한을 정하기 위해 소유물의 원초적 취득(original acquisition)과 소유물 양도(transfer) 그리고 이 두 가지 소유과정이 잘못 이행되어 부정의하게 취득된 소유물의 시정(rectification)에 대한 원리를 논의한다.
첫째, 취득할 때 정의의 원리에 맞도록 어떤 재화를 취득한 사람은 그 재화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둘째, 이전할 때의 정의의 원리에 맞도록 어떤 재화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재화를 취득한 사람은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셋째, 어느 누구도 앞의 두 원리의 반복된 적용을 통해 취득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재화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못한다.
노직의 소유권 이론은 로크의 재산권 이론의 발전된 유형으로서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써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로크적 단서’를 준수하는 한 그 소유물을 취득할 응분의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에 의한 결과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해 자유로이 양도된 것에 대해서도 정당한 소유권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획득과 양도 시 과오나 그릇된 절차에 의한 소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시정의 원리가 있게 된다.
(2) 최종 결과적 ‧ 정형적 정의론 비판
최종 결과적 ‧ 정형적 정의론에 대한 노직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①그러한 이론이 그릇된 유비추리(analogy)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분배적 정의에 대한 최종 결과적 ‧ 정형적 정의론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제한된 통제 상황(controlled situation)의 정의로운 분배와 무제한적인 자발적 상황(sponteneous situation)의 정의로운 분배간의 그릇된 유비추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분배적 정의가 적용되는 제한된 상황과 전체로서의 사회, 즉 무제한한 자발적인 사회 간의 유비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릇된 것이다. 먼저 전체 사회의 경우에 있어서는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 당국이 분배될 재화에 대해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②정형적 정의론이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노직의 과정적 ‧ 비정형적 정의론 비판
현실에 있어서 재화나 자원의 부족 상태는 노직의 입장에서 불리한 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해결의 관건은 노직이 원초적 취득의 정당화 단서를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지 않는 한’이라는 점에 두는 것과 관련된다.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노직의 논의는 그다지 분명하지가 않다.1) 때때로 그는 어떤 이의 처지는 그가 일정한 기본수준(baseline) 이하로 내려갈 경우 악화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본수준을 최저생활 수준이나 최저 복지 하한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사람들의 처지가 기본선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한 재분배의 과정을 요구하게 되는데 노직은 이를 인정하지 않게 때문이다.
노직의 이론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의 취득이론이다. 정의로운 취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논의함에 있어 그는 모든 다른 가치를 희생하고서라도 자유라는 가치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의 이론의 출발점은 자유권이며 이를 유린하는 어떤 분배나 재분배의 원리도 부인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유만에 의해 정의론을 구성해야 하는가? 생존권이 자유권과 상충할 경우 일방적으로 이를 무시 내지 배제하고자 하는 노직의 정당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노직은 명확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4. 최소국가론
노직의 소유권적 정의론의 특징은 개인의 자유(liberty)를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하는데 있다. 그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재화를 취득하고 또 이전 과정을 공정하게 하면 정의가 구현된 사회로 본다. 각 개인은 공정한 절차에 맞추어 개인의 이해심에 따라 행위하고 그에 따라 정당한 소유권을 갖게 된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보여주듯이 개인은 경제적 분배에 대해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참여 방식은 경제적 이익과 부담을 분배할 때 개인 간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도덕적으로 적절한 특성으로 간주된다. 이에 자유주의의 절차적 공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들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각자로부터 그들이 선택된 바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가 이루어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오직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제약받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했을 경우 시정의 원리에 따라 기울어진 정의의 추를 바로잡는 역할이 바로 국가에게 부여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과정적 정의관을 갖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최소국가’(minimal state)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1) 노직이 인용하는 한 예에 따르면 어떤 소유가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것은 어떤 소유에 의해서건 타인이 생존을 위협을 당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오아시스 우물의 사례나 불치병 치료약 발명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결국 노직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취득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황경식,<개방사회의 사회윤리>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