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한 번, 미소 한 번
“선생님, 이것 더 먹으면 안 되어요?”
“저것 더 주세요. 난 이것 좋아한단 말이에요, 네?
“선생님, 저는 이것 안 먹으면 안 돼요?”
제각기 아우성이다.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고 배식 시간이 되면 학교가 소란스러움으로 거세게 살아난다.
초등학교 교실의 점심시간이란 날마다 전쟁이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먹는 것을 말리며 골고루 먹이느라고, 또 어떤 날은 안 먹는 음식을 골고루 먹이느라고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식당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학교가 태반이라 그 날 냄새가 많이 나는 김치류나 쌈장 등 반찬이라도 쏟는 날이면 이건 패망의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나 해물우동이 있는 날이다. 그런 날이 되면 미리 배부되는 식단표를 보고 거의 4교시는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혹시라도 수업 내용 중 음식이라도 나오면 배고파서 공부가 안 된다고 난리이다.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수업을 마치는 둥 마는 둥 급식차를 끌고 들어온다. 면을 나누어 주려니 다 엉겨 붙어 있다. 겨우 배식을 하고 나니, 모자란다. 그러면 남은 반찬을 들고 급식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미 다른 반에서 여분 음식을 가지고 간 후면 허탕이다. 이렇게 어디로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급한 것은 식당 시설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치, 경제 모든 국면을 혼란의 도가니에 넣었던 무상급식의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4인 서울의 시장 선거에서 무상급식 주장하던 그는 그 허름한 요리대회에서 승리를 하였다. 한국 정치의 지형을 크게 바꾸고, 골목대장의 허세처럼 직위를 걸고 반대의 단언을 했던 서울시장이 자리를 내 놓는 정말 엉뚱한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다. 현대 한국사회의 포퓰리즘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상급식은 탁상행정과 인기 위주의 교육행정을 대표하는 정치가들의 탁상공론일 뿐이었다. 무상급식의 시행으로, 전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든 의무교육기관의 학생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이고 있다. 학생들은 자비로 사 먹는 알찬 느낌보다는 빈자처럼 얻어먹는 처량함과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무가치한 태도를 먼저 체득하게 되었다. 학부모들 또한 자녀들의 시간과 건강관리에 정성을 다하는 대신, 각종 캠프나 특강, 방과후학교 등으로 쉼 없이 돌아가는 학교에서 방학 중이나 방학 날, 개학날까지 연중 공짜 밥을 먹는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떠밀어놓았다. 엄마들은 늦잠을 자고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로 소일할 수 있었다. 더 게을러진 대신 모든 책임은 학교에 물었다. 아침도 먹여 보내지 않고 아침 돌봄에서 제공되는 감자나 고구마 같이 간식으로 공짜 아침을 먹도록 내모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을 하루 종일 학교에 맡겨놓고 자신들의 여유를 누렸다. 학습준비물 일체를 학교에서 제공받아 수업에 임하게 하어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건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엄마들은 절약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 오후에도 동아리다, MOU다, 교육복지다, 방과후학교 지원 등으로 무료 교육과 혜택을 끌어냈다. 학교는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무보다 ‘돌봄과 복지’라는 무상교육에 휘둘렸다. 여기저기서 교육 기부, 재능 기부를 한다는 어른들도 부모의 나태를 볼모로 학교내외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데 몰입되었다.
도저히 학교에서 감당이 안 되는 시간은 사교육 골목을 기웃거렸다. 의무교육으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엄마들에 의해 수집된 사교육 기관 정보를 바탕으로 저녁에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았다. 효과의 증빙도 없이 비싼 수업료를 마다하지 않았고 비싼 교육비 때문에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고 엎친 데 덮친 복지를 요구하고 국가에게 저 출산으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와 경기 불황의 책임까지도 물었다. 아이들은 하루에 한 시간도 제대로 놀지도 쉬지도 못하고 그 아까운 본전 생각에 몰두한 엄마들의 히스테리와 삐뚤어진 교육열을 이겨내야 했다. 이것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생까지 지급되는 누리사업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기들부터 유아원, 어린이집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이라는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과 따스한 엄마의 품속에서 성장해야 하는 아기들도 무거운 가방에, 어린이집 셔틀버스를 타야 했고 하루 종일 햇빛도 제대로 못 받고 실내 공간에서 공부한다고 꽁꽁 묶여 있다가 축 처진 몸으로 잠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무상이라는 말난 들어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엄마로서도 교사로서도 소름이 돋는다. 중도라는 말을 떠올린다. 한쪽으로 쏠려 침몰하던 세월호를 추모한다. 허공에 뚝 떨어진 성수대교를 떠올리며, 장난 같은 감정표출로 수백 명의 목숨이 질식 사망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를 생각한다. 그 공포와 분노의 잔인한 계절을 기억한다. 우리의 교육도 한쪽 쏠림으로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심장이 조여옴을 느끼며 오늘 점심시간도 제대로 식사를 못하였다. 내내 불안하여 잠이 안 온다.
이제는 진짜 아이들을 사랑할 때가 왔다. 몇 년 전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이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쓰던 포대기 같은 모양의 아기 띠에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이 인기를 끌었다. 그 후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포대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물론 요즘은 엄마보다는 젊은 아빠들이 아기를 더 많이 안고 다니긴 하지만 부모의 품은 어린 아이에게 가장 따뜻한 약이다. 어릴, 적, 두 발로 얼마든지 뛰어다닐 수 있는 나이에도 부모를 향해 팔을 뻗어 안아달라고 조르던 기억. 그 포근한 기억을 추억한다. 그 한 번의 포옹으로 그 날 형 때문에, 동생 때문에 받았던 설움과 허전함을 다 보상 받았었다. 한 번이다. 엄마의 포옹과 아빠의 미소 한 번이면 족하다.
늦은 밤 어둑한 마루를 거닐며 나를 업어 재우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는 포근함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한국이 사는 길
사 교육이 없어져야 한국이 삽니다
공교육도 바짝 정신 차리겠습니다. 예쁜 꽃 구경하고 가시지요. 없어져야 하는 것도 많지만 아직 그대로 있어야 할 것이 더 많지요? 천리포수목원에서 10월말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