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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수. 법수원
산 건너 웅상은 넓은 분지다. 지금은 양산시에 포함되었고 공단과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것의 유래는 신라 이전으로 거슬러갈 정도로 오랜 고장이다. 천성산의 주능선은 남북으로 이어진다.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과 비교하면 동쪽은 우뚝 솟은 바위들이 많고 급경상를 이룬다. 오늘은 비로봉(천성산2봉)을 넘어 웅상을 다녀오면서 분화구로 추측되는 밀반늪과 법수원계곡을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제 비온 탓에 내원사 계곡엔 물이 많았다. 돌다리가 물에 잠겼다. 능선을 따라 비로봉에 오른 뒤 소주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랐다. 임도 지나 더 내려가니 법수원계곡이 나왔다. 처음 마주친 계곡의 느낌은 평평하고 넓었다. 전반적으로 응회암 지대인 탓에 밝고 부드럽게 보였다. 비교적 정상과 가까운 높은 고도의 응회암 계곡이라는 점이 법수원 안쪽 계곡의 특징이다. 물론 나는 분화구인 탓이라고 믿는다. 볕이 점점 강해져서 요즘엔 사진을 찍어도 숲의 그늘의 대조가 너무 심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점차 기암괴석들이 나타나고 경사도 급해졌다. 다시 산비탈의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자니 혈수폭포가 있는 법수원으로 이어졌다. 법수원을 가기 위해서는 검은 안산암 바위의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천성산에는 이런 검은 안산암 너덜지대가 많다. 특히 지프네 계곡의 비탈과 이곳의 비탈은 압권이다. 하지만 이런 너덜지대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빙하기의 흔적이다. 단단한 안산암이 빙하기를 겪으면서 각이 날카롭게 갈라지며 쪼개지는 풍화를 겪으며 떨어졌기 때문이다. 법수원 비탈도 그 규모와 경사가 매우 크다. 반면 응회암지대는 너덜지대의 특징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응회암은 물을 잘 머금고 강도가 약한 암석은 잘 부서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붓세바위 응회암의 경우 강도의 차이에 따라 풍화가 빨리 진행된 것과 더디게 진행된 것의 차이가 뚜렸했다. 단단한 것은 안산암같지만 무른 것은 손으로 문지르면 석고처럼 뭉개지기도 했다. 때문에 응회암 지대에 기암괴석과 동굴이 잘 발달하게 된 것 같다.
법수원의 혈수폭포는 높이 20~30미터의 장쾌한 폭포다. 바위가 부분적으로 붉은색이어서 용이 승천하며 흘린 피가 묻어서 그렇다는 전설을 있다. 실제로 보면 높은 벼랑의 바위가 붉어 피에 젖은 것 같다. 이 붉은 바위 탓에 이름이 피쏘였지만 그것을 한자로 점잖게 옮겨 혈수, 법수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폭포 위가 법수원 경내에 해당해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 처음에는 등산객들에게 개방을 했으나 등산객들이 유원지처럼 문란하게 행동을 해 절에서 길을 아예 폐쇄한 상황이다. 대중을 적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번 등산지도만 보고 미타암에서 혈수폭포로 오다가 법수원에서 철조망을 치고 자물쇠를 채운 탓에 본의 아니게 돌아서 하늘릿지를 오르며 몹시 당황했다. 삼형제바위가 있는 급경사의 하늘릿지는 80도의 급격한 암벽이었다. 본의 아니 게 암벽 타기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삼형제봉을 차례로 지나며 원적산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은근히 법수원을 원망했다. 자연은 누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인데, 비록 대중이 미숙한 행동을 했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대중이 옳은 산행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잘 유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구보리만큼 하화중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도 중재를 해서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혈수폭포길이 개방되고 바른 산행문화가 정착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혈수폭포를 경계로 원적산 산내와 산외를 구분할 수 있겠다. 안쪽은 분화구 내부이고, 밖이 외부인 것이다. 이곳의 분화구는 관입에 의한 분출로 형성된 것 같지만, 폭발이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웅상을 중심으로 맞은편엔 대운산이 있다. 양산이 양산단층대 위에 놓이듯, 웅상이 동래단층대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대운산 역시 화산암인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둥그런 능선을 가지고 있는 분화구로 추측된다. 그러고 보면 천성산 인근의 지질학적 역사를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천성산 지괴가 형성되고, 신생대 환태평양 조산활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양산단층과 동래단층이 형성된 것이다. 문제는 이들 단층이 활성단층대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 지역은 고리원전을 비롯한 수많은 공단과 인구가 밀집한 곳이다. 지진의 위험과 지진에 따른 연쇄 재난의 위험이 가장 염려되는 곳이다. 설사 동일본지진과 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런 유형의 지진과 재난 위험이 가장 많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부산, 양산, 울산, 김해시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산과 절
법수원 지나 보현암 이르는 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토질에 안정된 숲이 이어졌다. 등산로 정비를 많이 손을 댔다기 보다 적절하게 하려고 한 흔적이 보였다. 간간히 간벌목을 이용해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계단이 중간중간 보였다. 유실이 심한 곳은 푸대에 흙을 넣어 쌓고 마닐라삼매트를 깔았다. 자연 친화적으로 보인다. 나무의 뿌리 드러난 곳이 많은 곳에서는 마닐라삼매트 처방 같은 곳이 적절할 듯 싶다. 하지만 소재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예전 가마니 같은 것을 인근 농촌과 연계해 제작해 사용하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될 것 같다.
산자락에는 아카시나무들이 한창 만발해 있었지만 꿀벌들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실감케 하는 봄이다. 꿀벌의 멸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한편 과거 야산에 연료림으로 심어진 아카시나무숲이 있다는 것은 이곳의 인구밀도가 높아 숲이 헐벗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주에는 커다란 공단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개운중학교에 도착했다. 양산에 내려와 채현국 선생님과 박종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 했다가 요즘 강연으로 워낙 분주하신데 일 없이 찾아뵙기도 멋쩍어 미루고 있었다. 마침 채현국 선생님은 서울 가시고,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뭔가 고심하시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빼고 말을 옮기자면 먼저 우리나라의 산을 가장 많이 파괴한 장본인이 국가와 불교계라는 것이다. 지율스님이 선방에만 계시다 갑자기 나와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 중생의 목숨을 아끼면서 자신의 목숨을 너무 소홀히 한 것, 그리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사찰들의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정작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지율스님과 내원사와 관계가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신 거였다. 나야 물론 채현국 선생님이나 박종현 선생님의 입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했다. 지난번 처음 뵈었을 때 채현국 선생님이 이미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볼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개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입장의 차이를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완전히 옳다고 숭앙하지도 않고 배척하지도 않는 편이고, 그러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선의와 연민에 기대어 사람을 보고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각자의 최선이 꼭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평생을 신념과 소신으로 일관하며 시대의 스승으로 대우 받는 채현국 선생님과 또 천성산과 내성천에 헌신하고 계신 지율 스님이 서로 좁힐 수 없다는 것은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간디든 예수든 부처든 각자의 개성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것 모두가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비난받을 말과 행동이 있었다고 그 사람의 좋은 것을 모두 패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또 격려할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채현국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교계가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구보리의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들이 세속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비록 방편이지만 믿음을 뒷받침하는 도그마를 은연중에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하화중생의 방법이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테두리에 갇히는 경향도 있다. 불사의 일환으로 산중의 많은 절들이 신도들의 접근 편리를 위해 도로를 놓고 건물들을 새로 건립하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며 사찰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한 가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세속의 이런 비판은 산중불교에서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환경오염과 생태파괴의 문제가 심각한 현대에 생태문제는 불교계에 던져진 화두처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찰들의 상황을 보니 한 절에 오래 좌정하는 스님이 많지 않고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스님들이 사찰을 옮겨 다닌다는 점이다. 즉 스님들은 산 속에서 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생태적이고 자연에 친숙하지만 절을 옮기며 생활하시는 탓에 한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생태적으로 스며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운수납자로서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니 이런 단점도 생기는 것이다. 더불어 절에서는 이래저래 개를 키우는 일이 발생한다. 불시에 방문하는 신도와 제 등으로 짬밥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밤손님 등의 불청객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서 개를 키우기도 한다. 더구나 불살생계를 따르고 자연의 법칙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인지라 본의 아니 게 산중에서 십여 마리의 개를 키우게 되는 절도 있다. 더구나 마음이 너그러운 스님들은 개의 운동과 자유를 위해 간혹 목줄을 풀어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산에 들개와 절개가 돌아다니는 일이 종종 목격된다. 야산엔 들고양이가, 심산엔 들개와 절개가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야생동물들에게 위협이 된다. 언젠가 나도 목줄을 풀어준 진돗개가 산을 쏘다니다 점차 사냥맛에 빠지는 것을 본 적 있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파생해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님과 절의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다. 그래서 합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이다.
뭇생명에 대한 연민을 종교심으로 삼는 불교인 까닭에 지역생태계에 대한 지킴이로서 책임을 떠맡는다면 산중 사찰이야말로 훌륭한 생태교육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종의 계가 필요할 것이다. 제법 이름 있는 산에는 대개 절이 5개에서 10개는 있다. 이런 절들이 일 년에 두어 번 씩이라도 모여 지역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계획을 교환하고 규약을 정해 실천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하여 도로를 놓거나 건물을 세울 때도 어떤 원칙과 합의 위에서 이루어지고, 산의 변화를 감지하고 지역의 산림 및 공원 정책이 옳게 진행되도록 지킴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성산의 중심에 내원사와 노전암이 있다. 내원사는 내원사계곡이라는 큰 계곡의 입구이고, 노전암은 한듬과 북대골의 입구이다. 각각의 골짜기는 나름대로 큰 규모의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내원사와 노전암이 도로를 놓고 단장을 했을지언정, 나름 숲의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체적인 맥락과 조율 속에 합의하고 진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토론과 조율, 그리고 합의가 아니겠는가?
지금 울산 신불산은 시에서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하자 통도사 스님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천성산 원효봉 정상은 시에서 처음에는 해맞이 공원으로 만들려 했지만 내원사 스님들이 자연복원안을 내세워 합의를 보게 되었다. 시에서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오히려 현장에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현장에 적합한 시정을 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지난 겨울 홍룡사에서 화엄벌 가는 숲을 간벌하였다. 그리고 보름 전 쯤 간벌한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편백나무와 튤립나무 묘목을 심었다. 나름의 특수림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70년 무렵 식림사업 후 40~50년이 지나면서 자연림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숲을 밀고 인공림으로 재조성하는 것이 과연 천성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충분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편백나무와 튤립나무만으로 보면 성림이 되었을 때 비탈길에서 아주 시원한 느낌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자연림이 가진 풍부한 식생과 다양한 서식지는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를 얻는 대신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논이 하는 눈과 입이 필요하다. 그것이 산중의 절이 하든, 지역민들의 생태모임이 하든 천지공물의 자연을 위해 누군가 꾸준히 해야 한다. 골짜기마다 자리한 절들이 이런 일을 기꺼이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시다시피 육도윤회의 중생엔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포함된다. 중생 구제를 위해서라도 숲이 제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동서남북 사찰들과 시민들의 천성산계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돌아오는 길에 원적암과 화엄사, 구명사를 보고 은수고개를 통해 돌아왔다. 원적암의 삼성당 벽화의 둘레에는 숲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꽃사슴 가족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루와 꽃사슴이야말로 한국의 산사슴이 아니었던가? 산신령의 옆에는 호랑이와 꽃사슴이 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랑이도 꽃사슴도 모두 사라졌다. 화엄사에는 1990년 무렵 한 스님의 꿈에 11번이나 부처님이 현몽해 지금 화엄사 뒤편 석굴을 들여보니 고려시대 청동불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 진신사리 등의 유구가 나왔고, 그래서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두었다. 구명사는 기암괴석의 바위 밑에 있었다. 무속인의 사는 절이었다.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기암괴석이 일품인데 보살님은 정기 떨어진다고 사진을 못 찍게 했지만 기록용으로 몇 컷을 슬쩍 찍었다. 원적봉에서 철죽제단 오는 길에는 영산홍 한 그루와 강렬한 핏빛으로 피어있었다. 천성산에서 본 유일한 영산홍이다. 어째 여기와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귀한 만큼 강렬했다.
오늘 산행에서 영산홍 외에도 애기세줄나비와 산개구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