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미세 먼지 '괴물'이 실체를 드러내다
얼마 전까지 커피숍에는 격리된 흡연실이 있었습니다. 한창 사람이 붐빌 때는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에서 흡연자의 설움을 달래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곤 했죠. 그런데 혹시 담배 연기 자욱한 그 흡연실 한 구석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나 아빠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담배 맛이 싹 달아나겠죠. "미친 거 아냐!"
그런데 황사가 한국을 덮친 지난 21일(토요일) 우리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21일 오후 5시, 서울시 마포구의 초미세 먼지(PM2.5) 농도는 1세제곱미터당 125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아 기준치(시간당 평균 120마이크로그램)를 웃돌았죠. 서울시 전체의 초미세 먼지 농도는 82마이크로그램. 이날 서울 시내는 마치 열 명이 한꺼번에 담배를 피워 대는 흡연실과 같았습니다.
혹시 이날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면, 아이가 숨을 한 번씩 들이쉴 때마다 수많은 먼지들이 폐 깊숙이 박혔을 겁니다. 겁부터 주지 말라고요? 아니요. 좀 더 겁을 줘야겠습니다.
미세 먼지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요
많은 언론이 미세 먼지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데도, 굳이 이런 자리를 또 마련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먼지가 사람을 공격하다
아직도 먼지 따위에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반신반의하는 이들을 위해서 좀 더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맞습니다. 먼지는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강원도 산골의 공기 좋은 곳에 살더라도 날마다 최소한 15억(!) 개의 먼지 입자가 코와 입으로 들어갑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 몇 배의 먼지를 마시며 살아가죠.
다행히도 우리 몸은 먼지의 공격에 맞서는 놀랍도록 정교한 방어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콧구멍으로 들어온 먼지는 일단 코털에 잡히죠. 운이 좋게 이 방어선을 뚫은 먼지는 나선형으로 된 (먼지 입장에서는 길고 긴) 미로(비개골)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미로에서 코로 들어온 먼지의 대부분은 갈 길을 잃고 끈적끈적한 벽에 붙잡히죠.
운이 좋게 코를 통과한 먼지도 목 앞쪽에 위치한 후두에서 다시 한 번 저지당합니다. 끊임없이 흘러드는 침에 휩쓸려 목구멍을 통과해 위 속으로 실려 가죠. 이런 방어 체계 덕분에 자연에서 발생하는 흙먼지, 꽃가루 등 대부분의 먼지는 목구멍을 통과해서 몸속으로 침입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이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먼지
그런데 지난 100년간 이런 균형 상태가 깨졌습니다. 수십 만 년 동안 우리 몸이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먼지가 우리 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 몸은 그런 먼지를 막을 만한 방어 체계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바로 자동차, 공장, 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먼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부터 이들을 '미세 먼지(Particulate Matter)'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런 미세 먼지가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당시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의 먼지가 관심을 끌었죠. 이 먼지의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10의 –6승 미터) 정도여서, 이런 먼지에 'PM10(Particulate Matter 10)'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과학자들은 훨씬 더 작은 먼지의 위험을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크기가 PM1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2.5마이크로미터 이하라서 'PM2.5(Particulate Matter 2.5)'라 부르는 괴물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죠. 과학자들은 이 괴물에게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해왔는지를 짐작하고선 경악에 빠졌죠.
사실 PM10만 하더라도 우리 몸이 호락호락 침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목구멍에서 폐로 통하는 통로인 기관지 내막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점액이 먼지를 붙잡기 때문이죠. 이렇게 붙잡힌 먼지는 다시 목구멍으로 옮겨져 침에 휩쓸려 위로 넘어가거나, 기침이나 날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죠.
초미세 먼지, 즉 PM2.5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정도 크기의 먼지라면 코에서 폐까지 놓인 수많은 덫을 요리조리 피하며 폐를 직접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폐 속의 작은 공기 주머니인 허파꽈리(폐포)까지 침입합니다. 이렇게 허파꽈리에 박힌 초미세 먼지는 그곳에 버티며 폐를 망가뜨리기 시작하죠.
WHO "미세 먼지는 1급 발암 물질"
지난 100년간 PM2.5 등의 미세 먼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산업 국가의 도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세 먼지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내놓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보다 못한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선 것도 이런 사정 탓이죠.
WHO는 2013년 10월 17일, 미세 먼지를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습니다. 미세 먼지와 같은 그룹(Group I)에 속한 발암 물질 가운데는 (치명적인 폐암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로 악명 높은) 석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주요 성분이자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자외선, 담배 연기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세 먼지를 석면, 플루토늄은커녕 자외선이나 담배 연기만큼 걱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죠. 미세 먼지 농도가 만만치 않았던 지난 주말(3월 28~29일)에도 집 앞 공원에는 아이 손을 잡고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비더군요. 아이가 뛰다가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마다 또 얼마나 많은 먼지가 폐 속에 깊숙이 박혔을까요?
그렇게 몸속에 박힌 미세 먼지 어떻게 아이 몸을 망가뜨릴까요?
(다음 기사에서는 미세 먼지의 위험을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미세 먼지는 기관지염, 폐암과 같은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 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다면 특히 긴장하십시오.)
2화. 오늘 1명이 또 '괴물'에게 먹혔습니다
이 연재를 유심히 보는 독자라면 흔히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석면의 위험을 들어본 적이 있겠죠. 사실 석면은 그 정체가 확실히 밝혀진 미세 먼지의 한 종류입니다. 길이 10마이크로미터(10의 –6미터) 이하의 바늘처럼 생긴 석면 먼지가 공기 중을 돌아다니다 우리 몸속의 폐로 들어와 치명적인 폐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석면에 붙은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석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의 엽기적인 살인마처럼 살인 현장에 자신의 표식을 확실하게 남기기 때문이죠. 석면 때문에 망가진 폐의 대부분은 증상('석면폐'나 '악성 중피종'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은 석면이 아니라 미세 먼지에 붙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세 먼지야말로 자신이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미세 먼지가 과학자와 보건·환경 당국의 눈길에 포착된 것도 바로 이런 사정 탓입니다.
살인마, 꼬리가 잡히다
1993년 12월 9일, 하버드 대학 연구 팀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을 논문을 한 편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 팀은 1974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6개 도시에 살고 있는 25세에서 74세의 주민 8111명의 건강 상태를 추적 조사했습니다. 대기오염과 건강 상태와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작업이었죠.
20년 가까운 추적 기간 동안 애초 자원했던 8111명 중에서 1430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연구 팀은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했죠. 초미세 먼지(PM2.5) 오염도가 낮은 도시부터 높은 도시까지 사망률이 거의 직선을 그리면서 높아졌습니다. PM2.5와 사망률 사이의 극적인 관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은밀히 희생자를 찾아다니던 살인마의 꼬리가 드디어 잡혔죠.
이 하버드 대학 연구 팀의 추적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2009년까지 3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애초 8111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6개 도시의 초미세 먼지(PM2.5)를 비롯한 대기오염 상황도 개선되었죠. 물론 이 과정에서 살인마의 실체도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2012년 3월 28일 논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하면 전체 사망률은 14% 증가한다. 특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의 사망률은 26% 증가하고, 폐암 사망률은 37% 증가한다."
이 결론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생소한 단위부터 알아보죠. 1세제곱미터는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입니다. 그러니까 1세제곱미터 당 10마이크로그램은 가로 세로 높이 1미터가 되는 공간에 10마이크로그램의 초미세 먼지가 있다는 얘기죠.
그럼, 10마이크로그램은 어느 정도 양일까요? 10마이크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쓰는 티스푼의 2만분의 1 정도 되는 양입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얼른 감이 안 옵니다.
지난 주말(4일) 서울 시내를 비롯한 전국의 날씨가 꽤 청명했죠? 그 때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 당 8마이크로그램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월요일(6일)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 당 20마이크로그램 정도입니다.
이제 감이 오시죠? 지난 주말의 공기가 월요일과 같은 공기로 바뀌는 상황이 바로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의 초미세 먼지가 늘어나는 상황이죠. 다시 논문의 결론을 보면 "사망률 14%, 심혈관 질환 사망률 26%, 폐암 사망률 37%"가 눈에 띕니다. 생각보다 너무 큰 숫자죠?
이 숫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서울시의 25세 이상 연간 사망자 수는 약 4만 명 수준입니다. 만약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가 지금보다 더 나빠져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정도 늘었습니다. 이런 상태대로 서울 시민이 30년 정도를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그대로라면) 사망자 숫자는 약 4만5600명으로 늘어납니다.
초미세 먼지 때문에 5600명이 추가로 더 사망하는 셈입니다.
어쩌면, 그는 살 수 있었다!
'30년이라고? 그렇게 긴 시간이라면..'
여기까지 읽고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안심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1993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미세 먼지의 위험을 따지는 연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의 오랜 기간이 아닌 매일 매일의 미세 먼지 농도 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정도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특정 도시에서 미세 먼지가 날마다 얼마나 증가하고 감소하는지 기록한 다음에 그날 도시의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의 변화도 살폈습니다.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을 가능한 한 다 거르고 나서도, 초미세 먼지의 변화와 사망률 혹은 폐암, 심혈관 질환 등의 발생 건수가 같이 오르내린다면 양자 사이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연구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 가지 예를 살펴보죠.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일 매일의 서울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 변화와 그 날 그 날 사망자 수의 증감을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초미세 먼지가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하면 사망자 수가 0.95% 증가했습니다.
서울의 하루 평균 사망자 수는 115명입니다. 만약 초미세 먼지의 농도를 10마이크로그램 줄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망자 수를 0.95% 줄일 수 있으니, 하루에 1명 이상(약 1.1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셈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초미세 먼지 때문에 공기가 조금만 깨끗했다면 살 수 있었던 서울 시민 1명이 매일 매일 목숨을 잃었던 것이죠.
지능적인 살인마, 희생자를 고르다
초미세 먼지의 위험을 다룬 수많은 연구 결과를 여기서 다 살펴볼 필요는 없겠죠. 앞에서 살펴본 것만으로도 초미세 먼지가 우리 눈앞에 닥친 위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기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일 걱정되는 대기오염 물질이 초미세 먼지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니까요. 그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초미세 먼지의 위험을 살핀 많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봤을 때, 둘 사이에는 뚜렷한 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초미세 먼지를 짧은 시간 흡입하든, 오랜 시간 흡입하든 모든 종류의 사망률이 높아집니다. 특히 심근 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 폐암과 같은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률과의 인과 관계 역시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살인마는 사람을 차별합니다. 여러 연구는 어린아이, 어르신, 임신부 등 노약자가 미세 먼지를 흡입했을 때 특히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초미세 먼지에 노출된 산모가 저체중아를 출산한다든지, 영아 사망률을 높인다든지, 65세 이상 노인의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특별히 더 높다든지..
당연합니다. 초미세 먼지는 지능적인 살인마입니다. 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미세 먼지 때문에 갑자기 병에 걸려서 죽는 일은 없습니다. 미세 먼지는 애초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약자를 손쉬운 희생양으로 고릅니다. 어린아이, 어르신, 임신부 등의 노약자나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만성 질환자가 바로 그들이죠.
바로 다음 연재에서는 이 대목만 특별히 한 번 더 살피겠습니다. 사실 세 살배기 아이를 둔 아빠로서 개인적으로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미세 먼지 때문에 '아픈 아이'에서 '아픈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3화. 아토피와 쪼그라든 폐 "아이가 아파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초, 묵시록 같은 제목을 단 책 한 권이 나왔다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미세 먼지 PM10에 덮힌 한국의 미래"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제목은 '아픈 아이들의 세대'. 저자는 나중에 '88만 원 세대'로 유명해진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입니다.
지금도 책이 나오자마자 한 토론회 장에서 발표하던 우석훈 박사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는 서울이 "아이를 낳을 수도, 건강하게 기를 수도 없는 지옥"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 아이를 둔 엄마의 사연을 얘기하다 울음을 터뜨린 것이죠.
우석훈 박사가 지목한 서울을 지옥으로 만드는 주범은 바로 미세 먼지입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죠.
"진물에 피가 섞여 나오는 데도 아이는 긁는 것을 멈추지 못해요.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바로 그 아토피 피부염이 바로 미세 먼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토피 피부염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가 미세 먼지라고 확신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이런 주장은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 받는 10대 이하의 '아픈 아이'가 약 50만 명. 특히 0~4세의 어린아이가 약 32만 명이나 되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기이한 일이었죠.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8년이 지난 2013년 10월 24일 환경부가 보도 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대기 오염 물질,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 끼쳐."
아토피의 저주
아기를 키웠던 엄마, 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토피 피부염 걱정을 합니다. 저도 돌이 지나기 전까지 아기 몸에 작은 발진만 나도 혹시 아토피 피부염 증상은 아닌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조산 위험 때문에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던 터라서 더욱더 그랬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르는 '조산'의 끔찍한 기억도 언제 기회가 있으면 공유하겠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은 우리 몸의 면역계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입니다. 아기 때부터 10대까지는 심한 피부 질환을 앓죠. 어른이 되면 피부 질환은 나아지지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옵니다.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하게 되죠.
'아픈 아이'에서 '아픈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이 아토피 피부염도 유전됩니다. 아빠, 엄마가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거나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 같은 질환을 가진 경우에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에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입니다. 도대체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는 청결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몸이 다양한 이물질에 감염될 기회가 적어지면서 나타난 이상 반응이 아토피 피부염이라고 지적합니다. 형제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외부 감염의 가능성이 큰 아이일수록 아토피 피부염이 적다든가, 도시보다 농촌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이 적다든가 하는 연구가 이런 주장을 지지하죠.
다른 쪽에서는 우리 몸을 둘러싼 다양한 유해 물질이야말로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먹고 마시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너무 빨리 변했죠. 불과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우리 몸이 그런 물질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했고요. 그런 물질이 끊임없이 우리 몸을 공격해대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질환이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것이죠.
아토피 피부염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봐야겠죠.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미세 먼지 역시 그런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환경부의 발표가 바로 그 증거죠.
미세 먼지와 아토피의 관계를 밝혀라!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삼성서울병원 아토피환경보건센터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22명의 어린아이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매일 매일 일지를 써가면서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을 자세히 기록했죠. 그리고 이 기록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측정한 미세 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물질의 일일 농도 변화와 비교를 해봤습니다.
사실 대기오염 물질이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특히 '새집 증후군'을 유발하는 벤젠, 톨루엔 등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과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과의 관계는 주목을 받았죠. 그러니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세 먼지와 아토피 피부염 사이의 관계입니다.
초미세·미세 먼지 ↑
= 아토피 피부염 증상↑
초미세 먼지(PM2.5)가 1세제곱미터당 불과 1마이크로그램만 증가해도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0.67%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겨울에 초미세 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크게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죠. 미세 먼지(PM10)도 비슷해서 1세제곱미터당 1마이크로그램이 증가하면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0.4% 증가했죠.
이 연구 결과대로라면, 미세 먼지가 아토피 피부염을 낳는 원인은 아닐지라도 증상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없습니다. 미세 먼지와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앞으로 더 진행된다면, 이 괴물의 정체를 더 자세히 알게 되겠죠.
임신 중 담배를 끊어봤자..
사실 아토피 피부염뿐만이 아닙니다. 미세 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때문에 우리 아이의 폐도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2004년 발표된 연구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10세 정도 되는 학생 1759명을 모아서 8년간 폐 기능을 추적 검사했습니다. 당연히 초미세 먼지(PM2.5)를 비롯한 대기오염 물질도 측정해서 양자 간의 관계를 살폈죠. 결론은 어땠을까요? 초미세 먼지에 많이 노출된 아이가 적게 노출된 아이에 비해서 폐의 호흡 기능이 정상 상태의 8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4.9배나 높았습니다.
임신 중 담배 피우는 수준과 비슷하다
이렇게 아이의 폐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임신 중에 담배를 피운 것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초미세 먼지 농도가 높은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임신 중에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폐 기능이 떨어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은 어떨까요?
(여기까지 연재를 읽으신 분들은 당장 이런 반문이 나올 법합니다. '미세 먼지가 나쁜 건 이제 알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이제 그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4화. 1급 발암물질 마시며 외출하는 서울시민
2015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
아침이 밝았지만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잿빛으로 흐릿했다. 며칠째 계속된 스모그 탓이다. <르몽드>가 "꽉 막힌 방에서 어른 8명이 동시에 담배를 피우는 셈"이라고 묘사한 바로 그 대기오염이다. 평소보다 더 많은 교통경찰이 여기저기 서 있다. 본격적인 월요일 출근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한 차량 2부제 단속에 일부 운전자가 반발한 탓이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하루, 전기·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을 제외하곤 끝자리가 홀수 차량에 한해 주행을 허락했다. 시내를 통과할 때 최대 속도도 시간당 20킬로미터로 제한했다. 이날의 차량 제한 조치는 23일의 대기오염을 걱정한 파리시의 요청을 정부와 경찰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차량 제한 조치를 요청했던 '앤 히달고' 파리 시장은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며칠 동안 계속된 요구에 정부가 23일 교통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며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파리시의 이런 차량 제한 조치는 1년 만이다
2014년 3월 17일에도 (그날도 월요일이었다) 며칠째 계속된 높은 미세먼지를 이유로 홀수 차량 운행을 강제했다. 다만 당시는 일주일간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의 2배를 넘는 180마이크로그램에 이르렀다. 하지만 23일의 차량 제한 조치는 달랐다.
미세먼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 수도권 대기오염 감시 기구 '에어파리프(Airparif)'가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발표한 파리시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1제곱미터당 76마이크로그램. 기준치 80마이크로그램에 못 미치는 수치지만 차량 제한 조치가 예정대로 강행된 것이다. 시민의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대기오염, 특히 미세먼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같은 시간, 서울은 달랐다
파리의 차량 운행 제한이 결정된 21일, 한국은 황사가 덮쳤다. 어김없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도 덩달아 높아지기 시작했다. 21일 오후 5시, 결국 서울에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 그 시각 서울시 마포구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1세제곱미터당 125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아 기준치(시간당 평균 120마이크로그램)를 웃돌았다. 서울시 전체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82마이크로그램.
날씨가 비교적 포근했던 주말 오후, 서울 시내 곳곳에는 황사 바람을 무릅쓰고 외출한 이들이 많았다. 가끔씩 면 마스크를 쓴 이들이 보였지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부분적으로 차단하는 방진 마스크를 쓴 이들은 거의 없었다.
호흡 할 때마다 먼지가 서울 시민 몸속 깊이 파고들었다.
초미세 먼지의 습격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서울시는 22일 오후 2시, "초미세 먼지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80마이크로그램을 밑돈다"며 초미세먼지 주의보를 21시간 만에 해제했다.
그동안 서울시가 유일하게 한 일은 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했을 때, 미리 알림 서비스를 신청한 약 2만 명(2015년 3월 말 기준)의 시민에게 아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실외 활동 및 자동차 운행 자제 요함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중국에서 날아오는 끔찍한 황사 바람과 오염물질은 문제가 아니냐고요? 다음 연재에서는 황사 바람이 미세 먼지를 둘러싼 대응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쓸데없는 데에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귀띔하자면, 중국에 백날 나무를 심어봤자 미세 먼지는커녕 황사 바람도 막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