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俠女, A Touch Of Zen)
최용현(수필가)
1960년대 말, 중국검술영화의 전성시대에는 호금전과 장철이라는 두 걸출한 감독이 있었다. 장철이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심야의 결투’ 등에서 검투액션의 폭력적 장르미학을 추구했다면 호금전은 ‘방랑의 결투’ ‘용문객잔’ 등에서 검투액션의 안무적(按舞的) 표현미학을 추구했다. 호금전의 그런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가 1969년 작 ‘협녀’이다.
이 작품은 청나라 포송령의 단편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 중 ‘협녀’를 영화화하여 1971년 개봉한 것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1973년 프랑스의 한 영화평론가가 서방세계에 알리면서 화제가 되었다. 1975년 칸영화제에서 중국영화 최초로 기술상을 수상하였고,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명나라 말, 서른 살 노총각 선비 고성제(석준 扮)는 한적한 시골에서 과거시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책이나 읽고 초상화를 그리며 홀어머니와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구양년(전붕 扮)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하는데….
고성제는 옆집 폐가에 사는 미모의 양 낭자(서풍 扮)에게 한 눈에 반한다. 고성제의 어머니도 몸살로 몸져누웠을 때 극진히 간호를 해준 양 낭자를 며느리로 삼아 대를 잇고 싶어 한다. 양 낭자도 고성제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터라 둘은 폐가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고성제는 양 낭자가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충신의 딸이라는 것과 구양년이 그녀를 잡으려고 온 비밀정보기관 동창의 관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 낭자는 아버지를 따르던 석 장군 등과 함께 동창의 병사들에게 쫓겼는데, 무예고수인 혜원대사(교굉 扮)의 도움으로 추격을 물리쳤고 그에게서 검술을 배운 뒤 이 폐가에 숨어살았던 것이다.
양 낭자 일행은 고성제와 함께 피신하다가 추격해온 구양년 일행과 대나무 숲에서 검투를 벌이고, 여기서 양 낭자는 구양년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동창에서 대규모의 병사들을 보내오자 고성제는 폐가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내고, 이들이 야간에 기습을 해오자 풍경(風磬)과 허수아비로 귀신놀음을 하며 다연발 화살 등으로 모두 일망타진한다.
다음 날, 양 낭자가 석 장군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리자, 고성제는 그녀를 찾아 헤매다가 혜원대사의 사찰로 향하는데, 이를 본 양 낭자는 고 씨의 대를 이을 것이라는 메모와 함께 그의 아기를 고성제에게 넘겨준다. 혜원대사는 양 낭자를 돕다가 동창의 수배자가 된 고성제를 보호해주라며 양 낭자와 석 장군을 다시 속세로 내려 보낸다.
한편, 황성을 방위하는 금의위에서는 무예고수인 부사를 보내 양 낭자 일행을 쫓기 시작하고, 양 낭자와 석장군은 부사와 대결하다가 부상을 입는다. 이때 혜원대사가 나타나 부사를 제압하지만, 혜원대사는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며 거짓으로 무릎을 꿇은 부사의 비수(匕首)에 옆구리를 찔리고 만다.
중상을 입은 혜원대사는 바위산을 올라가는데, 피가 도포자락에서 금빛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진 부사는 벼랑으로 떨어진다. 고성제는 아기를 안고 산을 내려가고, 혜원대사는 바위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좌정하면서 열반에 들어간다. 양 낭자와 석 장군이 그 모습을 우러러 보며 경배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대만의 자본을 투입하여 대만에서 만들었지만, 홍콩 쇼브라더스의 제작 방식대로 만들고, 대륙을 배경으로 한 명나라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범중국영화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러닝 타임이 3시간을 넘지만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첫 화면에서 캄캄한 밤에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죄에 얽매인 속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스님들의 밧줄에 옭아 매인 부사야말로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아니겠는가. 또 혜원대사의 머리 뒤로 항상 강렬한 태양이 후광처럼 비치는 것은 속세를 초월한 혜원대사의 높은 불력(佛力)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무협영화를 통틀어 명장면으로 꼽히는 대나무 숲 대결은 양 낭자가 석 장군의 팔로 도움닫기를 하여 대나무에 높이 매달렸다가 수직으로 낙하하면서 상대방을 찌르는 필살기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장이모 감독의 ‘연인’에 나오는 대나무 숲 장면은 모두 이 장면에 대한 오마주이다.
이 영화는 무협영화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살벌한 검투장면을 경극의 춤동작처럼 안무하여 카메라에 담아냈고, 동작과 움직임에 맞춰 중국 전통악기들을 사용하여 효과음을 내어 리듬감을 살렸다. 또 불교적인 선(禪)을 스토리에 잘 녹여냈다는 점에서 무협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도 받고 있다.
꽃나무 사이에서 술 한 병 들고, 나 홀로 술을 따르네.
잔 들고 달님 맞으니,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 되었네.
달은 술을 못하고, 그림자는 나를 따라다니기만 하네.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도 있으니, 봄이 가기 전에 즐겨보세.
양 낭자가 고성제를 유혹하면서 낭송한 이 시는 당나라의 천재시인 이백의 ‘월하독주(月下獨酌, 달 아래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의 앞부분이다. 고성제와 하룻밤을 함께 한 양 낭자는 폐가에서 동창의 병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난 뒤에는 혜원대사의 사찰에 가서 고성제의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임신을 했으면 배가 불러와야 하고 행동도 둔해져야 하는데, 그동안 양 낭자가 계속 악당들과 검투를 벌여온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쨌거나, 여주인공 서풍은 대만의 금마장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실력파 배우가 되었다. 중국의 톰슨그룹 회장과 결혼한 후에는 ‘톰슨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설립하여 영화제작에도 참여하였다. 남자주인공 석준은 대만의 간판배우로 활동을 해오다가 호금전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48분짜리 다큐멘터리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그 기록영화 ‘호금전’이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첫댓글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 유명한 와호장룡의 대나무 숲 결투씬이 이 영화로 모티브 삼았다니..
많이 궁금해 집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암만 영화 매니아라고 자처하면서 아는체 해도
못본 영화가 참 많네요 ㅎㅎ
아무래도 여성들은 중국무협영화를 남자만큼은 좋아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 '협녀'는 여성이라도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워낙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아주 잔혹한 장면도 없으니...
인터넷에서 찾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정말 재주있는 사람들의 인생역전
호금전 감독 말인가요? 아니면 양 낭자? 알듯 말듯...
감사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는 못보지만 내용이라도 읽으니 이아니 기쁠손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오래된 영화는 인터넷 검색만 잘하면 그저 볼수도 있어요..
꼭 함 봐야겠네요.
꼭 보시길...
저도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이 무서워... 항상 조심해야한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이 제일 무섭죠.
좋은 글 ..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