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이 짛은 정암촌,,,한 모퉁이로...정암산 전체가 보이고 있다......"충천도 아리랑"이 숨쉬는 이곳에 우리 민족들
자리 잡은것은 1938년이라고 한다...
정암촌에서 우리가 만난 첫 사람은 바로 이분이다...함북이 고향이며 정암에서 젊어서부터 작은 위생소를 차리고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아온 분이다..
후더운 인정의 할아버지 별아씨님의 물음에 에누리없는 답을 주셨다. 물론 점심 식사전이라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발을 상하여 비닐로 싸매고 있지만 미소만을 잃지 않고 계신다... 산촌의 특유한 인품을 엿볼수 있다..
충청도 분을 찾는다고 하자 직접 길아내까지 서서 충청도 할아버지네 문고리까지 잡으신 할아버지...또 그 살인
미소이다...ㅎㅎㅎ
우리는 충천도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다. 79세에 홀로 사시는 분, 하지만 아주 명석한 두뇌로....세월과 력사를 력
력히 기억하고 계셨다...
문화탐방으로 할아버지를 마주한 별아씨님.. 평소에 안쓰던 록음기여서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사용법이 왜 그
렇게도 까다로운지.......식은땀을 쭉 뺐다.. 준비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록음기는 그 나름대로 작용을 하
게 됐다...ㅎㅎㅎ
필도 글쎄 깜빡.....곁의 사람의 것을 빌려서 사용, "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아라" 별아씨님 이렇게 한탄을 했
다......그런데 다간 세월을 어찌할고?.... 지금처럼 만 살아 줬으면 좋겠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ㅎㅎ
만사준비 완료.."취재전쟁"에서는 누구보다 빈틈이 없어 보인다. 다들 두분의 대화를 열심히 들었다.. 일언방구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ㅎㅎ
79세의 할아버지, 2년전에 할머니를 여이고... 홀로 사시는데 자식들이 효도를 잘 한다고 한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딸들이 한달에 한번씩 찾아 뵙고 채소도 갖고 오고 돌아 갈때는 5백원의 돈을 드린다고 한다..ㅎㅎ 자식복은 무지
계시는 분이다...1938년에 충천도에서 암촌에 와서 지금까지 71년간 정암촌을 떠나 본적이 없는 분이다..정암의
살아숨지는 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산나물 캐로 산에 오른다는 할아버지.. 구들에는 할아버지가 에서 캐온 여러가지 나물들을 가득하다.
건전지, 담배. 효자손,,,할아버지의 "다정한 친구"들이다.......
식사는 간소하게 하신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길을 잃은 주방은 한산하기만하다..,,
정정하다가 불시에 중풍으로 쓸어져서 끝내는 일어 나지 못하고 저 세상을 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배
불로 태우는 할아버지...지금까지 마음속에.. 꽉 차있는것이 바로 할머니란다. 평범하면서 위대한 사랑이여!!
그 옛날 시골집에서 보았던... ?/?
헤여지면서 별아씨님 전선생님 할아버진 김씨 기념사진.. 뒷쪽에 지금 할아버지가 사는 은 할아버지가 50년전에
손수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처마밑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강남갔다가 돌아와서는 할아버지를 동무해준다고 해요..
50년을 배경으로 한장,,,취재 완수해서 활짝 미소,,,,,,,,못하는 일 없구려..별아씨님..ㅎㅎㅎ
이번 산행 넘 즐거웠다면서 다시 기회를 많이 줄것을 간절히 바란,, 김씨, 50년의 집앞에서 기념포즈...ㅎㅎ
정암촌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도문교두를 돌아봤어요... 뒷쪽에 조선 남양시......멋지 기념사진으
산행을 마감하는 전선생님........수고...
다음에도 즐거운 산행이 되기를 바라면서..멋지 포즈를 취하려 노력을 했네요..ㅎㅎ
정암촌에 관한 상세한 사진은 이제.. 별아씨님이 올립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첫댓글 정암촌에 나도 70년대에 가 보았는데 .사진으로 이렇게 보니 옛날에 정경이 다시 눈앞에 떠오릅니다.
철이님 상세히 밝혀서 나는 뭘 쓸까 고민 고민 수고 했습당 근데 먹는 모습 자기는 안먹은척 하는데 제일 많이 먹구서 세미를 쓱 덜 익었구려 좀 고쳐야 겠네
철이님 , 별아씨님, 언제나 세심한 관찰력과 생활미가 풍기는 사진과 글을 쓰셔서 많은 공감을 느끼고 있는 저임니다. 항상 배려심이 많은 두분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대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슴다!!!
충청북도 할아버지를 보니 볻라가신 아버님색각에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그리고 별아씨님 열심히 취재하는 보슴 참아흠답습니다요' ㅎㅎㅎ
충청북도 청주아리랑을 고히 간직한 정암촌 감회가 새롭습니다1930년대 일제의 강점기가 시작 될 때 일제는 만주(현연변)로 이주를 하면 땅을 무상으로 주겠다고 충청북도 양반들을 데려 갔다. 당시 아버지.어머니를 따라서 지금의 연길지역으로 이주하여 농토를 개간하고 자리를 잡아 정암촌이 이루어진 것이다. 라기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따라서 8세때 정암촌에 정착을 한 1세대 이다. 정암촌은 충청북도 사람들만 80가구나 모여사는 곳이다. 2000년대 초에 충청북도에서는 이분들을 돌아가시기 전 고향으로 초청하여 한을 풀어주었다.
청주아리랑 = 시아버지 죽어서 좋았더니/ 왕골자리 떨어지니 생각나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밭을 매며 부르는 농요입니다.
소인은 1996년에 정암촌을 찾아 라기천 할아버지도 뵙고.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철이님.아씨님 이렇게 사이버상으로 정암촌을 다시보니 감게무량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정암촌 탈바꿈했어요. 초가집 모두 허물고,청일색의 별돌집으로요.마을내도 아주 산뜻하게 잘 꾸며놓았구요.저의 고향이 바로 정암촌 아래동네 석두촌이라서 정암촌 잘 알죠.정암촌에 친구들도 많구...저 주인공 할아버지도 본지가 한참 오래 됬는데 아직도 건강하신지...지금은 외지에서 살다보니 그전처럼 자주는 못가보고 2006년 겨울에 한번 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