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경기도 여주로 갔습니다. 사촌여동생의 딸, 즉 이종생질녀? 내종질?의 결혼식에 참석했지요. 촌수가 어렵네요. 아버지가 홀홀단신이라 촌수에 어둡습니다. 미국이라면 그냥 친가든 외가든 모조리 그냥 niece로 통하는데... 어쨌든 갔습니다. 갔어요. 새벽에 집에서 나와 부산 남산동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4시간 가까이 투어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이종사촌의 친가에 대한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신부가 체격이 좋습니다. 신랑은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비쩍 말랐고. 그래도 신랑이 유순해 보이고 신랑의 부모, 친척들도 모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걸 보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 딸은 아니지만 구박받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주례가 재미있는 분이네요. 국가에 충성 운운 하는 걸 보니 ‘보수꼴통’ 인 모양입니다.
문득 제 앞을 보니 7살 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앉아있는데 옆으로 보이는 속눈썹이 길고 보조개가 있네요. 귀여워서 뒤로 내민 손을 잡자 뒤로 보고 생긋하며 인사를 합니다. 서울 쪽 아이라 매우 순해 보입니다. 선입관이긴 하지만 제가 있는 경상도 아이라면 아마 무서운 눈초리로 일단 제압하고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 이름 뭐냐?”
“착하게 생겼네. 너 어른 돼서도 착할 수 있지?”
“네”
정망 착하고 영리하고 순하게 생겼습니다. 한 30년 쯤 뒤에 소식을 물어봐야겠습니다. 틀림없이 동량(棟樑)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 때까지 제가 살아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제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다보면 대체로 그런 예감이 들어맞습니다. 영리하고 순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더군요.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이들을 싫어했습니다. 시끄럽고 불손하고 더럽고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른들의 추한 모습이 싫어져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참 귀엽게 느껴집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귀엽게 느껴지는 마음과 비슷합니다. 특히 개의 경우에 눈빛만으로 개가 저를 무조건 반기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개, 고양이, 아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 호감을 가지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오랜만에 과식을 하고 하행 길에는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버스 안은 노래방으로 변신, 미시들의 발랄한 춤사위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노래실력도 거의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저도 난생처음 흔들어재꼈지요. 사촌이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군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평소 안 하던 짓이니. 모두들 남 눈을 의식하지 않고 위선적이지 않은 모습이 좋습니다. 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옛날에는 농촌에서 살던 시골사람들입니다. 위선과 거짓과 배신과 악다구니와 교만에 찌든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짬을 내어 더러운 정구사 이야기를 하려다가 제가 일요일에 보았던 순하게 생긴 아이, 선량한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넵^^
잘 하셨습니다.
참 신앙은 생활그자체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구사 사제들 얼굴 한번 보세요...그얼굴에는 증오와 짜증과 분노만 보이지 그얼굴에 사랑과 화평과 너그러움이 보이지 않아요..얼굴은 그 마음을 나타내는거예요..전 평범한 사람들의 선이 결국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수필 잘 읽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 묘한 것이 마음속에 미움을 담고 있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 미움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됩니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수녀님께도 "안녕하세요" 혹은 "찬미예수님"하고 인사를 했는데 요즘은 저 수녀도 종북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제가 이럴진데 종북이념에 함몰되어 사는 신부들은 어떨까요? 지옥이 따로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경기도 여주에서 부산까지... 버스안에서 신나셨겠습니다.... 아직까지 세상은 착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