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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진실을 통한 평화의 장<베트남 나비평화기행①> 호치민 증적박물관은 말한다
호치민=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2015년은 베트남전쟁 종전 40년입니다. 그리고 한국군 전투병 파병 50년입니다. 지금까지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베트남전쟁이 왜 발발했고, 어떻게 진행됐는가에 대해 천착해왔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고, 베트남전쟁 피해자들과 참전 군인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있을 뿐, 가해자는 진실의 물음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베트남전쟁이 왜'라는 물음을 넘어서 한국사회는 "왜 민간인을 학살했는가", "어떻게 사죄해야 하는가"에 대해 늦었지만 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어야 합니다. <통일뉴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나비기금>이 마련한 '베트남 나비평화기행'(2~9일)에 함께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학살에 당사자가 사죄하고 해결에 나서기를 바라며 평화를 찾는 동행기를 마련했습니다.
▲ 베트남 호치민 전쟁증적박물관 첫 전시실에 들어서 마주한-- 미국 독립선언서.[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 베트남전쟁 종전 직후인 1975년 9월 호치민시(옛 사이공)에 들어선 '전쟁증적박물관'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문구이다. 그리고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참혹한 실상이 별다른 해석없이 연이어 등장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마련한 '2015 나비기금과 함께하는 나비평화기행' 참가자 20여 명이 3일 첫 번째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을 방문했다.
미국에 의해 전쟁의 상흔을 지닌 나라가 미국 정부와 국민의 금과옥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어적인 현장이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반어법을 통해 자유, 행복의 천부인권이 미국인만의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권리박탈에 대해 세계인에게 반문한다.
'전쟁증적박물관'은 전쟁은 기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증적(證跡, remnants)'의 뜻에서 보듯, 흔적을 통해 전쟁을 되새기는 박물관이다. 실제 베트남은 베트남전쟁 종전일에는 승전이 아닌 종전행사로 치른다.
'더러운 전쟁'으로 불렸던 베트남전쟁은 미국과 한국 등 참전국이 패배했음에도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말자는 승전국 베트남 정부와 국민의 전쟁을 대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베트남의 전쟁기억 구조물은 '전쟁증억박물관' 외에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담은 '밀라이 박물관'과 푸엔성 '한국군 증오비'가 대표적이다. 모두 1975년 종전과 함께 세워졌다.
▲ 베트남 호치민 전쟁증적박물관. 1975년 종전이후 '미국 전쟁 범죄 박물관'으로 문을 연 뒤 199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은 '평화박물관'으로 이름을 다시 바꿀 계획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물관 내부에는 전쟁을 기억하자는 취지처럼 다양한 사진과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종군기자가 아닌 전쟁기자로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고엽제 피해관이 있다. 미국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총 7천 2백만 리터(L)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이 중에는 4천 4백만 L의 고엽제가 포함되어 있고, 여기에는 170kg의 다이옥신이 함유되어 있다.
고엽제의 피해를 입은 베트남 국민은 약 4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 고엽제 피해 참전군인을 1만 5천여 명으로 공식 인정하지만, 피해군인 측은 6만여 명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전시물이 있다. 바로 고엽제 피해를 입은 산모가 출산한 사생아들의 실물이다. 포르말린에 담긴 사생아들을 바라보는 것은 불편하다. 왜 박물관은 관람객에게 불편을 감수하도록 하는가. 이유는 하나다. 전쟁피해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생아를 전시하도록 하는데는 엄마들의 저항의식이 담겨 있다.
베트남에서는 현재까지 한 해 15만 명의 고엽제 피해 아이들이 출생하고 있다. 그런데 고엽제 피해를 입은 산모들은 4번의 사산 끝에 아이를 낳는데, 이들이 모두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어렵게 가진 아이가 죽음을 안고 태어나자 엄마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는가. 신의 저주가 아니라 미군이 전쟁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살포한 고엽제가 원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 병원인 '뜨즈병원'에 아이들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항의의 표시로 자신의 아이를 보냈다. 현재 병원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수많은 사생아들이 포르말린 관에 담겨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엽제 피해 산모가 낳은 사생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또 다른 전시물은 고엽제 피해를 입은 한국군의 앙상한 사진이다. 'who am I'라는 제목의 사진은 '전쟁 피해자'라고 설명한다.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군'을 '전쟁 피해자'라고 하는 표현은 박물관이 말하려는 의미를 알게 한다.
'전쟁증적박물관' 마지막 전시실은 '역사의 진실'이다. 1차 인도차이나전쟁, 베트남전쟁 등으로 이어진 침략전쟁을 사진과 도표 등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 참전군의 규모도 담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진실은 무엇인가. 왜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진실의 물음에 답을 해야하는가.
박물관은 로버트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의 회고록 문구로 갈무리한다. '우리는 실수, 그것도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이유를 설명해야 할 부채를 안고 있다'.
베트남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호치민은 1945년 9월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자유와 독립과 진실을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다. 전 민족은 자유와 독립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정신과 역량, 생명과 재산을 바칠 것을 결의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적혀있는 미국의 독립선언문.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생명과 자유, 행복의 추구권'.
▲ 미군 외 백마부대, 맹호부대, 청룡부대 등 한국군 파병부대 마크와 주둔지역이 표시된 지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물관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한 실수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해야 진실을 알 수있다. 그리고 진실은 미국, 한국 등이 답하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진실은 평화와 맞닿아있다.
'전쟁증적박물관'은 1975년 '미국 전쟁 범죄 전시관'에서 출발, 1995년 현재 이름으로 개칭됐다. 하지만 이제 '평화박물관'으로 이름을 다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평화는 진실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우리가 이렇게 싸웠노라'는 방명록에 적힌 선명한 한글이 아니라 진실은 저 너머 어디쯤이 아닌 바로 우리, 더러운 전쟁에 피를 묻힌 손과 입에서 나올 차례다. 그것이 바로 평화의 출발이다.
▲ 박물관 전시실 내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미군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소위 베트콩)을 생포한 뒤, 헬기에서 떨어뜨리는 고문을 자행한 사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출처: <통일뉴스 2015.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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