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보다 빠른 사람의 수명
윤사월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의 수도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답니다. 보살(부처님 전생)은 총명한 거위로 태어나 9만 마리의 거위들에게 둘러싸여 심봉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위 보살은 무리들과 함께 염부제 평원의 호숫가에서 익은 나무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허기를 채우자 무리들을 이끌고 바라나시의 상공을 날아갔습니다. 거위 무리들을 이끌고 바라나시 사람들을 위해 좌우로 회전하며 무리지어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묘기를 펼쳐보였습니다.
그 때 범여왕이 그것을 보고 대신들에게
“저기 거위들을 이끌고 있는 새도 반드시 나와 같이 왕일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보살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 화관과 피우는 향과 바르는 기름 등을 가지고 보살을 우러러 보면서 신하들에게 갖가지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보살은 왕이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고 다른 거위들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저 왕이 내게 존경과 사랑을 표하고 있는데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당신과 사귀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 왕과 사귀어 벗이 되자.”
그렇게 말한 대장 거위는 왕궁의 뜰로 내려가 왕과 친절한 벗의 정을 맺았습니다. 왕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바라나시를 떠났습니다.
어느 날 왕이 동산에 올라 놀고 있을 때 보살은 아뇩달 호수에 나가 한 날개에는 물을 또 한 날개에는 전단향 가루를 가지고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 물로는 왕의 몸을 씻고 전단향 가루를 몸에 뿌리자 왕은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어서 신하들과 궁중의 여럿이 보는 앞에서 쾌속한 날갯짓으로 공중 묘기를 펼쳐 보인 다음 심봉산으로 돌아왔습니다. ]
그 후 왕은 못 견디게 보살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내 벗이 올 것인가?”
왕은 거위보살이 날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에 보살을 따르는 두 마리 용감한 젊은 거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태양과 시합을 해 보겠다고 대장인 거위보살의 허락을 청했습니다.
“태양의 빠름은 대단한 것이니라. 저 해님과 달리기 시합은 당치도 않다. 너희들은 반드시 도중에 지고 말 것이다. 안 된다.”
하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삼 요청했습니다.
자기들의 힘은 생각하지 않고 고집을 세우고 보살에게 알리지 않고 해님이 아직 오르기 전에 달리기 시합에 나서 유간다타산 꼭대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보살은 그들이 보이지 않으므로 간 곳을 물어 알고 난 다음 혼자 생각하였습니다.
‘저들이 해님과 달리기 시합이란 될 수 없는 일이라 반드시 도중에 뻗고 말 것이다. 나는 저들의 목숨을 건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
보살은 유간다타산 꼭대기에 가서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오르자 두 마리의 젊은 거위는 해님과 함께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벌써 피로해 날갯죽지 겨드랑이가 불이 붙는 듯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보살거위에게 신호를 보내었습니다.
“형제여, 나는 이제 끝장입니다.”
“두려워하고 겁먹지 말라. 나는 너의 목숨을 건져주리라.” 하고 두 날개로 보호대를 만들어 안전하게 싸아 심봉산으로 돌아와 여러 거위들 가운데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날아갔던 그 한 마리도 한낮이 가까워지자 그만 피로해 날개에서 불이 붙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지쳐서 떨어질 듯 하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형제여. 나도 이제 더는 날 수 없습니다!”
보살은 먼저와 같이 보호대로 그를 싸 안고 심봉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해님은 하늘 한 복판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내가 체력을 시험해보리라.’
보살거위는 빠른 속도로 날아 유간다라산 꼭대기에 이르러 앉아있었습니다. 이어서 심호흡을 한 다음 하늘로 솟구쳐 해님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해님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차라리 바라나시에 가서 왕에게 유익한 법문을 함이 백 번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머리를 돌렸습니다. 해님이 서쪽바다에 지기 전에 철위산을 끝에서 끝까지 날아 넘고 속도를 낮추면서 염부제 평원을 끝에서 끝까지 날아서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보살은 왕궁의 창 앞에서 공중제비의 연기를 했습니다. 이것을 본 왕은
“오, 내 벗이 왔다!”
하고 기뻐하며 황금대에 날아 앉도록 주선하였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반갑도다 자 들어오시오. 그대 여기 오시면 주인이 되리니 아무도 두려워 말고 나와 이야기 합시다”
왕의 말을 듣고 보살거위는 황금대에 앉았습니다.
왕은 천만금의 값어치가 있는 바르는 기름을 보살의 두 날개 밑에 발라주고 황금쟁반에 담은 맛있는 밥과 꿀사탕을 보살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벗이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이제야 오셨습니까?”
이에 보살은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였습니다.
“벗이여. 태양과 달리기 시합하는 그 빠름을 내게 보여주실 수 없을까요?”
“대왕님 그 빠름은 보여드릴 수 없고 다만 그와 비슷한 것을 보여드리지요. 그러려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화살을 빨리 쏘는 활꾼을 불러오십시오.”
왕은 곧장 활꾼을 불러들였습니다.
보살은 그 중에 힘 센 네 사람을 뽑아 왕궁에서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돌탑을 세우고 보살 목에는 작은 방울을 달고 그 돌탑 꼭대기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네 사람의 활꾼을 각각 돌탑 가까이서 사방을 향해 세우고는
“대왕님. 이 네 사람에게 동시에 사방을 향해 네 개의 화살을 쏘게 하십시오. 나는 그들이 쏜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와서 그들 발 앞에 떨어뜨려 보이겠습니다. 내가 화살을 쫓아간 것을 내 목에 달린 방울소리로 알 것입니다. 내 모양은 보이지 않을 터이니까요.” 보살은 통쾌하게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였습니다.
거위보살은 활꾼들이 동시에 쏜 네 개의 화살은 어려움 없이 곧장 붙잡아와서 그들 발 앞에 떨어뜨리고 돌탑 꼭대기에 앉아 그 모양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었습니다.
“대왕님 내 빠름을 보셨지요? 이 빠름은 내 최상의 빠름도 아니요, 중간도 아닙니다. 이것은 내 최하의 빠름입니다.”
왕은 이것을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벗이여 그러면 당신의 빠름보다 더 빠른 것이 또 있습니까?”
“있고말고요, 대왕님. 저 중생들의 수명은 내 최상의 빠름보다 천 배 내지 10만 배도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보살거위는 이렇게 말하고 한 순간 동안 나고 죽는 우주법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였습니다. 왕은 보살의 이 말을 듣고 죽음의 두려움에 휘말려 들었습니다. 이어서 의식을 잃고 벌벌 떨면서 마침내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보살은 왕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겨우 의식은 회복되었습니다.
“대왕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죽음의 의식을 가지십시오, 바른 법을 행하고 보시 등 복덕을 쌓으십시오. 부디, 게으르지 마십시오……”
하고 훈계 하였습니다.
“벗이여 나는 이제 당신과 같이 지혜를 갖춘 스승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부디 심봉산을 떠나 여기 계시면서 내게 법을 가르치는 내 스승님이 되어주십시오, 벗이여. 그대의 소리만 들어도 사랑스럽고, 그 모습을 보면 더욱 존경스러워요. 오, 내 사랑 거위 보살님이시여. 언제나 내 곁에서 떠나지 말고 살아주십시오……”
“언제나 계속해서 나를 존중한다면 나는 그대의 집에 살리라. 그러나 당신은 언젠가는 술에 취하여 ‘그 거위 삶아오너라’ 하고 말할 때가 있으리라……”
“벗이여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취하는 음료는 절대 먹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거위 보살이 다시 말했습니다.
“승냥이나 여우, 솔개의 소리는 내가 잘 이해하지만 인간의 소리는 어렵도다. 먼저는 기뻐하고 뒤에는 원수가 되는 간사한 게 사람이라네. 원컨대 대왕이시여 보시와 복덕으로 선행을 닦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오늘 ‘거위보살’ 생각하듯 만백성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내 몸같이 돌볼지어다. 알겠소이까 대왕님……?”
거위보살은 왕궁의 문을 나와 쾌속한 날개짓으로 공중제비 연기를 보인 다음 눈 깜짝할 사이에 심봉산 무리 곁으로 날아갔습니다.
-제478화 민첩한 거위의 전생 이야기
<생각키우기>
사람의 수명은 호흡지간에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살보다 빠른 것이 죽음이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는 거위 보살<전생의 부처님>의 훈계입니다.
-윤사월-
고창 선운사 그 산너머 서해가 바라보이는 경수봉 아래 작은 암자를 짓고 독거 수행 중.
○ 불교동화집 ‘반야심경을 물만 뱁새’, ‘백의관음보살’ 등
첫댓글 2012년 연간집으로 출판하기 위해 청탁한 본생경 개작 작품 제1착으로 원고지로 쓴 윤사월 선생의 작품이 이연수 국장 앞으로 도착한 것을 따님이 컴퓨터에 옯겨 보내왔기에 이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작품도 <본생경 4 원고>로 표기하셔서 이곳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회장님, 작년 연수회에서는 전문불교용어(장소와 인물 등)는 동화 속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올해는 어떠한지요?
그것은 획일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않나 생각됩니다. 필자의 판단에 따라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동화에 해설을 달 수 없고, 불교 신자가 아닌 어린이도 읽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테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