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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의 유명 건강전문잡지 ‘헬스'는 세계 5대 건강식품에 콩을 포함시켰다. 콩은 흔히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부를 정도로 영양가가 뛰어나다. 콩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식품인 콩나물과 두부는 지금도 반찬거리가 만만찮을 때 손쉽게 집어 든다. 콩나물국을 끓이거나 된장찌개를 끓이는 손쉬운 반찬거리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가끔씩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어릴 적 이 무렵이면 추수하느라 바빴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도리깨질을 하면 콩깍지에서 빠져나온 콩들이 여기저기 마구 튀었고 우리들은 멍석 밖으로 떨어진 콩들을 주웠다. 그렇게 수확한 콩으로 외할머니는 청국장을 만들고 메주를 쑤고 시루에 콩나물을 안쳤다. 잠결에 들리던, 외할머니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던 쪼르르 물 흐르던 소리, 동글동글한 콩에서 싹이 돋는 것도 신기했지만 물만 먹고도 쑥쑥 올라오는 노란 콩나물은 경이로웠다.
콩을 불려서 맷돌에 갈아서 가마솥에 넣고 저으면 몽글몽글 엉기는 부드러운 순두부를 조금 덜어내고 나머지엔 간수를 넣어서 틀에 넣어서 굳히면 단단해지는 두부도 신기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렘도 좋았지만 콩으로 콩나물을 키우고 두부를 만드는 외할머니가 정말 대단해보였다.
콩을 날 것으로 먹으면 거의 소화가 안 되지만 익혀 먹으면 65%가량 소화 · 흡수가 된다. 그러나 콩 제품인 두부는 95% 정도, 된장은 80% 정도 소화 · 흡수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콩 제품으로 콩나물, 두부, 된장 등을 많이 먹는다. 콩은 맛이 달지 않으며, 생콩은 비린 맛이 나며 너무 삶으면 메주 뜬 맛이 난다. 콩에 함유되어 있는 파이토에스트로겐(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아이소플라빈'의 맛은 쓴 편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부산 출신의 여가수가 냉장고에서 꺼내서 보여주는 음식이 낯익었다. 그녀가 고소한 맛으로 종종 해먹는다는 콩나물 장조림이었는데 이것은 콩나물은 무치거나 국을 끓이는 것으로 알았던 내가 아주 낯설어 했던 음식이다. 시집오자마자 연이은 제사와 명절에 상에 올렸던 살을 발라낸 도미와 조기뼈에 콩나물을 넣고 간장을 넣어서 푹 조리는 콩나물 장조림은 내 입엔 맞지 않았지만 생선뼈가 없을 땐 멸치를 넣어서 만들어 먹을 만큼 시집 식구들이 좋아하던 콩나물 장조림이다.
어머니는 시루에 한 동이 키운 콩나물에 제사 지내고 남은 생선뼈를 넣고 짭짤하게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다고 하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아마 더 짜게 만들어서 먹었을 것이다. 나는 알뜰하신 어머니가 그저 생선뼈가 아까워서 만들어낸 음식인가보다 했는데 부산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니 새삼스럽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끔씩 만드는데 술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콩나물국을 끓여서 국물만 따로 거르고 남은 건더기로 만드는데 의외로 고소한 맛이 있다. 멸치를 기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서 볶은 뒤 콩나물, 진간장, 마늘, 파, 양파, 설탕 약간에 물을 약간 넣고 뚜껑을 덮어 푹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뚜껑을 열고 뒤적거리면서 조려주고 콩나물이 실처럼 가늘어지면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으면 되니 간단하게 만드는 밑반찬이다.
콩을 이용해서 콩나물을 만들어서 먹었던 조상들의 지혜는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콩에는 비타민 B군이 특히 많고 A와 D도 들어 있으나 비타민 C는 거의 없다. 그러나 콩을 콩나물로 재배할 때는 싹이 돋는 사이에 성분의 변화가 생겨 비타민 C가 풍부한 식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콩을 삼국(三國)시대부터 재배하였다. 콩은 세계적인 식품으로 1,000여 가지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각종 요리에 쓰이는 콩은 400여 종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50여 종이 있다. 콩은 종류에 따라 성분이나 용도 등이 다르다.
주로 된장·고추장·간장·두부를 제조할 때 쓰는 메주콩은 백태, 대두(大豆)라고 부르며 콩자반을 만들어 먹는다. 알이 크고 단백질 함량이 풍부해 발효되면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이 많이 생성된다. 감칠맛이 있어서 간장이나 된장의 주요 재료로 쓰인다. 알이 굵고 배꼽색이 황색인 것을 고른다.
체내 콜레스테롤 함량을 떨어뜨리는 이소플라본이 0.2~0.3% 들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콩 단백질을 하루 25g 섭취하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문구를 콩 제품에 부착하도록 허용할 만큼 그 효능을 인정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 물질인 제니스테인과 다이드제인은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라 체내에서 독특한 기능을 한다. 여성호르몬 분비가 많은 젊은 여성이 메주콩을 섭취하면 여성호르몬의 흡수를 막아 유방암 발병률을 줄인다. 갱년기 여성에게는 여성호르몬처럼 작용해 갱년기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익히지 않은 메주콩엔 트립신 억제 성분이 있어 단백질 흡수를 방해한다. 또 헤마글루티닌과 사포닌 등 독성물질 때문에 어린이가 많이 먹으면 안 좋다. 올리고당인 스타키오스 성분은 장에 가스를 유발하고 설사가 자주 날 수 있다.
검정콩은 흑대두(黑大豆)라고도 하는데 특정한 한 종류의 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검은빛을 띠는 콩을 통칭한다. 흑태· 서리태· 서목태(여두) 등이 검은콩에 속한다. 흑태는 검은콩 가운데서도 크기가 가장 크며, 콩밥이나 콩자반 등에 사용된다. 서리태는 겉은 검은빛을 띠지만 속이 파랗다고 하여 속청이라고도 부르며, 콩떡이나 콩자반, 콩밥 등에 사용된다.
서목태는 다른 검은콩보다 크기가 작아 마치 쥐눈처럼 보인다고 하여 쥐눈이콩, 한방에서 약재로 쓰인다고 하여 약콩이라고도 부른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쥐눈이콩은 모든 약의 독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안토시아닌 색소 함유량이 높은 것이 약효를 높이는 원인이다. 그 밖에 항암작용, 동맥경화 예방 등에 탁월한 이소플라본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건강기능식품으로 주목받는다. 당뇨병 환자가 아침, 저녁 공복 상태에서 설사 증세가 있으면 쥐눈이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기운이 떨어지는 여름엔 쥐눈이콩을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죽염 간장에 쥐눈이콩을 1주일쯤 절였다가 매일 조금씩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검은콩은 일반 콩과 비교하여 영양소의 함량은 비슷하지만 노화방지 성분이 4배나 많고, 성인병 예방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검은콩의 효능에 대하여 "신장을 다스리고 부종을 없애며,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하며 모든 약의 독을 풀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모발 성장에 필수 성분인 시스테인(cysteine)이 함유되어 있어 탈모를 방지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꾸준히 복용하면 신장과 방광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준다. 단백질은 40%, 불포화지방산은 20%, 탄수화물은 11% 정도 들어 있어 어린이 발육에 좋다. 체내 독소를 풀어 주고 신장 기능을 도와 소변 기능을 원활하게 하며, 부기를 가라앉힌다.
그냥 먹는 것보다는 볶아서 먹으면 건강에 더 효과가 있다. 검은콩 껍질의 항산화작용을 하는 물질이나 여성호르몬을 돕는 이소플라본 성분은 볶으면 그 효능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볶은 검은콩은 하루에 10알씩 수시로 먹되, 한 번 볶은 것은 1주일 안에 모두 먹는 것이 좋다. 검은콩 1컵을 10분 정도 볶은 뒤에 식초 2컵에 담가 하룻밤 두었다가 마시면 통풍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 검은콩 30g을 볶아서 청주나 소주 1컵에 담가 하룻밤 두었다가 하루에 2~3차례 1큰 술씩 마시면 관절통에 효과가 있다.
완두콩은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풋완두 꼬투리에는 카로틴과 비타민C ,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콩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 덕분에 채소류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두뇌활동을 돕는 비타민B1이 들어 있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아이디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좋다. 소량의 청산이 들어 있으니 하루 40g 이상 먹지 않는다. 한방에서는 완두콩이 위 기능을 좋게 해 속이 더부룩하고 울렁거리거나 설사 날 때 완두콩수프나 완두콩죽을 먹으면 좋다고 한다. 당뇨병으로 인해 입과 목이 마른 구갈증상 해소와 이뇨제로도 효과 있다. 말린 완두는 콩 중에서 대두 다음으로 많은 단백질이 들어 있다.
강낭콩은 콩과 제비콩 속에 속하며, 흰색과 빨간색 등이 있다. 강낭콩은 전반적으로 색이 진하고 선명한 녹색에, 두꺼우면서도 꼬투리가 울퉁불퉁하지 않고 작은 것이 좋다. 마른 콩은 크고 윤기가 나며, 알이 고른 것이 좋다. 익지 않은 강낭콩 푸른 꼬투리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 단백질 등이 풍부해 요리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주성분은 녹말이지만 단백질도 많은 편이다.
강낭콩은 당뇨병 식이요법으로 좋다. 강낭콩 꼬투리 달인 물을 동물에게 투여했더니 뛰어난 혈당강하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래서 강낭콩 종자 껍질은 당뇨병 치료에 사용한다. 또한 강낭콩은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 대장암, 동맥경화 등에 효과 있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강낭콩은 술독과 복어 독을 없애 주는 기능이 있다. 설사를 멎게 하고 더위와 갈증을 해소해 준다. 밥 지을 때 넣으면 강낭콩에 들어 있는 비타민 B1·B2·B6 등이 쌀밥의 체내 대사를 돕는다.
막걸리를 넣어서 부풀린 밀가루 반죽에 강낭콩을 듬성듬성 넣어서 쪄주시던 술빵과 두부를 만드는 날이면 뜨거워서 까치발로 다니던, 검은 보자기를 걷어내면 노랗게 올라와있던 콩나물시루가 있던 어린 시절 그 방, 그리고 행주치마를 두르고 씩씩하게 일하시던 외할머니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출처/두산백과, 헬스조선,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