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7 다시 ‘간토(關東)조선인대학살’ 진상규명 법안 제정을 국회에 호소한다.]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지역’에서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가옥이 소실․파괴되었고, 10만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얼마 전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에서 받은 것처럼 당시 일본이 받은 충격과 상처도 컸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그런 자연재해를 당한 백성과 지역에 깊은 위로의 말을 먼저 전한다. 또 돌아가신 이들의 명복을 빌며 그런 상처가 하루 속히 치유되기를 기원한다.
100년 전 간토지역에서 일어난 대재앙은 일본인 못지 않게 조선인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간토대지진 당시 간토지역에 주로 노동일을 하며 살았던 조선인 6천6백여명이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근거없는 유언비어에 의해 희생되었다. 지진이 일어나 대혼란이 야기되자 그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유언비어가 날조되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있다’, ‘조선인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있다’는 등 책임전가를 시도하려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내무대신으로 있던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등이 주도하여 계엄령을 선포했다. 미즈노는 3.1운동 직후 조선의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와 함께 정무총감으로 부임했던 인물로서 뒤에 일본국 내무대신으로 전임했다. 미즈노는 계엄 선포이유를, ‘조선인 내습’이라는 폭동설 때문이라고 했다. 계엄령은 이렇게 조선인들을 얽어 정당화해 갔다. 이 때 조선인 학살에 앞장 섰던 기관은 일본 군대와 경찰, 그리고 정부 후원하에 조직된 민간단체 자경단(自警團)으로, 도쿄에만 1천여개가 넘었다.
이 때 학살자들은 말소리를 통해 조선인을 식별했다고 한다. 강점 후 조선총독부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별하기 위한 매뉴얼을 작성한 바 있다. 조선인은 “탁음(濁音) 발음이 곤란하다”든가, “일본어의 ‘라(ラ)행(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를 통행인 검문에 활용했다. ‘15엔 55센’(쥬고엔 고쥬 고젠)이라는 탁음 발음을 연속으로 말해보라고 하고 그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조선인으로 간주하여 살해했다. ‘라행(ラ行)’의 ‘라리루레로’를 반복적으로 발음해보라고 강요, 발음이 의심스러우면 처단했다.
간토대지진 때에 학살된 조선인 수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계산된 바가 없다. 일제는 언론 통제를 통해 조선인 학살 보도를 막았다. 조선 안에서는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이 9월 1일부터 11일까지 학살사건과 관련, 게재금지 602건, 차압조치 18건을 당할 정도였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보도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때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재일조선인을 통해 이를 조사토록 했고 임정 기관지인 『독립신문』등에 여러가지 보도가 있었다. 그 중 1923년 12월 5일자로 보도된 6,661명설이 가장 근사치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이는 재일본 사학자 강덕상 교수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올해 9월 1일이면 ‘간토조선인대학살’ 100주년을 맞는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한일 양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있는 조치를 취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기댈 수 있는 곳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다. 과거 19대 국회에서 2014년 4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으나 2016년 국회의 임기만료에 따라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그 뒤에도 한 두 차례 국회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00주년을 맞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법안자체를 제출하지 못한 상태다. 100주년을 맞는데도 식민지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국회는 ‘간토조선인대학살’의 ‘진상규명’과 나아가 ‘희생자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특별법을 제정해 주기를 간청한다.
100주년을 맞아 그래도 이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려고 움직이는 곳은 한일의 민간단체들이다. 다큐멘터리 등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도 민간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간토조선인대학살에 관한 한, 지금까지는 정부와 국회가 없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앞장 서는 것이 가장 순리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토대로 ‘화해 용서’의 길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서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 국회가 나서야 한다. 이 문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후손들에게 이 과제를 더 이상 미뤄서도 안된다. 진실의 바탕 위에서 돌아가신 이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도 정처를 찾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 혼령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드리는 것, 이 또한 후손들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