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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블랙야크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김성학)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일시:2007.05.20(일) 06:00~
*구간: 제2구간/35 구간 중(~성삼재~여원재~)
*산행거리(km):도상거리/실제거리:20.6, 접속거리:0.0
*산행 시간: 약8시간(휴식/식사 시간 포함/후미기준)
*구간별거리(총20.6km):~성삼재휴게소-5.2-만복대-2.2-정령치-0.9-큰고리봉-3.4-고기리다리
-2.5-덕치리(구치마을): 주촌리(가재마을)-6.75-여원재
*참석 인원(명):64(남:45, 여:19)
*차량 운행(상무점 출발:06:00):대형 리무진 버스+보조차(카니발 9인승)
*날씨: 온 종일 맑고 햇빛 강하고 더운 날씨, 바람 간간이~/청명쾌청/9.5~28도씨
*백두대간 마루금 따라 삼천리(고도:m/시간: hr : min)
~성삼재/휴게소출발(1070/08:42)~등산로초입(08:45)~작은고리봉(1248/09:17)~묘봉치/헬리포트(1108/09:27)~헬리포트~헬리포트~만복대/구례군(1438.4/10:05)~정령치/휴게소(1172/10:32)~상춘객속에 뭍침~큰 고리봉(1305/11:30)/좌/내림길~급경사 내림길~주천면고기리3거리 다리/점심(12:30)~60번 지방도/약1km(500~600/13:30)~이백면 덕치리 노치마을/운봉읍 주촌리 가재마을 농로/약500m 시멘트 길(500~600/13:56))~백두대간 비석(13:56)~산신각/노송4구루~능선길/소나무길~수정봉(804.7/14:30)~헬리포트~입망치/임도 건넘(/15:03)~임도/독도주의/좌(15:30)~주지사 갈림길/우사 뒷길 건넘/여원암 방향으로(15:36)~여원재/장동마을/국도24 도착(470/16:06)~
[산행기]
이제는 백두대간 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따로 시간 내서 준비 하지는 않으나 전날에 냉장고에 보관 할 물품 빼고는 모두 배낭 속에 적정한 위치에서 모양새을 갖추어
산행 일정에 따라 쓰일 순서대로 물품이 챙겨져 있어야 한다.
또한 사전에 일기예보를 파악하여 복장이나 액세서리 준비에 반영해서 챙긴다면 즐겁고 쾌적하며 폼 나는 산행을 할 수 있으리라
이번 산행은 성삼재에 모두 내려 주고 고기리에서 차가 대기하기로 해서 점심 물품을 차에 두고 가기로 해서
배낭에 넣지 않고 보조 주머니에 따로 챙겼다 .
금호동에서 택시로 상무점에 5:30에 도착하니 바로 홍보이사/블랙야크(박정남)님이 오신다.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셨다.
어제도 늦은 퇴근에 피곤을 떨칠 새도 없이 잠의 끝트머리을 여기까지 질질 끌고 왔다
매장에서 커피 한 잔으로 대간 모드로 셋팅하고 뒷풀이 물품을 함께 챙겼다
오늘 인원은 64명 1구간 때보다 더 많아졌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차 한 대로는 불편해서 전체 인원을 수용하기에 무리라는 판단이 선다.
보조 차량으로 블랙야크(박정남)님의 카니발 9인승을 함께 운용하기로 하고 슬림한 몸매로 선발하여 9명을 담당 했다
그래도 버스는 만원 버스가 되어 통로에 보조 의자를 배치하고 회장(산아/이점재)님은 안내양? 자리에 나는 입구 바닥에 앉았다
유람삼은 여행길이라면 용납하기 어려운 좌석 환경이지만 민족의 정기를 찾고 나을 바로 세우고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뜻있는 목적 산행여행인지라 약간의 불편함도 여행의 일부라 여긴다.
다만 연배 있으신 대원님들께 이동 시간에 편함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운영상 불가피한 사항이니 넓은 이해을 구할 뿐이다
안전운전이 돋보이는 리무진 김봉락 사장님이 우리 대원들과 일체감을 갖고 끝까지 함께 하기로 하셔서 고맙고
여러 모로 배려 깊게 챙겨 주셔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명의 커튼을 젖히고 오늘도 아름다운 꿈의 끄나풀을 이으려 2주의 시간을 역류해서 성삼재로 출발한다.
블랙야크 상무점 출발(06:00)~문예회관 출발(06:20)~
1구간 때보다는 정돈된 모습으로 출발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시간 약속은 상대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서광주 IC을 빠져 악명 높은 88고속도로로 진입(06:40) 한다.
88고속도로(고속국도 12)는 중앙선이 없어 사고 났다하면 사망사고 확률이 높아 살인도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요즘은 개선 공사가 많아져 좋아지고는 있으나 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안개 짙은 새벽길은 차라리 남해 고속도로(고속국도 10)에서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것도 자기 명대로 사는 길일수도 있다
아무튼 속도가 높을 경우 정면 추돌은 피 할 일이다(외로운 보딩이 살길…….)
고속도로보다 빨리 달리는 담양쪽 국도를 왼쪽으로 하고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보며
익숙한 창밖 풍경이 초점 없는 시선 속으로 달려든다.
88 첫 번째 남원 휴게소…….
볼록하게 배부른 도로가에 배꼽처럼 자리하고 있다
잠깐 쉬며 나름 사정에 따라 각자 여러 가지를 처리 한다
나는 8조 올드 멤버와 뉴 페이스들과 통성명을 하고 수인사를 했다
개인적으로 여성분들께도 실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손 인사를 가볍게 나누기를 청한다.
고운 인사말에 따뜻한 체온으로 좋은 인연으로의 첫 교감을 정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문화의 차이란 옳고 그름이 아니고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배꼽에서 빠져 나왔다(07:17)
회장님의 못 다한 마이크 타임이 이어 지신다
결론;6월 산행 :1,2,4주 그 외 차후 월 2,4주 백두대간 산행~
계절 좋을 때 한 구간이라도 더 당기시려는 총 리더의 고심이 깊다
감투는 도깨비 방망이라 하지만 산악회 감투는 솜방망이인 것 같다?
그나마 좀 달리던 88에서 남원 IC로 탈출하여 함양 방향 국도19~지방도로 60을 바꾸어 타며 구불양장 속으로 들어간다.
지리산 북부 관리 사무소/구룡 분소를 무임 통과하고 좀 지나 좌측엔 춘향 묘인 육모정이 있고
도로가 계곡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바뀌며 계곡도 깊어지고 산그늘도 길어진다.
점점 기사님의 운전이 온몸 운동으로 바뀌면서 생체리듬의 주파수에 혼란이 오고 온몸의 신경 시스템에 알람이 뜬다.
그래도 차 창밖 풍치는 죽인다?
구룡폭포가 왼쪽 계곡 속에 숨겨져 있고 지류를 만들고 계곡을 만들어 폭포를 낳은 능선이 오늘 우리가 지나야 할 마루금의 한 자락이다
왼쪽으로 수정봉이 보인다.
구불구불 가파른 급커브를 돌때마다 날카롭게 햇살이 눈을 찌른다.
날씨 하나는 그만일 것 같다
고기리 3거리 60번 도로가 737과 만나 바뀐다.
여기에 보조 차량을 두고 버스에 64명이 합승해서 성삼재까지 간다.
통로에 보조 의자도 걷히고……. 화랑 성냥각 속 성냥개비가 되었다
이럴 때 대비해서 모두와 친해둘 필요도 있겠다.
시선 관리와 손 둘 곳이 마땅찮다
3거리에서 좌측은 60번 도로를 유지하며 운봉으로 가고 우측의 737 오름 도로는 정령치를 넘어 861도로와 만나는 3거리(실상사/구례,성삼재)에서
달궁계곡을 뒤로 하고 심원계곡을 좌측으로 하고 2주전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08:17).
우측사면은 만복대 옆구리를 지나 2구간 첫 봉우리인 작은 고리봉이 봉창 문에서 처마끝 쳐다보듯 보인다.
좌측 계곡 쪽에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해발 900m) 입구가 좌측 갈림길로 내리 돌아 숨는다.
성삼재가 다가오며 반야봉과 마고할미가 사는 노고단이 한층 가까워졌다
861도로가 오름을 마치며 놓처 버린 실페처럼 구불구불 시암재로 흘러 천은사로 떨어진다.
*성삼재 도착(1070/08:30)/87년 아스팔트 포장…….
80년 광주의 한을 안고 숨어든 이들도 이 길을 타고 왔으리라
멀리 무등산의 함성이 노고단 정상에 이르러 지리산 품안에서 설음을 삭이던 이들은 수배자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데올리기 이념의 굴레를 씌워 총칼 앞에 굴복을 강요당했다
성삼재 주차장 바닥의 보도블록은 나란히 나란히 소리 없이 짓밟힌다.
현대사의 아픔에 우리의 가슴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계절에 여왕 5월이 청명한 하늘 아래 농익고 있다
무등산 천황봉이 5월의 광주를 굽어 보고 있다
미사일을 도도한 가슴처럼 안고서....,
성삼재 넓은 광장에서 오늘 노정의 짐을 추스르고 눈길은 벌써 대간 용마루를 탄다.
다함께 스트레칭으로 근육과 신경을 자극하고 정신을 일깨운다.
단체사진, 조별 짧은 회합……. 2주전 시간과 매듭으로 잇는다(08:50).
성삼재 왔던 길을 약200여 미터 되돌아가서 왼쪽 초입의 그린터널로 빨리듯 들어서는 대원들의 모습들이 날렵하고 기운차다
만복대 5.3km의 표식기와 낙석 방지 철조망 사이로 하여 5월의 한가운데 신록 속에 물들어 버린다.
연초록의 활엽수가 동동동대문을 만들고 남대문을 만든다
해묵은 낙엽이 푹신한 길을 연다.
키 작은 산죽은 양 갈래로 가르마 탄 듯 가지런하다
대원들의 매무새가 한층 매끄러워졌고 윤영애님은 오렌지색 두건으로 멋도 부렸다
이정표: 성삼재 1km, 만복대 4.3km /08:59…….
오른편으로 반야봉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똥꼬봉이다
*작은고리봉(1248 /09:17): 낮은 사각의 검은 표지석... 배 닻줄은 어디다 메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1구간 중에 곳곳에 해석질의 돌이 절리를 일으켜 들어나 있고 원석의 돌끼리 파도에 부딪고 밀려 마모된
원형의 오석들이 눈에 띠기도 했었다
진짜 배 매어 두던 자리일까?
저 멀리 만복대가 고원의 평원으로 펑퍼짐하게 기다리고 하늘은 쪽빛으로 푸르르고 공기 맛이 신선하기 일을데 없다
머릿속이 맑아온다
숲이 발산하는 피톤치드 영향일까?
바람이 스치며 만드는 음이온 일까?
숲속에서 들리는 짧은 단조의 새소리..., 수놈이 암컷을 꼬드기는 유혹이리라
이슬로 깃털을 씻고 원색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자태로 구애 본능에 애간장이 녹는다.
부드러운 잎을 먹이 삼으러 곧 나올 애벌레 곤충으로 새끼를 키우려면 빨리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속아주지 않는 암컷이 야속 하다
어디선가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다 얌체 짓 하고 있겠지…….
남의 둥지에서 자란 새끼는 어미 울음 소리를 따라 가고 만다.
슬프고 호소력 있는 울음은 새끼를 세뇌 하기에 충분하다
빈 둥지는 허탈감으로 가득 찰것이다
처음으로 하늘길이 열린다.
헬기장도 지난다.
작년 여름 태극종주때 억수 같은 빗속에서 잠깐 비 그친사이에 짓눌려 있던 운무 선경이 떠 오르며 비경이 펼쳐졌었다
그 사진이 너무 좋아 PC 초기 화면에서 두고 간간이 구름 타고 신선이 되어 본다
숲 터널이나 하늘길이나 푸른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파란 빠레트에 흰 물감을 짜서 휘 저은 듯 흰 구름이 양떼마냥 떠돌고 목동은 담배 한 목음 길게 휴~우…….
하얀 구름타고 바람을 쫒는다.
1구간 땐 몸으로 지리산을 음미 했다면 지금은 눈으로 걷고 가슴으로 보듬는다.
노고단~반야봉~천왕봉까지 저리 멀리도 굽이쳤던가?
100여리나 구름길로 다가온다
그 뒤에 흰 붓으로 덧칠한 새털구름은 누구의 섬세한 손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느껴 보는것만도 장대함속에 섬세함이 마음 간질인다
노고단과 반야봉, 심마니 능선이 30리 심원 계곡을 이루고 달궁을 거처 만수천~덕천강/경호강~남강을 이루리라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물이 고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이 깊고 높은 곳에 새처럼 둥지를 튼 이들은 누구였을까?
학처럼 신선처럼 고고한 삶을 추구하는 선인 이였나?
민란과 착취, 세속의 핍박, 궁핍한 민생고, 일제 강제징용을 피해서 초근목피로 목구멍 건사하고
자기 새끼 마누라 아침에 다시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지질이 못난이들을 지리산이 품었구나…….
*묘봉치(1108/09:27)~헬기장(09:37)~
숲 터널 길은 걷히고 작은 고리봉과 만복대 중간에 섰다
날씨가 너무 맑고 햇빛도 강하여 물이 많이 치는 날 일 것 같다
오른쪽으로 간혹 심원계곡 꼬부랑길(737길)이 숲속에 보이다 숨는다.
왼쪽 멀리 지리산 온천의 빨간 지붕이 보이고 월계마을 저수지가 하늘 한 조각이 떨어져 앉은 듯 하늘빛이다
구례 산동마을……. 봄이면 산수유가 온 마을을 노랗게 뒤덮는다.
1000년 전에 중국 산동성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 나무을 가져와 심었단다.
그래서 산동마을도 유례 되었다
지금도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가 천년수령을 자랑하며 시조 나무로 여전히 노란 꽃으로 지붕을 인다.
예부터 구례 처녀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깨물어 깐 덕에 입술이 붉고 예뻐서 최고의 신붓감이었단다.
산수유 열매 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반을 차지하며 최고의 품질로 수출도하고 한약재로도 사용된다.
지금은 고로쇠 물과 함께 흑염소로도 수입이 좋다
방 구들장 녹을 녹을 하게 불 때 놓고 날 밤새우며 고로쇠 물 옴박지를 비워 된다.
돌쩌귀 눈 밤새 찌르며 밤새 들랑달랑 하며 밤새우며 마신다…….
많이 먹어야 신경통에도 효염이 좋단다?
나무는 늦가을 낙엽을 떨구며 겨울 채비로 수액을 뿌리로 내려 보내고 최소한의 양분으로 동면을 하고
우수와 경칩무렵 뿌리의 수액을 다시 올려 새순을 튀우고 꽃을 피운다
인간들이 나무에게 흡혈 행위을 하고 있는것이다
흑염소도 방목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먹이를 주어 산으로 가지 못 하게 한다.
모으는 소리로 담배~~담배~~~ 하면 모인다. 무척 애연가란다?
상위마을에서 다름재로 올라 만복대로 올라오는 등산로도 있다
마지막 헬기장을 지나며 오름 경사가 이어진다.
너무 빠른 진행으로 숨이 찬다.
이쪽 경사면엔 아직 철쭉이 봉우리 상태이고 은방울꽃, 개불알꽃,쥐오줌풀.모데미풀, 미나리아재비가 막 피고
비비추의 부드러운 잎이 예쁘게 고깔마냥 말려있다
본격 오름길에는 원통원목과 하얀 동아줄로 식생보호 울타리를 두르고 있어 제한된 계단 길을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씩씩대며 더 속도를 올려 오른다.
오름길 계단 곳곳에는 빗물을 유도 하려는 작은 고랑을 팠다.
계단의 흙 유실을 막으려는 의도 인 것 같다
이쪽 경사면에 가을이면 억새 평원으로 하얀 백마 떼가 갈기를 휘날리며 바람에 파도친다.
지금 보이는 지리산과 오버랩 시켜 연상해보라…….
느낌의 상상력에 한계를 느낀다.
그지없이 아름다울 분이다
지금도 4계절을 느낀다
아직 겨울 잠아을 못 벗긴 늦은 잠꾸러기 나무가지, 연록의 봄순과 봄처녀 같은 꽃들...
날카로운 기세의 아폴로, 가을 억새대가 대조적으로 공간을 공유 한다
새벽 일출이 천왕봉을 넘어 떠오르는 광경은 감격의 오르가즘에 전율인 다
천왕봉을 넘어 희망의 기운이 돋으며 떠오르는 일출은 용광로의 쇳물처럼 새희망을 주조 한다
지리산 10경 중에 으뜸이라
곧 이어 급변하는 기압차로 품어 내는 달궁 심원계곡의 운무가 반야와 노고단을 선경 속에 몰아넣고 만다.
겨울에는 하얀 눈이 얼마만큼 쌓이는지 가름이 어렵게 쌓이기도 하니 눈 복이 많은 봉우리임이 틀림없다
2년 전에도 눈 속에 헤엄치다 지처서 만복대 정상을 바라보며 눈보라 속에 돌아선 기억이 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지나친 봉우리 3개가 메산(山)자 그대로이다
단숨에 올라 친 계단 길에 숨이 턱에 찬다.
*만(萬)복(福)대(臺)/구례군(1438.4/10:05)
무한수 개념의 많은 복을 간직 하고 있는 봉우리....
펑퍼짐한 둔부 같은 풍요의 봉우리
상위 마을에서도 묘봉치나 다름재를 통해서도 오을 수 있다
구도와 수도는 못하여도 작은 소원 몇쯤은 들어줄것 같은 후덕한 봉우리다
오늘 지날 봉우리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직육면체의 가슴 높이의 하얀 대리석 표지석에 행정구역이 구례임을 알린다,
돌탑의 뒷부가 약간 무너져 있고 민둥봉우리라 시야는 좋은데 그늘이 없어 돌탑 그늘에 은신 하여 본다
정상 바로 아래 샘이 있다는데 이번에도 찾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정령치가 진행하여야 할 큰고리봉 방향으로 경사면 아래이고 달궁의 긴 계곡 숲이 끝 간 데 없이 나락으로 깊어진다.
지리산 능선이 겹겹이 파로라마처럼 펼쳐지고 능선과 봉우리 숨은 계곡들이 푸른 캠퍼스에 들어앉는다.
오버랩 되는 연봉이 푸른 숲의 바다에서 너울 되고 심해 깊은 바다 같은 하늘은 봉우리에 부딪쳐 흰 포말로 구름 된다.
한 폭의 산수화이다……. 조선시대 겸제 정선의 섬세한 세필로 가능할까?
낙관 없는 천상의 명작이다
정령치~큰고리봉에서 계속 이어지는 세걸산~팔랑치~바래봉~덕두산으로 해서 국립공원의 한 자락이 끝맺어지고
대간 길은 큰 고리봉에서 왼쪽 북서방향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리라
날씨는 살랑 바람에 한없이 맑고 푸르다
같이 도착한 서석대님/하늘호수님 솔바람님 청미래님 각자 기념사진을 남긴다.
청미래(=바람꽃/이현숙)님께서 시원한 수박을 내어 놓으신다
사각 통에 맞춤으로 빨간 주사위 같은 수박이 점점이 까만 씨눈도 박혔다
앞서 출발하시는 위성삼 고문님께서 큰고리봉이 어느 것이냐고 물으시고 몇 분과 출발 하신다
만복대 이정표: 정령치 2km~만복대~성삼재 6km
급경사길을 내려 정령치로 간다.
올라 오던 길과 달리 철쭉이 피었다가 시드는 기분이 든다.
만복대 봉우리을 경계로 기온차가 많은가보다
정령치로 내려서기전 산불 감시초소(10:27) 주변에 철쭉이 만개하여 만복대 꼭지 돌을 배경으로 한 장 찍는다.
여기를 내려서면 왼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구례 산동과는 이별이다
지리산 비극적 역사 속에 48년 빨치산 토벌 과정 중에 19살 처녀가 국군에게 끌려가며 부른 산동애가가 메아리치며 사라진다(10:27).
아래 정령치가 심상치 않다
큰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바래봉 철쭉구경 나선 상춘객으로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정령치(1172/10:32)
정령치가 보이기도 전에 차 소리가 요란하다
버스로 지나갔던 길을 산길을 타고 돌아 왔다
너무도 급변한 의아한 상황변화에 당황스럽다
차량은 꼬리를 물고 계속 올라오고 올라온 차도 제자리에서 서성거린다.
상춘인파는 모자이크처럼 정령치를 가득 메웠다
쉬었다 갈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기록용 사진만 얻고 인간 사슬에 한 고리가 되어 대열에서 쉬어야 할 판이다
여전히 천왕봉이 정령치 휴게소 입간판 뒤로 햇빛 열기와 구름 속에 흔들거린다.
휴게소 뒤로 이어지는 계단 뒤에는 장승이 해학스런 표정으로 써레 발 같은 이빨로 웃는다.
또한 사진 모델 하느라 바쁘다
인간 사슬 속에서 세월이 녹슬고 전봇대가 싹트고 있다……. 답답할 뿐이다
어쩌다 한번 꽃구경 나온 촌부와 블라우스에 양산 받쳐 든 아주머니들까지....,
나는 봄 상춘객들 중에 모자이크의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10:56)
개인적 개똥 생각으로 폼생폼사를 중요시 여기며 사는 속물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생사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내면적 마음 자세부터 외형적 준비 상태까지 갖추어져 있을 때 일의 성과도 기대 될 수 있다
스포츠도 레포츠도 등산도 기본 복장을 갖추는 것이 본인의 안전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준비일수 있다
특히 산행에서는 다변화되는 환경 속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더 그렇다
배속 사정까지 배려가 되어야 순탄한 진행이 가능하다
음에~~~열 부울.....,적응하자…….
주변에 철쭉이 만발하였고 바위의 절개된 틈바구니에 뿌리를 박고 매달리듯 아슬아슬한 소나무,
이끼식물들과 어울린 난쟁이 철쭉이 자연의 작은 축소경으로 석부작 작품을 보는 듯 아름답다
철쭉군락 사이로 여전히 반야봉은 친구처럼 곁에서 철쭉 울타리에 쌓여 분홍빛이 산란되어 홍조를 띤다.
큰 고리봉 지나면 볼 수 없을 대간의 시발부인 천왕봉이 푸른 하늘과 아지랑이 속에서 지켜 봐주고
인자한 천왕할미의 흰 두건이 분홍빛 꽃모자로 바뀐다.
올해의 철쭉은 일찍 피었단다.
지금은 지는 시기인 듯싶다 .
올해 철쭉이 일찍 피어 2주전이 절정기 였단다
운봉읍에서 바래봉 철쭉제도 열고 있다.
바래봉 주변은 식생복원을 보호하기 위해 원목의 시설물로 사람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있다
구상나무를 베어 내고 큰 나무를 넘어 뜨려 양 목장을 만든 사연도 아이러니다
헬기를 타고 가던 모 대통령님이 손가락질 한 번에 목장 터로 지목 되고 말았단다?
해외 나들이에서 양들이 노니는 풍경이 좋아 보였는가 보다
양이나 염소, 사슴 같은 종은 입술이 섬세하고 위가 발달하여 돌과 흙만 빼고 다 먹어 치우는 먹성이 여간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 먹는 것이 철쭉이었단다.
하여 모든 식물은 다 먹어 버려 식생군락이 무너지고 철쭉만 남아 군락지가 되고 지금의 생태가 되어 버렸다
면양목장의 울타리 철조망은 길가에 기능을 상실한 체 드러나지 않는 벽과 창칼로 동물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다행이 지금은 다시 구상나무가 심어지고 식생복원 중에 있다
숲은 인간의 생명줄의 마지막 버팀목임을 인간 모두가 공동 인식 하여야 한다.
특히 기관의 건설 인허가시 신중을 기하고 탁상 행정은 금물 되어야 한다.
대부분 자연 해손은 허가된 해손이다
자연영향 평가도 자연의 입장에서 접근 하여야 의미가 있고 먼 미래 지향적으로 결정 되어야 한다
아마존 정글의 숲은 지구에 숲 이상의 가치로 인식 되고 있다
돌계단 하나하나에 이 생각 저 생각을 남기고 큰 고리봉 직전의 돌 고리를 지나 큰고리봉에 올랐다.
*큰 고리봉(1305/11:30)……. 독도주의(서북방향/왼쪽 내리막길/고기리 방향)
1구간의 모든 여정과 2구간의 모든 여정이 한눈에 들어오고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순간
지리산 가운데 백리 능선과는 마음속에서 추억으로만 만나야 한다.
큰고리봉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의 세걸산~팔랑치~바래봉~덕두산은 여직 지리산 주능선이 그랬듯이
운봉 고원들판을 사이에 두고 오른손의 손잡이 친구가 될 것이다
지리산은 산객의 영원한 연인이다
안녕……. 그리운 나의 연인…….
막연한 기다림은 비수보다 날카롭게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바늘 끝보다 예리한곳에 나를 올려놓는다.
외로운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다
세월을 이길 수 없으매…….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사라지기전에
그대를 사랑했음을 상기 하게 하여 주오
이별의 삼각지를 내려선다.
큰 고리봉 정상 직전 왼쪽에 시그널 리본으로 대원들을 유도 하고 꺾임 지점 약간 안부에 리본을 달았다
여기의 방향 전환부에서 이탈(능성 직진)되면 상당히 힘든 상황에 말려들게 된다.
돌아와 되잡을 수밖에 없다
독도에 미숙하거나 초행인 대원들은 민감한 부분에서는 나 홀로 아리랑은 지양해야 여러모로 문제가 야기 되지 않는다.
능선타고 주욱 가버리면 남강 상부 광천이 길을 가로 막는다.
왼쪽의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흙과 약간의 돌로 이루어졌다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서 허우적인다 현실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걸음이 거칠어지고 구르는 돌멩이가 앞서 간다
덩달아 나뭇가지도 당골래 신목 흔들리듯 한다.
낯익은 뒷모습 아침햇살님이시다 무릎 보호대에 스틱까지 했다
안 좋은 무릎 때문에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 했나 보다 같이 가시기에는 보조가 맞지 않고 고기리까지만 산행 할 계획이시란다.
인사만 나누고 앞서간 선두를 추격하기로 했다
등에 맨 배낭이 안마하듯 촐랑거린다.
8조의 기라성 같은 멤버들과 합류 했다
등산로도 경사길이기는 해도 일본침엽낙엽수의 해갈이 잎으로 푹신하다
얼마 남지 않은 고기리 삼거리 다리까지 같이 가서 점심식사 할 생각으로 만난 분들과 동반주 한다.
청미래(=바람꽃=이현숙)님은 산행 경험도 많으시고 주력도 탄탄하고 특히 야생화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오늘부터 같은 조에서 귀한 분과 산행하며 공동관심사에 많은 배움의 기회를 갖을 수 있어 기분 좋은 인연으로 생각한다(잘 부탁 합니다……. )
고기리 1km쯤 전에 두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12:20).
이정표도 리본도 없다 선두는 지나 갔다 ....,어디로?... 방향도 엇비슷하다
지도와 나침반을 꺼냈다 지도에는 한줄기 일점쇄선 지역 경계선만 의미 한다
대간이나 정맥 상에서 자주 만나야 할 상황이다
더 크고 반질한 길이 우리의 길이 아니고 동네로 내려가 버리는 길이 허다하여
큰 길만 택할 수도 없다 방향상 북서/왼쪽 길을 택했다 리본도 달았다
오른쪽 길은 철조망의 갓길이다
왼쪽 길에 앞서간 발자국에 마른 낙엽이 걷혀진 지욱도 있다
내심 안심하며 급경사 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얼마 후 계곡과 T-자로 맞닥뜨렸다
계곡 주변에는 작년 여름 성수기 때 장사 했던 평상이 큰비에 망가지고 해가림 천막이 헤어져 볼썽사납다
대간은 물을 건너지 않는다고 했다 오른쪽 뚝방길로 이경주님과 김동영님 부부가 앞서 가신다
두 분은 위에서 아래로 대간 종주를 하신 분들인데 역으로 다시 하시는 분들로 대단하시고 보기 좋은 부러움이다
촌각의 시간 뒤에 차 소리가 들리고 다리위에 우리의 일용할 식사가 있는 버스가 보인다.
반가움에 먼저 도착한 몇 분과 큰소리로 손을 흔들며 마음이 안도 된다
지리산!... 국립공원 1호 40돌을 맞았다
너의 넉넉한 품에서 벗어난다…….
*고기리 3거리 다리(12:30)/점심식사
먼저 오신 분들은 1km 전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우측 길로 오셨단다.
오른쪽으로 길이 돌아 불안 했는데 방향이 왼쪽으로 선회되며 바로 고기리 3거리 다리로 떨어지더라고
위성삼 고문님이 말씀 하시며 혹시 틀린 길이여서 뒷사람 고생 할까봐 리본을 달지 못하셨단다.
정리하면 오른쪽길이 맞고 왼쪽 길도 시간상이나 거리, 방향 상으로도 이상이 없는 듯하다
다리 주변에는 제각과 비석들이 있고 그늘에 평상도 있어 식사하기에는 좋은 장소이다
음식점(반달곰 산채 마을)도 있다.
식사하며 잠깐 계곡물에서 냉족욕으로 발의 열기도 빼며 맛난 성찬에 신선주까지 한 순배 포만감에 부러울 것 없다
5조 조장님은 조원들 식사를 모두 준비 해 오셨다
조장 책임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하지만 아무튼 잘 얻어먹었다
선두와 후미가 1시간 이상 차이가 나서 식사가 끝난 선두 10명을 먼저 출발 시키고 나머지는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주촌리 마을/운봉 방향 지방도 60번으로 출발(13:40)…….
대간 중에 도로를 건너는 경우는 있어도 긴 거리(약1km)를 차와 같이 동반 진행 하는 구간은 이 구간뿐이란다
60번 지방도로(지리산 웰빙 고시텔 방향으로)를 20여분 지나서 왼쪽의 송학 모텔 3거리에서
덕치리 보건소 이정표가 있는 왼쪽 콘크리트 농로로 들어서서 안부의 노치마을과 가재마을까지 들어간다.
아스팔트 지방도로 60번을 계속 타면 덕산 저수지 지나서 운봉읍을 지나는 국도 24번과 만나며 60번 도로는 끝나 버린다.
지금 지나는 도로/농로가 대간이 맞는지 의아 하지만 지표 고도가 해발 500~600m의 고원지로 물길이 확실히 갈리(섬진강/남강)는 대간이다.
또한 행정구역의 경계로 남원 이백면 덕치리와 운봉읍 주촌리의 나눔 선이다
한 발자국으로 노치마을과 가재마을로 나뉜다.
남강과 섬진강으로 물길이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 지역이 옛날에는 바다였고 정령치까지 배가 닿았다고 한다.
본래 지명이란게 주변 환경과 연관이 깊음을 공감 한다면
주촌리(=배 마을), 가재마을(=바닷가재?),노치마을(=갈재=갈대언덕),고리봉(=배 닻줄 매는 것)과도 연관지를 수도 있겠다.
높은 고원이라 고랭지 작물도 재배하고 벼도 고랭지나 강원도 같이 일찍 이삭이 편다고 한다.
식물이 동물 보다 더 민감하고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자연환경에도 잘 적응 한다
1주일만에 잎이 피고 꽃을 피워 종족의 미래을 이어 가는 극지 식물들도 있다
왼쪽은 노치마을, 오른쪽은 가재마을이다(13:55)
바다였을 때 라면 갈대밭에 가재가 살았을 곳이다
노치마을회관 옆의 당산나무(팽나무) 아래는 백두대간 14정맥비가 있다
가운데에 백두대간 비에는 대간을 대동맥으로 정맥과 지맥이 혈관처럼 양각으로 살아 움직이고
두 개의 다른 비석문에는 1대간과 14정맥이 겨레의 땅으로 나열되고, 노치마을이 대간 중에 유일하게 통과함을 안내한다.
당산나무의 가지가 땅 끝에 닿을 듯 거대함이 노령 목임을 가늠케 하고 그늘에 정자 마룻바닥이 궁뎅이를 유혹하며 쉬어 가길 청한다.
다음 언젠가 유유자적 할 적에 유혹에 빠져 고리봉에 놀잇배 매어 두고
~만복대~고리봉~세걸산~바래봉~을 눈으로 걸어보며 호사스럽게 바람을 느껴 보리라
기나긴 연민의 시간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시간이 길다해도
바닷가 사유석처럼
나는 너를 생각 한다...,
*수정봉으로 출발(13:58)~노송/산신각~수정봉(804.7/14:30)~입망치(15:03)~
노치마을 당산나무 입구 벽에 “승공” 언제적 글씨일까?
이념적 대립이 심각하고 민감했던 시절의 흔적이 이곳도 같은 굴레에서 갈등했음을 말한다.
기억의 저편 초등학교 시절 섬뜻한 표어에 유난히 빨간색 크레용을 많이 닳히던 반공 포스터가 기억 속에서 펄럭인다.
대간 초입을 노치마을과 가재마을 사이 콘크리트 오름 골목길 입구 사철나무의 리본을 통하여 시작하여
마을 뒷산 능선을 잡고 수정봉~여원치로 갈 것이다
가재구판장과 노치샘(550m)을 지나 골목길 끝에서 왼쪽 시누대나무길로 계단타고 초입이 시작된다.
노치 샘은 지붕도 있고 황토색 벽에 민화풍의 초충도가 멋스럽게 나비와 꽃을 들어 앉혔다
산신각에는 낙락장송이 절간 입구의 사천왕처럼 철갑을 두르고 대간 길을 지키며 대간 길 무사안녕을 빈다.
본격적으로 다시 대간 길에 서고 급경사 오름 초입이 배부른 속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지라
호흡이 곤란하고 더운 시간대에 진땀을 한바탕 빼고 능선 길에 다시 선다.
일부 대원들은 배낭을 버스에 두고 쌕에 물병만 가볍게 챙겼다
산길은 건조하고 소나무 그늘에 잡풀도 없이 깨끗하다
지극히 재미 없는 길에 운봉 들녘에는 농번기를 맞는다.
모내기는 끝났으나 땅 힘을 못 당겨 멀리서 보기엔 빈 논처럼 보인다.
요즘에는 모내기 날 독한 잡초제을 뿌려 버려 폐(부레/피부)을 가지고 호흡하며 움직이는 것들은 찿아 볼수가 없다.
옛날 시골 부자집 모내기날은 동네 잔치날이였다
온 벌판에 강아지까지 따라 나선다
논가 발가락 자욱 선명한 아버지 발자욱에서 내 손보다 더 큰 붕어 잡아 검정 고무신에 담았었다
물 내리는 고랑턱 아래는 미꾸라지도 한 바가지로 있었다
솔바람만 불어 올 뿐 묵묵히 산길을 걸을 뿐이다
간혹 리본을 간이역처럼 지나친다.
초라한 수정봉(아크릴판 이정표/804.7/14:30)을 겹눈질로 지나친다.
봉우리는 수정처럼 안 멋 있어도 운봉 벌판과 수정보다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지리산 자락을 볼수 있어 수정봉인가 보다?...,
*입망치(15:03): 노치마을에서 1:30분쯤 왔다
입망치는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와 운봉읍 행정리 갓바레을 이어주는 고개다
임도인지 작은 길인이 있어 건너고 바로 묘가 있는데서 6조 대원들이 빨간 큰 토마토를 먹으시며 한숨 돌리신다
토마토가 주먹만큼 한데 여기까지 배달한 기수가 있나보다
주는 사람이 없어 그냥 지나 가부라야 겠다 ....,
사실은 이정미님이 바로 앞에서 혼자 쉬지 않고 가시길레 우리조원인데 출발 후 처음보는터라 미안도 해서 말 붙일량으로 지나쳤다
이정미님 산행 스타일은 천천히 쉬지 않고 가는 거다 오늘도 만복대전에서 점심 해결바버리고
고기리에서 점심시간을 그냥 지나와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오셨단다.
성질 급하신 이호성님은 조금 전 땀 좀 빼신다며 빨리 진행 하셨단다.
두 분은 저랑 먼저 인연이 있는 분들인데 대간 하시려다 다시 인연이 되었다
호남정맥이랑 하시고 목적 산행을 선호 하신다
무릎이 불편하시다 며 앞서 가라신다
산길이 지루하다 소나무가 재선충인지 껍질 깍지벌레 피해인지? 많이 베어지고 넘어 졌다
위쪽에서는 봉우리 상태였던 꽃들이 낮은 능선이라 만개 되었다
난장이붓꽃, 은방울꽃이 샘물보다 더 시원하고 순결한 하얀 앙증스런 종이 화경에 예쁘게 매달려 스치는 바람결에 은종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앞으로 1:30분 정도 더 가면 여원재일듯 하다
또 다시 임도다운 임도를 만났다(15:50) 여원재가 얼마 남지 않은 부분이다
바로 임도 오른쪽에 리본이 숲길로 유도 한다
다시 금방 임도로 나온다(그 길이 그 길이다)
길 건너 왼쪽으로 리본이 다시 숲길로 유도 한다
(임도 처음부에서 약40여 미터 아랫부분이니 임도로 내려와 왼쪽 숲길로 접어들면 된다)
임도 왼쪽 숲길을 10여분 남짓에 마을이 보이고 숲속에서는 멧비둘기가 구구단을 외운다( 9*9=81)
차 지나는 소리도 들린다. 거의 다 왔나보다(16:00)
산 절개지를 통통거리며 내려서니 비포장 길이다
파란지붕의 우사도 보이고 깔끔하게 정돈 잘된 묘에 비석도 잘 갖추어진 묘도 있다
비포장 길 건너에 이정표도 여럿 있다(주지사/왼쪽으로, 여원암/길 건너 소나무길로,운봉 금성 식당/민박)
좀 전에 들리던 차 소리가 나던 도로와 포장도로 건너로 마을도 보이는데 여원재 국도24번 인 것 같다
비포장 건너 큰 소나무길인 여원암 방향으로 조금 가니 포장도로에서 자동차가 휘발유 냄새을 남기며 바람을 끌고 지나 간다
다시 문명으로 복귀다, 속인이 된것이다....,
*여원재(470/16:08)
오늘의 목적지 여원재 장동 마을앞에 도착 했다
남원과 운봉을 잇는 국도 24번 도로로 전남 지도읍 감정에서 시작하여 여원재에 이르고
함양 지나 장수 지곡에서 국도 3번과 만나면서 끝이나 는 도로이다
등산로 출구 양쪽에는 “백두대간 등산로” 표식기(고남산:5.4km/수정봉:4.8km)가 있고
“운성대장군” 하얀 돌 벅수(장승)가 산행 중 노고를 달래 주고 표정이 다양하여 여러 상황에 대처 가능한 얼굴이다
재를 넘나드는 수많은 애환과 사연을 듣다보니 여러 얼굴 표정이 되었나보다
다음 구간인 길 건너 고남산을 부리한 두 눈으로 쳐다보며 하얀 수염에 주름진 입술이 할아범벅수이다
장동마을 입구에 20여분이 먼저 오셔서 맥주를 한잔씩 나누며 정담이 오간다.
맥주가 너무 얼어서 푸른 풀밭에서 알몸 썬텐을 하고 정령치에서 먼저 차로 온 아침햇살님,
선두로 오신 오병주님이 김치 뼛국을 맛있게 찜통에 끓이신다.
속속 골인하는 대원들한테 마중 나가 사발 맥주 한잔씩 드린다.
더운 날씨에 갈증이 났는데 시원함이 그만이다
사실 여원재 주변에는 오랜 시절부터 많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여원재(470m):영호남의 관문으로 운봉고원의 고개이고 호남의 곡창지대의 입구이며 국경에 위치해
분쟁의 한가운데서 많은걸 지켜봐야 했다
또한 전설 속에 여인이 지키는 언덕이기도 하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내린 이름이다
사연인즉 왜구의 노략질이 한창이던 무렵 고갯길에 아리다운 주모에 얽힌 전설이다
밤마다 홍등을 내거는 몸일망정 왜구의 노리개는 될 수 없다며 왜구의 손이 탄 가슴을 도려내고 죽었다
훗날 이 여인의 혼이 승전전략을 이성계에 선몽하여 황산전투를 대승 하였다
인월에는 황산대첩비가 있고 이때 화살에 맞아 죽은 일본의 16세의 아지발도 장수의 피가 뭍은 바위가 피바위로 지금도 붉다고 한다.
아지발도는 몽고말이다(아지=어린이/발도=용맹하다)
인월이란 이름도 이성계가 황산 전투에서 밤이 어두워지면 달을 끌어내어 싸워 전투에서 승리해서 유래된 전설을 먹음은 이름이다
또한 바람을 일으켜 전투에서 승리해 유래된 이름도 있다
곡창을 탐하고 영토 경계를 넓히려는 싸움이 삼한시대부터 끊이지를 않았다
운봉은 구름도 많아 구름성이라 하여 운성으로도 불리고 여원낙조도 환상적이다
정감록의 십승지 중 운봉과 청학동이 들어 있다
기원전부터 싸움터로 들끓던 곳이기는 하나 언젠가 발복의 기운이 서려 있는 땅이기도 하다
여원재를 주민들은 연재(燕載)라고 부른다.
흥부에게 박 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어 온 고개란 뜻이다
팔랑치 아래 성산마을에 흥부가 살았다고 한다.
흥부마을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요즘처럼 가치관의 혼돈시대에는 놀부가 더 시대적으로 맞는 사람으로 인식 되고 있고 흥부는 국어책에서나 착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놀부 같은 사회성에 흥부 같은 인간미를 가진 사람으로 합체 인간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더 이상 아무런 삶의 교육적 잣대도 되지 못 하는 퇴색된 옛 이야기일 뿐이다
덕 많고 복 많은 지리산 언덕에서 박 씨 하나씩 마음에 심어 보자
제비 몰러 나간다!~~~~
*동편제의 고장 운봉(雲峰)
조선의 국창인 가왕 송흥록, 근대 명창인 박초월이 이웃하여 산마을이 운봉 비전마을이다
서편제는 발성을 거볍게 하고 길게 끄는 음조에 비해 동편제는 선이 굵고 웅장하며 짧게 끊는 남성적인 음율이다.
송흥록는 어전 소리꾼으로 정3품 벼슬까지 하였다
후에 송만갑이 동편제와 서편제를 접목하여 새로운 장르의 퓨전 국악이 탄생하기도 했다
명창 송만갑의 국악비는 화엄사 입구에 있다.
판소리 200년 역사에 가장 많은 제자를 거느린 인물로 추앙 받고 있다.
박초월의 본명은 삼순이다.
그러나 태몽을 아버지가 달을 목구멍에 넘기는 꿈을 꾸고 그날로 순천댁 부인을 찾아가 얻었다하여 초월로 부른다고 한다.
유난히 야무지고 정도 많아 고향을 찾을 때는 가마니 짜는 기계며 새끼 꼬는 기계 등을 마을을 들을 때마다 선물 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국악 연수원을 만들기 위해 쌈짓돈을 모아 부지도 마련 했단다.
운봉의 소리꾼들이 득음을 위해 피을 토 했던 바래봉 옥계 골짜기 용소폭포는 지금은 저수지에 수장 되어 버렸다.
남원과 운봉에는 천석꾼은 디글디글 했고 만석꾼도 있었다고 한다.
운봉의 만석지기 박부자는 소리꾼한테는 매우 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아 소리 배우는 사람이 찾아들면
집안에 기숙을 시키며 소리 공부에 열중하게 했다고 한다.
흥부 같은 마음씨다....,
지금 두 생가가 복원 되고 있다 .
*목기와 장승의 고장 운봉
지리산의 나무가 풍부해서 일까?
목기와 벅수라고 하는 장승이 유명하다
장승이 있는 마을이 어느 마을이예요? 하고 길을 묻는 실수는 하지 않아야 한다
마을마다 장승이 흔하여 먼 외지 사람이 되어 버린다
또한 남원에는 박씨 대장간 칼도 도마와 같이 유명하다
*성(성씨)으로 부르는 고개 이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장군”에게 지키게 한 고개가 “정령치”가 되고
“황장군”이 지키던 고개는 “황령치”가 되었다
지리산 능선을 성벽 삼아 달궁계곡에 마한 왕조가 은신 했다
정령치는 지리산 횡단 도로와 이어 관광도로가 되었고 황령치는 달궁 뒷산의 황나드리란 지명과 연관이 있다
“성삼재”는 성이 다른 세 명의 장수가 지키던 언덕에서 이름을 얻었고 “팔랑치”는 여덟 명의 병사가 지켰다는 내력이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더 있다
대간은 우리의 뿌리이자 의식의 근원이요 문화와 역사가 탄생한 곳이다
임진왜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왜구와 일제가 손상한 국토와 지명, 문화유적, 유물 등은 우리 정신세계를 흩으러 놓았다.
모든 걸 제자리에 갖다 놓고 되돌려 놓아야 민족정기가 바로 설 것이다 .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도 민족의식 찾기의 일환으로 성숙 되어야 할 것이다 .
백두대간 제2구간을 마치며…….
대간 용마루에서 바람(김 성 학) / 200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