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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파리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네레이드의 한명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원래 테티스는 그 아름다움으로 하여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서로 아내로 맞이하려 다투었던 여신이었으나 그녀의 아들이 그 아버지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예언에 의해 두 신은 그녀에 대한 구애를 포기하고말지요. 그리고 여신은 인간으로써 프티아의 왕인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로써 예언에 따라 그는 그 아버지 보다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혹은 어떤 이들은 제우스가 이미 테티스와 동침을 하였으나 예언을 듣고서 자신이 권좌에서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여 그녀를 인간인 펠레우스에게 시집보내 버렸다고도 말을 합니다. 제우스의 권좌에 대한 집착은 [아테나 여신의 탄생-제우스의 고뇌]에 가시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은 매우 성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올림포스의 수많은 신들이 제우스의 초청에 의해 참석하였으며 많은 선물들이 주어졌지요. 그야말로 결혼식은 즐거운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으니...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이 결혼식에 초대되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얼마나 화가 났던지 여신은 자신의 상징인 "불화"를 가지고 결혼식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결혼식장의 하객들 사이에 황금사과를 하나 던져놓고 사라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지요.
...과연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었을까요..?? 쟁쟁한 대결이 있었겠지요... 못생긴 여신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3명의 여신들이었고 또한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가장 아름답노라고 대결을 벌였습니다. 바로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였지요.
...그렇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역시 그들의 아름다움이 가장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최고이냐 하는 것이었지요. 이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부했고 제우스도 그 문제에 관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선택할 수 없었겠지요.
...결국 그들 세 여신은 이 문제를 공정하게 제3자에게 묻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심판관으로 결정된 것이 바로 이다山의 양치기였지요. 그는 파리스라고 하는 젊고 잘생긴 양치기였습니다. 그가 한가로이 양들을 돌보고 있을 때에 그의 앞에 헤르메스와 세 여신이 나타난 것이었지요. 헤르메스가 당황한 그를 일단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였지요.
..."이제 그대에게 이들 세 여신 중에서 과연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선택할 기회를 주겠노라.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이 사과를 주도록 하라"
...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군요. 어찌되었든 그가 선택을 하기 전에 세
여신에게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아테나 여신이었습니다.
..."이제 그대가 나를 선택하면 그대를 프리기아의 왕으로 만들어주겠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주고 누구보다 용감하고 뛰어난 전사가 되게 하여주마."
...파리스는 아테나 여신의 아름다움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 되어 싸움터를 누비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 속에 떠올랐지요. 그러나 헤라여신의 말은 그에게서 아테나 여신에 대한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대가 나를 선택한다면 그대를 온 아시아와 유럽의 지배자로 만들어주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위대한 영광과 부를 누리도록 해주겠다." 아테나 여신의 제안보다도 훨씬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지요. 다음 순간 아프로디테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영광도 부도 지혜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 그녀는 남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로디테는 상대방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허리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젊은 양치기는 도저히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허리띠의 힘과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갈망으로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그 황금사과를 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트로이 전쟁의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궁에서 버려져 양치기로 자랐던 것에는 연유가 있었지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왕은 매우 훌륭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덕망이 높았고 선정을 베풀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요. 주변국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여 많은 동맹국들과 무역도 활발하게 하였습니다.
...어느날 그의 왕비인 헤카베는 꿈을 꾸게 되는데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떨어져 온 트로이 성내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왕비는 놀라서 깨어났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태몽이 불길하여 예언자에게 물으니 그 아이는 장차 나라를 망하게 할 화근이라는 것이었지요.
아뿔싸... 왕은 신하에게 시켜서 아기를 아겔라우스라는 신하에게 아기를 들에 내다 버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는 아기를 들에 내다 놓고는 정확하게 5일뒤에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곰의 젖을 먹고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아기를 데려다가 파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자신이 키웠습니다. 그는 훌륭하고도 건장한 양치기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양치기로 상장한 파리스는 오이노네라고 하는 뉨페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아폴론에게서 의술과 예언의 능력을 배운 오이노네는 자신이 가진 예언의 능력으로 파리스가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곁을 떠나서 다른 여인의 품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맡길 뿐이었지요.
그렇게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던 그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으니 바로 올림포스의 신들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서로 누가 더 아름다운지를 가려달라는 엉뚱한 주문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이내 그와 그의 조국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것이었으니...
헬레네
...별자리 신화의 [백조자리의 이야기...]에서도 얘기하였 듯이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레다 왕비의 딸이며 클뤼타임네스트라,폴뤼데우케스,카스토르와 함께 쌍둥이 남매입니다. 폴뤼네우케스와 카스토르는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으로 유명한 쌍둥이 형제들이었습니다만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 아름다움으로 하여 또한 유명한 쌍둥이 자매였습니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였을 때에는 아직 그녀는 나이 어린 소녀였습니다. 이 두 영웅은 각기 제우스 신의 딸과 결혼을 하자는 맹세를 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이지요. 테세우스는 헬레네를 원했고 페이리토스는 저승의 여왕인 페르세포네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헬레네를 아테네로 데리고 온 두 사람은 이번에는 저승으로 여왕을 납치하러 떠나지요.
...그러나 그들이 저승의 입구에서 어이없이 붙잡혀 바위에 묶여있는 동안에 여동생을 찾기위해 아테네로 쳐들어온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여동생을 찾아 돌아갑니다.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저승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 되었지요.
...이렇게 어릴적부터 우여곡절을 겪은 헬레네는 이제 그리스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을 하게되었고 당연히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온 그리스의 왕들과 왕자들, 유명한 영웅들이 모두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애썼는데 그들 중에는 오딧세우스,메넬라우스,아이아스,안틸로코스,아스칼라포스,디오메데스,마카온,파트로클로스,필록테테스 등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한편 헬레네의 아버지인 튄다레우스는 이들 후보자들의 경쟁이 너무 심해지자 나중에 누군가 헬레네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반감을 가지는 사람에 의해 불행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에 방법을 알려준 것이 바로 지혜가 많은 오딧세우스였지요.
...그는 해결방법을 알려주되 그 대가로 왕의 조카인 페넬로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했지요. 왕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페넬로페와의 결혼을 약속하고는 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딧세우스는 나중에 정숙한 여인의 상징이 되는 페넬로페와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오딧세우스 알려준 그 방법이란 바로 구애자들에게 하나의 맹세를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수많은 경쟁자들 중에서 누가 헬레네와 결혼을 하게 되던지간에 그 결과에 승복할 것과 또한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깨뜨리려 하는 자가 있다면 맹세를 함께 한 이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그자를 멸하고 헬레네 부부의 결혼생활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모든 구애자들이 다 이에 동의를 하여 맹세를 하였고 결국 헬레네의 선택은 메넬라우스에게로 갔지요. 메넬라우스는 미케네의 왕자로써 형인 아가멤논과 함께 삼촌인 왕에 의해 추방되어 객지에서 지내던 중 헬레네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아가멤논은 헬레네와 쌍둥이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바야흐로 이들 두 형제는 스파르타와 뗄 수 없는 동맹관계가 되었고 헬레네의 쌍둥이 형제들이 하늘로 올라가게 된 이후로는 메넬라우스가 스파르타의 왕권을 이어받게 되었지요. (쌍둥이 형제들의 이야기는 별자리신화의 [쌍둥이자리 이야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헬레네와 메넬라우스가 많은 이들의 축복속에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하였을 때에 저멀리 바다건너 트로이에서는 양치기 파리스가 황금사과의 심판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로 복귀하게 됩니다.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뽑아준 것에 대한 대가로 아프로디테 여신이 파리스를 돌봐주었고 그에게 잃어 버려진 바 되었던 왕자의 자리를 되찾아 준 것이었지요.
...한때 파리스와 깊은 사랑에 빠졌었던 오이노네는 이제 자신의 연인이 운명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알았으나 차마 그를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뒤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높은 여신의 보호막이 있었으니까요. 그로써 황금사과의 심판 이후로 시들기 시작했던 파리스의 사랑은 완전히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제는 늙어 마음이 약해진 프리아모스왕은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아들이 돌아오자 기쁨과 미안한 마음으로 어쩔줄을 몰랐지요. 그래서 옛날의 태몽같은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파리스를 극진히 대했습니다. 노년에 있어서 그는 왕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지요.
...뿐만아니라 프리아모스왕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의 이 늠름한 아들을 자랑하고 싶어져서 스파르타에 가는 사신으로써 파리스를 선정해 보내게 됩니다. 그의 지위에 걸맞는 커다란 배를 만들고 화려하게 꾸민 다음 사랑스러운 아들을 태워 보냈지요. 그러나 이 항해가 자신들에게 그토록 무서운 비극을 가져오게 될 줄이야...
...오이노네는 끝까지 파리스의 이 항해를 막으려 하였으나 결국 그에게서 상처만 입었을 뿐이지요. 정해진 역사의 운명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인 건지...
...늘 파리스를 돌보던 아프로디테 여신은 이제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스파르타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여신은 뱃머리의 파리스에게 다가가 이제 스파르타에서 자신이 약속하였던 여인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녀는 반드시 그의 여인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설레는 마음... 뛰는 가슴... 흥분되는 감정들... 억제할 수 없는 기대감... 파리스는 그 아름다운 여인을 꿈꾸며 파도를 건너 스파르타에 도달하였습니다. 사신으로써 메넬라우스 왕의 환대를 받은 파리스는 곧 여신이 약속한 그 여인이 누구였는지를 깨달았지요.
...왕의 곁에 있는 그 여인, 바로 헬레네였던 것입니다. 파리스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인도하여준 여신에게 감사에 또 감사를 드렸고 빨리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는 늘 메넬라우스 왕이 있었고 그에게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요. 그렇게 날은 가고...
...그런데 9일째 되는 날 갑자기 메넬라우스 왕에게 외조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리따운 아내를 뒤에 남겨두고 장례식에 참석하러 크레타로 떠나게 되었지요. 아, 이것도 여신이 파리스를 돕는 것이었던지...
...파리스의 마음을 알리 없는 메넬라우스가 나라를 비우고 떠나자 파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헬레네에게 접근하였습니다. 물론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파리스를 인도하였지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는 이상한 허리띠가 하나 있었답니다. 파리스로 하여금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하게 했던 그 허리띠... 그것을 차고 있으면 이성인 상대방은 허리띠를 찬 사람의 구애를 떨쳐 버릴 수 없고 사랑의 감정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고 하지요... 여신은 파리스에게 그 허리띠를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아... 가여운 여인의 운명이여...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여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끄는 청년의 뒤를 따라 성밖으로 나왔고 그의 인도를 따라 배에 올라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고 맙니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과 자신의 나라, 또 앞으로 가게 될 나라에 어떤 운명의 바람이 불어닥칠 지를 알지 못한 채 말이지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제3편 : 맹세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떠난 뒤에 스파르타로 돌아온 메넬라우스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고는 당혹스러워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 당혹감은 자신의 아내와 트로이의 새파란 젊은 청년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지요. 어찌 이런 공노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단 말인가...
...
...메넬라우스는 트로이로 가서 자신의 아내를 도로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내를 빼앗겼다는 수치스러운 감정보다도 자신을 얕봤다는 것에 대한 분노,아내를 찾아와야 한다는 정당한 명분, 그리고 사나이로써의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스파르타의 군대만으로는 트로이를 상대한다는 것이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로이는 이미 프리아모스왕의 그 동안의 치세로 하여 부강해진데다가 주변에 동맹국들도 많았고 실권을 쥐고 있는 헥토르 왕자가 뛰어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섣불리 덤볐다가 전쟁에 패하거나 한다면 오히려 아내를 잃은 것보다 더한 수치를 당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때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과거 그와 다른 경쟁자들이 헬레네와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했던 맹세였습니다. 즉 누구와 결혼을 하게 되던지 다른 경쟁자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지켜주기 위해 이를 깨뜨리려 하는 자를 함께 징벌한다는 것이었지요. 오호라...
...메넬라우스는 자신이 당한 비통한 일들과 이를 다시 바로잡아야 함을 형인 아가멤논에게 알렸습니다. 그리스내에서 강국에 속했던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은 곧바로 온 그리스의 왕들과 장수들, 영웅들에게 트로이의 파렴치한 행동과 이를 징벌해야 하는 의무가 모두에게 맹세로써 존재함을 통지하였습니다. 과연 트로이에 대한 징벌은 이루어질 것인가..??
...놀랍게도 맹세에 참가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온 그리스의 모든 국가들이 트로이에 대한 원정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였으며 그리스의 유명한 영웅들과 왕들,장군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트로이의 부당함을 외친 것이었습니다. 메넬라우스의 입장에서는 온 그리스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므로 득의양양한 일입니다만 사실상 이에는 다른 속내가 있었습니다.
...트로이는 프리아모스왕의 치세에 주변국들과의 폭넓은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국가들의 불만이 많이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트로이의 교역세에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던 그리스는 트로이의 정벌을 통해 얻게될 막대한 부를 강조한 원정파의 설득에 쉽게 동의를 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리스의 모든 영웅들이 다 참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원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할 영웅들 중에 단 두 사람이 아직 참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지혜로운 장수 오뒷세우스와 불사신의 영웅 아킬레우스였지요.
...애당초 구애자들의 맹세를 생각해냈던 오뒷세우스는 이미 아름다운 아내인 페넬로페와 어린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트로이로 떠날 경우 20년이 지나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 자신에게 주어지게 되자 더더욱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까 고민하던 오뒷세우스는 광인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옷과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사람처럼 지껄이고 다녔으며 이 소문은 금새 온 그리스로 퍼져나갔습니다. 원정대의 장군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평소 오뒷세우스와 친분이 있던 팔라메데스는 과연 정말로 그가 미쳤는가를 보기 위해서 그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때마침 오뒷세우스는 밭을 갈고 있었는데 그의 하는 모습이 정말로 미친 사람의 그것이었습니다. 황소와 나귀를 쟁기에 묶어 밭을 가는데 이리저리 몰고 가는 것이 방향도 일정치 않았으며 풀어헤쳐진 머리와 옷에 입으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씨를 뿌린다고 뿌리는데 그 씨는 씨가 아닌 소금이었고 그나마 사방으로 아무데나 마구 집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팔라메데스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어찌하여 이 사람이 이리 되었는가 하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의 눈에 오뒷세우스의 어린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모습이 들어왔지요. 이 사람이 정말로 미쳤는가 한 번 시험해보자...
...그는 텔레마코스를 오뒷세우스가 땅을 파헤치고 있는 앞에 가만히 내려놓았지요. 어찌 할까..?? 땅을 헤집으며 쟁기를 몰던 오뒷세우스는 아들을 보는 순간 쟁기를 몰아 슬쩍 피해갔습니다. 어찌 이 귀여운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팔라메데스는 재빨리 뛰어가 오뒷세우스의 손을 붙잡았지요.
..."장군,그러지 말고 우리와 함께 갑시다. 그리스의 모든 군사들이 장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 우리를 모른 척 하시려 한단 말입니까..??" 오뒷세우스는 차마 그의 그러한 간청을 저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울며 붙잡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서 그리스군의 진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온 그리스 진영은 기쁨으로 술렁였지만 아직 한사람이 남아있었으니 바로 아킬레우스였습니다. 아킬레우스에게 원정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에 그의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은 아들의 운명에 대해서 가만히 점을 쳐보았지요. 그런데 그 점의 결과는 그의 아들이 전쟁에서 큰공은 세우나 결코 살아서 돌아 올 수는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여신은 원래 아킬레우스가 헬레네에게 구애를 하였던 사람도 아니니 반드시 전쟁에 참여할 의무는 없다고 하며 아들을 빼돌렸습니다. 그래서 테티스는 스퀴로스의 뤼코메데스왕에게 아킬레우스를 보내 숨겨달라고 하였고 그는 그곳에서 여인네로 변장하여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변장한 아킬레우스>
...한편 테티스의 거절을 받은 그리스 장수들은 실망하였고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데려오기 위해 오뒷세우스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멤논은 예언자인 칼카스로부터 아킬레우스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아킬레우스가 뤼코메데스왕의 궁전에 있음을 알아낸 오뒷세우스는 동료장수인 아이아스와 함께 장사꾼으로 변장을 하고는 뤼코메데스왕의 궁전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간 물건들은 빗이며 장신구 같은 여자들이 쓰는 물건들이었지요.
...과연 성안의 여자들이 몰려와 각종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뒷세우스는 그 장신구들 틈에 칼과 방패 하나씩을 넣어 두었지요. 그리고 몰려든 여인들 중의 한 명이 이상하게도 장신구들은 제쳐두고 그 칼과 방패를 만지작거리는 것이었습니다.
... 이때 갑자기 나팔소리가 크게 울리며 소란스러워졌고 놀란 여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쩔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리고 칼을 만지작거리던 그 여인은 갑자기 칼과 방패를 들고는 전투를 치를 자세를 갖추었지요.
...그러자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는 입고 있던 장삿꾼의 옷을 벗어버리고는 그 여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발 원정에 참여해 달라고 사정하였지요. 그는 바로 변장한 아킬레우스였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아킬레우스로서도 더 이상 그들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머니의 당부를 저버리고는 원정에 참여하게 되지요.
...이렇게 하여 오뒷세우스와 아킬레우스가 참여함으로 해서 그리스 군은 진영을 모두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스군을 이끌 총사령관으로써는 아가멤논이 추대되었지요. 당연한 결과라는 듯 아가멤논은 그 직을 수락하였고 곧 그리스 진영을 짰습니다. 엄청난 양의 배와 군사들이 준비되었고 온 그리스는 전쟁의 준비로 술렁였습니다.
...그리스군 진영의 유명한 장군들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테티스 여신의 아들인 아킬레우스, 총사령관인 아가멤논, 힘이 쎈 장수 아이아스, 아레스의 아들들인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 예언자 칼카스, 디오메데스,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이며 의사인 마카온, 네옵톨레모스, 나이가 가장 많으며 덕망이 높은 네스토르, 지혜로운 장수 오뒷세우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 필록테테스 그리고 헬레네의 남편이자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오스, 그외에 수많은 영웅들...
...이들의 전쟁준비의 소식은 바람을 타고 파도를 건너 트로이에까지 전해졌고 역시 전쟁을 예견하고 있던 트로이 또한 역시 이에 맞서 비장한 각오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피게네이아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왔을 때에 트로이의 반응은 대환영이었습니다. 헬레네를 대했을 때에 그들은 그 미모에 반하였고 이 같은 보물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보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지요. 파리스는 영웅이 되었고 헬레네는 트로이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프리아모스왕은 이 미모의 여인이 자신들에게 전쟁의 비극을 가져오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헬레네를 박대하거나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자신의 정당한 며느리로써 맞아주었지요. 그에게 있어서는 파리스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고 또 노년의 위안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반대하고픈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리스에서 파리스가 스파르타에서 훔쳐간 보화들과 헬레네를 돌려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에 이를 거절하는 파리스의 입장을 옹호하기까지 했습니다. 파리스는 그리스의 요청에 대해 보화들은 돌려줄 수 있으나 헬레네는 돌려줄 수 없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헬레네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헥토르와 캇산드라였습니다. 맏아들인 헥토르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또한 이성적이었기 때문에 동생의 반인륜적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애초부터 파리스라는 인물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그 자신은 트로이의 왕자요 실권자로써 트로이의 부국강병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해 이렇게 국가를 키워왔건만 아버지 늘그막에 어서 동생이랍시고 나타난 인물은 남자답지도 못했고 그저 빈둥거리기만 했으며 노왕은 장남인 자신보다도 파리스를 더 편애하는 것 같아서 늘 불만이 있어왔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차에 나라에 화근을 불러올 지도 모르는 여인네를 납치하여 돌아왔던 것이었지요. 그로써는 겨우 키워놓은 국가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프리아모스의 딸이었던 캇산드라는 예언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헬레네를 대하는 순간 자신들에게 몰아닥칠 비극의 전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무도 들으려하지 않았고 헥토르도 아버지에게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부친에 대한 존경이 너무도 컸지요. 다만 운명의 시각이 자신들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스가 헬레네를 돌려달라는 그리스의 요청을 반대하자 곧 그리스에서 트로이를 침공하기 위해 군대를 모은다는 소문이 전해져왔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낀 헥토르는 전열을 가다듬어 전쟁을 대비하기 시작했고 성 안팎으로 수리를 하였습니다. 또한 주변 동맹국들의 참전을 종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바야흐로 양측에서 전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전쟁의 준비를 완료한 그리스군은 보에오티아의 아울리스항에 총집결을 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트로이를 향해 떠날 준비가 다 되어있었지요. 결전을 준비한 병사들의 각오는 굳었습니다. 트로이쯤은 단번에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러나 그들은 트로이로 향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를 움직여줄 바람이 불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그렇게 바람을 기다리기를 하루... 이틀... 열흘... 병사들은 점점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불만과 의심이 일어났지요. 그건 신들이 그리스군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바람이 불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장군들까지 불만을 토로하자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예언자 칼카스에게 바람이 불지 않는 원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칼카스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지요. 그것은 아가멤논이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화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리스항에 군대가 집결하고 있을 때에 아가멤논은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숲에 들어가 여신이 아끼던 사슴을 죽였다는 것이었지요.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아가멤논은 차마 자신의 예쁜 딸을 제물로 바칠 수 없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장군들이 무더기로 아가멤논을 찾아와서는 아가멤논에게 항의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서 이곳에 모였는데 장군이 그처럼 자신의 입장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소이다. 우리는 즉각 돌아가겠소..!!"
...아가멤논은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동생인 메넬라우스 조차도 어렵게 모인 군대가 모두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그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편지를 보내지요. 편지의 내용은 이피게네이아를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려 하니 빨리 딸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전쟁을 하러 떠나는 마당에 결혼식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그냥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이피게네이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영웅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에 기뻐 어쩔 줄을 몰랐지요. 가련한 여인의 운명이여...
<끌려가는 이피게네이아>
...이피게네이아를 맞이한 아가멤논은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딸에게 거짓을 말하였지요. 그리고 그녀는 신부의 차림으로 꾸며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녀가 사람들에게 인도되어 그리스군의 앞에 섰을 때에 그녀는 이것이 그녀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의 결혼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결혼식의 모습이 아닌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이었던 것이지요.
...그녀는 깨달았으나 그 상황에서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를 향해 애처로운 눈빛으로 눈물을 흘렸을 뿐이었고 아가멤논은 이를 외면하였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영문도 모르는 채 이 가여운 처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단앞에 놓인 그녀의 목으로 제물을 바치려는 무정한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르테미스 여신은 문득 이 처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희생되기에는 처녀가 너무도 애처로웠고 또 순수했지요. 그래서 칼날이 그녀의 목을 파고드는 순간 아르테미스는 사방에 구름을 일으키고는 재빨리 그녀를 빼돌렸습니다. 그 대신 제단에 사슴 한 마리를 던져놓았지요.
...여신은 이피게네이아를 구해서는 타우리스로 데려가 자신의 여제관으로 삼았습니다. 그곳에서 이피게네이아는 훨씬 나중에 오빠인 오레스테스를 구해주게 되지요.
...아무튼 순간적으로 구름이 일어났다가 흩어지고 나니 제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것은 이피게네이아가 아닌 사슴이었고 사람들은 괴이한 일이라며 수근거렸습니다. 아무도 그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칼카스만은 여신이 이피게네이아를 데려갔음을 알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의 가슴속에 원한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군대는 환호성과 함께 힘찬 출발을 하게 되지요. 트로이를 함락하고 헬레네를 되찾아오기 위해서...
브리세이스
...트로이를 향하는 그리스군의 기세는 단숨에 트로이를 격파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대의명분이 있었고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트로이군도 결사항전의 다짐을 하고 있었으며 성벽을 높게 쌓고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 그 어느 쪽도 만만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리스의 함대가 트로이의 해안에 도착하여 상륙을 하는데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걱정하던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가장 먼저 뭍에 오르는 자는 죽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운명을 피해가고 먼저 뭍에 오른 프로테실라우스는 첫 번째 전투에서 결국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군의 기세와 트로이 군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쉽게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트로이의 성벽은 넘기에는 너무 높았고 허물기에도 단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군의 진영과 함선들도 공격하여 부수기에는 너무도 강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들판과 성벽,함선 앞에서 진퇴를 거듭하고 끝내 싸움이 지지부진해지기에 이르르니 그 세월이 무려 9년이나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양쪽 진영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고...
...상대를 잃은 그리스 군은 인근의 트로이 동맹국들을 공격하고 다녔고 그로부터 전리품을 취하여 자신들끼리 나눠 가짐으로 해서 겨우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시킬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변국들과의 싸움만을 지속하던 중 바야흐로 전쟁은 10년째에 접어들게 되었고 그 즈음에 그리스 군대 내에서 한 난감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일리아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은 시작되다>
...그 사건은 아가멤논이 잡아온 전쟁 포로들중에 아폴론 신의 사제인 크뤼세스의 딸 크뤼세이스가 있었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잡혀갔음을 안 크뤼세스는 그리스 진영으로 아가멤논 장군을 찾아와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지요. 전쟁 포로는 가장 큰 전리품중의 하나인데 어찌 그냥 돌려줄 수 있단 말입니까..??
...크뤼세스는 아무리 해도 아가멤논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복수심에 아폴론에게 그리스 군에 저주를 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당하다고 여긴 아폴론은 그의 기원을 받아들여 그리스 군에 전염병의 저주를 내리고 말았지요. 아폴론은 전염병을 퍼뜨리는 신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온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퍼지고 이로 인하여 장수들이 죽어가자 예언자인 칼카스는 병의 원인을 알아보고는 아가멤논에게 원인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크뤼세이스로 인한 아폴론의 저주가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이었지요.
...전에 이미 이피게네이아로 하여 분란이 일었던 것처럼 또다시 아가멤논에 대한 불만이 장군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총사령관이라는 이유로 그가 남들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였던 것일까요..?? 그들 불만세력을 대표한 것이 바로 아킬레우스였습니다.
...여러 장군들과 함께 아가멤논의 막사로 찾아간 아킬레우스는 자신들의 대의를 상기시키면서 즉각 크뤼세이스를 석방할 것을 요청하였지요. 그러자 언쟁이 오고갔고 화가 난 아가멤논은 자신이 크뤼세이스를 석방하는 대신에 아킬레우스가 차지한 여자 포로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하였지요.
...그 어느 때나 역시 모든 불화는 여인 하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이들의 사이도 그러하였습니다. 남자들이란...
...이에 역시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노려보면서 자신이 브리세이스를 내놓을테니 크뤼세이스를 석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가로 자신은 이번 전쟁에서 빠지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장군들이 두 사람을 말리려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두사람의 마음이 모두 그 끝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는 이미 연인의 관계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그가 이를 알고서 일부러 그런 요구를 하였던 것이었을까요..?? 그대로 막사로 돌아온 아킬레우스는 아무 말 없이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의 막사로 보내 버렸습니다. 가여운 그녀는 그저 자신의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긴 이제 그녀의 주인은 다른 이였으니...
...이렇게 브리세이스를 떠나 보낸 아킬레우스는 즉각 자신의 군대를 진영에서 빼 철수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몇 장수가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과 함께 그리스로 돌아가자고 할 정도였지요.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했음을 안 테티스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제우스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이 모욕을 당한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해달라고 간청하였지요. 즉 그리스 군이 전쟁에서 밀리도록 하여 아들이 없는 그 공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이를 받아들였고 바로 그 다음날의 전투에서 그리스 군은 트로이 군대에게 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가멤논을 위시한 여러 용맹한 장수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계속 불리해졌으며 결국 그리스 군은 해안에 뭍에 올려놓은 자신들의 함대에까지 밀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에서 방책을 쌓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농성을 하였지요. 트로이 성을 공격하러 온 그들이 이제는 오히려 숨어서 공격을 막아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전세가 이 지경에 이르자 아가멤논은 급히 장군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습니다. 가장 연장자였던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에게 아킬레우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브리세이스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하였고 아가멤논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 포이닉스가 중재자로써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그 뜻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이미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터라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과 함께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지요. 결국 중재에 실패한 그들은 하릴없이 돌아가고 그렇게 날은 저물어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끝없는 암흑과 어둠, 그리고 깊고도 깊은 슬픔의 날이 운명처럼 그들의 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도다...
파트로클로스
...트로이 전쟁이 원인이 신들에게 있었던 만큼 올림포스의 신들도 이 전쟁에 관심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들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대거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 스스로도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고 또 자기들이 지지하는 편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였지요.
...그중에서도 아프로디테는 단연코 트로이를 편들었고 파리스를 미워하는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를 응원하였습니다.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를 밀어주고 있었지요. 반면에 포세이돈은 그리스를, 아폴론은 트로이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테티스의 탄원으로 그리스군이 수세에 몰리자 헤라 여신은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음모를 꾸몄는데 아프로디테에게서 사랑의 허리띠를 빌려서 몸치장을 하고는 제우스의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만일 아프로디테가 그녀의 의도를 미리 알았더라면 허리띠를 빌려주지는 않았을텐데...
...헤라를 본 제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서는 사랑의 감정에 자신을 억제하지를 못하였습니다. 바로 아프로디테의 허리띠의 힘이었지요. 그리하여 그는 전쟁의 일은 잊고서 아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포세이돈이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나서 수세에 몰린 그리스 군대를 지원하기 시작했지요.
...전세는 다시 역전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함선까지 후퇴해서 방어선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그리스 군대가 승기를 잡은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치열한 싸움에서 양편의 두 장수 아이아스와 헥토르가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이아스는 그리스군을 대표하는 명장이요 헥토르는 트로이의 제일 가는 장수였습니다. 바야흐로 용과 호랑이가 한 곳에서 만나니 하늘은 검게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땅은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이름을 외치고 맞붙으니 예측을 불허하는 싸움이었으나 이미 승기는 그리스에 있었던 것. 아이아스가 던진 바위에 헥토르는 그만 목을 맞아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져 혼절하니 트로이 병사들은 재빨리 그의 몸을 거두어 퇴각을 하였고 제우스는 헥토르의 비명을 듣고서야 제정신을 차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드리워졌던 먹구름들을 흩어 버리고 노하여 헤라를 물러가게 하니 여신은 이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는 곱게 물러갔습니다. 제우스는 포세이돈에게 명해 전쟁터를 떠나게 하고는 아폴론을 보내 헥토르의 부상을 치료하게 하였지요. 음,역시 권력을 지닌 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군요.
...그리하여 금방 부상에서 회복된 헥토르가 다시 전쟁터로 나가고 사기를 되찾은 트로이 군대가 총공격을 펼쳐오니 전세는 또다시 역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하루의 시간들은 어찌 그리도 긴 것인지... 무시무시한 싸움들은 그 칠줄을 몰랐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속에서 그리스의 장수들은 모두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혜로왔던 오뒷세우스도, 용감한 디오메데스도, 총사령관인 아가멤논도 모두 부상을 입어 퇴각해야 했고 마침내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이었던 마카온이 부상을 파리스의 화살에 입어 후송되니 그리스군은 애가 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마카온이 군의관이었던 까닭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하여 노장 네스토르가 부상당한 마카온을 후송해오니 지나가는 그를 본 아킬레우스는 누가 부상당한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료장수요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보내 부상당한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였지요. 그리하여 파트로클로스가 네스토르의 진영을 찾아가니 그를 본 노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아킬레우스 장군이 당한 치욕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지금 위기에 빠진 그리스 군대를 구할 이는 오로지 아킬레우스 장군밖에 없소이다. 아가멤논 장군과의 원한은 나중에 따져도 되지만 그리스 군대가 패해 모두가 죽고 난 후에는 누구와 시시비비를 가리겠으며 또 홀로 살아 돌아간들 그리스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뭐라 말할 것이겠소..??
...장군은 장군의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잊었소이까..?? 아킬레우스 장군이 젊어서 혈기왕성하여 미숙함이 있을 것이니 연장자인 장군이 그의 미숙함을 지도하고 이끌어주라는 당부의 말씀을 잊었소이까..??"
...네스토르의 간절한 부탁과 그리스 군대의 비참한 상황을 들으니 젊은 파트로클로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돌아온 그는 아킬레우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전쟁에 복귀할 것을 종용하였지요.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직도 얼음과 같았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심하고 잔인함을 탓하면서 대신 그의 갑옷을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갑옷만 보고도 트로이 군대는 놀라서 물러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의 이 상황에서 그리스 군대를 구할 방도는 그밖에는 달리 없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차마 그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갑옷을 빌려주면서 다만 트로이 군대를 물리치기만 하고 그들을 너무 뒤쫓지는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킬레우스의 빛나는 갑옷을 걸친 파트로클로스가 전쟁터에 등장하니 온 그리스 군대는 환호성을 질렀고 트로이 군대는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파트로클로스가 앞장서고 이어 아이아스와 네스토르의 두 아들이 따르니 트로이군은 추풍낙엽과 같이 흩어졌고 그 장수들은 차례차례 파트로클로스의 창앞에 쓰러져갔습니다. 제우스의 아들인 사르페돈 조차 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제우스는 말없이 그의 죽음에서 그 시체를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런 그에게 죽음을 정해준 것이었으니 그는 아킬레우스의 당부의 말을 잊고서 계속해서 트로이군을 뒤쫓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헥토르와 만나게 되었으니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속한 군대의 명예를 걸고서 대결을 벌였습니다. 파트로클로스가 바위를 던졌으나 헥토르의 옆에 있던 마부가 맞아 쓰러졌지요. 헥토르가 그를 부축하고자 전차에서 내리니 파트로클로스가 다시 전차에서 내려 그와 싸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헥토르를 돌보던 아폴론은 그를 지키기 위해서 파트로클로스의 등뒤에 나타나 그의 머리를 쳐 투구를 떨어뜨렸고 그의 흉갑을 풀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무방비 상태가 된 그의 등뒤에서 트로이 장수 한 명이 창으로 찔러왔고 이제 상처를 입어 힘없이 무너져 가는 그의 앞에서 다시 헥토르가 그의 가슴을 창으로 찌르니 그리스의 젊은 용사는 땅위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킬레우스와 함께 자라났고 함께 케이론에게서 학문과 싸움을 익혔으며 평생의 우정을 간직하였던 그는 저승의 객이 되어 버렸고 모든 그리스 군대가 다 죽어도 끝까지 함께 살아남자던 그들의 맹세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아,인간의 운명이란 이리도 덧없는 것인지...
...이제 그의 죽음으로 하여 전쟁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일리아드는 그 끝으로 치닫는 것이니
헥토르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그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헥토르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것을 기념 삼아 입고 싸움을 계속 하였지요. 그러나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놓고서 양측간에 다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으니 아이아스와 메넬라오스는 힘겹게 트로이군과 싸우며 그의 시체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안틸로코스를 발견한 아이아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리라 외치니 안틸로코스는 적병의 추격을 물리치며 아킬레우스의 진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군은 무사히 용사의 시체를 지켜 방어선으로 후퇴를 하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상처, 패배뿐이었습니다.
...한편 안틸로코스로부터 친구의 죽음을 전해들은 아킬레우스는 바닥에 쓰러져 한없이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고 싸움터에서 경솔하였던 자신을 책망하였습니다. 그 자신으로 인해 친구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생각하였으며 이제 이 세상의 삶이 자신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듯이 여겨졌습니다.
...그의 슬픔은 너무도 걷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안틸로코스는 그가 혹시 친구를 따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였을 정도였으며 그렇게 비통해 하던 그의 마음은 다시 타오르는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 그것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가져온 헥토르와 온 트로이 군대에 대한 분노였으며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는 무서운 맹세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원수를 갚기 위해 전차에 오르려 하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테티스 여신은 아들을 극구 만류하였습니다.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고 아들에게는 갑옷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하여 아들을 달래놓은 여신은 급히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아들을 위한 갑옷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니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는 곧 이 존경 스러운 여신을 위하여 훌륭한 갑옷과 투구, 방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갑옷을 준비하는 동안 냉정해진 아킬레우스는 이제 아가멤논을 위시한 그리스군의 여러 장수들을 소집하여서는 그 동안의 자신의 경솔함과 무관심을 사과하고는 곧 트로이군을 격파하러 출전 하겠노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머쓱해진 아가멤논이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고 화해를 신청하니 친구에 대한 복수심만이 있을 뿐인 아킬레우스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화해에 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진영을 가다듬은 그리스의 군대가 아킬레우스의 지휘 아래 출전을 하여 이 새로운 날은 오히려 트로이군에 있어서 비극의 날이 되게 된 것이니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심 앞에서 트로이의 장수들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이 꺼져갔으며 온 트로이 군대는 그가 휘두르는 창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하였습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가 아킬레우스와 맞서게 되었을 때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의 힘이 아킬레우스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았으나 장수로써 용감하게 그와의 대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창을 던지자 아킬레우스가 방패를 들어 막으니 다섯 겹의 방패에서 두 겹의 방패만을 뚫고서 멈추었고 이번에는 아킬레우스가 창을 던지니 아이네이아스의 갑옷을 관통하였으나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아이네이아스가 큰 바위를 들어 던지려 하였고 아킬레우스가 칼을 빼들어 돌진하니 이 위급한 순간에 아이네이아스를 염려한 포세이돈은 재빨리 강한 바람과 함께 아이네이아스를 후방으로 빼돌려 구해내었습니다. 상대가 없어짐을 안 아킬레우스는 다시 트로이 성을 향해 내달았고 트로이 군대는 성안으로 후퇴하기에 정신없었지요.
...성벽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프리아모스왕이 성문을 열어 급하게 군대를 거둬들이려 할 때 아킬레우스가 성에 가까이 이르자 다급해진 아폴론은 프리이모스의 아들인 아게노르의 모습으로 변하여 아킬레우스를 성에서 멀리 유인해 내었습니다. 그를 유인하는데 성공한 아폴론이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라지니 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트로이 성을 향해 전차를 몰아갔습니다.
...이 무서운 전투에서 신들도 함께 맞서게 되었으니 트로이를 지원하던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그리스 군을 지원하는 아테나 여신과 창을 겨누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살육을 일삼던 전쟁의 신 아레스는 먼저 아테나에게 창을 내질렀으나 역시 전투의 여신이었던 아테나는 이를 피하며 아레스에게 일격을 가했습니다. 아레스가 넘어지자 아프로디테가 아테나를 막으려 달려들었고 그녀 역시 아테나의 공격을 받아 넘어지고 말았지요. 그들은 곧 후퇴를 하여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전쟁터에서 무적이 된 아테나는 트로이에 대한 자신의 적개심을 헥토르에게 돌리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트로이 군대가 성안으로 퇴각을 할 때에 여신은 헥토르의 퇴각을 방해하였지요. 그리하여 아킬레우스가 다시 성벽으로 돌진해오자 성벽 위에 서있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과 어머니 헤카베는 그에게 빨리 성안으로 들어오라고 애타게 외쳐댔습니다. 그러나 헥토르는 용사답게 자신의 운명에 맞설 각오를 하였지요.
..."비록 그의 손이 불과 같고 그 마음이 강철과 같다해도 아킬레우스를 맞이하리라."[호머의 일리아드에서] 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죽어가면서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또한 사나운 번개와 같이 쇄도해오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에 그는 갈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헬렌과 그녀의 보물, 또한 우리의 막대한 보물을 양보하겠노라고 제안해보면 어떨까..?? 아, 아니야..!! 너무 늦었어. 그는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말하는 동안에 나를 베어 버릴 것이다." [토마스 불핀치의 글에서]
...그러는 동안에 아킬레우스는 달려왔고 전의를 잃은 헥토르는 그를 피해서 성을 돌았습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그를 뒤쫓았고 그렇게 성벽을 도는 동안 제우스는 올림포스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운명을 실은 저울을 치켜들었습니다.
...운명의 순간... 저울은 헥토르의 운명을 실은 쪽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그의 운명을 구해줄 수 없음을 안 제우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지요.
...결국 헥토르를 돌보아주던 아폴론은 인간 운명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그의 곁을 떠나가고 아테나 여신은 헥토르의 동생인 데이포보스의 모습을 하고서 그의 곁에 나타났습니다. 전의를 상실했던 헥토르는 그의 모습을 보자 용기를 내어 말머리를 돌리고는 아킬레우스와 맞섰지요.
...그가 던진 창이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고서 튕겨 나가자 헥토르는 다시 동생에게 창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뒤돌아보았을 때에 그의 뒤에는 그저 황량한 들판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아아, 내가 죽을 시간이 되었구나. 데이포보스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팔라스[아테나]가 나를 속였도다. 그는 아직 트로이에 있지. 하지만 난 불명예스럽게 죽지는 않겠도다."[토마스 불핀치의 글에서]
...더 이상 창이 없는 헥토르가 자신의 칼을 들고 아킬레우스에게 달려가니 창을 든 아킬레우스는 단 한번에 헥토르의 목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아, 덧없는 인간의 목숨이여... 트로이의 번영을 주도하였고 그리스 군에 담대하게 맞섰으며 그 창과 칼 아래 수많은 용사들을 저승으로 보내었고 이제 그 자신이 그들의 뒤를 따르게 되었노니...
...죽어 가는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의 시체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려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만 분노의 절정에 이른 아킬레우스에게서 단지 조롱을 당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롱과 비웃음 속에 그의 영혼은 그 육신을 떠나 저승의 세계로 향해서 가니 그 영혼은 이제 이승에서의 고뇌에서는 벗어났으나 그의 육신은 아직 그러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아킬레우스가 그의 육신을 전차 뒤에 매달고는 트로이성 앞의 들판을 마구 달렸기 때문이었지요. 이 광경을 본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놀라움과 슬픔으로 절규하며 쓰러졌고 헥토르의 사랑하는 아내, 안드로마케는 그만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온 트로이 병사들과 사람들이 슬픔에 젖었고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였으나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그렇게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도 가실 줄을 몰랐던 것이니...
프리아모스
...헥토르를 죽여 친구의 복수를 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단장을 하고 새 옷을 입힌 다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났고 한 스승으로부터 함께 배웠으며 함께 전쟁에 참가했건만 이제 운명은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친구에게 아킬레우스는 눈물로써 마지막을 고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리고 불을 붙이니 병사들의 표정은 엄숙하였고 아킬레우스의 통곡소리는 멀리 하데스의 궁전에까지 이르는 듯 했습니다. 헥토르를 죽여 원한을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극에 이른 아킬레우스는 다시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고서 벌판을 마구 달렸습니다. 생명이 떠나 버린 헥토르의 시신은 돌과 바위에 부딪혔으며 흙먼지와 온갖 더러움으로 뒤덮였고 아폴론은 필사적으로 그의 시신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렇게 벌판을 마구 달리던 아킬레우스는 막사로 돌아와 헥토르의 시신을 내던져놓고는 이미 다 타 버린 파트로클로스의 유해로 가서는 잿 가루를 머리에 뿌리고 슬픔에 울부짖으며 그 유골위로 누워 버렸습니다. 지켜보던 모든 그리스 병사들이 슬퍼하였고 신들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파트로클로스의 영혼은 그저 말없이 저승의 강을 건널 뿐이었지요.
...그러나 이에 못지 않은 슬픔이 트로이 성안의 모든 트로이인들 에게도 있었으니 바로 헥토르의 죽음과 그 시신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복수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인 헤카베와 아내인 안드로마케는 자리에 누워 울음을 멈추지 않았으며 프리아모스왕은 이제 자신과 이 트로이성에 몰아닥칠 비극의 운명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병사들과 시민들은 이제 실질적인 지도자를 잃은 것에 대한 망연함과 역시 전쟁터에서 죽어간 자신들의 동료,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에 밤새 슬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평소에 프리아모스왕을 존경하고 아끼던 제우스신은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테티스 여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이 정도면 아킬레우스의 원한에 대한 헥토르의 대가는 치룬 것이니 이제 그 시신을 그 아비에게 돌려주도록 설득하라고 일렀지요.
...그리고는 따로 무지개의 여신인 이리스를 왕에게 보내 아킬레우스에게로 가서 아들의 시신을 돌려 받으라고 시켰습니다. 제우스의 전갈을 받은 프리아모스왕은 창고에서 값진 보화들을 모아 수레에 싣고는 아킬레우스에게 가겠노라고 말하였지요.
... 왕비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왕이 실성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마부 한사람만을 데리고는 그리스 군대의 진영을 향해 성문을 나섰지요.
...제우스는 그를 인도하기 위해 헤르메스를 보냈습니다. 왕이 헤르메스의 인도에 따라 그리스 진영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모든 그리스 장병들이 잠이 들어 있었지요. 바로 헤르메스가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헤르메스의 인도를 받은 프리아모스왕이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도착하니 젊은 아킬레우스는 노 왕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자 노 왕은 젊은 장수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애절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지요.
..."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가 나처럼 수명이 다하고 삶의 가장자리에서 떨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또한 지금 이웃의 왕이 압박을 가하고 있고 자신의 고뇌를 이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여겨보시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아킬레우스가 살아있어서 언젠가는 그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에 그는 아직도 기뻐할 것이라오.
...그러나 어떤 위로도 내게 기운을 주지 못하니 말년의 일리움[트로이]의 꽃과도 같던 용감한 아들들은 모두 쓰러졌다오. 그리고 내 생애에 있어서 다른 어느 아들보다도 힘이 되었던 아들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그대에게 죽임을 당했다오. 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몸값을 가지고 그의 몸을 되찾으러 왔소이다.
...아킬레우스여, 신들을 경외하시구려. 그대의 아버지를 회상해보시오. 그리고 내게 동정을 베풀어주시구려."
...아킬레우스는 슬픔이 베어있는 노 왕의 말에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또 죽어간 자신의 친구도 떠올렸지요. 그의 마음이 연민과 동정으로 가득 차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지요.
..."프리아모스여, 난 그대가 어떤 신에 의해 인도되어 이곳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습니다. 신들의 도움이 없이는 심지어 한창때의 젊은이라 할지라도 그런 시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우스의 명백한 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나는 당신의 요청을 수락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일어서 마차에 헥토르의 시신을 싣게 하니 천을 바닥에 깔고 시신을 정중하게 누인 다음 다시 천으로 덮어 누구도 그 시신을 볼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측이 서로 전사자들의 장례를 치 룰 수 있도록 12일간의 휴전을 약속하니 프리아모스왕은 거듭 아킬레우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병사들을 시켜 노 왕을 호위하게 하여 프리아모스왕은 무사히 트로이 성으로 귀환하게 되니 트로이 사람들은 모두가 헥토르의 시신 앞에 오열하였고 그 이튿날부터 양측은 장례를 치 룰 준비를 하였습니다. 9일 동안 나무를 모으고 장례대를 세워 10일째에 비로소 장례를 치르게 되니 온 들판은 그 연기와 울음소리로 가득하였고 비로소 망자들의 영혼은 저승의 강을 건너 자신들의 쉴 곳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헥토르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일리아드는 끝이 나니 망자들은 쉴 수 있게 되었으나 살아있는 인간들은 쉴 수가 없었으니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멤논
...헥토르의 죽음과 더불어 트로이는 그 힘을 잃는 듯 하였으나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프리아모스왕이 자신의 동맹국들로부터 상당수의 지원군들을 데려왔기 때문이었지요. 그들 중에는 에티오피아의 위대한 왕 멤논이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로써 그 용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에오스는 한 인간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티토노스라는 트로이의 왕자에게 반해 그를 납치해서는 자신의 거처에서 사랑을 나눴지요. 그래서 태어나게 된 아들이 바로 멤논 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힘을 물려받아 떠오르는 햇살과 같은 아름다움과 용맹함을 지녔으며 에티오피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동지방의 정복자가 되었지요. 에오스는 그 어느 자식들
보다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였으며 이에는 끝내 불행하게 끝난 티토노스와의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겠지요...
...평소 에티오피아와 트로이는 동맹의 관계였으며 또한 그의 아버지가 트로이의 왕자였기 때문에 멤논은 기꺼이 트로이를 돕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오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서 갑옷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입혀주었지요. 그가 출정을 하자 동쪽으로부터 나오는 그의 모습은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았으며 여러 군 소도시들은 모두 그에게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군세는 사나운 파도와 같았으며 그를 이길 수 있는 적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헥토르를 잃고서 실의에 빠져있던 트로이는 멤논을 대하자 새로운 희망과 기쁨에 들뜨게 되었으며 잃어 버렸던 전의가 다시 새롭게 불타오르기 시작하였지요.
...바야흐로 멤논과 트로이의 연합군대와 그리스 군대가 맞붙게 되니 그리스 군은 멤논 앞에서 바람결에 나부끼는 가을 낙엽과도 같았습니다. 그가 사납게 몰아치며 그리스 군을 유린하니 그리스 군은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스군의 장수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네스토르의 군대가 그에 의해 공격을 받게되어 네스토르의 용맹스럽던 장수들이 죽임을 당하고 네스토르 그 자신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것은 파리스의 화살이 네스토르의 전차를 끄는 말 중의 한 마리를 맞추었기 때문이었지요. 네스토르가 위기에 처해 아들을 부르니 아르킬로코스가 아버지를 구하러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멤논과 대적하니 그 사이에 네스토르는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킬로코스는 멤논과 대적해야 했으니 그의 실력은 멤논에게 미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니 이를 본 네스토르의 눈에서 분노와 슬픔이 솟구쳤습니다. 그 자신의 생애는 많이 남은 것이 아닐터이나 아르킬로코스의 생애는 아직 한참일 것 이었을거늘...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노장의 부탁을 받아들여 멤논에게로 달려갔지요. 이렇게 하여 또다시 용과 호랑이의 싸움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늘도 숨을 죽이고 땅도 요동을 멈추었으니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하였습니다.
...멤논의 칼은 아킬레우스의 팔을 내 찔러 불사신과도 같던 아킬레우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지요.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운명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멤논에게는 그러하였던 것이니 아킬레우스의 칼은 멤논의 갑옷 가슴판의 연결부위를 찔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방에서 온 용사의 몸은 쓰러지고 마는 것이니 그 순간에 그의 죽음을 목격한 트로이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놀라움에 갑자기 모두들 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하늘로 솟아올라 멀리 날아가 버렸지요. 멤논의 죽음과 이어 벌어진 이상한 일들에 트로이 군과 그리스 군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아킬레우스조차도 섬뜩한 느낌에 싸움을 멈추었으며 양쪽 군대는 이 알 수 없는 일에 싸움을 멈추고 각자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지요. 그리하여 그리스 군은 아르킬로코스의 시신을 트로이 군은 멤논의 시신을 무사히 구해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에오스는 치솟아 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지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니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온 세상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은 새벽에 이슬이 되어 흘러내렸지요. 제우스는 갑작스런 변화에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여신이 제우스에게 찾아와 자신의 아들에게 신의 아들로써 합당한 영예를 줄 것을 부탁하자 그는 이 부탁을 받아들였지요. 그래서 멤논의 장례식을 치를 때에 불에 타던 그의 시신과 연기들이 모두 두 가지 종류의 새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새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죽을 때까지 싸웠으며 장례식의 불 길속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그 새들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갔으며 이후로 해마다 같은 날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끊임없이 싸움을 되풀이하였다지요.
...하지만 에오스 여신의 슬픔은 가실 수가 없었으니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지금도 새벽녘의 이슬이 되어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멤논과 동맹군을 잃은 트로이 군은 힘겨운 전쟁을 계속해 나가야 했던 것이지요.
아킬레우스
...멤논이 죽은 뒤로도 트로이의 저항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트로이의 동맹군들이 그리스 군대와 싸웠기 때문이었지요. 그 중에는 아마존의 여 전사들도 있었는데 이들 호전적인 전사들은 알 수 없는 기괴한 함성을 내지르면서 싸웠기 때문에 그리스 군대는 이들에게 번번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아마존의 여왕인 펜테실레이아는 대단한 용사이어서 그리스의 여러 장수들이 그녀의 손에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녀와 그녀를 따르는 12명의 아마존 여 전사들은 헥토르와 멤논의 또 다른 모습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 아킬레우스와의 싸움에서 죽게되는 것이니 아킬레우스의 칼에 오른쪽 가슴을 찔린 그녀는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습니다.
...이 놀랍고도 무서운 상대방이 궁금해진 아킬레우스는 그 투구를 벗겨서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이 한 행동이 뼈저리게 후회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지요.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진정한 용사였으며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영혼은 이승을 떠나 버리고 말았지요.
...아마존의 여왕과 여 전사들이 아킬레우스와 그리스 군에 의해 무너지자 트로이 군은 또다시 강한 동맹군을 잃은 셈이 되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있는 한은 그리스 군은 무너뜨릴 수 없는 존재와도 같았지요.
...하지만 그토록 용맹을 떨치면서 트로이 군을 위기로 몰아넣던 아킬레우스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니 그것은 그가 프리아모스왕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줄 때에 운명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우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프리아모스왕이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였을 때에 아킬레우스는 그에게 헥토르의 시신의 무게에 해당하는 금을 줄 것을 요구하였었지요. 물론
트로이는 부강한 도시였었습니다만 그 동안 전쟁을 준비하고 치루느라 재정상태가 많이 고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은 젊은 그리스 용사의 요구를 수락하였지요.
...그리하여 트로이 성밖에 세워진 저울에 헥토르의 시신의 무게를 재니 한쪽에는 헥토르의 시신이, 다른 한쪽에는 트로이 성에서 운반해온 금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성안의 금을 모두 다 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헥토르의 시신이 좀 더 무거웠지요.
...그때 이를 지켜보던 프리아모스왕의 딸 폴뤽세나가 자신이 차고 있던 금팔찌를 풀어 보탰지요. 아킬레우스가 이 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 그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그만 그녀를 위해서는 이 전쟁을 포기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녀와 결혼을 하고자 하니 프리아모스왕은 만일 그리스 군이 평화협정을 맺고 돌아간다면 폴뤽세나를 그에게 주겠다고 말하였지요.
...여기에서 아킬레우스는 왕에게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약속하고는 왕과 결혼협정을 맺으려 하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우스의 명에 의해 헥토르와 트로이를 돌보던 아폴론에게 있어서 아킬레우스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와도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아킬레우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지요.
...이점에 있어서는 그리스 군을 돕던 포세이돈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게 아킬레우스는 동료들을 배반하는 배신자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함께 아킬레우스를 단죄하기로 결정하니 이 젊은 용사는 이제 신들의 손에 그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었습니다. 진정 그가 전쟁에서 죽으리라던 예언은 이루어져야 했던 것인지...
...아폴론 못지 않게 아킬레우스를 미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이는 단연 파리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전쟁을 유발하였음을 후회하기보다는 아킬레우스로 하여 자신의 도시와 자신의 가족, 자신의 행복이 무참히 깨졌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아킬레우스가 나타남을 알게 된 그는 아폴론의 인도를 받아 독이 묻은 화살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포세이돈이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파리스 앞에 드러나게 하니 분노에 찬 파리스는 자신의 화살을 무장도 하고 있지 않은 원수에게로 날렸습니다. 그리고 이 원한의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았지요. 그리고... 그 화살은 정확하게 날아가 아킬레우스의 발 뒷꿈치에 꽂혔습니다..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에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은 아들의 몸을 불사신과도 같게 만들기 위해서 스튁스강의 강물에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킬레우스의 양 발목을 잡고 목욕을 시킨 까닭에 발목 부분만은 강물이 닿지 못해 그에게 약점과도 같은 부분이 되었던 것이었지요.
...결국 운명은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용인하게 된 것이었고 아폴론은 파리스가 날린 그 화살을 그의 발목으로 인도했던 것이었지요. 그렇게 이 젊은 용사는 바닥에 쓰러져 하염없는 인간의 목숨을 덧없어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아, 인간의 운명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인지...
...아킬레우스가 죽자 양측 진영간에서는 그의 시신을 놓고 무서운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시신과 갑옷을 탈취하여 승리를 되찾으려는 트로이 군대와 죽은 용사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하는 그리스 군대간의 싸움은 실로 무섭게 펼쳐졌습니다.
아이아스
...아킬레우스가 죽자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서 무서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트로이 군으로써는 지금까지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리스 군으로써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될 명예가 걸린 문제였지요. 양측의 장수들이 그 시신과 갑옷을 두고서 대결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크게 활약한 것이 바로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였지요. 아킬레우스와 함께 그리스 군대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이아스였습니다. 그는 대단한 거구에 힘이 장사였을 뿐 아니라 용감무쌍하고 싸움도 잘하여 상대할 이가 없는 용장이었습니다. 이제 아킬레우스가 죽었으니 그의 용맹을 당할 이가 없다고 봐야겠지요.
...아킬레우스의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에 그의 시신을 구해낸 것도 아이아스였습니다. 이제 또다시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니 트로이 군의 글라우코스가 감히 도전하였다가 아이아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빗발치는 트로이 군의 화살 속에서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등에 지고 그리스 군 진영으로 돌아왔지요. 오뒷세우스가 그런 그의 뒤에서 적군의 화살과 공격을 막아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의 공으로 명장의 시신을 구해내니 그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아들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던 여신 테티스는 아들의 장례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킬레우스에게 섬을 봉헌해주어 영원토록 제사를 지내줄 수 있게 해주었고 뮤즈들이 그의 장례식에서 장송곡을 불러주었지요.
...그의 시신은 18일 동안 화장되었으며 타고남은 재는 파트로클로스의 그것과 섞여서 황금항아리에 담겨 땅에 묻혔습니다. 이제 비로소 절친했던 친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한편 테티스 여신은 그리스 장수들에게 아들의 갑옷과 무기를 이를 받기에 합당할 만큼 용맹한 장수에게 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또 다른 불행의 근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많은 그리스군의 장수들 중에서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그 영광을 물려받기에 합당하다고 주장했다고 봐야겠지요.
...오뒷세우스는 그리스의 장수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웠습니다. 그는 그의 지혜로 많은 공을 이루었으며 또한 싸움에서도 용맹을 떨쳤지요. 애초에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하게 한 것도 그의 지혜였으며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참가시킨 것도 그의 기지였습니다.
...그러나 아이아스의 용맹 또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리스의 장수들 중에 힘이 가장 강했으며 싸움도 가장 잘하였고 가장 용맹스러웠습니다. 또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구해 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지요.
...원래 아이아스는 살라미스의 왕인 텔라몬의 아들로써 영웅 헤라클레스가 친구인 텔라몬을 위해 용맹스러운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아버지인 제우스신에게 기원함으로써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용맹함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으니 아이아스와 헥토르가 전장에서 대결을 벌인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결이 결말이 나지 않자 양측의 장수들은 두 사람을 떼어놓았지요. 그러자 아이아스와 헥토르는 서로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선물을 교환하니 헥토르는 자신의 칼을 아이아스에게 주었고 아이아스는 헥토르에게 자신의 허리띠를 주었지요.
...그러나 헥토르가 죽고 난 후 그 허리띠는 아킬레우스가 그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고 다니는데에 쓰임으로써 그 자신에게 불명예를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헥토르가 선물로 주었던 칼 역시 한때에는 아이아스에게 자랑스러운 것이었으나 결국은 그 자신에게 불명예를 안겨주고 말았으니 인간의 운명은 참으로 묘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 이들 두 사람은 그 동안 전장에서 함께 많은 일들을 해내었었습니다. 처음 출정하기전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러 갈 때에도 두 사람이 함께였으며 중간에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불화가 있었을 때에도 두 사람은 함께 아킬레우스를 찾아갔었지요.
...그들은 함께 전장을 누볐으며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구출해 낼 때에도 두 사람이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그 두 사람을 갈라놓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던 것인지 그리스의 장수들과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물려받을 사람으로 오뒷세우스를 선택하였을 때에 아이아스는 자신이 받은 모멸감에 견딜 수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멸감에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된 아이아스는 밤에 몰래 칼을 들고는 오뒷세우스와 아가멤논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막사를 떠나 오뒷세우스의 막사로 향하였는데 이를 안 아테나 여신이 그만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신이 나간 아이아스는 그만 가축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소 두 마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머리를 들고 다른 장수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리고 나서 제정신이 돌아왔지요. 그가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았을 때에 다른 장수들에게 받았던 모멸감보다 더 큰 죄책감과 창피함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그는 들고 있던 칼로써 자결을 하니 바로 헥토르가 선물로 주었던 그 칼이었으며 소를 죽였던 칼도 바로 그 칼이었습니다. 그 칼은 그렇게 아이아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인 아이아스의 어이없는 죽음을 불러왔던 것이니 그리스 군은 두 명의 용장을 한꺼번에 잃게된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이며 얼마나 많은 장수들이 더 죽어야 끝을 맺게 될 것인지...
화살
...이제 꽃다운 영웅들은 전장터에서 꽃잎처럼 다 스러져가고 온천하에 명성을 날리던 장수들이 다 죽어감에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탄 그리스 장수들은 전쟁에서 이기기에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신탁을 통하여 그 뜻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진영의 예언자인 칼카스는 그들에게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있어야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탁을 전하였지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은 그가 죽기 직전에 필록테테스에게 맡겼던 것들로써 그 화살은 히드라의 맹독이 묻혀져 있어서 누구든지 맞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필록테테스가 그리스 진영에 가담하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과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 군이 아울리스항에 집결하여 트로이를 정벌하려 출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섬에 정박하였을 때에 필록테테스가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뱀이 그의 발뒤꿈치를 물었던 것이었는데 그 상처가 어찌나 깊었던지 심한 악취가 나고 쉽게 나을 수가 없었기에 아가멤논은 그를 렘노스 섬에 버려 두고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필록테테스는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지만 아가멤논은 그에게 조금의 양식만 남겨주고는 섬을 떠나고 말았지요.
...이제 그를 설득하여 다시 데려와야 하니 그가 말을 잘 들어줄까요..?? 아가멤논은 오뒷세우스와 디오메데스를 사자로 파견하였습니다. 함께 간 마카온(혹은 포달리리오스)이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오뒷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설득을 하니 헤라클레스의 화살로 새를 잡아 먹으면서 연명하던 필록테테스는 그리스 군에 다시 합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렘노스섬을 떠나 트로이의 전장터로 합류하니 그리스 군은 트로이 군과 다시 전쟁을 벌였고 필록테테스는 그의 영광과 명예인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힘찬 모습으로 트로이의 진영으로 날렸습니다. 그가 날린 첫 번째의 화살은 유유히 적군을 향해 날아갔고 그 화살이 다다른 곳은...
...헥토르가 죽고나서 트로이의 군대와 백성들을 이끌던 힘은 파리스였습니다. 그는 이제 과거의 나약한 그가 아니었으며 헥토르가 없는 트로이성에서 그는 새로운 구심점이었지요. 프리아모스왕은 오로지 파리스만을 믿을 뿐이었으며 트로이 백성들도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그리스 군대를 맞아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날아온 화살이 그만 그의 갑옷사이를 뚫고 그의 몸에 박히고 만 것이었지요. 아... 필록테테스가 날린 첫 번째의 화살은 유유히 날아 파리스에게 이른 것이었습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파리스가 쓰러졌고 놀란 트로이 군사들은 그를 부축해 성으로 퇴각하였습니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파리스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그가 자신의 인생과 나라의 운명을 걸었던 절세의 미인 헬레네가 아니라 젊고 순수했던 시절 그의 아내였던 오이노네였습니다. 그가 스파르타로 떠나는 길에 오이노네가 그를 그토록 말렸건만... 그녀의 말을 들었었다면...
...파리스는 이다산으로 사자를 보내 자신의 잘못된 운명을 한탄하고 용서를 빌며 자신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오이노네에게는 예언의 능력 외에도 약초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기술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사자는 이다산으로 달려가 오이노네에게 파리스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이노네의 대답은 냉담하였지요. 파리스에게서 깊은 상처를 받았던 그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찾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러워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 잘난 헬레네에게 가서 치료를 해달라고 말하라며 사자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사자가 떠나고 나서 오이노네는 곧 자신의 말을 후회하였지요.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그녀는 파리스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단지 헬레네가 미웠고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찾아준 것이 야속했던 따름이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부리나케 트로이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성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파리스의 명이 다한 뒤였지요. 헤라클레스의 독으로 하여 괴로움에 시달리던 파리스는 사자가 돌아와 오이노네의 말을 전하자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리면서 그만 목숨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오이노네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그 같은 짓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결국 자결을 하고 마니 한때 청순한 사랑을 나누었던 이들 두 남녀는 이렇게 세상을 등지게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신들의 하찮은 장난에 의해서 젊은 파리스는 한 여자에게 상처를 입혔고 또 다른 여자를 넘보았으며 수많은 여인들을 죽음과 통곡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다 신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었으니 인간의 운명이란 이리도 하찮은 것이었던가요..?? 인간의 운명이란 스스로가 개척해 나가는 것인가요..?? 정해진 숙명을 그저 따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신들이 던지는 운명의 장난속에 내맡겨져 있는 것일까요..??
...트로이 전쟁의 그 기나긴 소용돌이 속에서 남겨진 것은 이러한 인간들의 장난같은 운명들일 뿐이었으니...
오딧세우스
...헥토르 이후 트로이의 구심점이 되어주었던 파리스가 죽자 트로이의 내부에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열의 회오리 속에 헬레네가 있었지요. 남편인 메넬라우스를 버리고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와서 트로이 백성들과 프리아모스왕에게 환영을 받았던 그녀.
...이제 파리스가 죽고 나자 그녀의 거취가 문제가 되니 트로이의 다른 왕자들이 파리스를 대신해 서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녀를 둘러싼 비극은 이미 이전에도 있었으니 파리스와 오이노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코뤼토스가 아버지를 돕기위해 트로이로 왔다가 헬레네를 보고는 사랑에 빠진 것이었지요.
...하지만 파리스는 이런 아들을 죽여 버리고 맙니다. 오호라.. 사랑을 위해서는 아들도 적이 되는 것인가요..?? 하지만 이제 파리스는 죽고..
...결국 그 형제들인 헬레노스와 데이포보스가 헬레네를 놓고 서로 다투었고 결국 데이포보스가 헬레네를 차지하게 되자 헬레노스는 그만 트로이성을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지요. 그는 이다산으로 갔는데 그만 그곳에서 오뒷세우스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리스 군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것은 헬레노스가 트로이의 예언자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오뒷세우스와 그리스 장수들은 그에게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말해달라고 협박하였습니다.
...자의였는지 혹은 타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는 그리스 군을 위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세 가지의 것들을 이야기하니 결국 이는 트로이의 손실이었던 것이었지요. 그가 말한 첫 번째의 것은 펠롭스의 뼈를 옮겨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간단하게 실행이 되었지요. 페롭스의 어깨뼈가 피사로부터 옮겨져 왔습니다. 두 번째 이루어져야 할 것은 스퀴로스에서 아켈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를 데려오는 일이었지요. 네옵톨레모스는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스퀴로스에서 여장을 하고 숨어있을 때에 그 곳의 공주인 데이다미아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포에닉스와 함께 스퀴로스로 찾아가 네옵톨레모스를 데리고 오는데 성공하였지요. 그도 아버지인 아킬레우스를 닮아 용감무쌍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세 번째의 것은 트로이 성에서 팔라디온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팔라디온이 트로이성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성이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팔라디온은 아테나 여신이 만든 목각 인형으로써 애초에는 제우스의 방패에 붙어있던 것이었습니다.
...아테나 여신이 어렸을 때에 그녀는 파도의 신인 트리톤에게 맡겨졌었는데 아테나는 트리톤의 딸인 팔라스와 함께 자랐습니다. 둘은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그만 대련을 벌이던 중에 팔라스가 아테나의 창에 찔려 죽고 만 것입니다.
...아테나는 이를 슬퍼하여 팔라스의 모습을 한 인형을 만들어 제우스의 방패 (아이기스) 한가운데에 붙여두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하늘에서 트로이로 떨어지게 되었고 트로이의 건설자인 이로스가 이를 위해 신전을 지어 주었던 것이었지요.
...이제 이 어려운 임무를 위해서 오뒷세우스가 나섰습니다.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가 없는 그리스 진영에서 이제 오뒷세우스를 능가할 장수는 없었습니다. 싸움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갖춘 그였기에 모든 중요한 일들이 그에 의해서 이루어졌지요.
...그래서 디오메데스와 함께 트로이성에 접근한 그는 디오메데스를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 후에 거지로 변장하고서 성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팔라디온이 있는 신전으로 찾아가는 중에 그는 헬레네를 만나게 되었지요. 헬레네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지만 병사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도와주었지요.
...파리스의 죽음으로 이제 환상에서 깨어난 것일까요..?? 어쨌든 헬레네의 도움으로 병사들을 처치하고서 팔라디온을 훔쳐낸 오뒷세우스는 디오메데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트로이성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그리스 진영으로 가져갔지요. 공이 많은 오뒷세우스..
...하지만 이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성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리스 군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지요. 과연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인가..?? 이때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오뒷세우스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혜를 빌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최후의 계략에 대한 설명을 들은 그리스 장수들은 찬성과 반대의 파로 나뉘어 설전을 벌였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 던지라 그들은 결국 오뒷세우스의 계략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부터 그리스 병사들은 전쟁을 멈춘 다음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목마
...어느날 아침부터 트로이 사람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군이 전쟁을 중지하고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그들은 인근의 나무들을 베어다가 거대한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트로이 사람들로써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고.. 드디어 윤곽을 드러낸 그것은 말의 모양이었습니다. 이른바 목마였지요. 그 용도가 과연 무엇일까..?? 트로이 성을 정복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인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 목마뿐이 아니었지요.
...목마가 거의 완성이 되어가자 그리스 군대가 철군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 것일까요..?? 그리고 정말로 목마가 완성되자마자 그리스 군은 모든 군막을 철거하여 배에 싣고는 부랴부랴 해안을 떠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군의 계략이었지요.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그 목마 안에 숨어있었고 퇴각하는 듯이 보였던 그리스 함선들은 근처 가까운 섬에 정박하여 숨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셈을 알 리 없는 트로이 사람들은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다가 그리스의 배가 모두 해안을 떠나버리자 비로소 성문을 열고 나와 목마의 근처로 모였습니다. 그 목마는 정말로 우람한 것이었으며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었지요.
...이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이 목마를 전리품으로 취하자고 하였으나 어떤 이들은 그리스군의 계략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였지요. 그들이 그렇게 의아해 하고 있을 때에 트로이 병사들이 그리스 병사 한 명을 사로잡아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시논이라는 사람이었지요.
...겁먹은 표정으로 끌려온 그는 오뒷세우스가 자신을 미워하여 내버리고서 가버렸는데 살려만 준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 군이 목마를 두고 간 까닭에 대해서 물었지요. 그러자 시논은 그 목마는 그리스 군이 무사귀환을 위하여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토록 크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또한 트로이 사람들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면 자신들이 그리스로 무사히 귀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성안으로 끌고 가지 못하도록 크게 만들었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목마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풀린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군의 함선이 그리스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들어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끝까지 이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 중 한 사람은 캇산드라 공주였습니다.
...일찍이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성으로 왔을 때에 불길한 예언을 한 바 있었던 그녀는 이번에도 목마에는 그리스 군대가 숨어있다고 말하였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폴론의 저주로 하여 그녀의 예언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아폴론은 이 앞 못보는 처녀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습니다. 캇산드라는 아폴론에게 자신이 그의 사랑을 받아주길 원한다면 자신에게 예언의 능력을 부여해 달라고 조건을 달았지요. 아폴론은 기꺼이 그녀에게 예언의 능력을 전수하여 주었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의 혀에서 설득력을 빼앗아가 버렸지요. 그래서 그 뒤로는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헬레네에 대해서도 그러하였고 또 목마에 대해서도 그러하였지요.
...또한 목마의 반입을 반대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폴론의 신관인 라오코온이었습니다. 그는 목마를 끌어들이려는 트로이 인들에게 이 무슨 짓을 하는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목마를 향해 창을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창에 맞은 목마에서 안이 텅 빈 듯한 소리가 울리자 라오코온은 역시 목마는 수상하니 성안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였지요.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다에서 커다란 뱀 두 마리가 기어올라와 곧장 사람들에게로 향해오더니 그만 라오코온과 그의 두 아들을 칭칭 감아 죽이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라오코온이 목마에 창을 던져 신의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였지요.
...이번에는 헬레네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 목마 앞에서 여러 그리스 장수들의 아내들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그 장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그 목마 안에 그리스 장수들이 있음을 안다는 듯한 태도였지요.
...몇 사람의 이름을 부른 뒤에 그녀가 안티클로스의 아내의 목소리로 안티클로스의 이름을 불렀을 때에 그는 그만 그 목소리에 대답하려고 하였지요. 놀란 오뒷세우스가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안티클로스가 그 손아귀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니 오뒷세우스는 더더욱 강하게 그의 입을 막았고 숨이 막힌 안티클로스는 그만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헬레네가 이러한 행동을 한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목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녀는 그만 물러났지요. 그리고 더 이상 목마를 성안으로 옮기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목마가 워낙 큰지라 그냥 성안으로 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성의 입구를 헐어내기까지 하면서 결국 목마를 끌어들이고 말았지요. 그리고 이제 전쟁이 끝났으며 그리스 군은 무사히 돌아갈 수 없다는 기쁨에 트로이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축제를 벌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그리고 쓰러져 잠들기까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이 되었고...
운명
...이제 시간은 그 정해진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운명의 시간이 도래하였으니.. 신들도 바꿀 수 없는, 어느 인간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여신들이 돌려놓은 그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 마지막 비극을 처참하게 뿌려놓는 그 길고도 무서운 밤이 도래하였던 것이니..
...트로이인들이 잔치를 끝내고 기쁨과 평화로움 속에서 깊이 잠이든 그 야심한 시각에 홀로 목마로 향해 가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시논 이었습니다. 그가 목마에 신호를 보내니 보이지 않던 목마의 문이 열리고 오뒷세우스를 선봉으로 여러 맹장들이 쏟아져 나왔지요.
...뿐만 아니라 시논이 성벽위에 올라가 등불로 신호를 보내니 역시 그리스로 떠나는 듯 했던 그리스 함선들이 해안으로 되돌아와 그 병력을 상륙시키니 그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트로이 성안으로 들이닥쳤던 것이었지요.
...이제 트로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기쁨으로 축하잔치를 벌이던 트로이 성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 군은 트로이의 남자는 보는 대로 칼로 베고 창으로 찔렀으며 어린 아이와 노인들조차도 그 살육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부모와 남편과 자식들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으며 난폭한 그리스 군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유린당한 후에는 그대로 그리스군의 전리품으로 붙잡혀가야 했지요. 아아.. 전쟁이란..
...파리스의 뒤를 이어 헬레네를 차지했던 데이포보스는 메넬라오스의 복수의 칼에 배를 갈리어 내장을 쏟아내며 죽었고 다른 수많은 프리아모스의 아들들이 여러 그리스 장수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는 아버지를 닮아 그 용맹성이 뛰어났는데 트로이 성안에서의 그의 모습은 양 우리에 던져진 사자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헥토르에게는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어린 아들인 아스튀아낙스가 있었는데 네옵톨레모스는 그 아이를 성벽 아래로 내던져 죽이고 말았지요. 그리고 안드로마케는 네옵톨레모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프리아모스왕을 죽이기도 하였지요.
...프리아모스는 왕비인 헤카베와 딸들을 데리고서 제우스의 신전으로 피신을 하였는데 운명을 어쩔 수 없는 제우스는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수 없었지요. 그의 어린 아들인 필로테스가 네옵톨레모스에 쫓겨 부상을 입고 신전에 피신해 있는 프리아모스의 앞에 와 절명하니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한 노 왕은 신전으로 쫓아온 네옵톨레모스에게 더 이상 대항할 힘도 없었지요.
..."아킬레우스의 아들이여, 내 비참함을 동정치 말고 날 죽여다오. 내게는 더 이상 햇빛을 볼 의지가 없구나."
...그리하여 잔인한 네옵톨레모스는 이 노 왕을 신전 안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한때에는 트로이를 부강하게 만들고 지역을 제패하던 그의 말로는 이렇게 비참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의 원인이었던 공주 폴뤽세나 역시 포로가 되었습니다만 아켈레우스의 유령이 그녀의 목숨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그리스 군은 떠나가기 전에 아킬레우스의 묘 앞에서 그녀를 죽여 제물로 바쳤지요.
...캇산드라는 살육의 현장을 볼 수는 없었지만 처절하게 들려오는 소리들과 예지력으로
무슨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두려움에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서 여신상을 붙잡고 떨고 있을 때에 오일레우스의 아들인 또 다른 아이아스에 의해 겁탈당하고 말았지요. 그리고 비극의 밤이 지난 후에 그녀는 전리품으로써 아가멤논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왕비인 헤카베는 전리품으로써 오뒷세우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여인들이 전리품으로써 그리스군의 차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요. 트로이는 불에 탔고 시체는 즐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길고도 처참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을 때에는 남아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살육의 끝에서 애초에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여인 헬레네는 남편인 메넬라오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그의 아내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고도 긴 전쟁과 처참한 살육의 끝에 되찾게 된 그 여인에게는 정말로 그러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갔고 남편은 그녀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구천을 떠돌게 된 수많은 영혼들에 의한 보상의 대가로 말이지요.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고 또 모든 이들에게는 그렇게 가야 하는 운명의 길이 있는 것이고..
...전쟁은 끝났고 모든 것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장수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있는 것이었으니.. 그들에게 운명의 수레바퀴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후기
...전쟁은 끝났지만 그리스의 장수들의 귀환길이 순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들의 분노와 폭풍우, 배반과 모략이었지요.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지만 그들의 운명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헬레네와 함께 귀향길에 오른 메넬라오스는 고향인 스파르타에 돌아가기까지 8년의 세월을 바다에서 유랑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스에 무사히 도착하는 듯 했으나 바람과 폭풍우에 떠밀리며 크레타와 북부 아프리카 해안을 계속 떠돌아 다녀야 했지요. 그는 한때 이집트에 들러 바다의 노인인 프로테우스를 만나 신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집트 방문에서 헬레네의 이집트 거주설이 비롯되었는데 이는 트로이 전쟁의 기간동안 헤르메스가 헬레네를 빼돌려 이집트에서 거주하게 하였고 트로이에 있던 헬레네는 가짜였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유랑끝에 메넬라오스는 이집트에서 헬레네를 찾게 되어 함께 귀향하였다는 것인데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메넬라오스의 형으로써 트로이 원정을 주도하였고 총사령관을 지냈던 아가멤논. 그의 귀향이야말로 모든 그리스 장수들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었을 것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제4편 : 이피게네이아]에서 보았듯이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일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년간의 전쟁은 그녀에게 아이기스토스라고 하는 정부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아가멤논이 귀환하자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하여 아가멤논과 캇산드라를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캇산드라는 이를 두려워하였지만 아가멤논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지요.
...그러자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분노하여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하였고 이에 분노한 복수의 여신들[에리뉘에스]이 복수를 하려 오레스테스를 따라 다녔지요.
...광인이 되어 유랑을 하던 오레스테스는 한때 아르테미스에게 구함을 받아 여 사제가 된 누이 이피게네이아를 만나기도 하지만 끝내 아테나 여신의 중재로 복수의 여신들의 손아귀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트로이 성을 공략하던 밤에 캇산드라를 겁탈하였던 아이아스[소(小) 아이아스]의 운명은 아테나 여신의 분노가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신의 신전에서 행한 행동을 알게 된 오뒷세우스는 여러 장수들에게 아이아스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장수들은 이를 마다하였지요.
...그러나 항해 중에 아테나의 분노의 폭풍우로 배는 모두 부서지고 그는 간신히 바위에 올라 목숨을 건지는 듯 하였습니다만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그 바위를 부숨으로 하여 그는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크레타의 왕이었던 이도메네우스는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미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새로운 왕이었지요. 이 배반자 레우코스는 이도메네우스의 아내를 유혹하여 왕위를 차지한 다음 그녀와 그녀의 딸을 살해하였던 것이었지요.
...레우코스에 의해 추방된 이도메네우스는 고향인 이탈리아로 향하였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포세이돈에게 무사히 돌아가 된다면 고향 땅에서 맨 처음 만나는 생명체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 그를 맞이한 것은 그의 아들이었지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제물로 바쳤고 이에 분노한 신들은 그를 추방한 크레타에 전염병을 돌게 하였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는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를 데리고 귀환하여 새로운 왕국을 일으키고 안드로마케와 결혼하였으나 그의 생애도 불운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메넬라오스가 전쟁 중에 했던 약속 때문에 조카인 오레스테스에게 주었던 자신의 딸을 다시 네옵톨레모스에게 주었고 이로 인해 오레스테스가 군대를 이끌고 네옵톨레모스에게 쳐들어갔던 것이었지요.
...델파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나오던 네옵톨레모스는 오레스테스와 그 군대의 공격을 받고 싸우다가 수많은 상처를 입은 채로 죽어갔습니다. 결국 그가 신전 안에서 프리아모스를 죽였듯이 그 자신 또한 신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죽자 프리아모스의 아들로 네옵톨레모스와 함께 왔던 헬레노스가 왕위를 차지하고 안드로마케와 결혼함으로써 프리아모스의 혈통을 가까스로 이어갔습니다.
...오뒷세우스는 애초의 예언처럼 10년 동안 고향인 이타카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메넬리오스처럼 바다를 유랑해야 했으며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 모든 선박과 부하들을 잃은 후에 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그 동안 수많은 남성들이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오뒷세우스가 전쟁에서 죽은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인 페넬로페 까지도 그렇게 여길 정도였지요.
...결국 오뒷세우스는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함께 그들을 모두 죽이고 아내와 상봉함으로써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그리스 장수들이 고초를 겪으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혹은 귀향중에 혹은 고향 땅에서 죽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트로이가 멸망하면서 일부는 트로이를 빠져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로는 아이네이아스를 들 수 있지요. 그는 비극의 밤에 가족들과 일단의 트로이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하여 길고도 긴 여행과 모험 끝에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그곳의 원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게 되니 이것이 후에 로마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10년간의 전쟁은 트로이와 그리스 양측 모두에게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트로이는 멸망하여 땅속에 묻혀버렸고 그리스의 여러 나라들은 기나긴 전쟁으로 많은 것이 변해버렸지요. 신들은 그들 스스로의 잔인함과 음흉함, 그리고 간사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인간들은 말 그대로 신들의 노리개에 불과하였습니다.
...신들의 조종에 의해 벌인 그들의 전쟁은 온갖 추악함과 비참함이 난무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음으로 하여 결국에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제우스의 음모론이 등장하게 하였지요.
...그것은 지상의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져 이를 받치고 있는 가이아가 무거움에 신음을 하자 인간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전쟁을 획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테티스가 펠레우스와 결혼을 한 것도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초청하지 않아 황금의 사과를 던져놓고 가게 한 것도 다 제우스의 예리한 계략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되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의 계략은 성공하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버리고 만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