蜂(봉)
羅隱(나은)
不論平地與山尖(불론평지여산첨)
평지와 뾰족한 산을 가리지 아니하고
無限風光盡被占(무한풍광진피점)
한정 없는 풍광을 모두 점쳐 찾았네.
採得百花成蜜後(채득백화성밀후)
백가지 꽃에서 따와 꿀을 이룬 뒤에
不知辛苦爲誰甜(부지신고위수첨)
알지 못하겠네. 누굴 달게 하려고 고생했나?
결국 벌이 꿀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이 따가 버리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꿀벌에게 있어서는 헛수고를 한 셈이다.
나은(羅隱) 833- 809년
만당 시인으로 자는 소간(昭諫)이라 했으며 스스로를 강동생(江東生)이라 불렀다.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부양현(富陽縣)인 신성(新城) 출신이다.
여항(餘杭) 출생이라는 설도 있다. 어려서부터 시재가 있었다.
시문을 지으면서 정치를 논하고 공경대부들을 풍자하기를 즐겨하여
당시의 지배계층의 미움을 받아 응시한 과거에 10번이나 낙방한 후로는
이름을 은(隱)이라고 바꿨다. 만년에는 진해(鎭海) 절도사인 전류(錢 )에게 의지하여
전당령(錢塘令), 저작랑(著作郞), 절도판관(節度判官) 등의 관직을 지냈다.
당나라가 망하자 후량의 신하가 되었던 전류의 추천으로
나은도 후량의 급사중(給事中)으로 출사했다가 이어서 염철발운사(鹽鐵發運使)로 재직 중
77세를 일기로 죽었다. 저서로는 <갑을집(甲乙集)> 10권과 <참서(讖書)>5권이 지금까지 전한다.
전당시(全唐詩)에는 그의 시를 11권에 걸쳐 엮었다. 당나라 말기, 사회의 기강과
체제가 무너진 결과 발생한 격렬한 동란의 시대를 살면서,
개인적으로는 관직을 얻는데 실패하여 하층민중의 생활로 빠져들면서
당시 극도로 혼란한 사회상에 절망한 나머지 예리한 필봉으로 당시의 현실 생활에 대해
폭로와 풍자를 주로 행했다. 그의 대표작은 산문형식의 <참서(讖書)>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영웅지언(英雄之言), 월부언(越婦言), 설천계(說天鷄), 미루부(迷樓賦) 등이 있다.
<참서> 안의 대부분 작품들은 당시의 절망적인 사회현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노신(魯迅)은 " 나은의 <참서(讖書)>에 실려 있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투쟁과 분노의 이야기이다."라고 평했다. 다음은 나은의 영웅지언의 내용이다.
동물이 자기를 보호하는 특색을 가진 것은 적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런 특색이 있다. 도적도 사람이다. 의관을 갖추고 신을 신었을 따름이다.
양보하고 겸손한 마음과 올바르고 청렴한 절개가 있는 까닭에 동물과 구별된다고 하나
오랫동안 그 특성을 지키지 못한다. 보물과 비단을 보면 차지하려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도탄에 빠진 것을 건져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백성들을 도탄에서 건져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백성의 요구를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은 진시황이 타고 가던 가마를 보고 "
아! 대장부라는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라고 했고 초패왕 항우는 " 저 자리는 마땅히
나의 차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뜻이야 양보하고 겸손한 마음과 올바르고
청렴한 절개가 꼭 없다고 말할 수 없으나 대개 미만(迷慢)하고 교만(驕慢)한 것을 본 후에
그런 꿍꿍이셈이 생겼을 것이다. 영웅이라 불리우는 자도 이러할 진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랴! 그러므로 아름다운 궁전에서 안락하게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엿보지 않았다면 회귀한 일이라 하겠다.
유방이 젊었을 때 진시황을 부러워하면서 대장부는 마땅히 저래야 한다고 부러워하였고,
항우는 진시황의 자리를 빼앗아 대신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바늘을 훔친 사람은 징벌 받지만 나라를 빼앗은 사람은 임금이 된다.
나은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이름을 걸고 사선 소위 영웅들이란 사실은
개인의 사용을 채우기 위한 자들이라고 매도하였다.
다음은 오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미녀 서시(西施)를 변호한 나은의 시다.
家國興亡自有時(가국흥망자유시)
집안이나 나라나 각기 정해진 운명이 있는 법인데
時人何苦咎西施(시인하고구서시)
요새 사람들은 어찌하여 모든 허물을 서시에게만 돌리는가?
西施若解亡吳國(서시약해망오국)
서시가 만약 오나라를 망하게 했다면
越國亡來又是誰(월국망래우시수)
월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은 또한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