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동피랑 vs 떠오르는 서피랑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질문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아마 열에 아홉은 케이블카와 루지를 꼽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항상 등장하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동피랑일 것이다. 동피랑은 이제 명실상부 통영의 명소가 됐다. 다른 지역에도 벽화마을이 많이 생겼지만 그 벽화마을들의 등장에는 동피랑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통영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동피랑은 물론이고 서피랑에도 발걸음을 하고 있다. 서피랑이라니!
여긴 또 어떤 곳인가? 동피랑이 동쪽에 있는 비탈이라면 서피랑은 당연히 서쪽에 있는 비탈이다.
동피랑에 오르면 서피랑이 보이고 서피랑에 오르면 또 동피랑이 보인다. 언덕 위에 있고 전망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동피랑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지만 서피랑은 잘 조성된 공원이라는 점이 다르다. 두곳을 하루에 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동피랑 벽화골목 따라 아기자기한 재미
먼저 동피랑에 올라본다. 동피랑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남망산 조각공원과 강구안 문화마당, 중앙시장이 있는 바닷가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세병관에서 언덕을 내려와 중앙시장의 옆구리로 들어설 수도 있다.
동피랑에는 밉지 않게 솟은 언덕을 한 바퀴 빙 두르는 길이 나 있다. 주말이면 줄을 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천사의 날개' 벽화가 둘레길의 주역이다. 길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동피랑 정상까지 오르는 골목들이 나온다. 여러 번 가본 사람이라면 매번 다른경로를 선택해도 재미있을 것이다.
좁고 비탈진 골목을 오르면 어느새 꼭대기. 탁 트인 통영항이 한눈에 들어와서 절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내가 올라온 길이 어딘지 살펴보기도 하고, 바다 건너 보이는 미륵도의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동피랑의 추억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동피랑 느린 우체통'을 이용하면 된다. 엽서에 추억을 담아 우체통에 넣으면 달포쯤 뒤에 받아 볼 수 있다 .
고은 시인의 '그 꽃'처럼 내려오는 길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올라갈 때 미처보지 못했던 골목들을 살펴보면 또 다른 반전의 맛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전망 좋은 찻집에서 한숨 돌릴 수도 있다. 골목 곳곳에 찻집이 있다. 할머니 바리스타의 구수한 커피 한잔!
서피랑 99계단·뚝지먼당, 말끔한 공원
동피랑 정상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멀리 서피랑이 보인다. 서피랑은 시내 쪽으로 내려가 이동하는 것이 다소 빠르다.
서피랑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가 아마 '99계단'이 아닐까? 밑에서 바라보면 까마득해 보이지만 계단 사이사이 윤이상의 음악과 박경리의 문학을 상징하는 나비와 책으로 채색돼 있어 계단이라는 난코스를 힘들지 않게 오르도록 도와준다.
서피랑의 시작은 '99계단'부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피랑을 오를 수 있는 다른 골목들도 많으니 일단 다른 쪽으로 오른 후 '99계단' 쪽으로 내려와도 괜찮겠다.
서피랑은 동피랑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계획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은 아니지만 동피랑과 비교했을 때 아주 잘 정돈돼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99계단'은 널찍하면서도 끝없이 길게 느껴지고, 다른 골목에서 오르는 계단도 가파르기 이를 데 없지만 일단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걷기 편한 탄탄한 길이 등장한다. 다시 이어진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이런 언덕 위에 어떻게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을까!' 감탄하게 되는,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고 넓은 공원이등장한다.
이 장소를 '뚝지먼당'이라고 한다. 이는 군영과 장군의 상징인 '둑기'를 걸어놓는 '둑사'가 있던 '언덕 위'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피크닉장도 있고 야외무대도 마련돼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동 - 서 다른 각도에서 보는 통영전망대
넓은 서피랑을 다 둘러보려면 동피랑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날씨가 좋을때 옆지기와 함께 간단한 먹을거리를 마련해 올라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두런두런 사는 얘기도 나누고 하릴없이 노닐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곳이다.
서피랑 서포루에 오르면 동피랑 동포루와는 또 다른 쾌활함이 느껴진다. 비슷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통영항이 내려다보인다. 다도해답게 겹겹이 섬이 많아 늘 잔잔한 통영바다를 앞에 두었고, 등 뒤로는 여항산 북포루가 어렴풋이 보인다. 산과 물이 어우러지고 땅과 숲이 한데 모여 바쁘게 살아가던 저 발아래의 분주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저녁 무렵 올라와 통영의 야경을 감상해도 좋을 법하다.
예향 통영 진짜모습 보는 도보여행
진짜 통영의 모습을 만끽하고 싶다면 차를 타기보다는 걷는 편이 낫다. 고개만 들면 동피랑과 서피랑이 다 보이는 강구안 앞바다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365일 떠 있어서 거북선 안팎을 구경할 수 있다. 바닷가 풍경을 완성해 주는 재래시장 구경은 덤이다.
가끔 발밑을 보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아니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씨도 보인다. 통영 시내를 걸으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시비(詩碑)나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으며 걷는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누구나 몇 줄은 줄줄 외우고 있던 시들이 시비에 등장할 때, 기억을 더듬어 한소절 읊어 보며 아이들 앞에서 어깨 한번 으쓱해 볼 수도 있다.
동피랑과 서피랑이 있어 더욱 즐거운 통영 길. 걷다가 하늘을 보아도 좋고, 걷다가 바다를 보면 더욱 좋다. 낭만이 넘치는 여행의 계절 가을, 걷기 좋은 이가을에 꼭 한번 통영을 찾으면 좋겠다. 하늘과 바다와 땅, 해와 바람과 구름을 한 곳에서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글 박선아 명예기자(통영시) / 사진 통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