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남자는 어머니나 누이동생, 누나와 살며 조카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주업인데 고로 아버지는 누군가의 삼촌이 되는 셈 이다.
매우 복잡한 족보가 형성되지만 이 전통은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맥을 이어오고 있다. 리장은 중국인들이 평생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은 곳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동양의 베니스라는 애칭도 따라다닌다.
중국 한나라(BC202-AD220)시대 이전부터 중국 내륙과 인도를 연결한 실크로드와 차마고도가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무역의 교차점이기도 했다.
차마고도를 왕래하는 마방들의 휴식과 상거래의 중심이었던 곳이 리장 고성(古城)인데 이 고성은 1250년경 병영(兵營)으로 세워진 것으로 1996년2월 강도7의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발생해 이를 계기로 알려졌고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이 지시로 개발이 이뤄져 1997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장주석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지석이 고성 입구 대형 물레방아 옆에 우뚝 서 있다.
수로를 따라 사방 10km에 달하는 골목길에 오래 된 집들이 연결된 스팡제(四方街)는 그 가운데에서도 서양식 카페와 음식점,선물가게 즐비하게 들어서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는 이곳 사람들의 식수 대용과 함께 야채도 씻고 빨래도 하는 등 오염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무엇보다 고성 전체의 그림을 좋게 만드는 핵심요인이기도 하다.
따리 고성은 밤낮없이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데 가라오케를 비롯해 나이트클럽 형식의 쇼 무대를 설치한 레스토랑을 비롯해 중식,양식 등 다양한 음식점이 호황을 누리고 있고 한국인 김명애씨가 운영하는 사쿠라카페는 김치찌개 등 한식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식당이다.
특히 밤이 되면 거의 모든 길을 연결하는 홍등이 불을 밝혀 장관을 이룬다.
1위안(약 180원)을 내고 망루에 오르면 높지는 않지만 사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색창연함속 성안길을 분주히 오가는 고유 의상을 입은 소수민족을 비롯해 동양사람 서양사람이 어우러져 그 옛날 영화스럽던 한 장면을 연출한다.
관광도시 답게 미국의 유명 패스트 푸드점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점들을 보면 객잔에서 노곤한 몸을 풀던 마방들의 체취를 느끼기엔 세월의 빗겨감이 너무 긴 것 같다. 이 고성의 길은 과거 마방들이 다니던 포석로 그대로 남아있는 가운데 일부는 새로 포장한 곳도 있다.
평평한 돌로 길을 만들은 것이긴 하지만 울퉁불퉁 하기 보다 무거운 짐을 실은 말들과 사람들이 수백년동안 다녀서인지 대개 반질반질하고 요철이 심하지 않다.
돌과 돌사이 간격과 이음새도 짜임새있어 비가 올 경우에도 배수가 잘되도록 돼 있다.
생활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고 햇빛이나 비 온뒤 반사하는 바닥의 광채는 삶의 무게와 함께 세월의 하중을 고스란히 견뎌낸 확실한 증표가 되는 셈이다.
현재는 차를 짊어진 말대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오가며 단지 추억속의 길로만 남아있다. 마방들은 자신들 보다 말을 더 아꼈음을 이 길을 보면 안다.
길 가운데 평평한 돌은 말이 이용하는 곳이고 바깥쪽으로 울붕불퉁한 길이 바로 마방들의 길이다.
편자 등이 손상되지 않도록 좋은길을 말에게 내준 것이다. 리장은 위룽쉬에산(玉龍雪山)을 빼놓으면 얘기가 안된다.해발 5,596m인 이 산은 리장시의 수호신격으로 북서쪽에 자리잡아 시내를 굽어살피고 있다. 정상은 만년설로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리장은 차마고도의 중간 거점에 걸맞게 말시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