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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 자유인을 꿈꾸다 / 희열에 맛들인 몽유인(夢遊人) // 오늘도 / 꿈길에서 / 그리운 이 보듬는다 // 그녀는 / 마약보다 진한 유혹 / 베타 엔돌핀의 카타르시스 // 그대는 / 번뇌를 잊고자 / 고행의 길 자초한 求道者 // 오늘도 / 긴 여정에 지쳤지만 / 해탈의 환희를 즐긴다 // -남기일, ‘산길 나그네’- |
자유인, 몽유인, 마약보다 진한 유혹, 베타 엔돌핀,
카타르시스, 고행의 길, 구도자, 해탈의 환희...
무덤처럼 솟은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야
실타래 대간능선길 얼마를 더 걸어야
이런 시어들이 유리파편처럼 뇌리와 가슴팍에 꽂힐까
오로지 자신을 산에 맡기고 산과 함깨 숨쉬고
오감을 오롯이 감각과 본능에 맡겨야
진정 산맛을 알고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아직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대간길에 나선다
아직 겨울 끝언저리에 봄이 무채색으로 걸쳐 있는 요즘
아침녘에는 마음까지 움추러드는 쌀쌀한 한기가 파고든다
부항천을 따라 길옆으로 난 산길 따라
평온한 산촌의 아침햇살 너머 굽이굽이 계곡으로 따라붙는다
대덕산이 여전히 후덕한 모습으로 열린 하늘 사이로 서 있고
구불구불한 소로길을 한참 더 들어가니 해인동이다
해인산장
황토로 벽을 쌓고 나무로 꾸민 단아한 산장집
산을 닮은 사람이 산과 함께 살아간다는 해인산장이 낯익다
안골과 삼막골 갈림길에서 왼쪽길을 따라
물소리를 벗삼아 길고 지루한 포장길을 오른다
이전보다 한결 줄어들었지만
합수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수는 여전히 탄력있다
춘래불사춘
봄은 봄인데 봄산에 무리지어 필 진달래꽃이 아직도 몽우리를 틔지 못한 듯
산은 아직 적막하다
삼도봉 7부능선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매년 삼도봉에서 열리는 화합행사를 위해 닦아 놓은 포장길이라는데
초입 오르막이 만만찮은지 땀이 함초롬 맺힌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 넓은 공터옆 삼도봉 산삼샘터 옆으로
백두대간 안내표지를 따라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이따금씩 내비치는 삼도봉 마루금이 자태를 내비친다
30여분 치고 오르니 삼도봉과 해인산장 삼거리 갈림길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다
넉넉한 평상 쉼터에서 쉬던 직전 대간길의 하산길을 떠올린다
다시 10여분 삼도봉으로 가슴 벅차게 오른다
삼도봉(1,176m)
동남으로 가야산과 수도산이 나래를 펴고
남으로 백수리산을 지나온 대간 마루금이 출렁거리며
멀리 초점산과 대덕산, 삼봉산도 아직 의연하다
북서로는 암봉 석기봉이 창끝처럼 서 있고 그 뒤로
민주지산 각호산 산군이 휘감기며 일렁인다
북동으로 대간을 이어가며 석교산이 아득하다
석기봉 아래에는 부처가 암벽을 타고 강림하는 듯한 삼두마애불상이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고 있을 것이다
백두대간상에 있는 삼도봉은 세 개
경남과 전남북을 모은 지리산 삼도봉
전북과 경남북을 모은 거창 삼도봉
충청과 경상, 그리고 전라가 합친 영동 삼도봉
이합집산의 삼도봉
이 지역 사람에 터를 닦아 살아오던 사람들은 화전봉이라 부르던 산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가르지 못한다는 자연의 이치
그 산자분수령으로 본다면 삼도봉이 나눔과 가름이 당연하겠지만
이곳 삼도봉은 세 지방을 모으고 묶어 놓은 산이다.
그래서인지 삼도봉에 오르면
한바퀴 돌면서 삼도를 넘나들어본다
동쪽은 경상도, 서남쪽은 전라도, 북쪽은 충청도
조선시대 온나라를 8도로 나누면서
경상, 충청, 전라의 분기점이라하여 삼도봉이라고 부르던 산이라하니
삼도봉의 원조라고나 할까
대리석에 세 마리의 용을 태운 세 마리 거북에 새겨놓은
삼도대화합기념탑
삼도 삼군 주민들이 매년 10월 10일 쌍십절 이곳에 모여
화합기념 행사를 벌인다고 하는데
거창한 조형물이 당초 취지를 무색하리만치 주변 풍경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지만 기념사진 하나 찍어내고 삼마골재로 길을 튼다
이제 대간길은 삼도봉에서 전라도를 떼어놓고
경상과 충청을 가르며 방향을 북동으로 돌려
1,000m대의 장쾌한 능선과 조망을 따라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1,124봉에 오른다
흐린 날씨지만 사위가 트인 조망과 풍광이 시리게 펼쳐진다
이어 20여분 고도를 낮추니 밀목재다
초라한 이정표에 밀목재라고 누군가 낙서처럼 써놓았다충북 영동 물한리와 경북 김천 대야리를 잇는 옛고갯길
백두대간 고개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최남단 고개라 한다
빽빽할 밀(密) 나무 목(木)을 쓰고 있는 것으로보아
예전에는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하지만
지금은 성긴 잡목 나무틈새를 하늘빛이 메우고 있다
12시 조금 지나 잔디 촘촘한 산행길옆 공터에
선답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들고 있다
앞쪽에 자리를 펴고 두 명의 산님과 도시락을 연다
상추와 쌈장, 케익과 소세지...향연이다
조망이 좋은 조망터 암릉 1,172봉
앞으로 석교산의 위용이 버티고 서 있고
뒤돌아서니 왼쪽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오른쪽으로 민주지산 주능선이 펼쳐져 장관이다
첩첩산중 암봉에 위연하게 서서
오연하게 천하를 굽어보는 만용을 부려본다
암벽에 30여m 길게 밧줄을 내걸린 수직암벽지대
조금은 위험스러운 구간을 지나
숲실산방 갈림길 무명재에서 된비알을 20여분 치고 오르니
7차구간 주산 석교산(1,207m)이다.
일명 화주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지나온 대간 마루금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는다
첩첩골골에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왔다는 벅찬 마음도 느낀다
멀리 황악산과 김천들녘이 산아래에 포근하게 안겨 있다
작은 바위 쪼아 만든 허름한 정상석에 서툰 글씨
작고 초라한 자연석 푯말이 서 있지만
삼도봉의 화려한 석조형물 기념탑에 비하면
오히려 허명보다 무명이 나은 듯 자연스럽고 친근감이 든다
다소 길고 지루한 하산길 약 4km
동행하는 산님과 자연 풀꽃 이름을 부르며 편안한 오르내림을 이어간다
진달래, 철쭉, 매엽순나무, 노랑제비, 붓꽃, 물푸레나무, 낙엽송...
5월 천상화원에 연초록 새잎들과 어우러져
질펀하게 피어있을 그 꽃들을 마음 속에 담는다
허리춤 펴고 내려서니 우두령(580m)이다
백두대간의 분수령으로 본다면 질매재라는 마을 고개가 거의 붙어 있어
서로 다른 고개로 보기도 하지만 어원상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길마재(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얹는 기구)의 사투리로 부르다가
한자식 발음으로 우등(소의 등)령으로 변용되었고
일제강점기에 한자 우두령으로 바꾼 지명이라고 한다
그냥 질매재로 부르는게 훨씬 정감이 있어 보인다.
김천과 영동을 잇는 고갯마루로 낙동강 지류 갈천과 계수천의 발원지다
옛날에는 삼천포에서 진주·산청·함양을 거쳐 우두령을 넘고,
김천·상주·점촌을 거쳐 문경새재에 이르는
남한의 중앙을 직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습관처럼 하산주에 눈길이 먼저 가고
거푸 석잔을 텁텁하고 허기진 몸에 씻김굿하든 붓는다
소 한 마리가 우직하게 고개를 지키고 있다
호시우보(虎視牛步) 우보만리(牛步萬里)
범처럼 상황을 직시하고
소처럼 목표를 향해 끈기있게 초심을 잃지 않으면 만리도 갈 수 있다는 말
향후 백두대간을 걸으며 되새기고 곱씹어볼 금언이다
시간은 아직 네시 정도
대전에 도착하면 다섯시 반
산이조아팀 주관으로 뒤풀이가 있다는 멘트가 들린다
산꾼들과 산고수 속에 섞여 귀동냥 얻어들을 수 있는 기회라 싶어
고속버스터미널에 묻어내렸다
길건너 삼겹살 1인분 3,000원 식당
들어서자 사장님과 몇 몇 분들은 이미 안면을 튼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열 여섯명이 벽쪽으로 길게 자리를 잡았다.
돌구이판에 동글동글 얼린 삼겹살, 파채, 마늘, 고추, 김치가 함께 오르고
얇은 삼겹살이 잦아들 무렵
사인검님의 독특한 건배제의 구호 산!산!산!을 제창한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돌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역시 산꾼들의 공통화제는 산이다. 여러번 귀에 박히게 들어도 질리지가 않다
불판 위에 비빔볶음밥이 올라오고 적당한 시간에
피날레 건배제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걸리에 소주에 과음을 한듯 비몽사몽으로 집까지 순간이동을 한다
최면에서 깬듯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하산주라며 또 소주 한 병을 내민다
돼지갈비가 눈에 밟히고 소주 몇 잔 뜨다말다
점심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고 속이 니글거렸다
행여혹여-어제 7차구간 산행 일련의 시간 동안 실수는 없었는지...
주책이란 말의 주짜는 술주짜 아니던가
어허~주책! 이런~상푼수!!
8구간
중산리~천왕봉~제석봉~장터목~촛대봉~세석~칠선봉~벽소령~토끼봉~
삼도봉~노고단~성삼재
산 지 : 지리산 (산청, 함양, 남원, 구례 일원)
일 시 : 2010년 5월 1일(토)~5월 2일(일) 무박2일
날 씨 : 최저6℃~최고24℃ / 새벽쌀쌀 / 맑고 화창함 / 한낮 다소 더움
인 원 : 샤롯, 소리새, 둥지마루 포함 55
산행거리 : 약 37km
소요시간 : 약 17시간
종주코스/거리/통과시간
- 1소구간(5.4km)
중산리탐방지원센터(03:00)-(3.25km)-법계사(04:35)-(1.98km)-천왕봉(06:10)
- 2소구간(4.86km)
천왕봉(06:20)-(1.1km)-제석봉(06:50)-(0.5km)-장터목대피소(07:10)-(0.8km)-연하봉(07:30)-
(1.86km)-촛대봉(09:00)-(0.6km)-세석대피소(09:20)
- 3소구간(6.05km)
세석대피소(09:20)-(0.5km)-영신봉(09:30)-(1.5km)-칠선봉(10:10)-(1.5km)-선비샘(10:50)-
(2.55km)-벽소령대피소(11:50)
- 4소구간(6.29km)
벽소령대피소(11:50)/대휴식-(1.3km)-형제봉(12:50)-(2.05km)-연하천대피소/휴식(14:30)-
(2.94km)-토끼봉(15:35)
- 5소구간(5.2km)
토끼봉(15:35)-(1.25km)-화개재(16:10)-(0.75km)-삼도봉(16:45)-(0.6km)-노루목(17:10)-
(1.55km)-임걸령(17:40)-(0.6km)-피아골삼거리(18:00)-(0.45km)-돼지평전(18:10)
- 6소구간(5.73km)
돼지평전(18:10)-(2.23km)-노고단고개(19:00)-(3.5km)-성삼재(20:00)
지은이:쪽빛여울
3개도 5개군 15개면에 걸쳐 일억삼천만평 지리산
영호남 800여리를 두루 감싸고 있는 산
주릉 100리 고봉준령 고고하게 하늘금을 이루는 산
성모(聖母)여신이 살던
‘어머니의 산’으로 여기는 민중신앙의 메카 천왕봉
사시사철 늘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을 가진 영산 지리산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시작이요, 끝이며, 알파요, 오메가다
오늘 지리대종주
남한 최장, 최고의 장쾌한 구간으로 종주산행의 꽃 ‘꿈의 능선’
중산리에서 천황봉까지 고도 1,400여m를 끌어 올린 뒤
벽소령 형제봉까지는 고도를 낮추며 오르내리다가
명선봉에서 잠시 솟구치고 연하천에서 주춤하고
토끼봉, 삼도봉에서 고개를 들어 진을 빼다가
노루목, 돼지평전 지나 마지막 노고단에서 잠시 고개를 드는
태극의 중심 33km의 종주산행길
동서로 길게 드리워진 지리산 중심에 서서
남북으로 뻗은 지능선과 계곡들을 한눈에 조망하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가장 크고 넉넉하게 만날 수 있음에
두려움과 설렘 속에 가슴이 뛴다
5월 첫 주의 이른 새벽
천왕봉 들머리에서 안개 낀 중산리 계곡은 정적에 묻혀 평온했고,
희미한 헤드랜턴만이 흐릿한 안개사이로 퍼지고 있었다.
천왕봉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덕천강쪽으로 흘러는 듯했다.
그 바람 결을 따라 천왕을 알현하기 위해 오늘 지리에 든다
어둠 속에 첩첩산중
두류산의 정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두류교, 며칠 전 내린 비로 어둠 속에 제법 토실한 계곡물이 흐른다
5월 춘삼월에 등로와 기슭엔 잔설이 군데군데 깔려있다
완만한 돌길을 오르니 어둠 속에 칼바위(830m)
지리산 중턱의 바위를 칼로 내리치니 바위는 갈라지고
칼날은 부러져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출렁다리 건너 장터목 갈림길을 지나고부터
길은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된비알
망바위(1068m), 로타리대피소(1335m) 지나 오름길 잠시 오르니
하늘아래 첫 사찰인 법계사(1450m)다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이곳이 '천하의 승지'라며 개창했다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최치원의 문창대 전설이 가까이 있는 절
법계사 일주문 왼쪽으로 된비알이 이어진다.
개선문(1660m) 오르기 직전 날이 밝는다.
낮게 깔린 운해 위로 해가 솟는다
등로 좌우 황금능선과 써리봉 능선, 일출봉 능선이
아침햇살 너머 마루금에 햇살에 반짝인다
개선문 전망대에 오르니
지리 연하봉 촛대봉 주릉 일부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며
천왕봉이 장엄하고 황홀하게 다가선다
천왕샘(1850m)은 고드름이 벽을 두르고 있다
석간수로 마음을 씻고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천왕봉이다
천왕봉(1915m)
하늘을 받치는 기둥 '天柱'
‘韓國人의 氣象 여기서 發源되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산'(天鳴猶不鳴) -조식-
'몸이 태초의 공간에 안긴 채 하늘과 땅과 더불어 흘러가는 듯 했다' -김일손-
노고단까지 뻗어나간 장쾌한 지리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엄함과 외경심에 전율이 느껴진다
통천문(通天門)-
천왕을 배알하고 하늘에서 속계로 드나드는 문,
‘부정한 자는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는 문
시인 고은은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라 했다
한울님을 알현하는 속인들에게 경(敬)과 예(禮)를 갖추라는 통과의례 아니던가
황량한 고원 위 제석봉(1808m)
구상나무 고사목의 앙상한 선골(仙骨)들이 나열하고 있는 곳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천왕을 지키는 장수들이 도열하여 있는 곳
속죄의 마음으로 전망대에 오른다
‘장이 서던 곳‘ 장터목(1653m)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이 곳에서 물물교환했던 곳
제석봉과 연하봉 사이 안부에 세워진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 일출맞이 마지막 캠프이자
중산리와 백무동의 하산 분기점이며
하동바위 전설이 전해지는 곳
연하봉(1730m) 지나 삼신봉에서 큰숨 몰아쉬고
촛대봉(1703m)에 오른다
말 그대로 연하선경(烟霞仙境)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이 깃든 조망이다
세석평전(1600m)이 발밑이다
잔돌이 많다고 해서 ‘잔돌평전’
세석의 철쭉에 얽힌 ‘연진’ 여인의 애틋하고 애련한 전설이 심금을 울린다.
금기를 어긴 벌로 열 손가락 피로 가꾸었다는 세석철쭉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죄를 빌다 돌이 되었다는 촛대봉
낙남정맥의 분기점 영신봉(1651m)
음양을 뻗어내려 삼신을 낳게 하였다는 신령이 있는 산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이 일렁인다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 같다는 칠선봉(1576m) 넘으니
덕평봉(1522m) 밑자락에 위치한 선비샘(1456m)
덕평골 화전민 천민 노인의 한 맺힌 전설이 서린 샘터
덕평봉 돌아 푸른 달빛에 신선이 노닐었다는 곳
벽소명월의 절경 벽소령대피소(1330m)
주변의 경관이 아늑하고 운치 있게 느껴지는 추억과 낭만이 남아있는 곳
빨간 우체통-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지는 부자(父子)바위가 서 있다고 하는 곳
지리능선의 중간지점, 거대하게 솟은 바위 형제봉(1452m) 넘고
명선봉(1586m) 아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 연하천대피소(1440m)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는 이곳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곳
연하천대피소부터 노고단 대피소까지 10.5km
올라서는 길 토끼봉(1534m)의 잔혹함
내려서는 길 반야봉(1734m)의 무심함
토끼봉 등로부터 후미 전설을 쓴다
천왕봉 오름길부터 전조가 있었던 동행 산님의 탈진증세가 악화된다
무리하게 진행하다 급기야 주저앉는다
최종후미는 대장님 포함 4명이다
노고단까지 약 10km에 3시간 정도 거리
토끼봉 등로 옆 진달래라도 무리지어 피었다면
고달픈 업보산행에 위안이라도 되었건만...
불현듯 덕유삼봉산 암봉에 걸려있던 '진달래' 시 한소절
"죽어서도 못 잊을 /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 구태여 끊어 무엇 하랴 "
끊기 괴로운 백두대간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리
그 조차 또 다른 업보의 자락일진데
화개재(1360m)
전남과 경남의 경계점 뱀사골대피소 갈림길이 있는 고개
옛날 화개사람들과 남원사람들이 물물교환 하던 곳
삼도봉 오름길 550 나무계단
저주받은 체력과 중력과의 사투
바위비탈길 딛고 오르니 삼도봉(1590m)
전남과 전북, 경남이 만나는 암봉
바위 모양이 낫날 같다고 하여 낫날봉, 날라리봉으로 불리던 산
불무장등 능선의 장엄함과 신비로움
건너편 반야봉은 여전히 무심함으로 둔부처럼 우뚝 솟아 있다.
지리 제2봉 반야봉,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麻耶姑)와 남신 반야(般若)의 전설이 서린 산
전국 만행하는 선승들조차 꼭 한 번 가고 싶어한다는
경이로운 묘향대가 자리잡은 산
반야낙조의 화려한 몰락이 해탈처럼 아름다운 산
노루목 지나 임걸령(1320m) 단샘물로 가슴을 적시고
피아골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돼지평전을 지나면
왕시리봉 갈림길이 있는 돼지령
섬진강을 사이에 둔 큰 산의 굴곡이 더욱 선명하다
해질녘 지리산과 섬진강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산줄기를 빠져나가고 있다.
산자분수령, 산맥과 수맥이 절묘하게 잇닿아 해후하고 있다.
성모의 높임말 노고(老姑)에 제사를 올리던
신단(神壇)이 있던 자리 노고단(1507m)
지리산 3대봉의 하나
신라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의 제사를 지냈고
신라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이었으며
근현대사에서는 동학군의 피난처, 빨치산의 근거지,
5.18때는 학생들의 은신처였던 산
노고운해 속에 모든 걸 감싸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용해하는 산
멀리
노고단 위로 해가 지고 있다노고단 가는 고행의 돌길
동행 산님의 삼보일배 하산길이 멀게만 느껴지던 산행길
어두워진 노고단고개
휑하니 서늘한 초저녁 바람이 고개를 넘는다
산님이 와락 눈물을 보이며 주저앉는다
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쏟아지고 있다
캄캄한 돌길, 황토길, 나무계단을 타고
종주끝자락 날머리 성삼재(1070m)에 내려선다
불꺼진 탐방지원센터가 더욱 을씨년스러워보인다
아~성삼재!
삼한시대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 때,
고개마루에 성(性)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였다는 고개
그 곳에 마지막 대원을 기다리는 버스 한 대가 덩그라니 서 있다
전조등 앞에서 종주하산주로 허한 가슴을 씻었다
지리산대종주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기나긴 여정이었다
가열찬 투쟁이었다
지리했지만 지혜롭고 남다른(智異) 현장체험이었다
산처럼 숨쉬고 산처럼 걸으며 산을 닮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겹고 버겁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지리대간에 몸을 헹구고 속세로 나서도
지리거산의 향기가 옷자락 한섶에라도 늘 묻어있다면
이또한 산꾼의 희열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원규 시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과
안치환의 노래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가
허한 육신과 지친 마음에 새록새록 살갑게 파고든다.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
죽음의 저 산, 침묵의 저 산, 일어서는 저 산, 부활의 저 산, 투쟁의 저 산...
반란의 고향...
남겨진 상처를 가슴에 보듬어 안고서
못다한 사랑을 목놓아 노래하라"
* All For One, One For All.(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백두대간종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대원들끼리 지녀야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기다려주시고 배려해주신 대원동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9구간
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귀봉~못봉~대봉~갈미봉~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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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지 : 덕유산 (무주, 장수, 함양, 거창 일원)
♣ 일 시 : 2010년 5월 15일(토)~5월 16일(일) 무박2일
♣ 날 씨 : 최저9℃~최고25℃ / 맑음 / 한낮땡볕더움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9명
♣ 교 통 : 대전중부고속관광(대전~장수IC~육십령)
♣ 산행거리 : 약 33.31km
♣ 소요시간 : 약 17시간 30분(후미 기준 / 선두 10시간 30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육십령(02:00)-[1,4km]-915봉(02:30)-[800m]-할미봉(03:00)-[4,65km]-덕유서봉(05:50)-[2,8km]-월성치(07:00)-[3,0km]-삿갓봉(08:50)-[700m]-삿갓재대피소(09:30)-[2km]-무룡산(10:30)-[4.1km]-동엽령(12:20)-[2.18km]-백암봉(13:30)-[2.3km]-귀봉(14:50)-[1.98km]-횡경재(15:20)-[1.1km]-못봉(16:20)-[2.3km]-대봉(17:10)-[1km]-갈미봉(18:00)-[1.6km]-빼봉(18:50)-[1.4km]-빼재(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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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쪽빛여울
덕유대종주
'덕이 많은 너그러운 산' 덕유산(德裕山)
주봉인 향적봉(1,614m)에서 남서쪽 끝자락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 육십령까지
장쾌한 능선이 장장 30여km를 내달리는 산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둔중한 육산(肉山)
1,000m가 넘는 봉우리만도 20여개를 거느리고 있는 산
가진 자들의 산이 아니라
가지지 못하거나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산
고개마다 뿌리 뽑힌 민중의 한서린 이야기와
골짜기마다 피맺힌 빨치산 이야기도 있고
이성계가 산신제를 올릴 때 소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안개를 피워 왜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했다는 전설도 있고
옛날 이 골짜기에 성불을 이룬 이도 구천 명이 있었으나
산이 신비해서 그 터는 보이지 않는다고도 전하는 산
산산골골 구구절절 민중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갈 산
무주에서 거창까지 80리 산길
지리대종주에 버금가는 산행거리에
고봉준령을 여럿 힘들게 오르내려라야 하는 구간
시작은 좋았다
덕유산으로 오르는 남쪽 들머리 육십령(694m)
한밤중 육십령은 깊은 어둠과 침묵에 싸여 적막하다
하늘엔 소금을 뿌려놓은 듯 촘촘한 별들이 어둠을 감싸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푸른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정적 속에 숨소리만 발밑에 깔린다
육산다운 완만한 오름과 평지를 지난다
숨이 차오르며 송글송글 이마에 땀방울이 솟을 만큼 올라서니 915m봉
이어 헬기장을 지나 할미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
정상부근 바위를 조심해서 올라서니
할미봉(1,026m)
어둠 속에 멀리 고속도로가 곡선을 그으며 환하게 빛나고
육십령 아래 산골마을 외등은 별빛이 내려앉은 듯 반짝인다
기암괴석 꽃암봉으로 백두대간의 꽃이라 불리는 산
이어진 능선을 두고 사람들은 외적으로부터 장수군 장계를 지키기 위해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쌓은 성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또한 옛날 한 도승이 산 정수리의 바위모습을 보고
마치 수백명의 군사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쌀이 쌓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합미봉(合米峰)이라 부르다가 할미봉이 되었다고 하는 산
널따란 암반에 앉아 조망을 즐기기 좋은 곳일테지만
사위가 칠흑으로 싸여 있다
허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터
다행히 기억은 남아 산을 추억한다.
북으로 우람한 검은 두 봉우리 하늘금을 올려다 본다
어둠 속에 백두대간이 힘차게 꿈틀대며 오르고 있었다
장수덕유 덕유서봉과 남덕유산이다
할미봉을 뒤로 하고 조금 내려오면
대포바위(남근석) 갈림길
대간에서 벗어나 있어 우회하지만 민중이 구전한 이야기를 랜턴빛으로 읽는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육십령을 넘어가면서 바라보다
엄청나게 큰 대포가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에 놀라 남원방향으로 돌아가서
장계지역이 화를 면했다는 전설의 바위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 옛날부터 사내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이 이 바위에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올린 채 소원을 빌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치성의 바위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어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직벽에 가까운 암벽 내리막
로프는 미끄럼을 막으려고 매듭을 지어놓았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고맙다
고정로프를 따라 한 사람씩 내려선다
편안한 나뭇잎 깔린 등로를 따라
어둠 속에 장수덕유 서봉에 오른다
오름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여러 합을 치르는 전투처럼
한걸음 다가서면 한걸음 물러나는 듯한 느낌이다
대장님과 산님들 나누는 도란도란 구수한 정담과 웃음소리가
까만 어둠속 유난히 또렷하다
서봉오름길
동녘 서봉과 남덕유산 사이로 해오름의 진통이 어둠속에 붉게 번지고 있었다
남덕유에 선두선답자들이 어렴풋이 감지된다
몇 번의 오르내림에 교육원삼거리(1024m), 헬기장, 샘터표지막(1263m)을 지나
다시 암릉을 가파르게 올라서니 비로소 장수덕유 서봉(1,510m)이다
빨간색으로 서봉이라 음각된 정상석엔 1,492m로 새겨져 있다
사방으로 내려다 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으로 남덕유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있고,
남으로 지리백리 주능선이 구름위로 마루금을 긋고
그 앞쪽으로 백운산, 영취산, 깃대봉, 할미봉이
백두의 지맥을 따라 꿈틀대며 치달린다
그리고 북으로 덕유주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이 장쾌하다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암반에 잠깐 누워 아침 산기운을 들이마신다
철계단을 내려와 남덕유로 가는 길은 안부까지 내리막
너덜지대와 몇 번의 오르막 지나 남덕유 갈림길(1398m)에서
남덕유(1507m)를 오르지 않고 곧바로 월성치(1240m)로 내려섰다
영구폐쇄 토옥동계곡과 거창 황점마을 바람골을 잇는 고개다
아침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아침을 먹는다
대장님, 풍경소리님, 장미님, 그리고 나 이렇게 후미는 넷이다
김밥, 파김치, 밑반찬, 과일 등등 성찬이다
배낭 속에 바리바리 쌈지쌈지 챙겨 지고 왔을 산님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정이 담뿍 느껴진다
퀭하고 멍한 상태에서 걷기 위해 식은 밥 몇 술 떠넘긴다
삿갓봉(1418.6m)까지 1.9km 된비알이다
직전의 1,340m봉을 힘들게 올라선다
정상 좌측을 돌아 가다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인다.
우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먼저 치고 올라간 대장님의 호출이 지엄하다
남덕유를 우회했으면 삿갓봉은 다녀와야 한다는 지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삿갓재 대피소(1280m)
무주 원통골과 거창 황점마을을 잇는 고개
멀리 남령에서 가지친 월봉산 능선이 아름다운 대피소
텅빈 듯한 대피소, 정적이 감도는 넓은 테라스에 앉는다
취사장에 물이 없어 대장님이 물병을 걷어 손수 60m 아래 샘터로 내려간다
가뭄이라 물이 귀하다고 한다
힘든 건 다들 마찬가지인데 대원들 챙기고 배려하는 리더의 일면을 엿본다
잠시 한숨 돌리고 서둘러 무룡산으로 향한다
주능선에는 키 큰 나무가 없어 시야가 막히지 않아 전망은 좋으나 햇살이 따갑다
삿갓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름을 올라서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정상 바로 아래 제법 긴 나무계단을 걷는다
레드 제플린의 불후의 명곡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을 떠올린다
무룡산(1,491.9m)
용이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산
덕유주릉 중간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산
옛날에는 불영봉으로 불리던 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으로 정상석이 있다
멀리 월봉산 금원산 줄기와 비수를 꽂은 듯한 황석산도 보인다
동으로 가야산도 보이고 뒤돌아 보면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여전히 빙긋이 내려다보고 있으며
앞쪽으로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출렁댄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간다.
백암봉까지는 여름철 무성한 풀숲과 넝쿨나무들이 길을 막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등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돌탑이 세워진 봉우리를 지나 잠깐 봉우리를 올라섰다 내려서니 동엽령(1,260m)이다
무주 칠연계곡과 거창 병곡리를 잇는 고개다
백암봉의 거대한 봉우리가 병풍 처럼 앞에 버티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니
칠연폭포 내려가는 동엽령삼거리(1312m)다동엽령에서 백암봉 가는 길은 험난했다
더위와 졸음과 체력부실로 오름과 암릉을 넘어서는 고행길이다
힘들게 송계사삼거리 백암봉에 오른다
백암봉(1,490m)
덕유산에서 가장 덕유산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곳
대간 종주길과 덕유산이 갈라지는 분기점
육십령에서 덕유 주능선과 함께한 백두대간은
향적봉이 보이는 백암봉에서 덕유산 주능선과 헤어진다
신풍령까지 11km, 동쪽으로 산길이 열려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하고 완만한 봉우리 몇 개만 보인다
뼈를 묻는 빼재까지 악어의 이빨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두는 향적봉까지 다녀와서 이미 하산했다고 한다
산에 드니 사람이 산이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산사람이란 그래서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향적봉으로 가서 곤돌라타고 내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풍경소리님의 넋두리도 한층 더해가는 구간
대간길은 우측으로 90도 틀어서 횡경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백암봉에서 급경사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고
완만한 능선과 숲 속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상여덤
이어 상여덤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때가 지났지만 시장끼를 못느낀다
산에 와서는 잘 먹어야 한다는 대장님의 잔소리가 쟁쟁하다
점심 먹는 동안 바위 밑 그늘에 누워 풋잠에 빠진다
다시 봉우리에 올라서면 귀봉(1
,400m), 내려서니 싸리등재(1,300m)완만한 오르내림을 넘나드니 횡경재(1,247m)다
오른쪽은 경남 거창의 송계사로 왼쪽은 전북 무주의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
길만 보이면 내려가고 싶지만 다행히 통제구간이다
구천동에 핀 흰 연꽃, 백련사
지난 겨울 폭설이 내려앉아 눈꽃이 화사하게 피었던 백련사의 정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늘 없는 갈참나무 숲, 싸리나무 잡목지대 헤집고 지나
제법 높직한 두 개의 봉우리 중 첫번째 헬기장을 넘어서니 지봉 또는 못봉(1,342m))
멀리 중봉과 향적봉, 덕유평전의 산줄기들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그 앞쪽으로 백암봉에서 귀봉을 이어오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줄기도 조망은 좋다
그/러/나
못봉에서 빼재까지의 대간길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못봉, 대봉, 갈미봉, 빼봉...
감추어진 봉우리까지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았다
빼재까지 지루할 정도로 오르내림이 많다.
오름길에서는 막막함이
내림길에서는 허탈감이
갈참나무, 싸리나무 잡목에 몸을 묻고무념무상 한 걸음 본능적으로 내딛는 것 뿐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이건 미친 짓', '무모한 산행', '자책과 자학의 고행'이라는
푸념과 넋두리가 한숨과 함께 입가를 타고 터져 나온다
한참을 내려가더니 달음령에서 대봉으로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을 치고오르니 대봉(1,263m)
고스락엔 넓다란 공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정표 옆 잔디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후미를 기다리며 잠깐 졸음에 겨운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종일 졸음 속에서 해멘다
조망의 즐거움도, 디카의 추억도 잊은 듯하다
대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
갈미봉(1,210m)에 올라선다
봉우리가 두개로 갈라지는 산이라고 한다
정상석은 있으나 잡목으로 운치와 조망은 떨어진다
멀리 빼재가 턱밑에 걸려있다
갈미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급한 내리막 내려서면 빼재 1km 지점,
완만한 능선을 무심으로 걷는다
여기서 다시 봉우리 네개를 더 오르내리며 진을 뺀다
마지막 빼봉, 진을 빼는 봉
푸르게 봄물이 오른 잡목사이로 삐죽 솟은 빼봉(1,039m)으로 가파르게 올라선다
아래에서 마중 나온 선답고수산꾼 외침이 들린다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두 분이 여성산님 배낭을 둘러매고 서둘러 내려간다
다시 내려서서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마음을 비우고 눈은 풀린 채 걷는다
빼재 절개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와 송신탑 돌아 산문을 나서니
드디어 빼재(873m)
17시간 반 동안 산중에서 나를 잊고 있던
뒤틀리고 몽롱한 의식이 제자리를 찾는다
아, 내사랑 빼재, 수령, 신풍령이여
수정봉, 호절골재, 덕유삼봉산, 소사고개,
초점산, 대덕산, 덕산재를 잇던 춘삼월 5차 대간산행길
잔설과 꽃샘바람이 살갗을 파고들던 그 고갯마루는
예나 지금이나 한적하다
빼재골 기슭에 수달이 기지개를 펴고 노닐 시간
빼재에 어둠이 깃을 치고 있었다
하산주 막걸리를 본능적으로 찾았지만 이미 후미몫은 없었다
허전함을 소주 반컵과 대둘팀이 건네준 생명수로 씻는다
간밤, 신열기로 힘들어했다는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오늘 아침 의외로 몸이 가볍다
어제 그토록 간절했던 일상적인 커피 한잔도
오늘 아침 그 향이 입안에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담록으로 짙어가는 풀과 나무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지리종주보다 힘들고 지겨웠다는
나의 투정과 시기에 개의치 않고
덕유는 나에게 드러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살포시 던져주고 간 것일까
덕유대종주
덕유를 나오니 덕유가 그립다
능선의 유려한 산세 탓도 있거니와
이른바 '구천둔곡'이라고 불리우는 덕유의 깊은 골과 풍요로움으로
'크고 넉넉한' 덕유의 마음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일게다
봄바람 일렁이는 어느날
여름이 오기 전에 시간이 되면
덕유와 바람나고 싶다
나 혼자만의 은밀한 중년의 외도를
10구간
벌재~문복대~저수령~촛대봉~흙목정상~묘적봉~도솔봉~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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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지 : 소백산 도솔봉 (단양, 예천, 영주 일원)
♣ 일 시 : 2010년 6월 5일(토)~6월 6일(일) 무박
♣ 날 씨 : 최저15℃~최고31℃ / 맑음 / 한낮땡볕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5명
♣ 교 통 : 대전중부고속관광(대전~증평IC~이화령~벌재/죽령-단양IC-충주IC-대전)
♣ 산행거리 : 약 26km ♣ 소요시간 : 약 12시간 40분 (선두 8시간 30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벌재(02:35)-(3.7km)-문복대(04:00)-(2.3km)-저수령(04:50)-(1.0km)-촛대봉(05:20)
-(4.0km)-싸리재(07:10)-(1.2km)-흙목정상(07:50)-(3.7km)-모시골정상(09:30)
-(1.7km)-묘적령(10:30)-(1.0km)-묘적봉(11:00)-(1.7km)-도솔봉(12:20)
-(1.5km)-삼형제봉(13:20)-(2.9km)-죽령샘터(14:40)-(1.3km)-죽령(15:15)
♣ 고도표
산행후기
쪽빛여울
10이라는 숫자
창조의 패러다임이자, 우주의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수
모든 사물과 모든 가능성을 상징하는 수
모든 것을 포함하며, 완전수로 1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수
여행의 완성을 나타내며 기원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수
오늘 10차 백두대간종주대 10차구간
10-10 텐텐쌍십의 화두를 지니고 무박산행에 나선다
벌재에서 저수령까지 시오릿길
다시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오십리길
월악아래부터 소백처음까지 충북과 경북을 넘나드는 구간
1,000m 이상 봉우리 16개 이상을 열 두 세시간 걸어야 한다는 길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날
칠흑같은 어둠 속 랜턴 빛을 따라
저마다 업보 만큼의 삶을 짊어지고 대간길에 들어선다
벌재(638m)
경북 문경과 충북 단양을 잇는 59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
커다란 벌재 표지석 뒷쪽으로 문복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열려 있다
벌재에서 복을 불러들인다는 문복대까지는 약 십리길
낙엽이 수북이 쌓인 육산의 부드러운 길이지만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들머리 백두대간 문경 오미자 길을 통과하여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어둠 속에 희미한 들목재(750m) 흘낏 바라보고,
된비알 1029m봉 넘어서서
어둠 속에 짐승같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루금을 밟아 오른다
이마와 등줄기에 후줄근 땀방울이 맺힐 즈음 올라서니
문복대(1,074m)
백두대간이 예천을 지나 문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처음으로 솟구친 산
마을 사람들은 문봉재, 개념도상에는 옥녀봉, 운봉산으로도 불리는 산
'복을 불러들이는 문'과 같은 문복대로 부르는 산
다들 서둘러 내려가 덩그라니 혼자 남아 어둠 속에 정상석을 담는다
문복대를 지나자 한동안은 완만한 내리막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어둠 속에 홀로 밤길을 걷는 것도 고즈넉한 낭만이다.
어둠 속에 이깔나무 신록이 등로 곳곳에 푸르름을 담고 있다
고만고만한 작은 봉우리 몇개를 넘고
소백산 관광목장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만나는 장구재(862m)에서
마지막 봉우리 하나를 넘고 해맞이 제단석을 지나
저수령(850m)에 내린다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을 잇는 고개다
소백산군에서 가장 낮은 고개
소백의 품으로 들기 위한 전주에 속하는 고개
험준한 산길로 경사가 급해 지나는 길손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고 하여 저수령
예로부터 이 고개를 지나는 외적들이 모두 목이 잘린다 하여 저수령
미명 속에 큼지막한 표지석이 이야기를 전한다
죽령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죽령보다 붐볐다고도 하는 곳
어둠과 밝음이 섞이는 시간, 새벽이 열리고 있다
살짝 냉기가 돌았지만 오히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이 되어 들어온다.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촛대봉(1081m)을 향해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오석에 촛대봉이라 음각되어 있다
일출을 보려 서둘러 오른 선등자들은
잡목에 가려 조망이 시원찮다고 푸념한다
미명 속에 산맥이 잠에서 부시럭거리며 깨어나기 시작한다
문복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대간이 잡목 너머로 꿈틀거린다
다시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린다
뭉툭한 투구모양 투구봉(1080m) 우회하여 내리막을 지나
봉우리 두어개 정도 오르내리니 헬기장
헬기장에서 10여분 오르니 떡시루 시루봉(1110m)
조망 없는 정상 아래 등로 옆 평평한 곳에서 아침상을 편다
산지산인, 호동왕자, 굿맨님 일행, 신토불이팀 일행
왕벌만한 유난히 크고 탐욕스런 파리들이 인상적이다
요기 후 우측 사면으로 잘 조림된 잣나무 숲길을 따라
헬기장과 1,084m봉 지나 내려서니 배재(950m)
완만하게 솟은 전망바위를 지나
차츰 고도를 낮추면서 흙목정상(1033m) 아랫재인 싸리재에 내린다
서늘한 바람과 곱게 물오른 잔디가 있는 곳
흙목정상에 오르고 작은 봉우리 오르내리기
뱀재 지나 1100m봉 찍고 마루금을 잇는다
육산다운 부드럽고 고운 산길에 여유를 갖는다
솔봉과 묘적령 갈림길에서는 솔봉(1103.8m)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묘적령 가는 길은 날씨가 발목을 잡는다
초여름 더위치고는 무척 더운 날씨다
잡목에 그늘 진 곳이 많고 간간히 골바람이 불어와 그나마 위안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갈증이 난다
식수 뚜껑을 자주 열어보지만 양에 차질 않아 지친 발걸음을 더욱 무디게 한다
긴팔 셔츠를 벗었다
졸립다
흙목정상(1070m) 지나 골바람 부는 등로 바위에 주저앉아
주전부리를 간단하게 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
낙엽송숲인 묘적령으로 내려섰다가
묘적봉 직전 전망바위에 오른다
모처럼 사위가 트인 조망을 보니 마음까지 후련하다
풍기, 영주, 단양 쪽으로 길게 신록을 늘어뜨린 소백자락에 눈이 시리다
따가운 햇살이지만 한동안 머무르며 호연지기를 베어물었다
이어 20여분 돌길 거슬러
아담한 돌탑이 자리한 동판이 박힌 곳에 오르니
묘적봉(1148m)이다
부처가 삼매의 경지에 맞이하는 세계를 묘적이라 하느니
도솔봉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보니 실제 암봉으로 묘하게 쌓여있는 듯하다
여기서부터 소백산국립공원이라 한다.
삼매의 경지에서 간식을 꺼낸다
잠시 내려섰다가 암봉을 돌아가며 오르는 계단을 힘들게 오른다
108 계단길에서 바라본 지나온 백두 큰줄기가 깊고 푸른 빛으로 우람하다
헬기장 도솔봉(1,314m)을 지나 암릉에 오르니 도솔천이 열린 듯
소백의 진면목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좌청룡 우백호,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는 암봉
도솔봉,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의 안산
불교의 화엄교리로 펼쳐진 연화장 세계의 풍수 형국
미륵보살이 머무르며 설법을 하고 있다는 곳,
신선들이 노니는 하늘 도솔천(兜率天)
이곳이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해탈한 신선들이 노니는 자유로운 세계가 아닐까
죽령 쪽에서 올라온 많은 산객들로 고스락은 시끌하고 어수선하다
암봉에 위연하게 서서 장엄하게 뻗어 나가는 소백산의 기다란 대간마루금을
눈길 닿는데까지 황홀하게 조망한다
소백산, 웅자와 위엄을 갖추고 있는 산이다
소백을 넘는 죽령에서부터 연화봉을 지나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마루금의 파노라마가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잠시 남도 해남 달마산의 도솔암이 오버랩되면서 떠오른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같은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거친 암릉과 바다에 한눈팔며 해찰할 때쯤
우리 땅에서 가장 작은 절 도솔암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암괴석 사이 새집처럼 들어앉은 절
기암괴석을 병풍으로 바다를 마당으로 마음에 꽉차게 들어와
오히려 널찍하고 넉넉하게 비쳐지던 남도 도솔암
그 곳도 신선들이 노니는 세계임에 틀림없었다
소백대간 줄기에 시선을 꽂은 채 도솔봉에서 내려 죽령으로 향한다.
산지산인님이 이전 종주 때의 알바한 경험을 살려 하산 등로에 이정표를 놓아 둔다
교차로 찢은 시그널도 등로 곳곳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아마 선두 새여울팀의 소행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산꾼으로 대원을 배려하는 일면과 산고수의 남다른 덕목을 배운다
지루하고 팍팍한 오르내림이 서너 차례 이어진다
도솔봉에 오르면 죽령은 지척 거리에 수월하게 하산하는 줄 알았다
삼형제봉 오름길이 다소 힘겹다는 정도 알고 왔어도
죽령 하산길은 생각보다 녹녹치 않았다
폭염 속에 무뎌진 발걸음으로 계단과 된비알을 오르는 하산길
내 업보만큼 무거운 발걸음은 나를 주저하게 한다
더운 입김을 타고 온몸이 끈적거린다
산죽밭이 있는 등로에서 죽령에 내려선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죽령을 1.3km 남겨놓은 지점인 샘터에서 목을 축인다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수질검사 적합이라는 검사성적서가 붙어 있다
한껏 들이키니 마음까지 후련하다
오후 세시 십오분 쯤 죽령(689m)에 내린다
소백산 잘록한 허리 관문 아흔아홉구비
경상과 충청을 넘나드는 길목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왕이 한강 장악을 위해
죽죽(竹竹)으로 하여금 열었다고 하여 죽령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두 번째로 열린 고개
고구려 바보 온달장군의 의기와 평강공주의 연모가 서려 있는 곳
화랑 김유신과 죽지랑의 화랑도가 충만한 곳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가 넘던 고개
선비들의 한양 과거길, 보부상과 장돌뱅이
구비구비마다 수 많은 전설과 사연이 담긴 고개
대쪽같이 곧은 절개와 신의를 다잡아 가며 넘나들었을 그 고개
오늘 날머리 죽령-
휴일을 맞아 도로 양 옆이 차들로 북적대고
트로트 노래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고갯마루에 가득하다
말랭이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버스 옆에서 하산주 대여섯잔으로 환속의 이질감을 비워냈다
청정한 계곡물이 수도꼭지로 나오는 곳에서 물수건으로 땀을 씻고
나무 밑에 깔아놓은 자리에 누웠다
여름 초하 도솔산과 연화봉 협곡을 지나는 바람결이 느껴진다
단양, 제천 쪽에서 오르막 30리를 느긋이 거슬러 올라와
영주, 풍기 쪽으로 내리막 30리를 지긋이 내려서는 고갯바람
그 바람결이 땡볕 속에 신록을 흔들며 지나는 듯하다
내 삶의 여정에도 이런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었으면 좋겠다
풋잠에 빠진다
고단하고 치열한 산행이었지만
묘적봉에서 도솔봉을 지나 연화봉에서 꽃을 피우고
비로봉에서 비로소 비로나자의 경지에 드는
수행의 관문으로 이어지는 소백대간길
그 고행의 첫 관문을 지나왔다라고 생각하니
고달파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11구간
죽령(03:00) - 제2연화봉(04:10) - 천문대(04:50) - 제1연화봉(06:00) -비로봉정상(07:00) -국망봉(08:30) - 늦은맥니제(09:10) - 마당치(11:40) - 고치령(13:20) -
좌석리(13:40)
죽령~제2연화봉~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재~마당치~고치령~좌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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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지 : 소백산 (단양, 예천, 영주, 영월 일원)
♣ 일 시 : 2010년 6월 19일(토)~6월20(일) 무박
♣ 날 씨 : 최저19℃~최고28℃ / 전날밤 소나기 / 새벽 짙은 안개 / 한낮 맑음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5명
♣ 교 통 : 대전중부고속관광 (대전~충주IC~단양IC-죽령/좌석리~단양IC~충주IC~대전)
♣ 산행거리 : 약 28.83km
♣ 소요시간 : 약 10시간 40분(선두 8시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죽령(03:00)-(4.0km)-제2연화봉(04:10)-(2.25km)-천문대(04:50)-(0.4km)-연화봉갈림길(05:00)-(1.6km)-제1연화봉(06:00)-(2.43km)-비로봉(07:00)-(3.08km)-국망봉(08:30)-(0.8km)-상월봉갈림길(09:10)-(1.0km)-늦은맥이재(09:10)-(3.2km)-연화동삼거리(10:20)-(3.27km)-마당치(11:40)-(1.0km)-형제봉갈림길(12:30)-(1.8km)-고치령(13:20)-(4.0km)-좌석리(13:40)
♣ 주요고도
죽령(696m)-제2연화봉(1357.3m)-연화봉(1394.3m)-비로봉(1439.5m)-국망봉(1420.8m)-상월봉(1394m)-마당치(910m)-형제봉갈림길(1032m)-고치령(760m)
♣ 산행후기
지은이:쪽빛여울
출발당일 11시 전후
천둥 번개가 사방 천지를 때리더니
집중폭우가 매섭게 몰아친다
지하도로는 이미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아내가 나를 바래다주기 위해 폭우 속으로 차를 몬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궁시렁 잔소리를 툭툭 내뱉는다
새벽부터는 날이 개고 별이 반짝일거라 괜찮다며 토닥거리고 내린다
오늘 11차구간 소백산종주
조선시대 최고의 풍수학자 남사고가
‘사람을 살리는 산이로다.’라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했다는 산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많이 주고 풍수지리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산
죽령 남쪽의 묘적령 도솔봉(1,314m)에서 고치령 상월봉(1,393m)까지
양백지간 웅장한 산세가 연봉을 이루는 곳
지리적으로는 경북 영주 충북 단양의 도경계
주봉은 비로봉(1,439.5m)으로
월전계곡, 석륜암계곡, 죽계구곡, 어의계곡, 천동계곡 등
수많은 계곡과 폭포를 거느리고
희방사와 초암사, 성혈사, 비로사 등
유서깊은 고찰과 문화유적을 감싸안고 있는 곳
산자분수령, 주능선의 남동쪽으로 낙동강이,
남서쪽으로 남한강이 발원하는 곳
1987년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비로봉 아래 천연기념물 주목군락지가 있고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가 천상의 화원을 이루며
여름이면 산상초원과 녹음이 제 빛을 발하고
가을에는 능선 억새의 하얀 일렁임이 애잔하고
겨울 상고대와 칼바람으로 그 앙칼진 위용을 바싹 치켜세우는 산
그 소백산 마루금을 잇는다
새벽 3시경 죽령
역사의 얼을 간직한 고개마루에 다시 선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신새벽
정적 속에서 그 때의 시간에서 멈춰버린 듯한
부스스 잠 덜 깬 눈을 부비며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한다
빗줄기는 아니지만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사위는 안개에 뒤덮여 있다
침묵 속에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비로나자불을 알현하기 위해 불자의 성지에 들듯
깊고 푸른 소백으로 랜턴 불빛 발 밑따라 줄지어 오른다
장장 칠십여리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소백의 정기를 담으며 걷자고
들뜨고 두렵고 조급해진 마음을 추스린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7km에 이르는 대간길
콘크리트길과 산길을 넘나들며 고도를 높인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지척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숨은 거칠어지고 땀이 후즐근하게 배어나온다
임도 위로 아고산대 습한 새벽공기가 한 보숨 훑고 지난다
간밤에 내린 비로 노면은 촉촉하다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본다
투명하고 초롱한 별빛이 어둠을 뚫고 반짝이길 갈망하지만
해탈의 별빛은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무심한 랜턴 불빛만이 안개 속에 허공을 가른다
30여분 정도 오르니 숨고르기 오르막의 정점인 전망대
칠흑 속에서 속절없이 전망대에 올라
바로 건너편에 있을 도솔봉과 삼형제봉들을 가늠해본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숨을 고른 뒤 후미팀과 합류하여 진행한다
하나의 봉우리 이름으로 3개가 나누어 가진 연화봉
그 첫 봉우리인 제2연화봉
등로옆 커다란 정상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린다
다시 연화봉으로 임도를 따라 발길을 이어가다보니
어둠과 안개 사이로 소백산 천문대가 검은 성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옆을 지난다
마법의 성과 같다며 누군가는 말소리를 내기도 한다
30년이 넘도록 한국 하늘의 별을 지켜온 곳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별 볼 일 없는 날’이다
사실 오늘만이 아니라 실제 ‘별 볼 일 없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로 겨울이 짧아진데다 도시문명이 빠르게 산자락을 헤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란다
천문은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통로라고 하는데
‘백두대간’은 묶어두고 ‘4대강’은 살리며 과연 인간과 자연이 소통할 수 있을까
불현듯 삽자루가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연화봉에 오르는 이정표를 랜턴으로 비춰본다
이 길을 따라가면 연화봉에 이르고
골 아래로 희방폭포를 끼고 희방사가 터를 잡고 있을게다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조사가 서라벌 계림호장 유석의 시주를 받아 창건했다는 절
‘기쁨을 얻은 자리’ 희방사
훈민정음 원판과 월인석보를 보관했다는 심산유곡 유서 깊은 고찰 희방사
안개로 조망이 없으리라 예단하고 우회하여 제1연화봉(1394.4m)으로 향한다.
밝음에 쫓기듯 어둠이 서둘러 물러선다
여명이 밝아온다. 싱그러운 아침이다
안개 속에 한층 짙어가는 연초록 이파리들이 탄력있고 생기가 넘친다
주위에서 텃새들이 때를 먼저 알고 아침을 맞는다
어둠이 걷히면서 소백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계단 위 전망대에서 아침식사 자리를 잡는다
열 대여섯 명의 대원들이 산상부페를 차렸다
마루금은 아직도 안개에 싸여있다
정상석 없는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으로 산길을 잇는다
철쭉터널과 야생화군락지의 천상화원을 걷는다
연분홍 꽃잎으로 대간길을 수놓은 등로를 지나
비로봉을 0.6km 앞둔 지점 천동방향 갈림길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백산 주목단지가
보호철책에 둘러싸여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
소백산 주목은 지리산 주목과 달리 키가 작고 굽어 있다
북서계절풍 칼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60년대 말까지 3만여 그루의 주목이 있었으나
불과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비로봉 보호구역 내에
200~400년 된 주목 1500여 그루만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아고산대 식물들이 펼쳐지고 초록으로 좌우로 시야가 트인
억새밭 능선을 따라 비로봉에 오른다
나무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비로봉으로 올라선다.
석가의 진신을 높여부르는 비로, 비로자나부처님
비로봉(1439.5m), 소백의 주봉이다
아담한 돌탑과 정상석 표지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백준령의 부드러움과 장엄함을
소백여신의 입김인지 안개가 더욱 고스락을 휘감으며
좀처럼 마루금의 속살을 내보이지 않는다
소의 등처럼 유연한 곡선으로 넘어가는 대간의 파노라마를 보고 싶었다
대간길의 꿈틀대며 물결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소백산, 웅자와 위엄을 갖춘 산이라 하였다
여기에 낭만적이고 목가적이며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풍모를 갖춘 산이다
정상석에 서거정의 시가 새겨 있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을 그어 /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초암삼거리를 지나 국망봉에 오른다
퇴계 이황은 국망봉 아래골을 죽계구곡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국망봉(1,420.8m)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배앗기자 왕자인 마의태자가
신라의 국권을 회복하려다 실패하고 엄동설한에 베옷 한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여기에 올라 멀리 옛도읍 경주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여
‘나라를 바라보는 산‘ 국망봉
역사의 뒤안길에서 무상함을 느끼는 산이다
또한 조선시대 ‘백순’이라는 대장장이가
이곳에서 선조 임금과 퇴계 이황 선생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도 하는 산
산줄기 아래엔 초암사와 성혈사가 들어앉아 있다고 한다
상월봉(1,394m) 가는 길
굴곡도 심하고 암산의 위용도 보이는 마루금
갈림길에서 정상을 우회하여
암봉을 내려 늦은맥이재에 내린다
어의곡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이정표 옆에 대원 일행이 이른 점심을 차리고 있다
마당치에 가서 점심을 먹자며 대장은 대원들을 다그친다
10분만 간다는 마당치는
몇개의 봉우리를 한 시간을 오르내리다안부 마당치에 이른다
대장의 '뻥'이 또 한 번 터졌다고 투정하기도 한다
바리바리 준비한 점심상이 푸짐하다
까칠한 밥 넘기기가 마뜩치 않아 함께 들자는 걸 굳이 고사하고
물과 간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고치령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일군의 산악회 산객들이 지난다
1032m봉을 올라 형제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대간길에 들어선다
이어 헬기장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오르내린다
나무가지 사이 여백을 채웠다 흩어지는 안개가
산중에 한 폭의 수묵화를 빚어 놓은 듯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다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드디어 숲 사이로 절개지 고치령이 언뜻 걸려있다
그런대도 잡목숲을 지나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차례 지나고서야 고치령에 내려선다.
고치령(760m)
고개가 높아 ‘고치’라고 하다가 ‘령’이 더 붙어서 고치령으로 변했다는 고개
예전에는 절터고개, 곶적령으로도 부르기도 했다는 고개
본래 벌목용 산판도로로 뚫린 고개로
영주의 순흥과 단양의 영춘을 잇는 고갯마루
문경과 영주를 잇는 죽령, 영월 하동과 영주 부석을 잇는 마구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
태백과 소백을 나누는 경계점
소백이 끝나고 태백이 시작하는 고개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즉 양백지간(兩白之間)으로
충청도의 의풍, 강원도의 영월, 경상도의 영주가 만나는 곳이자
정감록에서 이르는 십승지 가운데 한 곳이며
격암 남사고가 양백지간에 숨어 있다고 이른 승지로 꼽히기도 하는
영월 땅 어래산 일대로 드는 길목의 고개
후고구려 궁예가 미륵정토를 꿈꾸며 군사를 기르던 양백지간의 길목
전설이 된 영월의 단종과 영주의 금성대군 혼령이 넘나들었을 그 고개
단종과 금성대군을 기리는 산령각이 서 있는 곳
마을사람들이 매년 소를 잡아 제를 올릴 정도로 큰 제당이 있었던 곳
단종의 원혼인 태백산신과 금성대군의 원혼인 소백산신을 상징하는
양백대장군(兩白大將軍)이 장승으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고개
영월쪽 와인리 김삿갓 계곡으로 드는 고개
평생을 떠돌며 시대와 권력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시를 쓰다 그 곳에 묻혔다는 민중시인의 상징
조부를 비난하는 글로 과거에 급제한 후
이에 대한 회한과 상처를 시와 술로 세상의 고뇌를 풀려 했던 방랑시인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
청운이 분수 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네.
-김삿갓,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200여년 전 그가 남긴 시가 마음을 울린다.
청운의 큰 뜻은 부귀공명 입신양명으로도 이룰 수 있지만
자연순응 안분지족하는 삶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김삿갓의 고뇌와 역설의 깨달음을 엿본다
마당치에서 대장님이 호출한 트럭이 산령각 앞에 이미 와 있다
운전석 옆과 짐칸에 열 다섯명이 빼곡히 들어차 앉는다
좌석리까지는 4~5km의 포장도로
좌우 양백지간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트럭을 타지 않고 선뜻 걸어서 한 시간 남짓 하산하기는 부담스러웠으리라
마을앞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는 민박 매점 앞이 종점이다
후미를 반기는 선두 중간그룹의 대원들의 표정이 밝다
대장님의 배려가 있었겠지만 주안상에 올라온 술안주가 맛깔스럽다
집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와 숨두부, 양념간장, 부침개, 나물, 김치
좌석리 촌로 시골할머니의 후덕한 인심을 그대로 올려놓은 듯했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말을 섞어 놓은 듯한 투박한 사투리는
산촌 오지사람의 순박한 사람 냄새가 물씬 묻어나왔다
산지산인님과 풍경소리님이 협찬한 의당 밤막걸리와 얼음캔맥주로
탈속과 환속의 경계를 씻어내고 달궈진 몸과 마음을 식혔다
마을앞 다리 아래로 소백에서 흘러내린 청정수가 흐른다
차고 시린 물로 찌든 여정을 씻어내고 차에 오른다
돌아오는 길-
대장님의 산행총평에 이어 차내에서 간단한 대원소개의 시간도 있었고,
신탄진휴게소 부근에서는 대원을 내려주기 위해 갓길 무단정차하여
경찰에게 딱지를 떼는 해프닝도 있었다
좀 이른 저녁시간 ‘대원친목모임’을 가졌다.
풍경소리님이 경영하는 문화동 ‘풍경’에 대원 스물 예닐곱 명이 참석하였다
고추장 불고기와 낙지볶음, 그리고 소주
카리스마 사인검님의 건배제의와 썬남님의 즉석발언,
대원간의 친목의 시간 등으로 시종 화기애애했다
물론 화두는 10차백두대간종주대의 완주의지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자는 것으로
사인검님의 건배제의 ‘산! 산! 산!’은 이제 10차종주대의 공식 건배구호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소백산을 보고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어서일까
소백에서 나오니 대원간의 가열찬 열정과 의지가 더욱 공고해진 듯하다
우렁차고 결의에 찬 대원들의 하나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 내사랑 소백산이여~
12구간
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
♣ 산 지 : 선달산 (단양, 영주, 봉화, 영월 일원)
♣ 일 시 : 2010년 7월 3일(토)~7월 4일(일) 무박
♣ 날 씨 : 최저21℃~최고29℃ / 흐리고 비, 안개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2명
♣ 교 통 : 대전중부고속관광(증평↔충주↔단양↔풍기↔좌석리/도래기재)
♣ 산행거리 : 약 26km
♣ 소요시간 : 약 11시간 40분(선두 8시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고치령(03:50)-(3.1km)-미내치(04:50)-(4.5km)-마구령(06:15/06:50)-(4.9km)-갈곶산(08:50)-(1.03km)-늦은목이(09:10)-(1.77km)-선달산(10:25)-(5.1km)-박달령(12:30/13:10)-(3.0km)-옥돌봉(14:30)-(2.6km)-도래기재(15:30)
♣ 주요고도
고치령(760m)- 미내치(830m)-마구령(810m)-갈곶산(966m)-늦은목이(750m)-선달산(1236m)-박달령(970m)-옥돌봉(1242m)-도래기재(780m)
♣ 산행후기
- 쪽빛여울-
새벽 세시 경
좌석리에 도착한다.
좌석리 노인회관 앞으로 계곡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마을 봉고트럭이 두 번에 걸쳐 빼곡하게 대원을 태워 고치령으로 실어 나른다.
2차택배 트럭 뒤에 쭈그리고 앉은 대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고개로 이동한다.
양백지간에서 부는 골바람이 코끝에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세시 오십분 경
소백과 태백 사이 양백지간 들머리 고치령(780m)에 선다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고개
어둠 속에 태백천장, 양백대장, 항락(恒樂) 장승이
여전히 산령각을 지키며 서 있고
건너편 단산대장군, 포도대장군도
소백지장을 호위하며 고개를 지키며 서 있다
양백지간에서 소백은 땅의 장수(地將)가 되고
태백은 하늘의 장수(天將)가 된다.
불꺼진 산령각 안에서는 호랑이를 탄 산신과 말을 탄 단종,
말고삐를 쥔 금성대군의 탱화가 금방이라도 문고리를 열고 되살아 걸어나올 듯하다
순흥으로 유배당한 금성대군이
영월 청령포에 갇힌 단종에게 보내던 밀사가 넘던 고개
순흥에서 영월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던 소망을 담은 통로
어둠 속에 북쪽 영월 쪽으로 열린 길을 바라보며
비탈로 걸음을 옮긴다.
길은 950m까지 가파르게 솟았다가 이내 부드러워진다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산길 60여 리.
소백에서 태백을 잇는 양백지간 산길 60여 리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옛사람들의 희망의 땅
10승지 중의 산자락을 품고 있는 곳
소백과 태백에 가려 이렇다 할 이름난 봉우리를 간직하지 못한 탓에
대간꾼들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드문 육산
부지런히 걸으면 될 일이다
산신의 입김인가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짙을수록 흐릿한 랜턴 빛은 직선으로 지면에 내리꽂힌다
미명 속에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차례 오르내리고
서서히 허리를 낮춘 대간길은 미내치(820)를 지난다
이미 퇴로가 되었고 소로길이 희미한 고개로
안개어둠 속에 지나친 다음에야 그 곳이었음을 짐작한다
미내치에서 마구령 가는 길에 아침을 맞는다.
사위가 환해졌다.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아침 햇살이 안개에 가려 핼쓱하게 느껴진다
첩첩 산중에 아침 해는 안개를 뚫지 못하고
하늘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는 듯하다
참나무 숲 사이로 비껴드는 햇살이 뿌연하다
꽉 막힌 듯한 사방에 불어오는 바람마저 인색하다
후텁지근하고 습기 많은 날씨다
이름을 갖지 못하고 지도상 숫자로만 표시된 봉우리들을 지난다.
산에는 온통 참나무와 신갈나무가 제철을 만났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다 1097m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길게 허리를 낮추더니 남북으로 고개 하나를 연다
마구령(810m)이다.
고치령에서 20여리를 걸었다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잇는 고개
옛날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마아령(馬兒嶺)이었다고 하는 고개
어쩌면 일본인들이 나무를 실어내려고 길을 열었을지도 모를 고개
현지 주민들은 길목의 사투리인 '메기'를 써서 ‘메기재’라 부르는 고개
정감록에서 이르는 십승지 가운데 한 곳인 남대리로 가는 길목
순흥으로 유배 왔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할 때 군사를 길렀다는 곳
이른 아침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재를 넘는다
미리 와 있던 대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방하착님 일행에 묻혀 아침상을 편다
상추, 고추, 김치, 밑반찬, 콩국물까지 성찬이다
찰밥 한 숟갈에 김 한 장 물 한 모금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걷기 위한 자구책이다
마구령을 뒤로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녹음 속에 쭉쭉 뻗은 춘양목 소나무 가지가 자주 눈길을 끈다
태백산일대에서 주로 생산된다는 우량소나무
물풀을 뿌린듯 흰 점이 묻어있는 물푸레나무 사이에서
선골처럼 기품이 있어 보인다
분수령은 마구령에서 고도를 높이며 동쪽으로 이어진다.
된비알을 치고 오르고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다
삼거리 표지목을 마주한다
갈곶산(966m)이다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에 표지판만 붙어있다
대간 마루금이 동에서 북으로 길머리 방향을 트는 분기점
남쪽 지능선으로 봉황산(819m)길이 열려있으나
출입통제 경고문이 붙어있다
그 봉황산 남서쪽에는 부석사가 깃을 치고 있을게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신통력으로 들어 올린 부석(浮石)이 있는 곳 부석사
은행나무 가로수길과 일주문, 당간지주를 지나
아홉 개의 가파른 석축을 오르며 사바세계를 벗어나야
무량수전 주불 소조여래좌상을 알현할 수 있는 곳
배흘림기둥과 추녀의 어울림이 완벽함을 자랑하는,
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양백지간을 우아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그곳, 영주 부석사
오르막은 곧 내리막이고 내리막은 곧 오르막이다.
오르내림의 기복이 많은 구간이다
안개 속으로 이깔나무 숲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안부 늦은목이재(800m)에 이른다
소백산국립공원이 끝나는 지점
영주 남대리와 봉화 오전리를 잇는 고개다
표지목 주변에 넓고 평평한 공터가 있다
오른쪽으로 오전약수 내려서는 길이 선명하다
늦은목이재를 지나 선달산에 오른다
선달산까지 1.8km 한시간 정도 된비알 긴 오르막이다
제법 굵은 빗줄기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배낭커버를 벗겨 씌웠다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멀건 액체가 얼굴을 타고 내린다
8부능선에서 만난 방하착님이 이번에도 맥주한잔 들인민다
천상의 미각을 자극하는 맛이다
고도차에 힘겨워하며 서서히 키를 높이다 고스락에 선다
선달산(1236m)
밋밋한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단장한 표지석이 있다
먼저 통달한다고 해서 선달(先達)
신선이 다다른 곳이라 해서 선달(仙達)
과거 급제는 하였으나 아직 벼슬길로 나가지 않은 사람에 비유하여 선달
그러고보니 고관대작 정승뻘 태백과 소백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틈새에서
선비의 품위를 품은 듯 둥그스름한 자태로
선달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달산에서 박달령까지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널찍한 내리막길을 두어시간쯤 서서히 고도를 낮춰 내려서면
박달령(970m)이다
영월의 하동면과 봉화를 잇는 고개
백두대간 소백산권과 태백산권이 나뉘는 고개
고치령 마구령 도래기재와 함께 옛날 보부상들이 넘던 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는 충북 제천이고 여기는 박달나무가 많아서 박달령
도로옆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고 고갯마루의 산령각이 태백산을 등지고 있다
산신각엔 ‘박달령 성황신’이 모셔져 있어
매년 초파일 산 아래 마을 오전리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박달령 오른쪽 영주쪽 산 아래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약수로 뽑히기도 했다는 오전약수가 있다고 한다.
전설에 오전리의 후평장과 춘양면의 서벽장을 드나드는 보부상이
주실령을 넘어가다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약수를 일러주었다고 해서 쑥밭약수터
또 옛날 이 근처에 살던 여인이
남자와 정을 통하기 위해 약수터를 찾았는데
그때까지 맑게 샘솟던 약수가 흙탕물로 변하고
뱀이 나타나 통정을 못하게 했다고도 하는 정간수
톡 쏘는 맛이 사이다보다 훨씬 강하고
특히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약수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만하다’라며
약수터 옆 바위에 ‘인생불로 요산요수’의 친필 휘호를 남겼다는 그 오전약수다
커다란 표지석 앞에서 점심을 차린다
까칠한 밥술 떠넘기고 부대끼는 것이 부담스러워
간단히 빵과 두유로 요기를 한다
따로 떨어져 청승떠는 듯해서 좌불안석이다
나같은 주변인을 배려하는 대원들의 인정이 따사롭다
박달령에서 옥돌봉 오르는 등로는 3km 된비알의 급한 오르막이다
졸음 속에 안개비가 내리는 등로를 터벅터벅 걸어 오른다
의식과 의지가 따로 노는 듯하다
옥돌봉 0.28km 지점 우측 주실령으로 갈라지는 주실령삼거리를 지난다
나무의자에 다들 털썩 주저앉는다
표지목에는 문수지맥 분기점을 알리는 표지기가 나무에 매달렸다
문수지맥은 옥돌봉에서 경상북도 예천의 내성천까지 약 114.5km 구간이라고 한다
옥돌봉(1244m) 정상에 오른다.
이번 구간 최고봉으로 도래기재를 앞둔 마지막 봉우리
옥돌이 많아 옥돌봉, 한자로 옥석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산
산 기슭 어딘가에는 옥을 품고 있을 법도 한데
정상 아래의 하얀 바위 때문에 대동여지도에는 백병산
그 바위가 햇빛을 받으면 예천에서도 보인다 해서 예천바위
산 아래 마을은 그 빛이 비친다 해서 서벽리라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한시간 남짓 내리막길은
운치있고 서정적인 숲길이다.
진달래와 철쭉 관목과 금강송이 등로 옆으로 줄지어 서 있다
철쭉 군락 속에서는 550년 된 철쭉나무도 자란다.
등로에서 살짝 비껴난 비탈을 지키는 철쭉은
나무 둘레가 1m가 넘는다고 한다.
흰 나무 울타리 안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함양 괘관산 중턱에 있는 수백년 된 철쭉도 그랬거니와
고목에 잎을 기르고 꽃을 피워내는 영물을 대하니
신령한 기운이 담뿍 감돈다
진달래 터널을 지나 고도를 낮춰가다
나무계단을 타고 도래기재에 떨어진다
아, 도래기재
고치령에서 11시간 40분이 걸렸다
산에 들고 처음으로 안개가 걷힌 앞 산의 마루금을 바라보게 된다
아랫마을 이름을 따서 도래기재
조선시대 역촌이 있어 도역리로 부르다가 변음이 되어 도래기재라 하였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영월쪽 우구치리에 송아지만한 금이 묻혀 있다는 금정광산이 있었다고 한다
캐낸 금이나 은 등의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도래기재 아래에
일제가 1925년에 ‘금정수도’라는 터널을 뚫었고
우구치리에서 금정수도까지 광물을 운반하는 삭도를 ‘도래기’라고 불렀다고 하여
도래기재라 불렀다고 한다.
우구치는 도래기재 북쪽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을 닮았다는 마을
속리산 쪽의 소 뱃속을 닮았다는 십승지 우복동천을 연상케 한다
작은 터널위로 동물 이동통로가 있고
다음 구간 구룡산으로 이어가는 대간길이 도래기재 건너편으로 열려있다.
대원들과 하산주를 곁들이며 정담을 나눈다
이번 산행에서는 방카님이 걸죽한 하산주 막걸리 한 말 닷 되를,
산이조아님이 감칠맛나는 미나리 멸치무침을 안주로 협찬으로 쏘았다
푸짐하고 칼칼하다
특히 멸치 배를 따고, 미나리는 두어시간 선풍기에 말리고,
청양고추 씨는 버리고, 양파를 썰어서
손맛정성과 함께 고추장에 버무렸다는 무침안주는 별미다
말이 그렇지 협찬은 돈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게다
대원간의 유대감과 애정이 자연스레 허물없이 드러나야하고
가식없는 정표 이상을 담고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함께 즐기고 느끼는 화합과 친목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왼쪽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제법 물이 불은 계곡물이 탄력있게 흐른다
알탕하는 대원들 틈에 껴서
라식을 하듯 몸과 마음과 눈을 씻어내니
세상이 한결 투명해보인다
돌아오는 길-
차창밖으로 양백지간 역사의 무상감이 밀려난다
“계룡시대가 열리면 양백지간에서 인재가 나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정감록의 참언을 곱씹어 본다
계룡시대는 후천개벽의 세상,
자본이 주인되는 세상이 아닌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일컬음이라
사람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을 영도할 일꾼이
어찌 양백지간에서만 나오겠는가?
종교와 무속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혼돈의 세상에서 사람이 주인되는 민주(民主) 참세상 미륵정토의 새날을 열망해본다.
양백지간의 마법인가 대전까지 비몽사몽 열반에 들락거리다 집에 든다.
13구간
도래기재-구룡산-곰넘이재-신선봉-차돌배기-깃대배기봉-부쇠봉-태백산-사길령-화방재
♣ 산 지 : 태백산 (봉화, 태백, 영월 일원)
♣ 일 시 : 2010년 7월 17일(토)~7월 18일(일) 무박
♣ 날 씨 : 최저 22℃~최고 29℃ / 아침 비, 안개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6명
♣ 교 통 : 올림픽관광(대전↔증평↔충주↔단양↔풍기/영월↔도래기재/화방재)
♣ 산행거리 : 약 25km
♣ 소요시간 : 약 10시간 40분(선두 7시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도래기재(03:45)-(1.7km)-임도1(04:15)-(2.3km)-임도2(05:15)-(1.5km)-구룡산(06:00)-(1.3km)-고직령(06:40)-(1.8km)-곰넘이재(07:15)-(2.0km)-신선봉(08:00)-(2.0km)-차돌배기(09:00)-(3.4km)-깃대배기봉(10:30)-(3.3km)-부쇠봉(11:40)-(1.0km)-태백산/장군단(12:20)-(4.3km)-사길령매표소(14:15)-(0.5km)-화방재(14:25) [*첫번째 임도 알바 20분 / 부쇠봉 알바 10분 포함]
♣ 주요고도
도래기재(780m)-임도1(973m)-임도2(982m)-구룡산(1346m)-고직령(1190m)-곰넘이재(1069m)-신선봉(1301m)-차돌배기(1217m)-깃대배기봉(1388m)-부쇠봉(1546m)-천제단(1560m)-장군봉(1567m)-화방재(950m)
♣ 산행후기
어둠을 뚫고 도래기재(780m)에 도착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안개 속에 흐릿하게 야생동물 이동통로 터널이 낯익다
잔뜩 내려앉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니
들머리의 서늘한 공기가 상쾌하다.
13차 구간 태백산
봉화, 태백, 영월의 접경
반도 이남의 뭇산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
분수령에서 흘러 발원한 물이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젖줄을 이루는 산
1,500m가 넘는 고봉이지만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중후한 웅장함과 포용력을 갖춘 육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는 민족의 영산
하늘로 통하는 문
그 태백산의 품으로 오롯이 들어서는 구간이다
들머리 나무계단으로 올라선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가파르게 올라친다.
이따금 숲의 적막을 깨듯 후두둑 빗방울이 흩어진다
금강송 군락지가 어둠 속에 열병하듯 늘어서 있다
첫 번째 임도(973m)에 내린다
대열을 따라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을 때
문득 뒤에서 진행루트가 아님을 전한다
임도 바로 오른쪽으로 오르는 계단을 미처 발견 못한 댓가는
열 대여섯 명의 대원에게 20여분 알바로 되돌아왔다
계단을 올라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1049봉에 올라섰다가 잠시 내려서니
두 번째 임도(982m)다
도래기재에서 10여 리를 걸었다
쉼터가 있고 백두대간 등산안내판이 눈에 띈다
잠시 쉬며 숨을 고르는 사이 대원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오름내림이 계속 이어진다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하게 젖는다
신새벽 여명을 훑고 지나는 바람이 시원하고 청아하다
나무들 사이로 밝음이 하나 둘 걸치기 시작한다
빛이 금을 긋듯 숲을 가른다
숲은 고요함 속에서 잎을 털고 있다
그 소리에 놀란듯 새들의 지저귐이 새벽공기를 탄다
가파른 된비알을 딛고 1256봉에 올라서고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힘겹게 올라치면 구룡산(1346m)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데서 유래한 산
백두대간이 강원도와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다
태백산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구비치며 함백산으로 휘어도는 시발점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
태백으로 이어지는 구룡의 용트림처럼 장엄한 산일터이지만
안개에 가려 사방 조망은 시계 제로다
또한 산 아래 1800만 평을 공군 전투기사격장으로 내맡겨30년째 폭음의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는 산
헬기장에 대원들이 옹기종기 앉아 아침을 먹는다
찰밥에 김과 단무지를 얹어 물과 함께 꾸역꾸역 넘긴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고 편안한 내리막 길따라
고직령(1190m)으로 내려선다
이름대로 높고 곧은 고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표지기만 나무에 초라하게 걸려 있다
옛날에는 이 고개에 호랑이가 많아 호환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고개
싸리나무와 철쭉이 우거진 나무 터널을 빠져나가는 듯
허리를 굽혀 잠깐 올랐다가 완만한 능선으로 내려서니
곰넘이재(1069m)
이정표에 참새골입구로 표시되어 있고 안내판이 유래를 전한다
웅현(熊峴)이라는 표기에서 곰넘이재로 변하여 부르게 되었다는 고개
옛날에는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고갯길
산 아래 봉화쪽 진조동(참새골)에서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러 가는 사람들이 주로 다녔다는 고개라 한다
방화선 임도를 따라 무명봉 좌측을 돌아 크게 휘어지며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키 작은 산죽 밭을 지난다
산죽 잎사귀가 몸에 부딪치며 사각대는 소리가 낭낭하다
허리춤까지 자란 산죽이 꽃을 피우고 씨가 통통히 여물어 있다
이런 산죽 모습은 처음 봐서 그런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소나무, 참나무가 숲터널과 가드레일처럼 늘어서 있다
신선봉으로 치고 오른다
신선봉(1301m)
정상은 잡초 무성한 처사경주손씨묘가 정상석을 대신한다
잡목에 가려 조망은 없다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져 가파르게 조금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르내림의 능선을 따른다
차돌배기(1217m) 삼거리를 지난다
차돌이 박혀있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삼거리
남쪽 산줄기로 내려서면 각화산(1176m)에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조선 5대 사고 중 하나인
태백산사고의 수호사찰 각화사를 품은 산이라고 한다
차돌배기에서 왼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꺽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깃대배기봉 오르막에 오른다
거의 4km를 삼단으로 지루하게 오른다
연신 땀방울이 쏟아져 얼음물로 갈증을 삭힌다
제법 높은 봉우리를 치고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이 눈에 띈다
태백시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워놓은 첫번째 깃대배기봉(1370m)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산림청 깃대배기봉(1388m) 표지석도 있다
소백산 도솔봉처럼 이 산도 표지석이 두 개인 산이다
깃대배기봉을 내려서니 평탄하고 부드러운 산상 실크로드가 이어진다
부드러운 육산의 속살을 걷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이따금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피는 들꽃
조촐함과 수수한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부쇠봉 오르는 길
오름길은 나무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다
중간에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금 넓은 테라스도 만들어 놓았다.
완만하게 오름길을 올라가니 부쇠봉입구(1495m)이다
왼쪽 사면길을 따르면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고
오른쪽은 봉화백천계곡으로 빠지는 길이다
백천계곡은 깃대배기봉에서 부쇠봉까지 이어진 분수령의 동쪽 계곡으로
한반도 최남단 열목어 서식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대간길은 부쇠봉을 넘어 진행한다
조금 더 오르니 부쇠봉 전망대가 있고
그 바로 위가 부쇠봉(1546m)이다
소백대간으로 이어지는 시초가 되는 산
중국의 태산과 높이가 같다는 산
천제단 바로 아래에 있는 산
장군봉은 단군왕검, 부쇠봉은 단군의 둘째 왕자인 부소를 상징하여 부소(부쇠)봉
주변에 차돌이 많아 부싯돌(부쇳돌)을 만들었던 곳이라 부쇠봉
부싯돌이란 말이 바로 부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자그마하지만 당차게 부쇠봉이라 새겨진 정상석이 눈길을 끈다
크고 부드러운 마루금을 이어
크고 환상적인 주목을 한동안 사진에 담고
하단 천제단을 잠깐 들러본 뒤
급한 비탈을 따라 태백산 장군봉 천왕단(1570m)에 오른다
삼국시대 신라 오악의 하나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곳, 하늘과 통하는 문
하늘을 모시는 '크고 맑은 뫼' 한밝메
봉화, 태백, 영월의 접경으로
국토의 종산이자 반도 이남 모든 산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
신라시대엔 왕이 직접 찾아왔고
구한말엔 의병장 신돌석이 백마를 잡아 제를 올렸다 곳
요즘도 10월3일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곳
천제단 위에는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일체를 일컫는 ‘한배검’이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천제단 아래로 망경사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있다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자시와 인시에 맞춰
하루 두 번씩 천제단에 오르기 위해 머무는 도량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1,470m)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 용정이 있는 절
용정, 100대 약수 중 으뜸으로 천제 지내는 제수(祭水)로 사용하는 물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이 흐려진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샘
장군봉 일대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 군락지다.
아름다운 주목과 고사목들이 온 산에 깔려있다
장군단은 올라서지 않고 지나서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등산로는 돌로 잘 정비가 되어 있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 내리막을 이어가면 유일사사거리다.
일산 알프스산악회의 대간종주팀을 다시 만나 함께 어울려 하산한다
세 번째 대간 북진 중이라고 했다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안다고 몇 마디 대화에 쉽게 친근감이 간다
대원들간에 자연스레 백두대간의 정보와 운영 등에 대해 정보를 주고 받는다
매월 한 차례 무박으로 진행하고 대원간의 산행능력에 따라
팀별로 팀장을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사길령 매표소 방향의 대간길로 직진하여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림한다
보부상들이 호랑이와 도적으로부터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던
산령각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니 사길령(1130m)
두 개의 돌을 붙여 표지석으로 삼았다
신라 때 태백산으로 오르는 고개인 천령이 있었는데
너무 높고 험해서 고려 때 새 길을 열었다하여
새길령, 새로난 길이라는 뜻의 고개
경상도 봉화 춘양에서 태백으로 넘나들던 고개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질러 건너편 숲으로 든다
쭉쭉 뻗은 잣나무 조림지 사면길을 돌아
화방재에 내린다
화방재(950m)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의 안부로 태백의 관문
강원도 태백시와 영월군을 잇는 31번 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
봄에 진달래와 철쭉의 만발하여 '꽃방석 고개' 화방치
서쪽 산기슭 어평 마을이 있어 어평재,
동쪽 산기슭 정거리 마을이 있어 정거리재로도 불리우는 고개
아, 화방재
주유소 앞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고
주유소 옆에는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계곡물이 연신 채워지고 있다
대간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휴게소의 인정이 느껴진다
머리에 물을 끼얹으니 한기가 들 정도로 시리다
등목하는 대원들도 여럿 눈에 띈다
긴 여정과 산행 속에 찌든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 입었다
뒤풀이 하산주
숭숭 썰어온 물오징어를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오징어순대를 다시마에 얹어 생마늘과 고추, 갖은양념 넣은 쌈장을 척척 발라
막걸리 안주로 먹었는데 그 맛이 기막혔다
여기에 입가심으로 오이와 당근까지 먹기 좋게 썰어 내왔다
풍경소리님이 대원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오징어 특별메뉴라고 한다
식당 경영자로서 조리원 관리자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10차백두대간종주대의 친목과 화합을 위해 애쓰고 배려한
풍경소리님의 마음씀씀이가 돋보인다
돌아오는 길
종주대 기념티셔츠와 기념패 제작을 위한 회비예치금을 갹출하고
지나가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10차종주대원들의 화합과 소통, 발전을 위한 대원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말씀이다
소탈한 입담과 걸죽한 음담패설까지 분위기가 한결 업된 느낌이다
일부 대원간에 선두와 후미의 시간차에 대한 의견이 아직도 분분한 듯하다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목적산행이든 일반산행이든 '사람'이 주가 되어야지
속도와 기록, 경쟁과 과시욕과 같은 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람 속에서 산에 들고 나는 것,
그러면서 함께 산을 닮아가는 산행이 진정한 백두대간종주대가 아닌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두가 됐든 후미가 됐든
서로간 산행능력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선으로 동료를 바라보는 마음,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산행문화에서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산행문화로 바꾸어가는 노력,
이러한 덕목이 있어야 진정 성숙한 산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10차백두대간종주대,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완주의 그날까지 파이팅!
14구간
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
♣ 산 지 : 함백산 (강원 태백, 영월, 정선 일원)
♣ 일 시 : 2010년 8월 1일(토)~8월 2일(일) 무박
♣ 날 씨 : 최저24℃~최고32℃ / 새벽 흐림 강풍, 오후 맑음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5명
♣ 교 통 : 동선관광(증평↔충주↔단양↔풍기↔화방재/피재)
♣ 산행거리 : 약 21.45km
♣ 소요시간 : 약 9시간 (선두 6시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화방재(03:35)-(1.0km)-수리봉(04:00)-(2.5km)-만항재(04:45)-(2.8km)-함백산(06:00)-(1.2km)-제3쉼터(07:30)-(1.2km)-제2쉼터(07:45)-(2.0km)-은대봉(08:25)-(1.0km)-두문동재/싸리재(08:50)-(1.2km)-금대봉(09:20)-(3.4km)-비단봉(10:50)-(1.6km)-바람의언덕(11:30)-(1.0km)-매봉산(11:50)-(1.3km)-낙동정맥분기점(12:20)-(1.25km)-피재/삼수령(12:35)
♣ 주요고도
화방재(939m)-수리봉(1214m)-함백산(1572.9m)-은대봉(1442.3m)-싸리재/두문동재(1268m)-금대봉(1418.1m)-비단봉(1281m)-매봉산/천의봉(1303.1m)-피재/삼수령(935m)
♣ 산행후기
꽃방석 고개, 화방재(939m)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개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머물렀다고 하여 어평재
새벽녘 서늘한 바람이 재를 넘고 있다
어둠 속에 어평휴게소와 주유소가 낯익다
산행채비와 기념촬영을 하고민가 사이로 열린 대간길을 따라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헤드랜턴에 비친 앞 대원 발뒤꿈치를 따라 묵묵히 걷는다
등로옆 금강송 춘양목이 도열하듯 서 있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며 온숲을 흔들어댄다
금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방울로 온몸이 젖는다
30여분 만에 수리봉(1,214m)에 오르자
등로는 비로소 순한 길로 이어진다
짙은 암갈색 숲이 연푸른 새벽빛으로 온산에 퍼지고 있다
바람은 여전히 휘잉 소리를 내지르며 숲을 지나고
바람이 지난 자리에 새벽 안개는 숲을 채우고 있었다
그 속에서 때를 아는 새들이 고단하게 잠든 숲을 깨우며 보챈다
안개 어둠 속에 국가시설보호 철조망을 돌아
만항재 직전 차단막을 지나 내려오니 만항재(1,313m)다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주춤하며 숨을 고르는 곳
우리나라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고개
강원도 정선과 영월 그리고 태백 세 고장이 한데 만나는 고개다
휴게소가 있는 자연탐방로 입구에 물고기 모양의 표지석이 서 있다
만항재 내려서는 도로 위
선두팀의 후답대원을 위한 배려, 10차종주대 산행방향표시 시그널을 만난다
반갑고 한편 고맙다
이후 날머리까지 구간 곳곳 적절한 곳에 배치한 시그널을 만난다
종주대원간 유대와 결속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듯했다
함백산 오르는 길은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붙는다
완만하고 오르내림이 이어지다 제단석을 돌로 두른 듯한 곳을 지난다
정상 1.2km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잠시 급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함백산(1572.9m)이다
태백산보다 7m가 높지만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에 밀려
그 웅장하고 우람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산
허나 예전엔 하나의 산으로
함백(咸白)이나 태백(太白) 모두 ‘크고 밝은’ 산으로 인식했던 산
삼국유사에 묘범산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산경표 상에는 대박산(大朴山)이라 표기되어 있는 산
이름 그대로 대박의 꿈을 꾸는 이들의 로망
30년 전에는 석탄 노다지로
최근에는 카지노와 스키장으로
화려한 과거와 신기루의 부활을 꿈꾸는 산
고봉준령의 장쾌한 대간능선 조망을 기대했으나
정상부는 안개 속에 몸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강풍과 운해 속에서 마음 속에 함백산 정기를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중함백 내려서는 길
정상석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야 했다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임도와 이어지는 대간길이 있었다
강풍을 피한다고 올라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간 것이 알바의 단초다
철조망을 끼고 대간길이 이어진다는 생각만 하고 군사시설 쪽으로 내려간다
6명의 대원이 모두 그랬다
을씨년스러운 군사시설물 철망을 왼쪽으로 끼고 걸었다
거센 바람에 바람보다 먼저 들풀과 들꽃이 눕는다
갈림길에서 이상하다 싶어 진행을 주저하며 연락을 취한다
몇 번의 통화후 다시 정상으로 유턴해서 원점으로 오른다
정상부 아래에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비로소 이정표가 보이고 대간길 시그널이 눈에 띈다
약 40여분간의 함백산 알바 체험 연수다
철조망을 오른쪽으로 끼고 생천사천(生千死千) 주목군락지를 지나 중함백으로 내려간다
거친 바람에도 여전히 당차고 굳건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바 시간만큼 후미를 따라잡기 위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걷는다
장딴지가 당겨오고 숨이 차고 땀이 후줄근해진다
제3쉼터 전망대 직전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준비를 하는 대원과 조우한다무심하게 텅 빈 자리에 5명이 둘러앉아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레드님이 애지중지 지고 온 막걸리 한병을 꺼내들고 한잔씩 돌린다
제2쉼터
인공적인 벤치가 아닌 평평한 자연석을 모아놓은 쉼터가 특이하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인 정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왼쪽으로 열려있다
정암사 적멸보궁, 온갖 번뇌가 사라진 보배로운 절로
불상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성지다
우측 80m 지점에 샘터가 있다는 표지도 보인다
제2쉼터에서 은대봉으로 오르는 길도 제법 숨이 차오르는 구간이다
정상은 헬기장이 있는 제법 넓은 공터다
조망은 없고 자그마한 정상석 주위의 잡목에 둘러싸여 있다
땅밑으로 최장의 단선 철도터널(4,505m) 태백선 정암터널이 지난다고 한다
후미 대원들과 합류해 바로 두문동재로 내려선다.
예전에 산불 발생 흔적이 곳곳에 상흔으로 남아있는 길을 따라 내려선다
검게 그을린 앙상한 나무들 틈새로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자연의 섭리다
두문동재(1268m)
본디 두문동이란 마을은 북한 땅 개성 근처 개풍군 광덕산 자락에 있던 마을로
조선개국에 반대하여 원래 72명의 고려 문신과 48명의 무신들이 은거하던 곳으로
이들은 조선조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두문불출'하자 조정에서 불을 질렀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후손들이 이 고개 서쪽에 피난와서 살게 되면서
고을 이름이 두문동이 되고 고개 이름도 두문동재가 되었다고 한다
일명 싸리재라고도 불리우며 덕대산 금대봉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아래로 영월과 태백을 잇는 싸리재터널이 지난다
감시초소 안에 직원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두문동재 앞으로 지나온 은대봉이 우뚝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봉으로 향한다
야생화가 지천이다
널찍한 임도를 따라 오르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 산속으로 붙어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덕대산 금대봉(1,418.1m)
'검대'에서 유래하여 '신들이 사는 땅'이란 뜻을 지닌 산
정상엔 ‘양강이 발원하는 봉’이라하여 '양강발원봉' 푯말이 서 있다
여기에서 내린 빗물이 북동으로 흘러 검룡소에 닿으면 한강의 발원지
남동으로 흘러 황지에 닿으면 낙동강의 발원지가 된다는 곳이다
금대봉에서 한참을 내려가다 쑤아밭령 안부를 지난다
한자의 水禾田嶺(수화밭고개)에 유래한 말로,
벼를 키우는 밭을 넘어가는 고개
즉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정표는 용연동굴 1.4km , 삼수령 4.9km를 가리키고 있다
용연동굴은 3억년 전부터 생성된 석회동굴이 있는 관광지다
비단봉(1,281m)을 치고 오른다
20여분 정도의 앙칼진 된비알이 가뿐 숨과 땀방울을 쏟아낸다
땀에 보상이라도 하듯 고스락에 서니 날이 개고 조망이 시원하게 트였다
앞으로 지나온 함백산, 은대봉, 금대봉 대간 마루금이 눈에 들어온다
선명하진 않지만 왼쪽으로 산자락에 오롯이 안긴 태백시도 보이고
바람의 언덕과 매봉산의 실루엣도 조망된다
비단봉 내리막길을 따라 진행한다
등로 옆 솔나리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다들 셔터를 누른다
잠시후 숲이 열리고 하얀 개망초꽃밭이 펼쳐진다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 사이로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돌아 배추밭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해발 1,200여m의 고지대에서 40만평에 심어놓은 가을 배추가 토실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파란색 지붕의 농기계 보관창고에서 풍력발전단지로 진입하여 매봉산으로 오른다
풍력발전기 아래를 지난다
프로펠라 달린 배를 타고 바람 부는 곳을 향해 창공으로 항해하는 듯한 느낌이다
풍력발전단지 입구에 있는 산림청 매봉산 정상석을 지나고
풍차와 바람개비 조형물이 있는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결을 느낀다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지막 풍력발전기에서 오른쪽으로 열린 숲길을 따라 응봉 매봉산에 오른다
갈림길에서 50m 오른쪽으로 오르니 매봉산(1,303.1m) 정상이다
정상석 전면에는 매봉산, 후면에는 천의봉이라 새겨져 있다
풍수지리에서 산 아래 금계포란형의 명당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매나 수리가 노려보는 듯한 산이라 하여 매봉산
-한자로 매 '응' 응봉(鷹峰)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갈림길 이정표의 매화 '매' 매봉산(梅峰山)은 오기인 듯하다-
또한 삼척이나 영남에서 물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나는
하늘로 우뚝 솟은 산, 하늘의 위엄을 갖춘 봉우리라 해서 천의봉으로도 불리는 산
정상석 뒤 철탑 아래 전망대에 선다
지나온 대간길을 눈길 가는 데까지 시선을 준다
왼쪽으로 태백시내와 산 아래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명당을 바라본다
태백산에서 우측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희미하게 보인다
매봉산 정상을 내려와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고랭지 채소밭 갓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서 내려가다보면
갈림길 길목에 낙동정맥 분기점 표지석이 서 있다.
낙동정맥 분기점인 작은피재 삼거리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래치는 곳
여기에서 태백시를 휘돌아 안고 백암산, 주왕산, 금정산을 거쳐
부산 다대포 몰운대까지 긴 맥을 이어갈 것이다
태백시는 대간과 정맥 두 산줄기 품에 오롯이 안겨 있는 땅인 셈이다
다시 왼쪽 대간길을 따라 내려서면 피재 포장도로와 만나고
도로를 따라 500m를 내려오니 삼수정이 있는 공원이다
많은 차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피재(935m) 또는 삼수령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태백으로 넘어왔다고 해서 피재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의 분기점에 있어 삼수령(三水嶺)으로 불리는 고개
조형물과 정자가 소공원으로 조성되어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정자 아래에는 '빗물의 운명'이라는 전설을 적어 놓았다
아빠강인 낙동강과 엄마강인 한강, 그리고 아이강은 오십천이
하늘에서 내려오다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절묘한 비유다
골 아래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고개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삼수정에는 대원들의 뒤풀이가 한창이다
하산주 대전생막걸리에 주메뉴 족발
정자 한켠에서 산이조아님이 따끈한 즉석 오뎅탕을 연신 조리하여
종이컵에 담아 대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고
풍경소리님이 협찬한 당차고 때깔고운 수박을 먹기 좋게 툭툭 썰어 내놓았다
하산주 몇 잔을 부어내니 다시 탈속한 느낌처럼 몸이 가볍다
산행후일담과 대원간의 정담이 친근하다
돌아오는 길 태백한우타운에 잠시 들렀다가 한우값에 놀라 다시 되나온다
나른한 오후 피곤한 몸을 버스에 내맡겨 비몽사몽을 넘나들다가
샤롯님 회비 소리에 눈이 번쩍 띄여 멍한 상태로 대전 도착
저녁 시간 가족과 2차 뒤풀이 겸 '알바트로스(?)' 자축파리
막걸리에 소주에 맥주에-
첫댓글 아직 정리가 덜 되었어요
곧 이쁘게 정리해서 한눈에 볼수 잇도록 할게요
고생이 많으셨네요,,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10차 만한데가 없네요 ㅉ ㅉ ㅉ
우리는 안자서 잼 나게 보는데 샤롯님
고생이 넘 심하네요
한곳으로 정리해 놓으면 보기도 좋고 책 낼때도 자료 찾기도 좋을듯해서요.
좋은자료 계속 업데이트 시킬게요
고생 많읍니다
언젠가도 비맞으며 대간길 했었는데
10차 홧팅입니다
10차 백두대간 종주팀 만세!!!! 진부령까지 한명도 낙오없이 완주하시길... 가장 단결되고 남을 배려하며 예의가 바른팀... 10차 종주팀 만만세!!!!
샤롯님 여러모로 신경쓰시고 고생하시네요^^샤롯님 덕분에 카페가 빛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