穀雨[곡우]에 지내는 先農大祭[선농대제]
朝鮮時代에 農事가 잘되게 해달라고 國王이 直接 祭祀를 올리던
遺蹟地는 두곳이 있다. 하나는 서울 東大門區 祭基洞에 있는 先農壇
[선농단]이고, 다른 하나는 成北洞에 있었던 先蠶壇[선잠단]이다.
先農壇은 그해 農事가 잘되게 해달라는 祭祀 터였고,
先蠶壇은 누에農事의 豊年을 祈願하던 곳이었다.
先農壇은 먹는 問題였고, 先蠶壇은 입는 問題를 위한 祈願이었다.
祭基洞의 “祭基”라는 名稱도 先農壇이라는 祭祀 遺蹟地에서 由來한 것이다.
國王이 大臣들과 함께 行次하여 先農壇에 祭祀를 지내던 時機는 24節氣
가운데 穀雨 무렵이다. 相當히 큰 國家 行事였다. 穀雨는 農事철이 本格的으로
始作되는 것을 알리는 節氣이다. 이때 비가 와야만 그해의 農事가 豊年이 든다.
國王이 農事의 神인 神農[신농]씨와 后稷[후직]씨에게 祭祀를 지낸 다음에는
先農壇 南쪽의 밭에서 直接 밭을 갈았다. 王이 먼저 示範을 보인 셈이다.
1476년[成宗 7]에는 이곳에 觀耕臺[관경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王이 百姓들의 논밭일 하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한 用度의 臺였다.
現在 남아 있는 遺蹟은 四方 4m 크기의 돌단만이 남아 있다.
이 아래에 높이 약 10m, 둘레 2m, 樹齡[수령] 若 500년 되는
香나무도 남아 있다. 先農壇 築造 當時에 심은 香나무로 推定된다.
祭祀를 지낼 때 반드시 香이 必要하기 때문에 祭祀를 올리던 建物
周圍에는 거의 數百年 된 香나무가 서 있다. 이 香나무도 亦是 그런 用度이다.
先農祭의 絶頂[절정]은 설렁탕이었다고 생각된다. 모든 行事에서 맛있는
飮食이 나와야만 大尾를 裝飾[장식]하는 法이다. 先農祭의 特別 메뉴는
바로 설렁탕이었다. 설렁탕은 先農祭에서 비롯되었다. 쇠고기, 뼈, 內臟[내장]을
모두 함께 넣고 長時間 푹 고아서 만든 飮食이다.
世宗이 先農壇에서 親耕[친경]을 하고 난 後에 배가 고프다 보니,
밭 갈던 소를 그 자리에서 잡아 국을 끓여 먹었던 데서 由來하였다고 한다.
以後부터 祭祀가 끝나면 이 설렁탕을 끓여서 行事를 보러 온 60세 以上의
老人들에게 待接하였다. 農林水産食品部 主催로 26日에 祭基洞 先農壇
一帶에서 先農文化祝祭가 열린다. 21世紀에도 農事는 여전히 核心 産業이다.
[조용원의 글 中에서]
* 穀雨즈음에 내리는 비는 穀食의 播種과 模種의 移植을 위하여 꼭 필요한
비로 科學이 發達한 요즘은 자연의 비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염화수은을
理用하여 人工降雨를 만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