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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나기
바야흐로 여름은 절정이다. 나는 은둔하고 칩거하는 산승(山僧)처럼 나날을 보낸다. 검푸른 나뭇잎들은 기름을 부은 듯 번들거리고, 풀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기세로 줄기를 뻗고, 햇빛은 살갗을 벗겨낼 듯 뜨겁다. 이 폭염 속에서 복숭아 가지에 매달린 복숭아들은 발갛게 익어간다. 사람도 더위에 허덕거리지만 털을 뒤집어쓴 개들도 제대로 운신을 못하고 더위에 늘어진다.
겨우 초복이 지났을 뿐이다. 더위가 끝나려면 멀었다. 찬물을 끼얹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몸은 증기기관차처럼 열기를 뿜어내고 땀구멍들은 끈적이는 땀을 토해낸다. 권태의 밧줄들이 사지를 묶고 있다. 한낮의 땡볕에 달궈진 지붕에서 열기로 인해 밤이 되어도 실내는 후텁지근한 공기로 꽉 차 숨을 막히게 한다. 종일 더위와 싸우다 보면 몸이 먼저 무력해진다.
저녁에도 거실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찬바람이 일렁이며 풀과 나무들을 고요히 흔드는 걸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한 여름의 맹렬한 불볕 더위 속에서는 책 읽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다 힘들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쾌적한 공간과 아늑한 휴식이다. 잘 마른 셔츠와 면바지, 좋은 책과 음악, 차갑고 신선한 야채가 많이 들어간 요리, 마음이 딱 맞는 좋은 친구, 몰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덥다고 푸념하면 더 덥다. 견디기 힘들다고 투덜대면 인생은 잘못 걸린 덫처럼 더욱 옥죄어 온다.
무지개가 스러지고 비가 개일 때를 보면 그 기상이 어떠하며, 바람이 섯돌아 파도가 솟구칠 때를 보면 그 소리의 기세가 어떠한가 ?
제 안에 고요로 쌓은 덕이 얕고 맑은 기운이 엷은 사람은 공연히 움직임이 많아 땀과 기력을 소모를 더할 뿐이다. 여름은 나무 그늘을 찾아 옛시인의 시를 모은 오래된 책들을 뒤적이며 제 삶을 고요하게 들여다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비 갠 뒤의 청신한 기상과 솟구치는 파도의 기세로 생의 변덕들과 맞서야 한다.
땅을 뒤집는 뜨거움은 내 안의 뜨거움으로 견뎌내고, 절망은 그것을 올라타 채찍을 휘두르며 건너가야 한다. 땅속에서 7년을 견딘 뒤 지상에 나와 보름의 생을 사는 유지매미도 있다. 보름의 생을 덥다고 투덜대며 다 흘려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 파초 잎을 후두둑 때리며 지나가는 소낙비처럼 인생은 짧게 지나간다. 하루를 귀하게 쓰는 사람일수록 하루가 아까운 줄을 안다.
2. 여름
모란 작약꽃 붉은 꽃잎 져서 풀밭 위에 핏자국 흥건하다.
봄의 최후다. 끝내 칼부림이 있었나 보다.
칼이 정맥 위를 지나간 모양이다. 그러니 저렇게
피가 초록 위에 흥건하지 !
마당 끝에 물 거너온 외래종 앨더베리 가지가 무성하게 뻗더니 가지 끝 하늘 가까운 곳에 흰꽃이 무더기로 달렸다.
무리지어 피어 있으나 소박하고 기품 있다.
한낮 햇볕은 폭염이다. 폭염은 뇌를 살균할 듯 뜨겁다.
햇빛 속을 조금만 걸어 다녀도 머리가 지끈지끈 깨질 듯하다.
그 뜨거운 햇발을 쪽쪽 빨아먹고
양보리수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초록 잎새 뒤에 숨어 앵두도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양보리수가 열매가 홍보석처럼 단단하게 여물면 물까마귀와 까치들이 들락날락 하며 다 따먹는다. 좋은 간식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이제 여름이다. 저 청산의 결안 없이 선언한다.
여름에는 나무가 왕이다. 나는 푸른 그늘 아래에서
왔다갔다 하며 녹봉이나 챙기는 신하다.
뽕잎은 기름바른 듯 반지르르 윤기 흐르고, 가는 빗발에도
등꽃 보라꽃들 땅에 떨어져 젖는다.
묵정밭엔 개망초꽃 허옇게 지천이고, 그 밑 음습한 곳에
개구리 노리는 살찐 누룩뱀 두어마리 똬리 틀고 있을
터다. 개망초꽃 키우는 묵정밭에도 드러나지 않은
비운의 생들이 있는 것이다.
여름 나무들은 관능적이다. 그 직립이 세상을 향한 발기(勃起)인 까닭이다.
여름숲은 합궁 중이다. 질펀한 화간(和姦)이다.
여름숲은 사정(射精)이 막 임박한 충만하고 일그러진 얼굴이다. 잎들은 모두 녹색 화염이 되어 타오른다.
여기저기 교성이 터지고 음액이 넘치고 절정을 향해 치솟는다.
마침내 오르가슴이다. 사정이다.
여름은 모든 게 헤프다.
유약한 것은 유약한 것대로 강건한 것은 강건한 것대로 함부로 붙고 사생아를 마구 낳는다.
여름숲은 차고 넘친다. 여름숲은 절제의 미학을 모르며, 도무지 청렴할 줄도 모른다. 저 풀의 극렬함만 보더라도 여름숲이 청렴하기 어렵다는 걸 짐작케 한다.
여름이면 풀 먹인 모시 바지 적삼을 입는다. 모시 바지 적삼을 입으면 파도가 이는 마음 속 물결도 가라앉는다. 모시 적삼 입고 작달비 내린 뒤 하천을 흘러내려가는 우레 같은 물소리 듣는 것도 기쁨 중의 하나다. 그 소리 들으며 책읽기의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은 내 크나큰 사치며 열락(悅樂)이다.
여름 지내는데 한 가지 흠이라면 물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식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벌겋게 익은 수박 깨서 단물 흐르는 과육 씹는 밤엔 물것들에게 남아도는 피 나눠줄 요량도 해야 하리라.
3. 팔월
팔월에는 입추 말복 처서가 차례대로 들어 있다. 오랜 장마비 그치자 곧바로 연일 불볕 더위다. 나는 대체로 새벽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팔월의 새벽이다. 깨끗하게 빨아 말린 뒤 방금 다림질한 면셔츠를 입었을 때처러 기분이 좋다. 팔월의 새벽에는 어쩐 일인지 면셔츠 위를 덧없이 지나갔을 다리미의 열기와 냄새가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왜 갑자기 잘 구운 파리크로와상이 먹고 싶어지고, 리 오스카의 비로 데 레인을 듣고 싶지 ?
하늘은 푸르고 흰구름들은 분홍빛 솜사탕마냥 드문드문 떠 있다. 새벽부터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댄다. 땅의 기운을 흠뻑 빨아들인 나무들의 짙푸른 잎들이 일제히 바람에 사운거린다. 수은처럼 빛나는 이슬 몇 방울 머금은 채 나팔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패랭이들은 땅바닥에 엎드렸고, 하늘을 가린 벽오동나무의 넓은 잎사귀들은 땅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저 아래 논들은 초록의 침묵 속에 잠겨 이다. 침묵이 초록이라는 건 이제 비밀이 아니다. 세상은 아직 고요하다. 고요는 양수가 터지듯 파열하고 곧 붉은 아침노을이 흥건한 가운데 해가 머리를 쑥, 들이민다. 세상이 수런거린다. 집의 유리창들이 눈부신 빛을 되쏜다. 울울창창한 숲이 잠깐 동요하는 것도 그 순간이다. 해가 공중으로 불쑥 솟아오르면 여기저기 술렁이는 동요가 제압되는 건 쉬운 일이다. 모든 것들이 예전의 질서와 평정을 되찾는다.
물푸레나무는 노래를 하고, 부레옥잠은 연보랏빛 꽃을 피운다. 수련 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가 의젓하게 올라앉아 이 아침의 평화와 질서는 저의 염력 때문이라고 자랑한다. 믿거나 말거나. 오전의 부드러운 햇빛이 나뭇잎 사이에 스며들면 햇빛은 연두빛으로 물들고 만다. 그럴 때 햇빛은 기품 있고 고결하기조차 하다.
어제는 난생 처음 어머니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칠순을 넘긴 어머니는 옛 언문문법에 맞춰 장년에 들어선 장남의 안부를 걱정했다. 시작은 좋았다. 늙은 어머니가 목이 메고 간곡해지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아들이 배필 없이 혼자라는 대목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배필 만나 짝을 이루라는 어머니의 권고는 부드러우면서도 삼엄하다. 그러나 좋은 배필 만난다는 것은 애초에 가망없는 희망이다. 나 몰래 멋진 남자에게 한눈을 파는 애인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애인이 생기발랄하고 상냥하기만 하다면야 그게 무슨 흠이 될 것인가 ! 나는 가끔 이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나이 들어가며 마음이 그 누구의 마음도 들일 수 없을 만큼 메마르고 좁아져버렸다는 걸 어머니가 도무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혼자 밥지어 먹고사는 일의 견결성과 고독의 풍요함을 금과옥조처럼 섬기며 사는 동안에 나는 어느덧 그 관습들이 몸에 배어 유순해져버렸다. 아들은 그걸 사생아라도 낳아 몰래 키우는 비밀인 양 늙은 어머니께 차마 발설하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까뮈는 어머니와 정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자신은 기꺼이 어머니를 선택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까뮈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했지만, 이성으로는 수긍하지 못했다. 까뮈는 단지 거기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알제리의 독립에 반대했다. 그것 때문에 진보 지식인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스페인 혈통으로 파출부 노릇을 하며 살림을 꾸렸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나는 까뮈의 정직성에 미치지 못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르트르가 아무리 명민하고 위대하다 해도 까뮈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까뮈보다는 못하지만 사르트르와는 동격이다. 이 조크를 이해하는 사람이 지금 바로 여기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팔월 한낮의 태양은 지나치게 과열된다. 아침나절까지 짙푸르러 싱그럽던 잎들도 뜨거운 물에 데쳐낸 듯 늘어지고, 돌확에 채운 물도 데워낸 듯 뜨거워진다. 풀숲에 숨어 다니는 누룩뱀들도 더위를 못 견뎌 참나무 위로 기어오르곤 한다. 나도 그때쯤이면 서재에서 나와 접는 의자를 어깨에 매고 밤나무 숲속 그늘을 찾아간다.
밤나무 가지와 무성한 잎들은 빽빽하고 그늘은 짙다. 밤나무 숲속은 한낮에도 공기가 축축하다. 살에 닿는 그 축축함이 상쾌하다. 나무들이 한낮에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윗옷을 벗고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캔맥주를 하나 따고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을 세 번째 읽기 위해 펼쳐든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소설 따위는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쓰는 건 힘들고 괴로우니 그건 폴 오스터 같은 친구에게 맡기고 나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녹색 그늘, 축축한 가랑잎들, 온갖 애벌레들, 지렁이와 개미, 날벌레들이 나의 독서에 참여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은 여름에 읽을 만하다. 인간이 달 위에 처음 걸었던 것을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소설은 그렇게 근사하게 시작한다. 결국 나는 외삼촌이 유산으로 남긴 천 몇 백권의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치우고 그걸 팔아 최소한도로 연명을 하다가 나중에는 공원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로 전락한다. 공원에서 영양실조와 병으로 쓰러져 죽기 직전에 애인과 친구에게 발견된다. 50년 동안 은거하는 한 노인의 비서로 들어가 자서전을 집필하고, 노인이 죽자 노인의 유언을 받들어 거액의 유산과 자서전을, 아버지가 50년 전에 죽은 줄만 알고 있던 그의 아들을 찾아내 전달한다. 그와 함께 어머니와 외삼촌의 무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바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는 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단절된 채 살아온, 당연히 죽은 것으로 알고 제각각의 삶을 살았던 할아버지-아버지-아들 관계가 밝혀진다. 그러나, 그런 줄거리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유려하게 구비쳐 흘러가는 문장과 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유머들로 비벼진 이 소설을 읽는 일은 무엇보다 즐겁다. 아주 짧게, 나도 키티 우 같은 중국여자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 밖에는 세상에 펄펄 끓는 기름을 들이붓는 듯한 팔월의 태양이 떠 있고 새들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를 부산하게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지저귄다.
한낮 더위가 누그러질 무렵 숲에서 나온다. 내 눈은 녹색 그늘에 물들어 아직 환한 바깥 풍경이 일순 깜깜하게 보인다. 눈을 감고 바싹 건조된 공기를 몇 번 깊게 빨아들인다. 내가 방금 나온 검푸른 여름숲이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다시 눈을 뜨자 햇빛에 하얗게 탈색된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름의 절정을 통과하는 중이다.
아직도 참나무에 들러붙어 뜨겁게뜨겁게 울어제끼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여름이 석달이라는 건 너무 짧다고 중얼거린다. 여름이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팔월의 태양, 팔월의 숲들, 팔월의 바다, 팔월의 오솔길들이 내게 주는 쾌락을 맘껏 들이키는 것이다. 내 키를 늘려주고 폐활량을 키우고 쪼그라든 자존심을 펴주는 것은 오로지 그것들에 대한 무분별한 사랑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팔월의 순진무구하고 위대한 풍요는 몇 만 명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러붙어 떠먹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
팔월이 되면 나는 턱없이 낙관적이 되고 행복해진다. 당신도 여름, 그 중에서도 팔월을 좋아하는가 ? 팔월이 덥고 권태롭고 지겹다고 ? 그러면 생 전체가 덮고 권태롭고 지겨워진다. 입안에 얼음을 가득 물고 생각을 한 번 바꿔보자. 아, 나는 팔월을 좋아한다. 일 년 열 두달 안에 팔월이 한번 밖에 없다는 건 얼마나 섭섭한 일인가 ?
팔월 얘기들을 풀어놓으니 갑자기 지갑이 두둑해진 것 같다. 이빨이 시리게 차가운 맥주, 재즈, 죽부인, 수분이 많은 장호원 복숭아, 콩국수, 금방 다림질한 면남방, 반바지, 숲속 공기, 수련 청개구리, 물푸레나무에 붙어 오는 참매미, 해남 대흥사, 제주도 협재 바닷가, 서해안 신두리 모래밭, 비오는 날 대숲 사운거리는 소리, 명상과 요가, 터크 앤 패티가 부르는 타임 에프터 타임, 러시아민요 백만송이 장미, 매운 낙지비빔국수, ‘새’에 관한 기억들, 석모도의 일몰 풍경, 곰소 염전, 여우비, 헬렌 메릴이 나른한 목소리로 부르는 레릿 비, 온더락으로 마시는 잭다니엘 한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단편들, 연어 버터구이, 함흥냉면, 그리고 나와 신기한 정도로 여러 가지 기호가 닮은 당신.......
그밖에 ........ 많은 것들 ...... 가족, 어머니, 1년이 열 두달이라는 것, 손가락과 발가락 열 개가 다 멀쩡하다는 것, 마라톤, 오일 마사지, 팥빙수, 흰도라지꽃, 파사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읽기....... 팔월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참 많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까뮈의 『결혼 여름』 다시 읽기, 카프카의 단편들, 뜨거운 수제비 먹기, 고스톱, 오솔길 걷기, 양재동 꽃시장 들르기, 남대문 시장 돌아다니는 것, 반쯤 벗은 몸으로 땀흘리며 글쓰기, 풀숲에서 뱀잡아 놀기, 천렵, 옻닭 먹는 것, 시립도서관 가서 잡지 보기, 아이스 태, 집안 청소, 스모키 노래를 들으며 서재 정리 삼매경에 빠져들기........
나는 팔월이면 행복해진다.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 살갗 위에 촛농처럼 떨어져 내리는 태양의 빛들, 그 속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가끔 숨넘어가게 웃을 수 있다는 것. 맛있는 소보로 빵 같은 추억들을 갖고 있다는 것. 나의 열여섯 살 !
스물 세 해전쯤의 팔월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새’가 제 친구와 함께 불쑥 나타났다. ‘새’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했다. 살색은 희고 볼은 잘 익은 복숭아빛이고, 검은 눈은 생기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새’는 짧게 말하고 별로 우습지 않은 내 얘기에도 까르륵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새’의 주변에 밝은 빛이 아우라처럼 감싸고 있었다. ‘새’는 공중을 가볍게 떠다니는 빛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가볍고 생기가 넘치는 빛이 있었다니 ! ‘새’는 스물한 살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쁜 날들이 줄줄이 다가오리라는 기대와 예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팔월이 오면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팔월의 기억 속에 ‘새’의 생기와 웃음이 선명하게 새겨 있는 까닭이다. 언제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스승의 글, 펌.>
ps,
내게도 익숙하지 않은 올 여름이다.
우선 체력적인 한계에 접하고 있고, 막힘, 단절, 제한 등과 같이 어떤 경계가 그어진 테두리에서 나는 허우적거리는듯한 착각, 착시에 함몰된 느낌으로 이 여름을 극복하고 있다.
아! 팔월을 예찬하며 늦은 휴가 이박삼일이라도 다녀 왔으면 좋겠다. 저 머언 남해 미조항 근처에 숙박을 정하고, 새벽 뱃고동소리 따라 올라온 싱싱한 회 한접시 비우고 싶은 팔월밤은 무릇 깊어간다.
첫댓글 오랫만에 잘 읽었다. 그렇지만 칼국수를 빗으며 사는 바쁜 일상중에도 짬짬이 자네의 속 내를 옮긴 글을 읽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이 더위에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