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2012. 8. 4)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려니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샤워로 정신을 차리고 찻물을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놓았다. 중국식-서양식 퓨전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강태공을 모신 사당으로 갔다. 강태공은 춘추 오패의 하나인 제나라의 시조이다. 고대 은주(殷周) 교체기에 위수에서 서백(西伯 : 주나라 문왕)에게 발탁되어 반란을 꾀하였고, 서백의 아들(주 무왕)과 함께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일등 공신이 된다. 본래 이름은 강상(姜尙), 여상(呂尙)인데, 주 무왕의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던(망=望)인물이어서 ‘강태공’으로 불렸다고 전한다.
중국 호텔 로비에는 희안하게도 배추를 신성하게 숭배하고 있었다. 치박만호대주점을 떠나며..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구목공사 삼패문 강태공사
강태공상 제 환공 상
주 무왕은 전국을 나누어 제후국을 만들면서 강태공을 고향 산둥성의 제나라 왕으로 책봉하였다. 그는 천문. 지리. 정치. 군사 등 여러 방면에 능하였고, 병법에 뛰어나 『육도(六韜)』를 지었다. 제나라의 시조로서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여러 반란을 진압하여 주나라의 스승으로 숭상을 받았다.
사당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는 강태공 상이 있고 그 왼편에는 큰 아들 제 정공의 상이, 오른편에는 제 경공을 모셨다. 뒤로 나가니 거대한 비석이 서 있다. 다음으로 구목공사(丘穆公祠)와 구조전(丘祖殿)을 들렀더니 강태공의 후손으로 여씨, 구씨 등 120개 성씨(姓氏)가 퍼졌다고 하여 각 성씨의 내력을 목판에 적어 걸어놓았다. 노씨의 조상도 되는 탓인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에 다녀간 사진과 “선조의 높은 뜻 받드오리다” 라는 휘호도 걸려있었다.(^^) 이것을 보고 어떤 분은 노 대통령이 외교적 노력을 많이 했다고도 평하고, 양정석 교수는 적어도 한국의 성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구목공사 구조전 구조전 내부에 강태공에서 유래하는 여러 성씨를 목판에 담아 놓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와 방문 사진 강태공을 지존으로 숭앙하는 삼패문
다음으로 제나라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외관이 성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에는 선제(先齊), 서주(西周), 춘추(春秋), 전국(戰國), 진한(秦漢) 등 5개의 진열실과 2개의 특별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워낙 바삐 지나가는 바람에 그저 사진 찍고 다음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멀리 대문구시대의 토기에서부터 그릇, 잔, 향로와 청동기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집모양의 토기, 세발 찜기, 편종, 편경, 제 환공의 패권을 그려 놓은 벽화, 직하학궁관 등이 인상적이었다.
제나라역사박물관 입구
축구의 시초가 중국 제나라라는 국제 공인 장면 사진
다음엔 ‘제경공순마갱’이라고도 불리는 동주시대 순마갱을 답사했다.
임치동주묘순마갱 앞에서 고 샘이 포즈를...
다음으로 청주박물관을 들렀다. 우리 답사단은 먼저 계단 그늘에 앉아 정병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청주박물관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내부 전시실은 하나도 못 찍었고 건물만 몇 컷 사진에 담았다. 이날은 갑자기 배가 아프고 컨디션도 나빴다.
청주박물관 입구에서
정병준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는 답사단 열강하는 정병준 교수
청주박물관을 나와서 70km 떨어진 유방으로 이동해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장장 380km 떨어진 석도로 이동하였다. 중국은 넓은 곳이어서 1시간 거리는 화장실 가는 시간쯤으로 여긴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는 이틀 전에 보았던 KBS 신년특집 <최인호의 다큐로망 해신 장보고>를 다시 보여주었다. 장보고의 중국 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인데, 사실 적산 법화원을 하루 둘러보는 것으로 끝난다. 봉래-유방-치박-태안-곡부 등지로 다녀왔지만 장보고와 직접적인 유적지는 석도에 있는 적산 법화원이다. 이런 허전하고 썰렁함을 메꿔주는 것이 바로 <최인호의 다큐로망 해신 장보고> 5부작이었다. (아래 내용은 귀국 후에 다시 보고 정리한 것이다)
<제1부 신라 명신의 비밀>편은 소설가 최인호가 일본 휴가 여행 중에 야마시나현의 다께다 신겐(武田神玄) 축제를 보고 그의 문장(紋章 :마름모 네 개를 마름모꼴로 쌓은 형상)을 통하여 장보고의 비밀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께다 신겐은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의 뛰어난 무장으로 천하통일 염원하였으나 오다 노부나가의 소총전술에 그의 기마군단이 전멸되었던 비운의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신라사부로 요시미츠의 19대 후손으로서 미이데라(三井寺=원성사) 신라관에서 성인식 때 문장을 전달받았다. 미이데라에는 ‘신라명신(新羅明神)’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라선신당이 있다. 미이데라의 초대 주지이자 일본 천태종 5대 교좌인 지중대사 엔친이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던 중에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는데, 신라 명신이 나타나 구해주어서 귀국 후 원성사를 짓고 그를 수호신으로 ‘신라선신당’을 세웠다고 한다.
[손보기 엮음, <장보고와 청해진>에서. 이하 동일]
미이데라가 있는 시가현 오츠시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최인호는 신라선신당의 신라 명신을 보면서 그 시대의 해상 세력가 장보고를 떠올린다.
<제2부 붉은 바다의 신화> 편은 미국의 역사학자로 주일대사를 역임한 라이샤워의 저작 『엔닌의 당나라로의 여행』을 통하여 장보고의 일대기가 전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던 사실에서 출발한다. 최인호는 엔닌을 추적해 들어가고, 엔닌이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따라 엔닌의 당나라 유학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추적하게 된다. 엔닌은 838년 6월 하카다항을 출발하여 장쑤성 양주, 초주, 해주, 산동성 적산으로 이동하면서 신라 집성촌에 머물면서 장보고가 마련해준 여행허가서를 가지고 살다가 9년만에 귀국하였다.
일본 천태종의 5대 교좌 엔닌은 죽으면서 귀국길에 도움을 준 신라명신을 모시는 적산선원을 세워줄 것을 유언하였다. 교토에 있는 적산선원(赤山禪院)은 엔닌의 유언대로 적산대명신(赤山大明神)를 불법연구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절이다. 재복(財福)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여 적산명신의 그림이 그려진 나무패 부적과 장보고의 배를 연상시키는 종이 부적를 판매하고 있다.
<제3부 청해진의 야망>편은 당말 최대의 무역 상품이었던 저장성 ‘월주요’의 해무리굽 자기가 경주박물관과 청해진 장도 및 강진에서 발견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장보고가 이를 유통시켰으며, 나아가 강진에서 생산 기지를 만드는 역할까지 했을 것으로 추적하고 있다. 일본은 도자기 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장원을 구입하여 장원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에서 장보고(張寶高)는 ‘재물의 신’으로 추앙되고 있었다고 한다. 최인호는 세라믹로드를 따라 이스탄불의 토카프왕궁박물관(도자기전시관)까지 답사하면서 장보고야말로 21세기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면서 본받을 단 1인의 무역지인(貿易之人)으로 평가하고 있다.
<제4부 대해를 넘어>에서는 대모(玳瑁;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들어진 신라 여인의 머리빗과 불국사 중창시 사리함에서 나온 유향(乳香)을 장보고가 유통시켰을 것으로 보고 그 네트워크를 일일이 답사한다. 신안, 비금도, 흑산도, 저장성 영파시, 보타도, 신라초, 양주, 복건성, 인도네시아, 이집트, 오만 등지를 누비고 다녀서 석가탑 유향의 정체를 밝혀내고 자단목과 대모의 원산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인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니고 세계시민이었듯이, 장보고도 청해진 사람이 아니고 신라인도 아니고 세계시민임을 천명한다.
<제5부 역사는 흐른다>에서는 그리스까지 날아가 고대 그리스문명이 해양문명이었음을 확인하고, 바다 영웅 장보고가 신라 귀족 김양이 보낸 자객의 칼날에 허무하게 돌아가고 반역의 오욕을 뒤집어 썼다는 우울한 비교를 한다. 그나마 장보고 부활의 최고 공로는 당말 민족시인 두목(杜牧)의 번천문집(樊川文集)임을 알려준다. 그가 장보고 ? 정년전을 기록해 놓아서 중국 사서 신당서(新唐書)에 올라가게 되었고, 고려의 김부식도 신당서를 보고 장보고를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신라말 선종불교의 최대 후원자로서의 장보고를 밝히고 있으며, 파리의 극장에서 부활하는 뮤지컬 장보고를 보고 돌아온다.
아, 드디어 5시간 반 만에 버스가 목적지에 멈췄다. 영성시 적산대주점에 짐을 풀고 얼마간 떨어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 버스여행으로 피곤했지만 또다시 같은 조원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고 술잔을 나누니 피로도 썩 물러가 버린다. 답사단은 근처 바닷가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잠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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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ature&love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사랑
첫댓글 8월의 그 더위에 산동에 다녀오느라 수고 많았네 그려....
ㅎㅎㅎ 그때 태풍이 적절히 날아와줘서 그런대로 괜찮았고, 워낙 어딜가나 에어콘 바람 속이라서 오히려 피서를 잘 했다는 사람도 많았어...^;^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 가는 곳마다 역사의 향기가 넘치는 나라니 몇 년을 주유하면서 봐야 중국 좀 보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알다가도 모른 나라가 중국입니다.
그럼요, 수박 겉핥기로, 주마간산격으로 냄새만 조금 맡고 돌아왔다고 해야겠죠....이번 여정은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답사>가 주 목적이라서 중국에 대해서는 더욱 피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