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6(수)
이곳 상원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다.
불상 대신 방석을 놓아 모신 곳이랍니다.
<월정산의 적멸보궁>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건물로, 불사리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므로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공통적인 형식을 지닌다.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특별자치도 인제의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정선의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월정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전해온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귀국 직후 직접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자장은 신라를 불국토로 재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귀국하면서 부처의 정골(頂骨)과 불사리 100과를 가져왔다고 전하며, 당시 신라 영토 각지에 불사리를 나누어 봉안하면서 보궁들을 창건했다.
적멸보궁은 상원사(上院寺)를 지나 중대(中帶) 사자암(獅子庵) 위쪽에 위치한다. 사자암은 적멸보궁의 관리와 예불을 위한 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 보는 임원의 숙소]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궁의 노전승이 거처하는 곳이다.
적멸보궁 건물의 네 벽 모두는 널빤지로 꾸며진 판장벽(板張壁)이며, 정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높은 들창을 달았다. 지붕은 청기와를 덮었으며, 용마루와 합각마루에 용두(龍頭)를 올렸다.
최근의 조사에서 이 건물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평면의 구성에서 고대의 내외진 이중형식 금당을 연상시키는 외진부와 감실형 내진부가 확인되었으며, 외부의 기둥 위에 설치된 이익공과 달리 내진부의 기둥에는 2출목의 다포가 짜여져 있어 구조상의 차이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내진부로 변경되어 있는 원 건물의 외부공포는 조선전기에 유행한 다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없는 내부에서 뒷벽에 뚫린 창을 통해 뒤쪽 어딘가에 묻혀있을 불사리를 예배하게 된다. 건물 바로 뒤에는 84㎝ 높이의 지붕석을 얹은 비석이 서 있다. 비석면에는 5층 목탑의 형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으며, 사리탑의 상징물이라 보여진다.-월정사 적멸보궁 백과사전-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평창 오대산 정상 비로봉 인근에 위치한 중대 사자암은 적멸보궁을 관리하는 월정사 부속 암자로 유명한 곳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중에서도 ‘정골 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의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강원도로 길을 떠났다. 우선 전나무 숲길로 잘 알려진 오대산 월정사를 먼저 들러서 가기로 했다.
월정사보다 더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곳인지라 비포장도로이며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아주 높은 지역에 위치하지만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말사 상원사를 지나 겨울에도 침엽수림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숲길을 따라 걸어 해발 1100m정도 되는 곳에 이르니 드디어 눈앞에 중대 사자암이 나타났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중 귀국하여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원녕사, 갈래사(정암사) 등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하였는데 월정사, 법흥사 등이 창건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오대산은 사방으로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중대로 불리는 비로봉을 주봉으로 중대에 터를 잡고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사자암이라 지었고 적멸보궁에 불사리를 봉안하여 법신불로 상정해 예배 공양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동대 효령봉에는 일만의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암, 서대 상왕봉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을 모신 수정암(염불암), 남대 두로봉에는 일만의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암, 북대 동대산에는 오백 나한을 모신 미륵암을 지었다 한다. 사자암이라는 명칭은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다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를 상징하듯 비로전 입구에 두 마리의 사자상이 보인다.
중대 사자암은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매우 특이하게도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층층이 전각을 지었다. 그 중 비로전으로 바로 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광경이 참으로 멋지기에 여기서 펜으로 담아보았다.
경사면에 지어진 1층은 해우소로 쓰이며 조금 뒤로 물려 석축을 쌓고 지은 2층은 공양실이고, 더 뒤로 물려 석축 위에 지은 3층은 수행자들이 묵는 곳으로 숙소로 이용된다. 다시 석축 위에 지은 4층은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5층은 마당을 두고 지어진 비로전인데 맨 위의 전각이다. 비로전 옆에는 삼성각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비로전 처마와 삼성각 기와 지붕위로 펼쳐진 설경과 고드름이 주렁 주렁 달린 단청의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 시선이 멈추었다. 필자는 이 아름다운 광경에 도취되어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바람에 울리며 신도들의 수행 정진을 독려하는 듯한 모습을 담아 두번째 작품을 펜화로 담았다.
오대산 중대 사자암은 적멸보궁 수호 암자로서 비로전이 주 법당으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비로전 내부의 벽체 사방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에 오백, 문수보살상과 하계에 오백 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어 매우 경이롭다. 게다가 양각으로 새긴 극락보수 삼존불상 후불탱화의 장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환희심을 느끼게 한다.
비로전 앞의 마당에서 오대산의 맑은 공기와 더불어 비로전 뒷편에 위치한 약수를 한 모금 마시며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종무소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중대 사자암에서 600m 정도 떨어져 있어 적멸보궁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은 현무암으로 만든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어 불국 정토로 가는 길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곳의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정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와 함께 불교의 성지 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처님의 정신이 깃든 뇌사리를 모신 곳이라 더욱 특별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풍수적으로도 다섯 봉우리 중에서도 중앙의 비로봉에 자리한 적멸보궁으로 다른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천하제일의 명당이라고 어사 박문수도 찬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중대 적멸보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집 속의 집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이중구조의 불전 건축물이다.
내부 건물은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나중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외부 건물이 이루고 있는 기둥열은 독립된 구조체지만 서까래만을 공유하여 구축된 독특한 방식의 건축구조를 가지고 있어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규모의 법당 안에는 수미단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상징으로서 금박판과 보료만 있고 불상이나 후불탱화는 보이지 않는다.
닫집에는 용과 봉황이 조각되어 있어 부처님이 계신 세계를 장엄하고 있다. 법당 바깥에는 적멸보궁 비석이 보이는데 5층 탑 문양이 새겨져 있어 바로 여기에 사리를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관련이 깊은 곳인지라 용맹정진하는 학인스님들이 많은 월정사와 부처님의 신비로운 원력이 가득한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하고 나니 무언가 모르게 뿌듯함과 환희심이 느껴져 경건해진다. 오대산에서 드리는 이 기도가 도시의 삶에 찌든 중생들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좋으련만….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나선 산사 기행에서 문수보살의 지혜와 삶의 평화를 얻는다면 그것 또한 큰 행복이라 생각하며 하산하는 길에 오대산 자락의 저녁놀이 아름다웠다.
[불교신문 3744호/2022년11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