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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074
임마누엘(마태복음 1:18-25)
대강절 셋째 주일, 2021-12-1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셔서 함께 계신 예수님을 영접하자
어린이 말씀
오늘 읽은 이야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요.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요셉이 처음에 아주 기뻤을까요? 안 기뻤을까요? 기뻤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 슬펐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 손 안 든 게 어쩌면 맞아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 왜 슬펐어요? 자기와 결혼하기로 했는데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는지 임신해서 배가 불러왔어요.
왜 그렇게 됐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이에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살지도 않았는데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거에요. 힘들었겠죠? 우리도 그래요.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어떤 중요한 좋은 일을 해주시는데 그게 힘들어요. 잘 모를 때. 그래서 천사가 나타나서 가르쳐줬죠. “요셉아, 네 아내가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것은 아내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성령님이 그렇게 하셨고, 그 아기가 하나님 백성을 구원할 예수가 될 것이다”라고 가르쳐줬어요.
첫 번째 기억합시다.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는데 하나님께서는 더 중요한 일을 하려고 우리한테 그런 어려운 일을 줘요.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천사가 말해준 것은 지금으로 치면 성경 말씀을 듣는 거고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무슨 말씀을 들었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분이다! 두 번째는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다. 이 두 가지를 계속 생각하세요. 예수는 무슨 뜻이라고요? 예수는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힘든 일이 있는 거 같아요?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세요. 그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살아갈 때 그냥 힘든 일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더 복을 주시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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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시다. 요셉 가정이 축복한, 그리고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요셉은 너무 당황했지만 천사가 가르쳐줄 때 안심했고, 그걸 통해서 요셉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혼란스럽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찾아오실 때 당황스러운 일이 있지만 다시 복음을 들을 때 예수님의 은혜가 새롭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시고 우리와 같이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영접하도록 합시다.
1. 예수에 관한 복음: 고난 가운데 죄용서의 복음을 주신다(18-21절)
2. 임마누엘의 복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22-23절)
3.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임마누엘의 복음을 믿자(24-25절)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죄용서의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두 번째로, 임마누엘의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세 번째로, 이 복음 말씀을 들은 우리는 요셉처럼 믿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1. 예수에 관한 복음: 고난 가운데 죄용서의 복음을 주신다(18-21절)
1) 의로운 요셉의 고통(18-19절)
첫째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고난 가운데서 주어진 복음입니다. 요셉은 너무 당황했습니다.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대개 12살 정도에 약혼합니다. 그리고 일 년 남짓 13개월 정도 원래 부모님 집에 있다가 결혼하는 남편 집으로 옵니다. 그동안에 그는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너무나 당황했죠? 그러니까 파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구약 율법에 따르면 약혼한 여자가 임신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때는 이런 율법이 점점 약해져서 죽이지는 않고 정식 절차를 거쳐 조사한 다음 파혼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또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한 로마는 유대인들이 사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대신 공적으로 불륜 사실을 검증한 후에 파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조사하면 자기 약혼녀가 수치를 당하니까 조용히 파혼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다고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하면 느낌이 어때요? 뭐든지 규칙대로 딱딱 하는 것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정의로운 사람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시편 37:21은 말합니다. “의인은 은헤를 베풀고 주는도다.” 물론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어겨서는 안 되죠. 그러나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을 본받기 바랍니다. 내가 희생하고 상대를 유익하게 하는 이런 아름다운,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항상 지키는데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잘 지키는 이유는 사랑을 잘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의로운 요셉도, 성경이 칭찬하는 요셉도 하나님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이 생각하는 불륜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처녀를 선택하셔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의 몸에서 한 아이가 잉태되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 가정에 특별한 일을 했기 때문에 요셉은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과 다르게 결정하려고 합니다.
마리아도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몇 개월 전에 천사를 보내 마리아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성령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누가복음 1:35). 이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하옵소서”라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요셉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 약혼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는 반대로 파혼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아들 하나님이 사람이 되도록 하신 일을 모든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나와 우리 가정에 예수님을 보내실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마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요셉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는 의롭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형제자매님이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일을 당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냥 슬퍼하지만 말고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알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서 천국 여행을 하게 하십니다. 남다른 고난을 주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특별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2) 천사가 전한 복음 통해 답을 주심(20-21절)
요셉의 경우에는 정말 전례 없는 특별한 일을 하셨죠? 처녀의 몸에 성령님께서 한 사람을 창조했습니다(하나님의 아들은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기 때문에 창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창조되었고, 사람의 성품은 그 때 만들어 졌고 사람과 하나님이 한 인격으로 신비하게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자기의 지혜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천사를 보냈다는 것은 특별한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괴로움 가운데 의롭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주 여호와께서 계시의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의 꿈에 천사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정말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을 당할 때 그냥 고민하면서 내 생각대로 처리하지는 마십시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은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담아주었고 우리에게 말씀을 읽으라고 초청하시고 기도하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때 천사를 보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이제는 성령님을 주셨고 성경을 주셨고 또 말씀을 전하는 목사를 주셨습니다. 천사, 영어로 angel 인데요 거기서 evangel 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천사가 하는 일은 복음 전도하는 일입니다. 천사가 뭐라고 첫 마디를 했습니까? “다윗의 자손 요셉아!” 우리는 별 아닌 말 같지만 요셉으로서는 깜짝 놀랄 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 그 자체는 메시아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니 다윗의 자손 중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윗 왕조는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운 왕이고 제도인데 그 백성이 죄를 지어서 다윗 왕조가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나중에 메시아를 보낼 것이다.”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를 보내서 하나님 백성의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자기를 보고 “다윗의 자손 요셉아” 했을 때 요셉으로서는, 경건한 요셉으로서는 알았을 것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요셉으로서는 알았을 것입니다. “아,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구나!”
요셉 가정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위해서 쓰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거의 100% 우리 성도님이 당하는 특별한 어려움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려는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다.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요셉의 마음 상태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경건한 내 약혼녀가 스킨십이 지나쳐서 임신을 하다니 무서울 정도였어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런데 그 아내를 데려오라 이야기하니까 그것도 무서운 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임신한 사실도 무서워하지 말고 오히려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자, 네 아내가 임신한 것은 성령님으로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희생을 요구하시며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요셉으로서는, 그 일이 성령님으로 된 것이다, 성령께서 임신하게 하신다는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신앙인들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같은 말을 했죠? “마리아야, 네가 임신할 것이다.” 누가복음 1:35에서 말합니다. “처녀인 제가 어떻게 임신합니까?” 그때 천사는 말했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래서 나실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이 ‘영이’, 성령님이 ‘덮으신다’. 이 두 단어는 창세기 1:2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물질을 창조하셨고, 그 위에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신다”라고 되어 있는데 ‘운행하신다’는 말이나 여기 마리아에게 이야기했던 누가복음 1:35의 성령이 ‘덮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 덮으시는 것을 통해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물질을 창조하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시라면, 그 성령님이시라면 한 여성의 몸에서 사람이 태어나게 하는 것, 다른 남자의 도움이 없이 사람이 태어나게 한다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다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도 다 알 수 없는 신비이고 성령님을 통해 이렇게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도 신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가운데 많은 내용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말씀이 사실을 말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생각으로, 우리의 계산으로 알 수 없는 새로운 세상,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가르쳐줍니다. 그럴 때 그냥 슬퍼하지만 말고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믿읍시다.
3) 백성을 죄로부터구원할 자 예수(21절)
천사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해야 성병을 감별하는데 천사가 바로 성별을 감별해 알려줍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은 예수라 하리라. 미래에 예수라 부를 것이다. 앞으로 부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부를 것이다는 말을 통해서 불러라는 말이 됩니다.
이름도 지어줍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 임신한 자매님들도, 형제자매님들도 아기 이름을 뭐로 지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어떤 때는 아기를 낳고도 이름을 못 지어서 우왕좌왕할 때도 있는데 천사가 고민을 덜어줍니다. 미리 이름을 예수라 합니다. 예수는 원래 구약의 여호수아와 같은 단어입니다. 신약 식으로 발음하면 예수가 됩니다. 마치 구약의 사울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하면 바울이 되듯이. 다 같은 이름입니다. 예수는 여호수아, 예수는 승리자, 혹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한다고요, 이 아들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아라고 말합니다.
그때 아마 요셉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그런 메시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 백성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자신들을 식민지로 삼은 저 로마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옛날 다윗 왕이 큰 군사를 거느리고 이 지역 저쪽, 동쪽 유프라테스까지, 인근 지역까지 이집트 근처까지 큰 왕국을 이루었듯이 정치적 큰 왕궁을 이룰 그런 메시아, 경제도 부흥시킬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아, 누구의 죄? 하나님 백성의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빈곤과 자유가 없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습니까? 당장은 우리는 경제적 문제나 인간관계의 어려운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많은 복잡한 문제, 죄 때문에 병도 이 땅에 들어오고 죄 때문에 이 땅이 타락했고, 죄의 문제가 해결될 그 날에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입니다. 우리도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마음의 슬픔과 양심의 고통이 있고 우리 스스로가 문제 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아가지 못하고 생명으로부터 끊어져 있고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있고 마지막에는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도 죄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아니 모든 하나님의 백성도 본성적인 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죄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아로서 보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십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온 세상 민족 가운데서 “예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내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우리의 죄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복음입니다. 가정사에서 너무나 혼란스러운 일이 일어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열쇠는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가 너의 가문을 통해서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죄인 됨을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고 높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일에 부족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니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2. 임마누엘의 복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22-23절)
복음의 두 번째는 바로 이 메시아는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에게 한 말은 21절로 끝납니다. 그리고 요셉이 어떻게 했는가는 24절로 이어집니다. 그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22, 23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설명해줍니다. 요셉에게는 자기 백성을 자기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아 예수가 태어나겠다고 했는데 요셉은 거기까지만 알았습니다. 요셉이 알지 못했던 것, 그렇지만 여기 있는 우리, 마태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처녀가 아들을 임신한 것은 바로 구약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사야서 7:14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서 7:14은 아주 슬픈 시절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데 남쪽 나라를 뭐라고 부르죠? 유다. 북쪽은 이스라엘. 이사야는 남쪽 유다에서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이 침략해 왔어요. 근처에 있는 아람 나라하고 같이 침략해오니까 유다 왕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만 믿으라 그리하면 흔들리지 않고 굳셀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표적을 구해라 그러면 내가 주겠다” 하니까 그 왕이 “표적을 안 구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께 표적을 구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믿음이 없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래, 그러면 내가 결정해서 표적을 보여줄게” 하시면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사실은 앞뒤 본문을 보면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아이가 “엄마, 엄마라고 말하기 전에 적들이 물러날 것이다” 했습니다. 아마 그때 어떤 아기가 태어난 것 같아요. 얼마 후에 적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러가게 되었어요. 그때 그 예언이 이루어졌지만, 처녀가 아기를 낳은 것은 아니니까 정말 처녀가 아기를 낳을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이사야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이 약속을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할 그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을 보면 예수님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악했습니까? 하나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서 임마누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신 분은 환영하는 백성이 아니라 환영하지 않는 백성에게 은혜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막 찾으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까? 로마서 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전에 우리의 선행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간 적은 없습니다. 악한, 우리 중심적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혼란스러운 그 순간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오셨고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 그 아들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은 함께, 마누는 우리, 엘은 하나님.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 요셉이 약속받은 그 아들 예수는 우리가 누군지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말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분입니다. 그냥 백성에게 가르쳐서 자기 죄로부터 구원하는 그런 구원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 시키는 임마누엘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계셨습니다. 신명기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21절) 하였고, 신명기 12장에 보면, 주보에 적혀 있죠? “성전에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표시로서 성전을 둘 것이다”라고 합니다. 성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이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짐승의 제물이 피흘리며 하나님 앞에 바쳐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했습니다. 성전이 있었고 제사장 제도가 있었고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은 그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있는 이것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표시한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참 사람입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었어도 그냥 사람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입니다.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있다는 표시로서 성전이 있었지만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성전 대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성전에 가서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그때는 지나가게 하셨고 예수님께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골로새서 2:9). 신의 성품이 인간 예수 안에 충만히 거주합니다. 그분은 진정한 사람이요 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난 것”입니다(디모데전서 3:16).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나시기 전부터 영원한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육체로 나타나셨을 때 이 땅의 백성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분의 몸으로 사람의 죄를 위해 속죄하셨습니다. 자기 피값으로 우리를 아버지와 화해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멀리 성전에 갈 필요도 없고 복잡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성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물론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 예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그 뒤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가에서 폭풍이 일어나 물에 빠지려 할 때, 8장이죠? 그곳에 함께 계시면서 폭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또 18장에서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예수님은 “내가 함께 한다, 임마누엘로 함께 한다”(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약한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25:40, 45).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을 듣고, 특별히 죄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내어놓고 교회가 함께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기도할 때 예수께서는 함께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에서는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지금 하늘에 가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까지, 몸으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이 땅에서 교회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약속하셨기 때문에 함께하십니다. 지금도 함께하십니다. 어떻게? 영으로 함께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함께하십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십니까? 마태복음 28:19-20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십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지킬 때 항상 함께하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특별히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는 이유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이곳에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물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는 곳은 없지만, 은혜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분으로서, 우리를 용서하는 분으로서 우리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분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 누구에게 임마누엘입니까? 성인들에게만, 성인 그리스도인에게만 임마누엘입니까? 임마누엘 하나님 그분께서는 엄마 뱃속에서 아기로 임마누엘로 계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태중에 있는 우리 자녀들도, 언약의 자손들도 이미 임마누엘로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임신한 자매들, 입덧도 하고 많이 수고하시는데요, 태중에 있는 이 아이도 하나님의 귀한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배웁시다. 혹시 여러분이 지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부족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임마누엘,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특별한 사람,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과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에게는 임마누엘로, 영적으로 함께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믿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과도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감사합시다.
3.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임마누엘의 복음을 믿자(24-25절)
세 번째로 요셉은 주님의 명령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요셉은 꿈에서 천사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그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명령대로 행했다는 것은 구약에 계속 나오는 표현입니다. 모세에게 명령했는데 그대로 행하라 했습니다. 순종했을 때는 명령대로 행했다 합니다. 언약 백성이 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행하시고 명령했지요? 먼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요셉의 동의도 없이 먼저 일하셨습니다. 마리아 안에서 예수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요셉에게는 받으라, 받아들이라 하고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시고 명령을 주시고, 그러면 우리도 순종해서 행합니다. 이것이 언약이죠. 하나님 쪽에서 은혜의 일을 행하시고 명령하시고, 우리는 순종함으로써 복을 누립니다.
무슨 명령에 순종했습니까? 요셉은 그 아내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기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고 아들을 낳은 다음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요셉의 순종은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믿음으로 그렇게 했고, 또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날 구원자라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요셉에게 믿음의 내용에서 하나님께서 많이 계시하지는 않았지만, 요셉의 작은 순종은 큰일에 쓰였습니다.
‘데려왔다’ 이 표현은 2장에서도 11, 12절, 20, 21절 같은 데 똑같은 것이 두 번 쓰입니다.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이 ‘데리고 간다’는 말의 원래 뜻은 받아들인다, 수용한다,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비유적입니다. 요셉 자신이 마리아를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9에서는 같은 단어를 써서 복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요셉은 복음을 받는 제자들, 모든 성도의 모범입니다. 또 골로새서 2:6에서는 예수님을 받는다고 말하고(“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 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요셉이 받는 이 일은 우리 모두가 받는 전체 일의 하나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만큼 예수님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사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닌, 자기와는 혈연적으로 사실관계가 없는 이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입양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아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이 아들을 입양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법적으로 다윗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3-4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요셉이 입양했기 때문에 이 말을 쓸 수 있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요셉의 순종으로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다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고, 이제 이 아들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이 중요한 일에 요셉은 쓰였습니다.
요셉은 앞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나중에 서른 살이 되어서 집을 떠나고 기적을 행하고,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고(마태복음 9:6), “내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준다”(마태복음 20:8)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여 하늘로 가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아직은 몰랐지만 그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몰랐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큰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때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해서 사도들에게, 그리고 교회에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가 이 복음을 썼죠.
우리는 요셉보다 훨씬 더 많은 계시를 받았고 훨씬 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훨씬 더 우리의 믿음은 견고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는 복음을 받은 우리가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그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셉 가문에 일어났던 그 혼란스러운 일, 그때 복음을 통해서 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 문제를 갖고 오늘 나오셨을 겁니다. 문제 하나하나, 경제적인 문제라면 실험해야 하고 건강문제라면 병원에 가셔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일보다 더 중심적인 일, 핵심적인 일,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해주시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주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여러분은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경제문제로 씨름하는 우리 모두에게 임마누엘의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문제 가운데 있는 이 환경 속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그분 자신이, 임마누엘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만들어가십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십니다. 저와 여러분과 같은 죄인이 참 의롭게 살지 않아 다시 무너진 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죄용서의 기쁨을 다시 회복합시다. “그래, 없던 일로 해준다. 다시 시작해라.”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이끌어 가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때 왔던 임마누엘 하나님은 다시 오십니다. 재림하십니다. 그날을 생각하면서 요한계시록 21:3,4 마지막으로 우리 같이 봅시다. 우리의 마지막 종착역을 바라봅시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임마누엘, 지금도 임마누엘이지만 그때는 눈에 보이게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더 확실히 계셔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형제자매님,
온전한 임마누엘 하나님이 주실, 이 행복, 이 행복의 나라 천국을 바라보고서 이 땅의 고난의 길을 인내하며 나아갑시다. 죄와의 싸움에서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서 나아갑시다. 고난이 있더라도 이 영광을 바라보면서 말씀에 순종하면서 나아갑시다. 그럴 때 이 땅의 삶 가운데에서 우리가 예수, 임마누엘의 모습으로 점점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최종적인 복입니다. 땅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해가면서 영원한 나라, 눈물 없는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 이 복된 길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