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가르치는 성경읽기 방법 86]
언약으로서 말씀을 배우는 방법 29:
가르침보다 먼저 오는 그리스도 선포와 성경 읽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수고로운 것이 아닙니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리라”(빌 3:1).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쁨을 받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 읽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
느헤미야 8장에서 구약 백성은 “여호와를 기뻐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9-10절). 그것은 1) 말씀을 읽고 2) 가르치고, 배우고 3) 거기서 예배와 삶의 구체적 지혜를 얻고 4) 마음으로 깨달아, 그 말씀이 영혼에 뿌리 내렸기 때문입니다(8절).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에서 모든 기쁨이 시작되었습니다. “읽는다(카라아)”라는 단어에는 백성을 공적 집회로 모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성령님께서 불러 주시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읽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복을 선포하는 것(헬라어로 ‘케루소’)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선포(카라아)하라”(욘 3:2)고 명령 받았습니다. 다가오는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놀랍게도 요나는 하나님 나라의 심판을 선포했는데 니느웨의 왕은 금식을 선포했습니다(5절).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켰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재앙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갔습니다. 요나가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그 도시에 금식이 선포되게 하시고 그 도시를 일시적이나마 구원해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8장 8절에서 에스라가 율법을 공적 교회 모임에서 읽을 때도 (카라아, 헬라어-아나기스코) 그것은 선포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몇 곳은 하나님께서 들려 주신 말씀을 구두로 선포하는 것(카라아)을 “읽어라”(아나기노스코: 렘 3:12, 11:6, 19:2)로 번역합니다. 읽는 것은 선포이고, 선포는 읽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하신 것,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 그 음성으로 하는 일이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목사가, 가정에서 가장들이 성경을 읽을 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 읽는 것입니다. 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가르치기 전에 읽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포에 집중하게 함
느헤미야 8장 8절은 가르치기 전에 먼저 읽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선포하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가지고 오실 때 먼저 “선포하시고(케루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읽고 가르쳤다”가 예수님 안에서 “선포하고 가르쳤다”로 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고 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맨 먼저 하신 일은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셔서 하늘 나라를 만드시는 일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파했습니다. 이어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합니다(마 4:23, 참고, 마 9:35, 마 11:1). 회당에서 선포하시며 가르치시지만, 순서는 선포가 먼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당신께서 이루실 핵심적 복음을 선포합니다.
물론 선포와 가르침이라는 말은, 서로 포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포라는 말을 통해 가르침도 포함합니다. 또 가르침에는 선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포는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첫째, 선포는 주로 아직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하고, 가르침은 이미 선포를 받은 자들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전혀 듣지 못한 사람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에, “복음”을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고 “선포”한다(마 4:23, 9:35)고 합니다. 온 세상의 이방 민족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선포한다”(막 16:15, 딤전 3:16)고 합니다. 회당이나 성전에서 처음에는 복음을 “선포”하기도 하지만(눅 4:44), 거기서 한 일은 “가르친다”고 표현합니다(마 13:54, 눅 13:10, 눅 20:1,21).
둘째, 먼저 본질적인 것을 선포하고 이어서 가르칩니다. 선포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마 4:17, 행 20:25), 그리스도(고후 4:5),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고전 1:19, 딤전 3:16).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하시는 일을 하시기에, 성령님을 “선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고 할 때도,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선포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가르침이나 위로, 경고 등이 따라 나옵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십자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다음에 가르침이 나온다는 것은 성경 읽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깨우칩니다. “선포”는 “읽는 것”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합시다. 다른 어떤 것을 가르치기 전에 성경을 낭독하고 읽으며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위로와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위에 올려 둘 수 있습니다. 모든 것보다 먼저 그리스도 그분을 전도하고 선포합시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 자체를 읽고 선포합시다. 이미 많이 배운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먼저 그리고 계속 선포합시다. 이미 배운 교회와 성도도 말씀을 먼저 그리고 계속 읽읍시다. (기독교보 201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