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9권
9. 성문품(聲聞品)
86) 화생(化生) 비구의 인연
어느 때 세존께서 도리천상의 파리질다라수(波利質多羅樹) 밑 보석전(寶石殿)에서 석 달 동안 안거하시면서, 어머니 마야(摩耶) 부인을 위해 설법을 마치고 천상으로부터 염부제에 내려오시려고 하였다.
그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부처님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알고 여러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와 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구반다들에게 명령하여 부처님을 위해 세 갈래 보배 사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부처님께서 그 보배 사다리를 따라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자, 한량없는 백천억 하늘ㆍ용ㆍ야차와 내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이 천상에서 내려오다 부처님을 보고 모두가 환희심을 내어 간절히 설법 듣기를 원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대중들의 선근이 이미 성숙됨을 아시고 곧 설법해 주셨는데, 이들 중에는 이 설법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혹은 수다원과(須陀洹果)를, 혹은 사다함과(斯陀含果)를, 혹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혹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을, 혹은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낸 자도 있었다.
마침 그 모임 가운데서 갑자기 화생(化生) 비구 한 사람이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각각 나의 청을 받으시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갖가지 맛난 음식과 그 밖의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리다.”
이 말을 들은 대중들이 제각기,
‘천상의 보배 그릇과 갖가지 맛난 음식을 다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대로 만족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자 이때 아난이 이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저 화생 비구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이제 이 대중들로 하여금 다 배가 부르게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그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저희들은 알 수 없나이다.”
이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과거 91겁 때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이 이 바라날국(波羅奈國)에 출현하시자, 저 부처님의 법을 배우는 여러 비구들이 여름 석 달 동안 산림 속에 앉아 좌선하여 도를 닦는데 걸식하는 곳이 너무 멀어서 도를 수행함에 지장이 많아 매우 피로하던 차에,
어떤 비구 한 사람이 나와 여러 스님들께 말하였다.
‘오늘부터 내가 그대들을 위해 시주(施主)들에게 권하여 모든 것을 모자람 없이 공급하겠으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도를 수행함에만 힘쓸 뿐 다른 일을 걱정하지 마시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각기 마음껏 도를 수행하여 석 달만에 다 도과(道果)를 얻었으며,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그 뒤 태어나는 곳마다 갖가지 맛난 음식을 생각하는 대로 얻을 수 있었고,
지금 또 나를 만났기 때문에 그가 생각만 한다면 대중을 공양함에 있어서 모자람 없게 할 수 있느니라.”
이때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또 무슨 인연으로 이제 화생을 하였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에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어느 장사 우두머리[商主]가 여러 장사치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를 거치면서 장사의 이익을 구하던 차에, 그 부인이 임신이 되어 여행 도중 매우 어려운 산고에 부딪쳤는데, 결국 부인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 저 장사 우두머리가 생사를 싫어하게 되어 이 세간을 버리고 출가 입도하면서 이러한 큰 서원(誓願)을 세웠다.
‘원컨대 이 출가한 선근 공덕으로 말미암아 저로 하여금 미래세에 태어나는 곳마다 모태(母胎)에 들지 않고 항상 화생하게 해 주옵소서.’
이러한 까닭으로 지금 이러한 과보를 받을 뿐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의 장사 우두머리가 바로 지금의 화생 비구이니라.”
그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