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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내부 구조 논쟁에 관한 영상 시청 감상문
‘거북선’은 ‘고유어+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순 우리말인 ‘거북 배’로 표현하거나 한자어인 ‘귀선(龜船)’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미 ‘거북선’이라는 말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귀선’이나 ‘거북배’로 명칭을 되돌리기에는 시기를 놓쳤으며 따라서 귀선이나 거북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창할 필요는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거북선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거북선은 뛰어나고 독창적인 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거북선은 그 이전의 선박건조 기술의 바탕 위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온 선박건조 기술이 거북선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통일신라 시기장보고의 해상 활동이나 고려 왕조의 활발한 무역 활동은 모두 훌륭한 배의 존재를 전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시기 선박건조의 전통이 조선왕조에 계승되어 판옥선과 거북선을 출현하게 하였던 것이다. 조선의 싸움배는 판옥선이 주축이었다. 그것은 배 위 갑판을 덮어 다시 그 위에 누각이나 다른 건조물을 세운 구조를 가진 배였다 거북선은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하는 실체로서,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세상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거북선 역시 주인공이 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제작한 거북선은 제작한 거북선의 구조를 명확하게 기록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거북선은 유물이 없으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 모습은 1979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제작한 거북선 실물과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의해 재현된 허상에 불과하다. 거북선이 등장한 영화는 1962년과 1971년 제작한 ‘성웅 이순신’과 1977년 제작한 ‘난중일기’가 있다. 그 뒤 1979년 해군사관학교에서 거북선 실물을 제작하여 공개한 다음부터는 거북선의 형태는 어느 정도 통일이 되었다. ‘거북선’이 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태종 13년, 1413년으로 대마도 정벌을 위해 거북선과 가짜 왜선이 서로 싸우는 모의 훈련을 태종이 지켜보았다는 태종실록의 기록이다. 그 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제작하였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거북선은 19세기 후반까지 주요 수군 기지에서 계속 개조되면서 계승되었다. 거북선은 나무로 만들었으므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배는 단 한 척도 없다. 배에 탑재했던 유물도 발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복원’은 불가능하다. 비록 복원은 불가능할지라도 조선 후기 정조 대왕 시기의 거북선들은 1795년 규장각에서 펴낸 간접 사료인 이충무공전서의 ‘귀선지제’의 기록과 도면을 근거로 ‘추정 재현’이 가능하다. 이충무공전서는 정조 대왕이 유득공에게 명하여 이순신이 쓴 글과 관련 문건들을 총 망라하여 편집 간행한 것인데, 원집 8권 6책과 부록 6권 2책 등 총 14권 8책으로 구성되었다. 이충무공전서는 왕명에 의해서 이순신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편찬한 관찬 사료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발견된 사료 중에서 이순신 거북선과 관련된 가장 공신력 있는 사료이다. 『이충무공전서』에 따르면 통제영 거북선은 일자 목 형태임에도 화포를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내뿜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 있고 심지어 용머리가 없는 거북선 그림이 이순신 종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용머리의 정확한 기능과 위치 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처럼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거북선의 구조와 형태에 관련된 내용들이 공신력 있는 직접 사료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새로운 직접 사료가 발견되기 전까지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고등학생들의 교육기반 심화 프로젝트의 경우 논증 구조 모형을 활용는 탐구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ㄹ로 조직적이고 세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거북선 2층 구조설의 근거는 2층 구조가 3층 구조보다 무게중심이 낮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게중심이 낮다는 사실이 왜 2층 구조설을 뒷받침하는지 설명해주는 요소인 보증이 없다. 따라서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복원력이 커진다는 보증 요소가 포함되어야 가장 기본적인 논증 구조가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2층 구조가 3층 구조보다 무게 중심이 낮아, 복원력이 크기 때문에 거북선 내부는 2층 구조이다”라는 기본적인 논증 구조가 구축되었다. 학생들은 부가적인 요소를 추가해서 논증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무게중심과 복원력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덧붙이면 보증을 보강해주는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무게중심이 매우 낮은 요트가서 쉽게 전복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선박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침몰한 사건 등을 예시로 들면서 반박을 인정하면서, 주장의 범위를 한정하고 논증 구조는 더욱 탄탄해진다. 거북선 2층 구조설을 반박하는 요소는 2층 구조에서는 격군과 전투원이 동시에 활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이고, 거북선 3층 구조설 논증 구조 모형으로 논리를 구축하면 거북선 내부는 3층 구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는 거북선이 바로 돌격선이라는 것으로 돌격선이 이동하면서 동시에 포를 쏠 수 있어야 한다는 보증이 포함되어야 가장 기본적인 논증 구조가 성립하게 되는데, 이렇게 “돌격선은 이동하면서 포를 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북선 내부는 격군과 전투원을 분리할 수 있는 3층 구조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논증 구조가 구축되었다. 이제부터는 부가적인 요소를 통해 기본 논증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할 차례인데 3층 구조의 단점인 복원력 문제는 거북선의 폭이 좁다면 복원력에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배의 폭을 충분히 넓힐 수 있다면 복원력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며 주장의 범위를 한정하면 논증 구조는 더욱 탄탄해진다. 다시 말해서 거북선 3층 구조를 주장하지만, 3층 구조설이 모든 상황에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며, 주장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거북선 3층 구조설은 내부가 3층 구조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는 이동하면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북선 내부 구조 논쟁을 보면 2층 구조 거북선의 장점은 무게 중심이 낮아 복원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돌격선의 특성상 적진을 빠르게 돌파하면서 방향을 급히 바꾸는 과정에서 복원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복원력은 거북선 구조 논쟁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2층 구조설의 근거는 거북선 개판에 쇠못이나 칼과 송곳을 꽂았다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이다. 상식적으로 적선보다 높이가 낮을 경우에 적이 뛰어내리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3층 구조 거북선처럼 왜선보다 비슷하거나 높은 경우에 굳이 쇠못, 칼, 송곳을 꽂아둘 필요가 없다. 2층 구조설의 단점은 한국식 노’를 젓는 격군과 전투원이 같은 공간에 섞여 있기 때문에 전투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2층 구조 거북선이 적과 교전할 때는 격군들이 전투원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고, 이동 중에는 전투원들이 격군 뒤에 물러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격군과 전투원을 분리시켜 이동하면서 공격이 가능한 판옥선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 볼 수 있다. 2층 구조설의 장점은 그대로 3층 구조설의 단점이 된다. 3층 구조설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2층 구조에 비해 무게 중심이 높아 복원력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거북선의 지붕에 철엽을 깔았다는 철갑설과 3층설을 동시에 반영한 거북선을 제작할 경우에는 거북선의 무게 중심은 더욱 상승하여, 복원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거북선의 복원력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3층 구조인 판옥선이 복원력을 상실하여 전복된 사건은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보고하는 장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전라 좌수영 소속 전선과 전라 우수영 소속 전선들이 전과를 올리려고 경쟁하다가 그만 아군끼리 충돌해서 측면 방패 판이 깨지게 되었는데 이때 방패 판이 소실된 쪽으로 적이 조총을 쏘아대자, 군사들이 반대쪽으로 급히 피하는 과정에서 복원력을 상실하고 전복되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 전투 상황 시 승조원들의 우발적인 행동과 무기의 배치에 따른 무게 중심의 변화까지 고려한다면 2층 구조가 3층 구조보다 안정적임은 분명하다. 2층 구조설이 오랫동안 정설로 인정받았던 이유도 바로 이 복원력 문제 때문이다. 3층 구조의 경우 복원력은 취약할 수 있으나, 판옥선과 마찬가지로 격군과 전투원의 공간을 분리하여 전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 판옥선에 지붕을 덮는 구조로 간단하게 개조할 수 있다는 점이 3층 구조설의 장점이다. 하지만 3층 구조설은 3층에 화포를 설치했다면서 왜 격군들이 있는 2층 공간에 포혈을 뚫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다. 거북선이 판옥선 3층에 지붕을 올린 구조라면 격군들이 있는 2층 공간은 판옥선과 마찬가지로 방패 판으로 막혀 있어야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거북선 그림들은 2층 격군들이 있는 공간에도 포혈이 뚫려 있다.
거북선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복원력에 대해 살펴보면 복잡한 수식 없이 그림만으로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복원력은 기울어진 배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힘이다. 배는 중력과 부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물에 떠있게 되는데 배가 기울어지면 무게 중심 G는 그대로지만, 부력 중심 B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무게 중심 G와 부력 중심 B 사이의 수평 거리가 복원력의 크기이다. 배가 많이 기울어질수록 더 큰 복원력이 작용하게 된다. 2층 구조 거북선과 3층 구조 거북선을 비교하면, 무게 중심 G가 낮은 2층 구조 거북선이, 3층 구조 거북선에 비해 무게중심 G와 부력 중심 B 사이의 거리가 더 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큰 복원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메타센터 M은 부력 중심 B에서 수직으로 올린 직선과 거북선의 무게 중심 G에서 올린 직선이 만나는 지점인데, 바로 회전 중심이 된다. 메타센터 M에서 무게 중심 G 값을 뺀 거리를, GM이라고 하는데, GM값이 작으면,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다. 무게 중심 G가 메타센터 M보다 더 높을 경우엔, GM 값이 마이너스이므로, 배는 복원력을 상실하고 전복된다. 거북선 3층 구조를 주장하는 학설 중에는 서양의 전열함과 마찬가지로 거북선도 2층과 3층에서 모두 화포를 발사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3층 구조 거북선의 치명적인 약점은 복원력인데, 3층 구조 거북선의 복원력을 크게 하려면, 배의 무게 중심(G)을 낮추거나 배의 폭을 넓게 해야 한다. 배에 작용하는 복잡한 힘을 고려할 때, 무게 중심을 낮추는 방법은 1층 창고에 짐을 가득 싣는 방법 외에는 없으므로, 결국 선박의 폭을 매우 넓게 할 수밖에 없다. 거북선의 경우 2층을 더 무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복원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층에 무거운 화포를 배치하고 3층에 소구경 화포를 배치한다면 무게 중심이 낮아지게 되는데 이 경우 이동할 때는 3층에서만 소구경 화포로 직사 포격을 하고, 정지했을 때에는 2층과 3층에서 모두 포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의 실험으로 확인하여 주고 있다.
학생들은 화포에 사용한 화약을 이용하여 직접 실험하여 연기와 후폭풍 등을 알아보면서 그 당시 18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통제영 거북선을 무려 74개의 화포를 복층으로 배치하는 구조로 추정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추측하여 볼 수 있다. 공용 화기인 화포를 장전하거나 화포를 쏠 때 뒤로 밀려나는 공간을 고려했을 때, 그 규모는 서양의 전열함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하지만 74개의 화포를 운용하는 전함으로 보기에는 통제영 거북선의 크기는 매우 작다. 따라서 포혈 대부분은 대형 공용 화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형 개인 화기를 운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히다. 74개의 포혈에 장착하는 화포를 〈이충무공전서〉에 언급된 현자총통으로 가정할 경우, 2층 구조로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3층 구조로 설계할 수밖에 없다. 화포 발사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점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내부 구조를 3층으로 추정하는 것도, 공용 화기를 탑재하고 발사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고려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또 사용한 소나무의 사용량을 수학적으로 측정하고 계산하는 등의 방법은 아직까지 거북선에 대한 연구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학생들의 프로젝트 교육방법은 50년간의 내부 구조 논쟁을 불식시키는 좋은 증거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역사와 과학, 수학, 지리, 영어 과목까기 함께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으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논거를 실증과 문제 파악을 통해 밝혀내는 교육적 활용에 찬사를 보낸다. 또한 김평원교수님의 거북선 내부 구조 논쟁의 역사와 내부 구조 논쟁의 중요한 쟁점인 복원력은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 등과 함께 수사학의 부활과 논증 구조와 부스, 콜름, 월리엄스의 논증 구조에 따른 거북선 구조 논쟁을 활용한 논술을 접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