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격려 - 이케다 SGI 회장과 서원(誓願)의 동지 (21)
함께 흔들자! 사제의 깃발을
〘도쿄 세타가야〙
도쿄 세타가야에는 싱그러운 기운이 감돈다.
인구는 도쿄의 23개 구 가운데 가장 많은 86만명이다. 20대, 30대의 청년층만 26만명이 살고 있다.
세타가야 광포의 역사에도 성장하는 청년의 혼이 약동했다.
1954년 1월 17일 오후, 스물여섯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청년은 세이조 거리를 걸었다.
도쿄에서도 유명 인사와 문인이 많이 살기로 손꼽히는 고급주택가다. 청년은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의 저서 ‘가치론’을 들고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의 집을 찾아갔다.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이 선사(先師)의 10회기를 기해 내용을 보완해 다시 발간한 책을 대신 전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야나기타와 마키구치 회장은 향토를 연구하는 모임인 ‘향토회’에서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전쟁이 두 사람이 나아가는 길을 갈라놓았다.
야나기타가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전쟁반대론이나 평화론을 제창했기 때문에 육군이 주시하고 있다가 무의미하게 감옥에 가두었다. 타협을 강요당했지만 계속 저항했기 때문에 감옥 안에서인지, 감옥을 나와서인지 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의미하게’라고 말했다. 관료에서 민간인으로 돌아와 민속학의 아버지로서 세상에서 존경받던 그가, 신념에 목숨을 바친 초대 회장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도다 회장은 왜 이케다 SGI 회장을 보냈을까.
초대는 순교했지만, 창가학회에는 스승의 위업을 선양하려는 제자가 있다. 뒤를 이을 청년이 성장하고 있다. 이것을 실제로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교롭게도 야나기타는 집에 없었다. 가족에게 책을 전달했다고 보고하자 도다 회장은 한마디, “그런가” 하고 말했다. SGI 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세타가야의 추억이다.
니혼대학교 운동장

1954년 11월 7일. 세타가야에 있는 니혼대학교 운동장에서 문화제의 시초가 된 청년부 체육대회 ‘세기의 제전’을 열었다. 대회를 성공시키려고 뛰어다닌 젊은 시절의 이케다 SGI 회장이 도다 2대 회장과 함께 참석했다.
그해 가을, 세타가야에 또 하나의 사제 역사가 새겨졌다.
11월 7일, 사쿠라조스이에 있는 니혼대학교 운동장에서 청년부 체육대회인 ‘세기의 제전’을 열었다. 도다 회장이 SGI 회장과 함께 참석해 열전(熱戰)에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체육대회는 이 운동장에서 3년 연속으로 열려 도다 회장과 SGI 회장이 모두 참석했다. 후에 문화제의 연원이 되었다.
체육대회를 제안한 사람도, 선배들이 반대하는 데도 실현하려고 분주히 뛰어다닌 사람도 SGI 회장이었다. 당시 회원의 연고로 운동장을 빌렸지만, SGI 회장이 매듭지었다.
세타가야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니혼대학교 담당자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은 없다” 하고 말하며 SGI 회장의 행동이 마음에 들어 한 종교단체의 행사에 운동장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당시 게이오선 시모타카이도역에서 니혼대학교로 이어지는 상점 거리의 한 모퉁이에 ‘나카무라야’라는 빵집이 있었다. 팥빵과 쿠페빵 몇 가지를 팔고 있었다.
남편 나카무라 후쿠이치(작고)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던 아네 쓰야코(세타가야 이케다구 지역부부인부장)는 아흔셋인 지금도 건재하다.
대회 며칠 전, 젊은 청년이 “빵을 빨리 먹는 대결을 하고 싶어서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운동장에서 빵을 팔아 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했다.
당시는 입회하기 전이어서 누구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쓰야코는 “날렵한 청년으로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이었습니다” 하고 기억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57년, 신심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가게 2층을 광포의 거점으로 제공하고 시모타카이도역에서도 2호점을 냈다. 남편 후쿠이치는 그 지역 세타가야와 요식업에 종사하는 벗의 인재그룹 ‘백운회’ 공로자로서 광포에 공헌하는 인생을 완수했다.
외동딸 나카무라 마사에는 지구부인부장이다. 가게는 접었지만 니혼대학교 운동장에서 맺은 사제의 유대는 가족의 긍지로서 자식과 손자에게 전해진다.
마음으로 치는 피아노
1973년 3월 4일, 사쿠라오카에 있는 도쿄농업대학교에서 열린 기념촬영이 ‘세타가야의 날’의 연원이다.
이 대학을 다니는 대학부들이 ‘현대농업전’을 열고 SGI 회장과 세타가야의 동지를 초대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세 번에 걸쳐 기념촬영했다.
첫번째 촬영에서 SGI 회장은 “어머니는 태양입니다” 하고 말했다.
두번째 촬영에서 히라바야시 다다시 총장을 동지에게 소개하고 도쿄농업대학교와 세타가야의 벗을 위해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기쁨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세번째 촬영이 끝나자 남녀 청년부와 대학부 그리고 미래부 벗이 SGI 회장을 둘러쌌다.
SGI 회장은 참석자에게 차례로 미래의 꿈을 물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
“의학박사는” “변호사는?”
그때마다 손이 올라갔다.
“회장이 되고 싶은 사람!” 하고 말하자 한 소녀가 “예” 하고 손을 들었다. SGI 회장이 가슴에 달고 있던 꽃을 떼어 그 소녀에게 달아주었다.
그리고 이날 모인 참석자로 ‘세타가야불교대학교’를 발족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학’에서 인격과 지혜를 연마한 청년들은 그 후 세타가야시의 중핵으로 성장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나카하라 신이치(세타가야왕자구 부지역장)도 그곳에 있었다.
SGI 회장이 “이과 선생님은” 하고 말하자 나카하라가 힘껏 손을 들었다.
“이케다 선생님이 ‘목표를 품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한다.
교사의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화학에 관계하는 물류회사에서 바쁘게 일하며 지역광포를 위해 걸은 인생에 후회는 없다.
“저는 기념촬영에서 ‘이케다 선생님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일생 동안 선생님과 같은 목표를 품고 나아가라는 격려였다고 생각합니다.”
42주년을 맞은 올해, 승리의 실증을 보이고 싶다고 결의한다. 그것은 대학생을 비롯해 모든 세타가야 동지의 결심이기도 하다.
◇
구로다 다카코(세타가야 신세기구 지부부부인부장)가 소년소녀부 ‘은하수합창단’의 노래 지도를 담당한 지 올해로 32년이 되었다. 그 동안 구로다의 곁에서 배운 어린이들 약 1000명이 사회로 나갔다.
가수, 발레리나, 의사, 박사, 그리고 교사 등 다양한 인재를 육성했다. 합창단 출신의 청년부 리더나 미래부 담당자도 있다. 구로다는 1979년 10월 17일, SGI 회장이 처음으로 세타가야문화회관을 방문했을 때 원점을 새겼다.
회장을 사임한 지 6개월, 완공식을 4일 앞두고 갑자기 방문했다. 연습을 하려고 2층 큰 방에 모여 있던 부인부 ‘신세기합창단’ 중에 구로다도 있었다.
오후 4시쯤, SGI 회장이 큰 방에 들어와 멤버와 근행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여러분을 기원했으니 이제 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단원 중 한 사람인 이와부치 마쓰코(세타가야태양구 지역부부인부장)가 이렇게 회상한다.
“종문의 중이 주관하는 완공식 전에 선생님이 오셔서 근행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세타가야에 사제의 혼을 새겨 주셨다는 깊은 뜻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SGI 회장이 “누가 피아노를 쳐 주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오늘도 힘차게’의 음률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이 곡이 가장 좋다. 명곡이네요” 하고 말했다.
이번에는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힘차게 건반을 두드렸다.
‘아쓰타무라’ ‘달의 사막’ ‘스러지는 저녁노을’ 등 여섯 곡을 연주했다.
구로다가 말한다.
“선생님은 ‘기교를 부리는 연주’가 아니라 마음으로 치셨습니다. 멜로디와 함께 격려하려는 마음이 더욱 가슴에 파고들었습니다. 연주는 ‘마음’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이후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지도할 때도 “이것은 어떤 곡이니?” 하고 곡의 의미를 물으며 ‘마음으로 노래한다’는 지도를 철저히 실천했다고 한다.
청년이 춤추고 문화가 향긋한 세타가야구의 노래 ‘지용의 깃발’도 SGI 회장이 작곡했다.
오오, 함께 흔들자 이 깃발을
원초의 지용의 이 깃발을
……
폭풍우에 승리하는 여기 나는
세타가야의 전통적인 모토는 ‘오로지 신심’이다. 오로지 신심이란 ‘오로지 사제’이기도 하다. 그 맑고 깨끗한 전진에 지용의 깃발과 사제의 깃발 그리고 승리의 깃발이 나부낀다.
태양의 격려 (21) 함께 흔들자! 사제의 깃발을 - 도쿄 세타가야.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