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한 밤이 지나 새벽이 되면 문득 왕십리쪽에서 디젤기관차의 둔탁한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맑고 청명한 하늘은 소리를 더 멀리까지 전해주는 것일까?
당시만 해도 새벽이 되면 왕십리의 디젤기관차의 궁~,궁~,궁~,궁~거리는 소리가 신당동까지 들렸다.
새벽의 기차소리는 나에게 방랑의 유혹을 불지른다.
72년 9월 28일.
새벽 4시.
잠을 잔둥 만둥하다.
갈까 말까?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또 다시 갈등이 생긴다.
5시까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주일 아니 한 달 전부터 계획한건데,,,,,,,,
벌떡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가자! 지금 아니면 언제 이짓을 해 보랴!
생전 처음으로 혼자서 며칠을 산속을 헤멘다는것이 사실 두렵기는 하다.
그래도 가을의 방랑은 언젠가 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
챙긴 배낭을 다시 한번 점검하여 단단히 결속을 하여 둘러메고,,,,
살그머니 나와 대문을 잠그고 집을 나선다.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6시에 출발한 속초행 버스는
용문을 지나 홍천으로 향하는 며느리고개를 넘자 비로서 험한 산세를 보고 달린다.
강원도의 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12시에 "장수대"에 도착 한다던 버스는 "원통"을 조금 지나자 완전히 멈춰 꼼짝을 못한다.
맞은편에서 군 작전차량들이 오는 관계로 속초방향으로 가는 차들은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당시는 이 길이 왕복 1차선으로 교대로 차가 다녔기 때문이다)
생각끝에 하는 수 없이 버스를 내려 걷기 시작 했다. 어차피 나선 고생길 아닌가.
대충 계산해도 장수대까지 어림잡아 약 15k는 실히 됨직한 거리를 걷는다.
꼭 한번은 해보고 싶었던 장거리 여행.
설악산 서북주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지나 천불동으로 내려서,
울진으로 내려가 성류굴을 보고,
영주로가서 소백산을 종주한 후,
원주 치악산을 오르는 긴 여정.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장수대에서 따듯한 대낮에 미리 잠을 자 두고
밤부터 올라가서 멀고도 험한 "서북 주능선"을 타고 대청봉까지 가야 하는데,,,
얼마를 걸으니 새로 사서 신은 속 양말이 조금 작은 듯하더니 이내 말썽을 부린다.
발가락이 아파 신을 벗어보니 발가락 여러 곳에 물집이 생겼다.
차라리 그냥 집에서 신던 양말을 신고 올걸,,,
오후 4시경에야 겨우 "장수대"에 도착하여 우선 점심겸 저녁으로 부지런히 떡 라면을 끓여 먹고
부랴 부랴 텐트를 치고나니 벌써 어두움이 몰려온다.
계곡의 밤은 빨리 온다. 눈앞의 손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하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 혼자서 텐트를 치고 자려니 솔직히 겁은 난다.
생각끝에 길 양쪽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가져다 넓직하게 쌓아 놓는다.
짐승은 절대로 저것을 밟지 않을 것이다.
저것을 밟는 소리가 난다면 분명 사람이 오는 것이리라.
설거지를 마치고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마시며 진로를 수정해 본다.
발이 아픈데다 시간관계상 "서북주능선"을 간다는 것은 이미 틀렸고,,,,
백담사(百潭寺)로 넘어가 봉정암(鳳頂庵)쪽으로 오르기로 한다.
어쨋던 일찍 자고 콘디션을 봐서 결정하자고 생각하며 8시에 자리에 눞는다.
얼마를 잤을까? 무척이나 추워서 잠을 깬다. 딱!딱! 이가 마추 칠 정도로 춥다.
시계를 보니 8:30분. 겨우 30분을 자고 잠을 깬 것이다.
바닥에 풀을 두텁게 깔고 담요 두 개를 가져왔지만 9월말의 추위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 큰 실책이였다.
비상용 옷까지 모두 꺼내 껴 입고 다시 잠을 청한다.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