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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제9구간
2015.01.18
발산재-오곡재-여항산-서북산-대부산-한치재
산행거리 : 22.5km
산행시간 : 9시간 20분
08. 00
발산재에 도착
점차 낙남정맥길이 부산에 근접함에 따라 채 8시도 되지 않아 발산재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라는 산대장님의 분부가 있었지만 성질 급한 일부 대원들은 얼른 준비를 마치고 버스 바깥으로 나갔다가 쌀쌀한 날씨를 못이겨 다시 들어온다.
만날 뒤꼬랑지에서 처져오는 우리들보다 잘 걷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서두는것 같다. 빨리 걷는것도 어떻게 보면 타고난 성정의 결과인지 모르겠다.
안하던 스트레칭도 하고
단체 사진도 남겨봅니다
08:10
들머리에 선 장승의 영접을 받으며 산길로 어프로치!
얼마를 준다면 이 고생을 사서하겠는가? 누군가가 30만원을 제시했다.
과연 삼십만원을 받고 이 고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못할것도 없을것 같은 액수다. 내 고통의 결과가 한 삼십만원어치는 될것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해보았다. 하기야 우리는 돈을 내고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곧 평탄한 길로 이어지며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쌀쌀했던 기운도 어느새 사라지고 몸이 더워져 등산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몸에 착 달라붙는듯한 쾌적한 날씨다 하늘 또한 맑아 좋은 조망이 기대된다.
첫 갈림길인 영봉산 갈림길에 도착하였습니다
임도를 따라 평탄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큰정고개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잠시 쉬었다 오릅니다
심장은 하루에 10만번 가량 뛴다고 합니다 7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무려 26억회나 뛰는 셈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마침내 생명이 오롯이 내 건강한 심장을 의존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잘 조율된 베이스처럼 요동치는 생명의 오케스트라. 살아있다는것이 더할나위 없는 축복임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됩니다. 잠시 쉰다는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 내 심장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독려하는 시간입니다.
길에서 조금 비껴난 조망대에서 바라 본 지리산 주능
지리산 주능이 신기하리만큼 손에 가까와 보입니다 일행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역시 지리산이란 결론에 도달합니다 천왕봉과 중봉에 하얀 눈이 덮혀있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는 산을 두고 이렇게 몇달을 수고로이 돌아 온 셈입니다. 끈끈한 인연의 느낌이 연을 매단 실처럼 팽팽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기운이야말로 나를 정맥길에 세우게한 기운일것입니다.
나무도 죽을 때는 이처럼 호쾌하게 넘어져 죽어야 제맛이다.
꼿꼿이 선채 말라 죽는 나무보다 이렇게 술주정하듯 넘어진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적 연민을 더 느끼게 된다.
머리 숙여 지나가던 허리 굽혀 지나가던 아니면 올라타고 넘던 우리는 넘어진 나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방향
10.43
오봉산 갈림길
오봉산 갈림길에서 약한 내리막길이 있다가 527봉까지 오르막이 이어진다
527봉에서 바라 본 맹미바위
여항리에서 오곡재로 이어지는 길이 꼬불꼬불 돌아가고있다 오곡 저수지 위로 맹미바위가 우람한 자태로 솟아있다. 나른한 능선 위에 그려진 난초 그림의 파격처럼 풍경이 신선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미산령과 여항산 주능이 보입니다
오곡재에 다달랐습니다
11:24
오곡재 모습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소재 이렇게 이름이 복잡한 소재지는 처음 본다
오곡재 지나자 입에 단내가 나는 오르막이 계속됩니다
깔딱고개에 어지간히 이력이 붙었는지 별 힘든 내색을 않고 오른다 힘이 안든다는것이 아니라 고통의 공포에 더 무디어졌다는 표현이 옳다 그냥 올것이 왔다는 식으로 마음 편히 오르막을 받아들였다.
일행들의 표정에서 지친 표시가 역력하네요
12:14
오곡재에서 50분가량 걸어 군북 사촌(사랑목) 분기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미산령-743.5봉-여항산
미산령과 여항산 주능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집니다
미산령 조금 못미친 638봉에서 바라 본 진전면 여항리 마을
함안쪽 풍경
638봉(앞)과 미봉산(뒤)로 이어지는 지나 온 능선길
고도를 높이자 지리능선이 병풍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638봉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낙남정맥 능선이다 638봉 바로 뒤로 오봉산이 보이고 그 뒤로 괘방산에서 진주시 지수면 방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오봉산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이 괘방산에서 방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내가 자꾸 이 능선길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저곳이 나의 첫 근무지 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 방어산 아래에서 삼년간 군 복무를 대신해 보건지소 근무를 하였다 그 때 방어산에 딱 한번 오른적이 있는데 방어산은 내가 자랐던 동네 뒷산인 구봉산에 이어 두번째로 정상에 올라 본 산이었고 그 뒤로도 나는 산에 올라 본 적이 없다. 세번째 산봉우리를 오른것은 쉰이 넘어서이다.
미산령에서 나무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지고 돌무더기 같은 너들도 조금 나타난다
774봉
지도상 고도와 표지고도가 조금씩 틀린다
점심식사를 하고 여항산으로 향한다
정상에 가까와 지자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배능재지나 성터같은 비탈길을 오른다
다음번 넘어야할 산줄기
광려산 무학산 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포게어 논 조가비처럼 정겹게 이어져 있다
먼저 여항산 정상에 도착한 일행이 반긴다
정상부가 잘 정비되어있다
여항산 및 서북산의 지명유래
여항산(艅航山, 770m)은 예부터 함안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을 잇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강명리 일원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일원에 분포한다. 함안의 지형적 특성인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와 하천의 역류(逆流)는 바로 함안의
남단에 위치한 여항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1530), 『함주지(咸州誌)』(1587), 『영남읍지(嶺南邑誌)』(1871) 등 다수
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그 중 『함주지』산천조(山川條)의 기록이 백아홉 글자로 비교적 상세한데, 「(요약) 군성(郡
城:함안읍성)에서 서남쪽으로 15리(上里)에 위치하며, 두류(頭流:현재의 지리산)에서 300리를 이어져 와 군을 진압하
는 진산이다. 산꼭대기 바위는 깎아지른 듯하고 남쪽은 낙숫물을 받는 댓돌처럼 생겼는데 그 위가 편평하여 10여명
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 대마도의 여러 섬들이 뚜렷하게 보이고, 산허리에는 한낮에
도 신령한 퉁소 소리가 나는 듯하며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군민들이 기우(祈雨)의
깃발을 꽂고 비가 올 것인지 점을 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항’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로는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만이 배 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남을 여(餘)’자에 ‘배 항(航)’자의 ‘餘航’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좌측 창원시 진전면 여항리
멀리 지리산이 멋지게 시야에 들어 온다
한편, 1586년 한강(寒岡) 정구(鄭逑) 군수가 부임하면서 함안이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으로 물이 역류(逆流)하는 까닭에 역모를 꾀할 기운이 있다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 잡고자 낮은 북쪽은 뜻과 글자로써 높여 대산(代山) 으로,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지만, 대산과 여항은 이미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이름 여(艅)자에 배 항(航)자의 ‘艅航’은 문헌기록과 각종 지도로 보아 18~19세기 사이에 ‘餘→ 艅’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여항산은 이외에도 마을주민들에 의해 곽(갓)데미산, 배넘기산, 필봉(筆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는데, 이 중 ‘곽(갓)데미산’은 정상에 있는 마당바위(平岩, 곽바위)를 가리키는 ‘곽(槨, 郭)’이나 ‘갓(冠)’에 큰 덩어리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 더미(데미)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또 ‘갓’을 ‘어미’로, ‘데미’를 ‘산’으로 보아 ‘어미산’ 또는 ‘모산 (母山)’의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도 있다. ‘배넘기산’은 『함주지』총담조(叢談條) 천하의 지세(天下之地勢)에 「여항산 의 ‘여(餘)’자는 방언에 ‘월(越)’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배(航)가 넘는다(越)는 의미에서 붙여진이라 하겠다.
여항산 정상
여항산은 함안의 진산이지만 읍으로부터 15리나 서남쪽으로 치우쳐 여항산의 맥을 이은 비봉산을 따로 主山으로 택하고 있다
함안군 여항면 봉성 저수지
정상에서 아슬 아슬한 암능을 따라 하산한다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급한 나무 계단을 이용해 서북산으로 향해 간다
지금은 나무 사다리로 등산로가 잘 꾸며져 있지만 이전에는 이렇게 로프를 통해 정상에 올랐나보다 지금도 다이나믹한 등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로프를 준비해 두었다.
여항산의 맥길이 지리산에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산길을 걸어 온 기분이 들 정도로 오늘의 산길은 오묘하고 감격스럽다.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으며 일행에게 물었다.
여항산 5.5km 구간은 공짜길인지를. 대체로 수긍하는 눈치였다 낙남정맥 구간 중 제일 길고 다이나믹하다는 이번 구간. 정말 그랬다. 지리산 지나 처음 산다운 산에 올라 선 기분이었다 진산다운 면모를 지녔으며 능선의 뻗어내림 또한 시원했다
任性合道 逍遙絶惱(임성합도 소요절뇌)
신심명에 나오는 구절로 내가 참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자성에 맡겨 도에 계합하면 소요자재하여 번뇌가 끊긴다는 뜻인데 여기에 나오는 道를 거창하게 해석할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산길에 맞추어도 해석에는 아무런 손상이 가지 않습니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길에 마음을 집중하여 걷다보면 마음이 소요자재하여 번뇌 망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망념이 사라진 바로 그 자리가 自性의 자리이자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달아야 하는 자리 즉 至道의 자리라는 것이지요
至道가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삶,궁극적으로 옳바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바로 至道입니다.
그 자리는 소요자재하여 번뇌도 망상도 저절로 사라지는 자리이니 산길을 걷는 우리에게 이 문장만큼 잘 어울리는 문장이 또 있을까요.
오늘 넘어야할 봉화산(좌)과 대부산(우) 너머로 다음번 산행지인 광려산 줄기가 보인다 맨 끝에 붙은 산이 마산 무학산인듯 싶다
가덕항이 보이고 거가대교가 보인다 풍경의 끝머리에 내 삶의 터전인 몰운대 아파트들이 가물거린다 선선한 바람이 목전에서 펄떡이는 생선과 같은 현실을 자극한다 삶이, 살아있음의 느낌이 직선의 시선으로 마주친다 싱싱한 생의 느낌들이 은빛으로 번쩍인다 삶과 죽음이 저 능선을 사이로 갈라선듯 도도한 느낌이 목줄기를 타고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힘이 생겼다 힘은 저 땅 어디선가에서 솟아나 신명을 자극했다. 마음은 이미 철탑을 따라 대부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6.25당시 전사한 미군 중대장의 아들 리처드 티몬스가 주한미군으로 부임해와 세웠다는 전적비
- 펌 -
6.25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위해 여항산을 중심으로 피아간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때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군들에 의해 ‘갓뎀(goddam:빌어먹을, 제기랄)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갓데미산’의 발음을 들어 희화(戱化)하여 부른 것이다. 서북산은 여항산에서 뻗어 내린 남릉이 진북면과 진전면의 경계선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이룬 산봉이다. 진동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이라 서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그때 진동이 유명한 지역 이였나 보다. 산은 전형적인 내륙 산으로 전체적으로 산세가 부드럽다. 남쪽사면으로 산세를 열고 학동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 산은 6.25동 란의 격전지로 산정에는 근간에 세운 전몰자 위령비가 있다.
우리도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는다. 혈당을 높이고 다리를 휴식해 새로이 피가 돌게했다.
마지막 높이의 파도를 기분 좋게 넘을 준비가 되었다. 넘지 못한 산이 어디 있었는가. 산을 넘는것은 이제 습관이요 관성에 불과하다. 자! 산을 넘으러 가자
진동만 쪽 파노라마
1950년 광복절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자한 북한의 총공세에 맞서 미 25사단 킨 사단장은 킨 특수 임무부대를 편성하여 낙동강 전선에서 사단급 방어작전을 한국전 최초로 치르게된다. 그해 8월 말까지 북한군에게 선점당한 서북산을 무려 22회에 걸친 피아의 공방을 통해 서북산이 유엔군 수중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런 격전지를 지나갈 때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전쟁에의해 희생된 그 젊은 피들을 생각해보라 사실 돌이켜보면 젊은 피라 할것도 없다. 어린 피이다. 어리디 어린피 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처럼 어린 피... 그 어린피의 원념 위를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진동만과 진해만쪽 풍경
서북산 내려오며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얼마를 더 내려가야할까? 끝없는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버드내로 이어지는 큰길까지 내려가 정말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저 산을 한뼘공짜도 없이 오롯이 올라야하는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다행히 내리막 길은 성질이 풀어진 황소처럼 홀연히 끝이 나고 바야흐로 완만한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완만함이라 하는것도 결국 산을 다시 오르기 위한 완만함이었다. 산이 우리에게 체념을 가르쳤다. 마음을 길에 맞추고 고통의 망상을 하나 둘 죽여가다보면 해 질녁 바람이 자적하여 괴로움마저 쉬 잊게 되리라는 다소 낙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봉화산과 대부산(우)
저 중간쯤에서 우리는 하산한다
대부산으로 가는 넓고 완만한 길
백두대간을 통해 나는 산은 산이라는 대 전제를 어렴풋이 깨닫았다.
오름의 괴로움과 내림의 안도감이 산이라는 하나의 가치에 용융된 그런 느낌을 얻었다.
하지만 정맥길을 걸으며 산은 산이라는 대 전제가 무너지며 산을 통해 삶을 관조하던 이전의 기조가 무너지며 산을 관통하는 거대한 관념의 공간 속을 단지 떠돌고 있을 따름이라는 다소 허무한 空念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산도 아니고,그렇다고 길도 아닌 오로지 거친 바다를 표류하는 배 위에서 고통과 각성의 매 순간을 시계추처럼 흔들거렸을 뿐이라고 .
16:43
대부산 정상
낙남정맥 산행도 이제 후반으로 치닫게되자 이어질 금남정맥 산행에대한 이야기가 자연 회자되었다.
백두대간을 타고 난 뒤 나는 한 삼개월간 산행에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있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정맥길에 또 나서게 되었지만 정맥길을 통해 확인한것은 고통에대한 회의였다.
하지만 산에대한 절망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한동안 산행을 쉬고 싶지만 산행 스케쥴은 바삐 이어져 있었다.
길에대한 열망과 고통에대한 회의가 생각의 양단을 가로 막았다 이런 막힘을 깨칠 지혜가 아직 생겨나지 않는다.
나는 걷게 될까 아니면 멈추게 될까
16.49
한치고개 갈림길
움직이는것을 멈추게 하면 더 움직이고 싶어지고 멈추어 선것을 움직이게 하면 더 멈추어 서고 싶은것이 마음이다. 動가 止가 대척하는 정 중간에 내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쉬게하는것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시절 인연이 무르익으면 답은 스스로 나오게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답을 미리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17:10
대부산에서 한티재를 향해 급한 비탈길을 내려간다.
사력을 다해 풀린 두다리에 힘을 풀무질한다. 맨 마지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오르막이 짓궂은 악동처럼 말미의 피로를 더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오르막을 향해 돌진했다. 속으로 하나,둘 수를 세었다 수를 세어 머리 속의 망념을 날려보려는 계산이었다. 100을 세기 전에 저 봉우리 끝에 닿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숨쉴틈없이 언덕을 돌진했다. 몰아 쉬는 숨결이 시원했다.
17:19
한치재에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 후 기 -
산을 내려간 일행들은 국밥집으로 가 요기를 하였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이번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는 하산 후 뭘 잘 먹지 않는다. 시원한 콜라 한잔이면 그만이다. 나의 이런 습성을 잘 아는 동료가 나를 위해 매번 무가당 콜라를 한병씩 사다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 모두를 던져 이룩한 산행의 완성이기에 더 이상의 욕망따위는 필요없다. 허기를 달랠 음식도 필요없고 나를 느슨히할 음주도 필요없다. 실제 배가 고프지도 않다.
배고픔도,긴장도,고통도 그 모든것을 마치 빨래처럼 둘둘 뭉처 마음 한구석에 그냥 던져두고 싶다
나도 없고 내가 없다는 마음도 없는 그런 무색 무미의 세계로 나를 단지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었다. 밤이 또 그렇게 왔다.
러시안 로망스 Mischa Maisky, cello Pavel Gililov, piano 20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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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이번산행은 컨디션이 매우 좋아보임이 후기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네요....
그만큼의 구력이 웅변하지요...앞으로도 지금처럼 화이팅~~~~~~~~~~~~~~~~~~~
산을 잘 타시는 분들은 늘 한결같아요
평소 자신의 컨디션을 잘 조절하시는 면도 있겠지만 발걸음이 안정적이지요.
빨리 걷는것 같지도 않지만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걷더군요.
이 번 산행은 컨디션도 비교적 좋았지만 모처럼 산에 나온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산을 타면서 나보다 못타는 님들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인가를 최선을 다 하여 임할때 함께갈수있다고
생각하면서 내 주의의 모든분들과 함께 호흡할때 정이 들면서
오늘하루도 감사하면서 형님께 애정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늘 함께 해주셔서....
산을 잘 탄다 못탄다하는 기준은 없습니다.
평생을 절에 다녀도 부처님 그늘에도 못가 본 사람도 있고
스쳐가는 바람소리에도 견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간길,정맥길 걸으며 최선을 다해 걷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산행은 쉬운듯 어렵고 어려운듯 쉬운것입니다.
어려운 길 서로 다독이며 걷다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는것이겠죠.
나그네님이야말로 최고의 산꾼입니다^^*
3주만에 다시 찾은 낙남정맥길... 힘든길,쉬운길,나쁜길,착한길 모두 같은 길이려니 하고 걷습니다.
힘들면 성질내고 편하면 웃으며 걷습니다.그래도 오랜만에 찾으니 고향같이 푸근하더군요.^^
세상만사가 다 제 뜻대로 풀리는것이 아닐진데 그래도 쉽게 쉽게 잘 풀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매듭이 없는 삶, 그동안 산을 타면서 갈고 닦은 관룍의 결과겠지요!
poll님
즐감하고 단체사진 가지고 갑니다.
앞으로도 저희들에 든든한 수비대가 있다면
아주아주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
낙동 수비대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여^^*
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간보다는 더 여유를 가진 듯....근데 음악이 넘 쳐져요
방어산은 이모네 동네 뒷산이라 중딩시절 이
폴님의 글이 더 다가옵니더......그림과 글 항상 고맙게 잘 보고 있슴다.....
여항산 너머 이제 마산 광려, 무학산까지....함께
고향 쪽이라 더 관심이 갑니더
항상 건강 하시고 안전하게
고맙습니다......(
제로대장님으로 변신하셨어요.
그렇찮아도 산행 후 준마님께 대연동이님 근황을 여쭤 보았는데 중간대장 잘 하시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늠름한 그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저는 여전히 강철의 후미조 답게 꽁지에서 간당 간당 따라가고 있습니다.
고생은 많았지만 박진감 넘치는 대간길이 그립기도 하구요.
부디 멋진 산행 죽 이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음악은 요즘 음원을 따기 힘들어 지난 주 듣던 음악을 그냥 올렸습니다.
가만히 들어보시면 은근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도 좋구요.
많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