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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 788-1021
제14장 프랑스에서 사회학과 철학 Sociologie et philosophie en France 960
사회학자 죠르쥬 다비(Georges Davy, 1883-1976)는 지난날과 오늘날의 사회학자들(Sociologues d'hier et d'aujourd'hui, 1931)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는 그는 1850년 이래로 그 당시까지 프랑스 사회학에 네 가지 방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 중에 하나는 “생시몽(Saint-Simon, 1760-1825)과 오귀스트 꽁뜨(Auguste Comte, 1798-1857)로부터 뒤르껭(Durkheim, 1858-1917)으로 이르는 방향이있고, 다른 하나는 사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사회과학(science sociale)이라는 이름으로 르 플레(Frédéric Le Play, 1806-1882)로부터 투르빌(Henri de Tourville 1842-1903)과 드몰랑(Edmond Demolins, 1852-1907)을 거쳐서 뷔로(Paul Bureau s.d.)로 가는 방향”이다. 그리고 셋째로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로부터 에스피나(Alfred Victor Espinas 1844-1922)의 사회유기체설(l'organicisme)의 길이 있고, 마지막으로 따르드(Gabriel Tarde 1843-1904)를 대표로 하는 방향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다양한 방향들에 관하여 매우 간략한 몇 몇 정보만을, 철학사상사에 흥미 있을 수 있는 정도로만, 제공할 것이다.
폴리테그니크 출신이며 보수주의자인 르 플레(Frédéric Le Play, Pierre-Guillaume-Frédéric, 1806-1882)는 유럽민족들과 비교 관찰에서 연역해본 프랑스에서 사회 개혁(La Réforme sociale en France déduite de l’observation comparée des peuples européens, 1864)라는 책을 썼다. 그는 관찰의 방법을 사용하여 혁명으로부터 야기된 사회적 불안정에 종말을 고하자했다. 단어의 모든 의미에서, 대단위 공장주의 경험, 외국 민족들의 관찰에서 얻어진 경험, 영국의 것처럼 옛 관습으로부터 제공된 제도들로부터 인민들이 행한 경험 등, 이러한 것들을 르플레는 이미 만들어진 원리들에 대립시켰다. 이리하여 위의 책 89쪽에서, 철학적 합리주의는 문명이 종교적 신앙의 약화와 더불어 짝을 이루며 진행한다고 한다. 그는 이 철학적 합리론을 러시아, 영국, 미국의 경험에 대립시켰다. 이들 나라의 인민에서는 진보는 돋보이고, 신앙은 가장 굳건하다. 거기로부터 나온 주제를 뷔로(Bureau)는 새로운 시대의 도덕위기(Crise morale des temps nouveaux(10e éd 1908) 속에서 다시 다루었다. 종교 감정의 사회적 정당화는 이 책의 토대를 이룬다. “내밀하고 깊이있고 체험된 관계의 의미는 우리를 무한하고 상위인 존재와 하나를 이루게 한다. .. 이 의미는 우리를 항하여 압력을 단지 행사할 수 있다. 이 압력은 집단적인 선을 위하여 실로 풍성한 내적인 규범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여기서 경험은 첫째이고 마지막이다. 따라서 이 학파는 앵글로 색슨계의 우월성에 찬성하는 것으로서, 게다가 실용주의의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따르드(Gabriel Tarde 1843-1904)는 모방의 법칙들(Les Lois de l'imitation, 1890), 사회 논리(La Logique sociale 1893), 보편적 대립: 반대들의 이론에 대한 시론(L'Opposition universelle. Essai d’une théorie des contraires. (1895), 사회 법칙들: 사회학 소묘(Les Lois sociales. Esquisse d’une sociologie (1898) 등을 썼는데, 그는 이 작품들 속에서 사회적 모든 사실들을 모방의 현상으로 귀착시키고자 했다. 그 모방은 현상 속에 어떤 행동, 관념 또는 감정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모방의 출발점은 발명이다. 발명은 본질적으로 개인적 사실이지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한다. 개별자들만이 원리를 발견하는데, 그 원리는 종교와 언어의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사실들에서도 근본적으로 독특하게 새로운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사람들은 잘못 정의된 어떤 힘(force 권력)에 막연하게 부여하려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사람들이 습관에 익숙한 것처럼, 경제적 연대와 같은 그런 연대 속에 있는 본질적인 사회적 사실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연대 속에서는 모방없는 배치(coordination)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완전한 연대를 토대로 한 사회들은 동물의 군집들(les colonies animales), 다시말하면 하등한 사회들이 아닌가? 모든 실재적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모방이 제시되고 변형되는 탐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학작의 목표이다. 사회적 모방은 그 자체로 아마도 실재 일체에 적합한 본질적 특성의 한 측면일 수 있다. 사실상 반복의 현상들이란 물리학의 대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현상들이다. 예들 들어 자체적으로 반복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변이들(les vibrations)이란 생물학적으로 유전이라는 사실이다. 이 순환하는 회귀는 보편적 범주이다.
에스피나(Alfred Victor Espinas 1844-1922)의 유기체론이란 가장 분명한 표현을 사람들은 다음 구절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들과 모든 자연주의적 진화론자들에게서, 기관과 개체는 동일한 계열에 속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순수하게 우발적인 정도의 차이들 만이 있다. ... 달리 말하면, 기관들이 부분을 이루는 유기체의 연대와 복잡성 때문에 기관들이 전체로부터 따로 분리된다고 주장할 수 없을 지라도, 사람들은 어떻게 모든 기관들이 서로 통일되는지, 그리고 스스로 개별화되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에스피나가 연구했던 결과물에 의한 동물사회의 연구의, 특히 동물 군집들의 연구의 성과였다. 이 연구의 작품은 동물 사회들(Des societes animales, 1877이다. 유기체 속에서 기관은 사회 속에서 개인과 같다. 개체들, 동물 사회들, 인간 사회들은 모두 하나의 류에 속하는 종이라는 측면에서 유기체이다. 그리고 한 개체는 세포들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사회이다. 에스피나스의 연구 목표는 단순히 기본적 생명의 요구에 만족하는 동물 군집과 동물사회가 형성된 으로부터 의식과 공감을 기초로 하는 인간사회에 이르기까지 유기화 작업이 일어난 다양한 형식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에밀 뒤르껭(Emile Durkheim, 1858-1917)은 실증 사회학을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꽁뜨가 가졌던 야망을 한쪽으로 젖혀 두었는데, 꽁뜨는 모든 역사철학과 사회본질의 모든 일반이론을 포기하고서 인류 진화의 일반적 법칙을 발견하고 하였다. 그런데 뒤르껭의 실증사회학은 관찰과 귀납의 일상적 방법들에 의해서 이런 사회현상들과 저런 사회현상들을 연결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예들 들어 인구 증가에 따른 자살과 노동분업과 같은 것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뒤르껭은 정당하게 불평했다. 즉 그도 모든 과학자들처럼 이런 방식을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임시적인 정의(définitions)와 탐구의 격률(maximes)을 사회의 일반이론들로써 간주했다고 자기를 비판한다고 불평했다. 예를 들어, 그가 도덕적 행위를 규칙의 침범에 따른 상벌로서 정의했다면, 그것은 그가 거기서 도덕성의 설명도 본질도 보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도덕성을 인정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르껭의 사회학은 철학의 관할에서 나온 의문들을 제기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것은 철학적 문제로부터 사회학적 문제들로 변환, 즉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있는 사회학적 문제들로 변환이었다. 뒤르껭은 “도덕적 관념들의 현실적 혼란(le désarroi)에” 또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에” 매우 민감했다. 아마도 이 상황에 대한 치료제의 탐구는 그의 모든 활동에 지배하는 동기였다. 1880년경 이 위기의 형식들 중의 하나는 과학과 의식 사이에, 즉 경험론과 상대론 사이에 있었던 적대감이었다. 상대론은 공리적 도덕에로 이끌었으며, 모든 개인적 환상(fantaisie)을 수용하는 것에로 이끌었다.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이고 절대적인 정의를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요청하는 것이었다. 뒤르껭 학설의 야망은 과학적 방법의 요구에 전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합리적이고 선천적인 방법의 모든 특전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합리주의가 말하기를 “선천적으로”(a priori) 라면, 뒤르껭은 “사회” 라고 말한다. 사실상 사회는 개인과 연관해서 철학이 이성에 부여한 속성들과 완전히 닮은 속성들을 지닌다. 개인은 [덧없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반면에[인생무상인 반면에], 사회는 상대적으로 영속적이다[사회는 영속적이다.]. 또한 사회는 개인에 대해 초월적인데, 왜냐하면 사회적 규칙과 여론은 마치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사물들[원리와 법칙]처럼 개인들에게 강요되기 때문이다. 된다. 또한 동시에 내재적인데, 왜냐하면 사회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진실로 인간적이고 문명화된 존재들이 되게 해 주기 때문이고, 또한 사회는 모든 정신적인 상위 기능들을 활동하게 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성이 개인에게 속하는 것처럼 이 사회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속하며, 동시에 이 존재가 동시에 경험과 과학의 대상이다. 방법적 경험은 우리에게 다른 사실들 속에서 사회적 사실들의 원인들을 파악하게 해주고 그리고 실증적 법칙에 이르게 해준다. 사회 속에 개인들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사회 규칙은, 사회의 규칙이 사회의 구조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사회학자가 보기에는, 사회의 어떤 구조에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 규칙이 바라는 존종은 과학의 대상이 되기를 방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예를 들자면 근친상간의 금기(la prohibition) 같은 것이다. 뒤르껭은 원시사회를 참조하면서 근친상간의 금기가 족외혼의 규칙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족외혼이란 자기 속한 종족의 어떤 여자하고도 혼인을 금지(l'interdiction)하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그는 이 금지를 혈통에 관한 몇 가지 신념들에 연결시켰다. 이 처럼 도덕 규칙은 도덕의 원시적 토대에서 나왔으며, 이와 동시에 그 규칙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의 풍부한 개화도 설명될 수 있고, 특히 개인을 가족에 연결하는 감정들의 규칙성과 연대성에 대한 이 규칙에서 해방되어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정열-사랑 과의 대비도 설명될 수 있다. 사람들이 “도덕의식”이라 부른 것, 즉 규칙의 동기들로부터는 규칙의 어떤 것도 밝혀주지 못하다. 개인이 근친상간 금지로서 갖는 반감(la répulsion)은 시성하게 여기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가능하기 위하여, 사실상 “일단 풍습들 속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 규칙은 자기 고유한 원인에 따라 지속하고 잔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들의 품행은 우리가 오늘날에 와서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편견들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그 편견들은 사라지기에 앞서서 우리가 집착해왔던 행해야 할 방식들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흄(Hume)에게 반대한 것을, 그리고 지적 또는 도덕적 선천성들에 대해 자연주의적 발생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반대한 것을, 뒤르껭 에게 반대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 선천성들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 이것들에게 신성한 특성을 걷어내면서 이것들(선천성들) 파괴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균형추가 상대주의를 위하여 기우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것에 뒤르껭은 앞서나온 주장들과 어렵사리 조화시키는 대답을 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것은 사회학의 본질적 전제(un postulat)이다. 인간의 제도는 그 전제의 오류와 거짓 위에 근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전제 없이 제도는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제도가 사물의 본성에 근거하지 않았다면, 제도는 사물들 속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저항들에 부딪히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규칙의 영속성은 흄이나 스펜서에서처럼 개인적 습관이나 유전적 습관의 결실이 아니라, 이것은 규칙의 진리의 증명이다. 그것이 바로 보날(Louis de Bonald, 1754-1840)의 원리였다. 그런데 이상한 방식으로 뒤르껭은 결론짓기를, “거짓일 지도 모를 다른 종교들에 대립에 의해 진실이 되는 종교들”은 없다고 하며, “모든 종교들은 자기 방식으로 진실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예전에 모든 종교들 속에서 원시적 유일 종교의 형식들과 변형들을 보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대답을 함으로써 뒤르껭이 꽁트(Comte, 1798-1857)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게 한다. 꽁트는 지적 진보에 의해 조금씩 상쇄되어 가는 형식적 오류들 위에 사회적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뒤르켕은 방법적으로 특수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한 진보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실증과학들의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기반(le soubassement)을 자기 사회학에 부여하지도 않았다. 뒤르껭에 있어서 사회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변질하지 않는 하나의 인자(un facteur 因子, 인수 因數)이며, 또한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법률적, 도덕적, 종교적, 지적 규칙들의 근원(une source)이다. 이 규칙들은 모든 시대에 진실한데, 왜냐하면 규칙들은 사회를 원칙으로서 뿐만아니라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각각의 개별의식이 매우 불완전하게 도달할 뿐인 “집단 표상들”(les représentation, 집단의식)은 이 집단의식이 문제 제기한 사회에만 관계한다. 예를 들어 종교의 신들, 그것은 성스런 특성상 사회 자체이다. 마찬가지로 집단적 표상들, 자격들로 부과된 표상들(말하자면 좌파나 우파, 행운 시대와 불운 시대 등)은 그 내용면에서 효과적인 사회적 신념들과 활동들 지니며, 거기서부터 그들의 진리가 나온다.
사회 속에는 사실과 이상이 혼재되어 있다. 사회학 덕분에 이상은 사실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이상은 가끔 사실과 분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일탈, 비정상적인 사회적 사실, 말하자면 자살(le suicide) 같은 것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양식에 어긋난 도덕적 의식을 교정적인 도덕의식에 호소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진실한 집단적 표상은 필연적으로 공통적 표상인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천재적 개인은 혼자서도 자기 시대의 진실한 도덕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와 개인의식[양심] 사이에는 어떤 거리 같은 것이 있다. 즉 진실한 집단적 표상이 그 의식[양심]을 지울 수 있는 점에 이르기까지 증가하는 거리가 있다. 이로부터 사회학의 실천적이고 개혁적 범위가 도출된다. 그 사회학은 잘못 정보가 전달된 사회로부터 잘 정보가 전달되는 사회로 어느 정도로는 호소하며, 또한 개인에게서 사회적 의식을 강화하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삼는다. 개인을 사회와 일치하기 위해서 보면, 국가는 너무 크고, 너무 멀고, 일부일처제 가정은 우리들의 시대에서 보아 너무 좁다. 이에 비해 동업조합(la corporation)은 개인적 의식의 정도에 따른 사회체(le corps social) 형성하고, 또 뒤르껭에서 말할 수 있다. 사회가 신의 말씀(le Verbe du Dieu)과 같은 것이 되는 사회체를 형성한다. 뒤르껭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사회 노동의 분업(De la division du travail social, 1893),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Les règles de la méthode sociologique, 1895), 자살론(Le Suicide, 1897), 종교 생활의 근본적 형식(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1912), 도덕교육(L'éducation morale, 1925) 등이 있다.
1896년에 뒤르껭은 사회학년보(L'Année sociologique)를 창간하여 1913년까지 발간하였는데, 이 잡지는 1925년에 다시 발간했다. [참고로, 이 잡지는 1934년에서 1942년까지 다시 복간되었다가 전쟁으로 나오지 못했다. 세계대전 후에 다시 발간하여 현재까지 출간되고 있다. 편집장은 발라드(Bernard Valade 1942-) 제네바 대학교수가 맡고 있다] 이 잡지에는 뒤르껭의 방법에 영감을 받은 작업들이 모아져 있고, 이 작업들은 사회학의 여러 다양한 분파들로서 전문적이다. 예를 들어 종교의 사회학은 앙리 위베르(Henri Hubert 1872-1927)와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의 연구 대상이었다. 이 두 사회학자는 공저로서 희생에 관한 연구(Essai sur la nature et la fonction du sacrifice, 1897-1898), Esquisse d'une théorie générale de la magie 1902-1903)를 썼다. 뽈 포꼬네(Paul Fauconnet, 1874-1938)는 책임감(La Responsabilité: Étude de Sociologie, 1920)을 썼으며, 조르쥬 다비(Georges Davy, 1883-1976)는 서약된 신앙: 계약의 문제와 계약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계약관계 형성(La Foi jurée: étude sociologique du problème du contrat, la formation du lien contractuel, 1922, 권리, 관념론, 경험론(Le Droit, l'Idéalisme et l'Expérience, 1923, 사회학 원론(Éléments de sociologie, t. I, 1924)를 썼는데, 이 두 사회학자는 법률적인 사회학에 전념했다. 모리스 알바쉬(Maurice Halbwachs 1877-1945)는 노동계급과 생활 수준(La classe ouvrière et les niveaux de vie (박사학위 논문), 1913, 기억의 사회적 규젹(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 1925), 자살의 원인들(Les Causes du suicide, 1930, 사회 형태학(Morphologie sociale, 1930) 썼다. [그 외에도 루소 사회계약론 주석(édition commentée du Contrat Social de Rousseau, Aubier 1943, 말년에 유명한 집단 기억(La Mémoire collective, 1950)등이 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통하여 완전히 일반적인 사회적 사실들을 다루었다. 그런데, 여기 소개된 이 모든 작업들은 동일한 학설이라기보다 동일한 방법에[뒤르껭의 방법론에] 영감을 받았다.
샤를 랄로(Charles Lalo, 1877-1953)는 이러한 방법론에 의지하여 자신의 미학적 탐구를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현대 실험미학의 원론(Éléments d'une L'esthétique experimentale contemporaine 1908), 미적 감정(Le sentiment esthétique, 1910, 예술과 사회적 삶: 과학적 백과사전(L'art et la vie sociale. encyclopédie scientifique, 1920, 사회적 삶과 거리가 먼 예술(L'art loin de la vie sociale, 1939) 등이 있다. 그는 사회학적 설명의 방식을 예술에까지 확장하기를 원했다. 그 방법은 지금까지는 인종학적 자료들을 통해서 원시미술(l'art primitif, 토속미술)에만 적용되었었다.
사회학자 가스똥 리샤르(Gaston Richard s.d.)는 권리 관념의 기원(L'origine de l'idée de droit, 1892) 자연과 역사에서 진화관념(L'idée d'évolution dans la nature et dans l'histoire, 1902), 일반사회학과 사회학적 법칙들(La sociologie générale et les lois sociologiques, 1912)등을 썼는데, 반대로 그는 위의 실증적 방법론에 반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일반 사회학을 세우고 시도했다. 이 시도는 뒤르껭이 사회학을 사회과학들 중의 단순한 학적 형태(un simple corpus)로 만들고자 했던 것과는 구별된다. 그는 사회적 형식들의 이론 속에서 사회학의 통일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 통일성은 피히테(Fichte 1762-1814)의 견해로부터 온 것이다. 피히테는 개인들의 자연적 관계의 결과로서 사회적 사실들이 어떻게 권리, 종교, 이상적 목적 등을 대신하는 공동체에 종속되는지를 제시했다.
소르본 교수였던 셀레스땅 부글레(Célestin Charles Alfred Bouglé, 1870-1940)는 평등관념: 사회학적 연구(Les idées égalitaires. Étude sociologique, 1899), 신분제도에 관한 연구(Essais sur le régime des castes, 1908)를 썼으며, 그는 뒤르껭이 이해하는 대로 사회학적 설명 속에서, 총체적 설명의 계기만을 보았다. 사회학적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평등 관념의 발전이 인구의 밀도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연결의 이유들이 무엇인지 자문해 볼 수 있었는데, 이 이유들을 사회적 집중화에 의해 생겨난 심리학적 변화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단순한 병행들(des simples concomitances)에서부터 지식가능한 관계로 이행한다. 부글레는 자신의 저서 가치 진화에 관한 사회학 강의(Leçons de sociologie sur l’évolution des valeurs, 1922)에서, 집단적 표상들로부터 시작하여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 가치들의 기원들에 대한 설명을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이 가치들의 정신적이고 이상적 특성이 그러한 기원과 양립할 수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애썼다.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은 자신의 저작 도덕과 풍습과학(La morale et la science des mœurs, 1903)에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그는 철학자들이 이론적 도덕에 의해 이해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닌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다시 말하면 조화로운 전체를 형성하면서도 동일한 인간 본성 위에 근거한 행위규칙에 대한 과학이 아닌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했다. 반대로 과학이 사실로서 연구할 수 있는 주어진 도덕이 있다, 이 과학[도덕]이 충분히 진보될 경우라면, 이 과학에는 합리적 예술이 결부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합리적 예술이 풍습들의 과학에 대한 관계는 마치 의학이 생물학에 대한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 풍습과학은 소르본 교수였던 알베르 바이예(Albert Bayet 1880-1961)의 작업의 대상이 되었고, 그 저술로는 자살과 도덕(Le Suicide et la Morale, 1922)과 골족의 도덕(La morale des Gaulois, 1927-1931)이 있다.
경험론이든 관념론이든 철학이 모든 시대에서 지성의 지도 원리들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또 보편적 인간이성의 구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일 풍습들과 도덕 규칙들은 규정된 사회의 상태에 상대적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들[풍습들과 규칙들]의 많은 정신성에 대해, 특히 지성의 지도 원리들과 같은 것에 대해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것이 레비-브륄의 의문이었다. 레비브륄은 원시 정신성의 지적 원리들을 검토함으로써 이 의문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원시정신성과 같은 것은 민족학에 의해 알려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뒤르껭의 사회학으로부터 후기에 토속인의 정신 구조로 방향을 전환하여 인종학에 대한 저술로서] 열등사회 속에서 정신적 기능(Les fonctions mentales dans les sociétés inférieures (1910), 원시 정신성(La mentalité primitive, 1922), 원시 영혼(L'âme primitive, 1927), 원시정신성에서 초자연과 자연(Le surnaturel et la nature dans la mentalité primitive, 1931) 등을 썼다. 대부분의 인종학자들은 원시인들(les primitifs)에게서와 문명인들(les civilisés)에게서도 정신적 기능의 완전한 동일성을 인정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들에게서 과학을 만들어낼 동일한 기능들이, 그들에게서[원시인들에게서]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동일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토를 해보면, 이 기능들이 잘 정의되고 간추려지고 분류된 개념들을, 즉 서로 혼동되기가 불가능한개념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런데 야생인(le sauvage)은 논리적으로 내포와 외연으로 잘 정의된 관념들의 도움으로 생각하는 것과 거리가 멀고, 그는 우리에게는 가장 낮선 방식이지만 이미지들이 서로서로 흘러가게 하는 방식인 이미지들의 도움으로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순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생인이 동일하다고 선언하는 존재들 사이에, 경험은 가끔 어떠한 종류의 유사점도 제시하지 못한다. 존재들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참여(une sorte de participation, 분유)를 통해서이다. 이 분유는 논리적 분석으로 알 수 없지만 궁극적 사실이라 여긴다. 이런 선논리적 사유는 초자연인 것[초능력자]을 믿는 신앙을 설명할 뿐이다. 그 초능력자(le surnaturel)는 행복과 불행을 생산할 수 있는 신비적 권능을 부여받은 대상들을 본다[안다]고 하고, 또한 만일 인간이 이 권능들 덕분에 갖추어진 전통적 규칙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혼란된 사회 질서가 보이게 하는 종교적 공포를 심는 대상도 본다.
뒤르껭의 사회학은 전체로서 파악되는 사회에서 지적이고 법률적이며 도덕적인 규범들의 창발성을 부여했다. 이처럼 사회학은 많은 차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가들이 제시한 객관적권리 이론과 연계 없이 있을 수 없었다. 공법전공인 레온 뒤기(Léon Duguit, 1859-1928)같은 법률학자는 사회를 협업하는 광대한 공작소에 비교하면서, 거기에는 각자가
채워야[실행해야] 할 작업이 있다고 보고, 그 사회의 헌법 자체로부터 권리의 규칙을 도출했다.
귀스타브 블로(Gustave Belot s.d.)는 실증도덕 연구(Etudes de morale positive(2e éd., 1921)를 썼는데, 그는 이러한 도덕이란 것이 합리성인 동시에 실재성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조건들곽 관련하여 부차적으로 도덕은 사회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실재성 속에서 고려되는 도덕성은 ... 각 집단들이 그 구성원들에게 강요하였던 규칙들의 일체이다.” 따라서 블로는 사회학에게 문제의 모든 자료들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학이 전혀 다른 질서로부터 나온 (주체의 반성적 수용인) 합리성의 요구에는 만족 시킬 수 없다고 평가했다.
사회학에 의해 제기된 철학적 질문은, 결과적으로 정신적 기능이 어느 점에까지 사회적 기능이 또는 집단적 표상일체가 되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이점에 관해서는 에세르띠에(Daniel Essertier, 1888–1931)는 설명의 하부 형식들(Les formes inférieures de l'explication, 1927에서 정신적 진화를 사회적 진화로부터 구별하면서 이성의 사회적 기원에 주제에 대한 반대 대상물을 제공했다. [이 구별에서] 이성의 탄생은 집단적 사유와 연관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그 집단적 사유자체로서는 여전히 하등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유에 반대하여 자신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한다. (45RKH)
* 참고문헌 Bibliographie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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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Cazeneuve(1915-2005), 고풍스런 정신성(La Mentalité archaîque, 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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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프랑스의 사회학자, 철학자. 프랑스의 사회학자, 철학자. 그는 초기에 역사철학에 그러다가 뒤르껭의 영향으로 사회학으로 그다음 1910년부터 인종학에 관심을 가졌다.
1858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1858-1917), 프랑스의 사회학자, 인류학자. 근대 사회학의 틀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876 리보(Albert Rivaud, 1876-1956)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비시정부의 초대교육부장관을 지냈다. Les notions d'essence et d'existence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Éditions Félix Alcan, 1905, Histoire de la philosophie, PUF, 1948 (réimpr. 1960)]
1878 레엔아르(Maurice Leenhardt, 1878-1954) 프랑스 목사 민족학자. 누벨칼레도니아 카낙족 연구자.
1883 다비(Georges Davy, 1883-1976), 프랑스 사회학자. 도덕과 정치아카데미 회원.
1894 귀르비치(Georges Gurvitch, 1894-1965: Georgij Davydovič Gurvič) 프랑스 사회학자. 러시아출신 프랑스 사회학자(1928년 국적획득).
1912 알퍼트(Harry Alpert, 1912–1977), 미국 사회학자. Emile Durkheim and his sociology, New York, 1939.
1915 까즈뇌브(Jean Cazeneuve, 1915-2005) 프랑스 사회학자. 의례와 인간조건(Les Rites et la condition humaine, 1959), 편재의 사회학(La Société de l’ubiquité, 1972), 중상과 농담에 대하여(Du calembour, du mot d’esprit, 1996)
(45RKH) (옮8:29, 58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