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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 788-1021
제16장 1930년 이후 철학 La Philosophie après 1930 998
제1절 예비적 고찰
전반적으로 현대철학을 판단하는 역사가는 본질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 사이를, 또 차오르고 증가하는 사유와 분해되는 사유 사이를, 따로 떼 낼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사물들을 너무 가까이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근시인 그는 단순 비평가로서 역사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 마지막 장의 시작에서 이 총서의 처음에 우리가 강조했던 몇 가지 주목들을 강조해야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를 뒤 따라온 10년간 아주 외적으로 돋보이는 특징은 철학자들 사이에 국제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이루어진 상당한 노력들이 있었다. 예로서, 1934년 “제8회 철학국제학술회의”를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었고, 1935년에는 “과학철학 국제학술회의”를 파리에서 열었으며, 1937년에는 “제9회 철학국제학술회의”로서, 별칭 “데까르트 학술회의”가 파리에서 열었으며, 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심리학 학술대회, 미학 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데카르트 학술회의의 작업들은 12권의 총서로 묶여졌으며, 이 속에는 약간은 중심 이탈적이라 할지라도 다양성이란 면이 있으며, 그 시대에 세계에서 철학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충실한 반영이라 말할 수 있다. 1937년 이래로 이 학술회의에 의해 마련된 "국제 협력 연구소“는 철학 참고문헌을 분기별로 출판하였다. 이 작업에는 많은 나라가 협력하였다. 이와 동시에 새롭고 중요한 철학학술지들이 창간되었다. 특히 외국철학자들을 수용하면서 프랑스에서 철학탐구(1931년 이래로), 유고슬라비아에서 철학지(1936년 이후), 벨기에서 철학 국제지(1938년 이래) 등이 있고, 스웨덴에서 이론지에는 많은 외국인 협력자들을 통합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철학은 후설이 그의 중요한 논문에서 매우 분명하게 밝히듯이 보편주의적 임무를 주장하였다. 후설이 쓰기를 “유럽의 인간성이 그 자체로 절대적 관념을 지니고 있는지, 또는 유럽의 인간성이 ‘중국 인간성’이나 '인도 인간성‘처럼 단순히 인류의 한 전형인지, 다른 한편으로 모든 외국인들의 인간성이 유럽화하는 과정의 광경은 세계사의 방향에 매여 있는 유럽의 절대적 의미의 능력 덕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인지, 그 광경이 유럽의 역사에서 무의미한 우발적 사건은 아닌지를,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철학 덕분이다.” (999)
제2절 동시대 철학의 두 가지 경향들
현실적 사유 전체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하여, 19세기 말경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던 두 가지 주제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1. 사물들 속에 구조 또는 형식이 있고, 그 도처에서 이것은 다수 속에서 도입된 단위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런 다수의 통일화는 지성의 관점 또는 지성의 조작이다. 사물들 그 자체는 구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구조를 갖는다. 2. 가치의 판단이 있고, 그 도처에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 감성의 만족(또는 불만족)이 있다. 그런 판단은 우리들과 사물들 사이에 연관을 표현할 뿐이다. 철학적 학설들은 구조들과 가치들의 “주관적”기원과 본성을 필연적인 종류와 영속성과 더불어 조화시키기 위하여 행해진다. 종류과 영속성은 이 학설들과 저 학설들이 서로서로 인간을 위해 간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보조적 가설에 호소하게 되는데, 이 가설들은 인간을 설명하도록 임무 지워져있다. 마치 비판주의에서 정신에 내재하는 경험과 발전의 선천적 조건들처럼, 그리고 사회학주의에서 구조들과 가치들의 집단적 기원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가설들이 불충한다는 것 이외에도, 이 가설들은 자신들의 부정성이 유용하지 못하는 데로 이끌려 가는 주제들과는 상대적이 된다. (사회적 설명은 발전의 요소보다 오히려 관성과 보존의 요소를 도입하는데 비해, 비판적 관념론은 실증과학의 진보를 기록하게만 한다) 그런데 이 주제들은 현실에서 많은 이의가 제기되었다. 한편으로 구조들과 형식들은 정신에 의해 구축될 수 없는 자료나 단순히 확인되거나 서술되는 어떤 자료처럼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구체적 상황에서 가치의 기원에 의해서라기보다 가치의 기능과 의미에 의해 가치의 유효성을 규정하고자 애쓴다. 철학의 주요원리고 삼고자 하는 것은 이 주제들에 연결된 “주관주의”(subjectivisme)를 만회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에 대해 부정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주관주의의 비난이 우리 동시대인들을 거의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주관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예전에 자유재량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 나는 여기서 일종의 전투적 철학을 젖혀 두고자 한다. 이 전투적 철학은 문명의 몇몇 형식들 또는 몇몇 요소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을 하였고, 오히려 정치학에 속한다. 철학자체는 우리를 이러한 전복의 증인으로 만들고자 한다. (1000)
이 두 주제에 대한 부정과 주관주의에 대한 무관심은 서로 밀접하게 이웃하나 분명하게 구별되는 근본적인 두 경향들을 드러냈다. 나는 이 경향들을 지난 10년간 출판물들에서 제시하기에 앞서서, 먼저 이 경향들을 제안할 것이다. 첫째 경향은 구체성으로 향하는 일반적 경향이며, 둘째 경향은 주관성의 심층에서든지, 칸트(1724-1804)이래로 고전적 관계를 젖혀두고서 주객의 초월에서든지 진실한 실재성의 탐구를 향한 노력이라는 경향이다. (1000)
첫째 경향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을 주목한다. 사람들이 철학적 문제들이 “구체적 상황”에서만 그 의미를 파악한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구체라는 단어는 여기서 역사적 상황과 같이 지금 여기라는 모든 세부사항과 더불어 밝혀진 개별물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별물이 대립되는 것은 일반물에 속한다. 그리고 구체물은 추상물에 대립된다. 거기에서 이들은 매우 다른 대립들이다. 개별물은 구체물에 동일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추상물에 유사하다. 왜냐하면, 개별물이란 생성에서 실행된 절단의 결과이기 때문이고, 개별물은 생성에서 한 측면을 떼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구체물이란 일반물에 대립되지 않는다. 사물의 구체적 관점은 실재성 속에서 잘려져 있지 않는 것을 정신 속에서도 잘라내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런 관점이 총체성(une totalité)의 의미이다. 사람들이 이 요소들을 따로 떼어 놓았다 하더라도, 이 총체성의 요소들은 생명체의 토막들이 재통합 되지 않듯이, 요소들을 재통합함으로써 전체를 재구성할 수 없을 것이다(마치 영혼과 신체, 인간과 세계, 사유와 행실, 삶과 죽음을 분리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총체성이란 단어를 다루는 조건에서 보면, 아주 상대적 의미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 의미에서 전체(le tout)란 자기 자신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것은 헤겔의 의미에서 보편(l'universel)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료(une donnée)이라기보다 관념이다. 그러나 우리 철학이 생각하는 구체물(le concret)이란 덩이를 형성하는 어떤 것으로 유한하고 제한된 전체이다. 즉 시간과 공간의 한계들 속에서 알려진 개별적인 인간적 현존재와 같은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식의 또는 헤겔식의 편견을 내쫒아야만 한다. 그런 편견은 매우 광활한 저 세상에 연관해서만 한계를 제한된 구체 속에서는 사유할 수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제한된 구체를 가지고 추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잘못하여 수학의 예를 따르는 것에서 온 순수 상상이다. 수학은 추상적 공간을 다루는 것이고, 또 우선 무한한 공간을 제시하고서 이 공간의 내부에 제한된 도형들을 그린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구체물의 내부에 있으며, 구체물은 우리에게 그 구체물의 유한성 안에서 주어져 있다. 야스퍼스(1883-1969)가 말하듯이, 예를 들어 죽음과 같은 “한계 상황들”(situations-limites)이 있다. 우리는 이 한계상황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래서 만일 감옥이 어떤 외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면, 즉 가능한 해방을 암시하지 않는다면, 구체물이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구체물은 개별물[개별자]도 아니고 보편물[보편자]도 아니며, 일반물[일반자]일 수 있다. 구체물을 만드는 것, 그것은 이 상황의 특별한 국면들이 아니다. 이 측면들 사이에 있는 것은 구성하기에 불가능한 연결이지만 직접적으로 체험된 연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체물은 하나의 구조이다. 이처럼 멜로디에 대한 인식은 처음에는 따로 떨어진 채 지각되고 나중에는 이웃하는 음표들이 연결되는 인식, 즉 각 음표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흐름에 대한 인식이다. 그런데 이 흐름이 일반성을 지니고 있다. 이 일반성은 완전히 다른 음표들로 구성된 멜로디들로서 무매개적으로 체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작곡가 모차르트(Mozart, l756-1791)의 멜로디의 흐름, 독일 작곡가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가곡의 흐름, 프랑스 작곡가 뒤빠르끄(Henri Duparc, 1848-1933)의 노래의 흐름 등에서 알맞은 공통 흐름이 있다. 이러한 것이 분석을 허용할 수 있는 인간적 구체물이다. 그러나 이 구체물 속에는 칸트의 규칙과 반대로 분석은 종합을 앞서지 못한다. (1001)
나로서는 현대사유의 표시를 나타내는 둘째 경향에 관해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참작함으로써 이 경향에 대한 생각을 부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19세기 말에 매우 자주 마주치는 이 주제를 알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철학자는 좋든 싫든 자기의 기질에 맞고, 자기 환경에 맞고, 자기 교육에 맞는 세계의 직관을 갖는다. 그 철학자는 존재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기의 철학은 규정성을 표현하는 행실이라고 한다. 존재의 탐구에서 출발했던 그는 자기 자신만을 만났다. 그의 관점은 나르시스가 자기 얼굴에 대해 갖는 관점이다. 이 규정성은 회의주의에 도달한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딱 알맞은 변증법이 있다. 우리들의 시대가 우리에게 거기에 대한 예를 제공한다. 그러한 회의주의는 결과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철학적 태도들이 그 실재성 자체의 정도에 따라서 마땅히 판단되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이 철학적 태도들이란 실재성의 여러 표출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실재성 자체가 우리에게 이 태도들의 밖에서는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심지어는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이 사실의 귀결로서 이 태도들이 이 실재성의 정도에 따라 판단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회의주의를 기초로 했던 필연과 불가능 사이의 대비이다. 그러나 이 대비, 그리고 이 대비와 더불어, 이 대비가 암시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등은 제거되었으리라. 만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실재성이라는 일종의 동일성에 대한 요청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더라면. 그리고 이 동일성의 요청이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태도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각각의 태도가 세계관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되고, 보여 진 세계는 그 관점으로부터 떼어 낼 수 없는 것이 되자마자, 저세상으로 찾아가지 않더라도 각각의 태도는 다른 사람의 태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역처럼, 따라서 심지어는 모든 비판의 외부에 있는 영역처럼 형성한다. 그 철학에서는 일종의 선택의 자유가 나타난다. 이 선택 자유는 “이성의 원리”에 의해서도, 원리처럼 객관적이고 보편적이 될 수 있을 어떠한 실재성에 의해서도 멈춰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1002)
이 둘째 경향은 걸림없이 일종의 주관주의에 이르러야 했던 것 같다. 이 주관주의는 그 작자의 고백 또는 속내 이야기 같은 학설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겉보기에 불구하고,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유재량의 기호로서 주관성은 이미 가정된 객관성에 대해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런데 니체가 세계-진리라고 불렀던 것으로 인도했던 추상적 보편주의에 대한 포기는 실재적인 것의 드러남과 같이 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인간을 객관주의적 허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객관주의적 허구란 철학적 사유를 외적인 것으로 규제했던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런 조건에서, 주의가 주체에 관해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성 자체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주체란 객체의 인식을 포함하는 한에서 주체이며, 주체성이란 우리에게 유일한 현존의 전형으로서 주어진 것을 말한다. 즉 이것은 주관성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구조이다. 이 주관성은 바로 쟝 발(Jean Wahl, 1888-1974)에 의해 강조되었던 키에르케골(1813-1855)의 영향 하에서 철학자들의 성찰의 목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전복의 의미는 후설의 몇 줄의 글에서 잘 표현되었다. 그런데 후설(1859-1938)은 그 자신이 여기서 지적한 의견을 다른 곳에서는 공유하지 않는다. “근대인에게서 배타적 방식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직관 실증과학들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실증과학으로부터 얻은 ‘번성’(prosperity)에 의해 맹목적이 되어 있었다. 이 배타적 방식이 의미하는 것은 진지한 인간성에 있어서 단호한 의문들을 우회하게 되었다.” (1003)
제3절 구체물에로 경향
벩송의 많은 성찰에서 나온 이 경향성들이 집합론의 학설을 생산하게 했다고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향성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와 파스칼(1623-1662)과 같은 사상가들을 위해서 또 버클리(1685-1753)와 멘드비랑(1766- 1824)과 같은 철학자들을 위해서 새롭게 된 취향에 의해 드러났다. 이 아래 것은 이 경향들의 몇 가지 국면들을, 게다가 강하게 변화된 국면들을 지적한 것이다. (1003)
버클리의 비판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추상의 비판, 게다가 아르노(Arnauld, 1612-1694)에 관한 작업으로 유명해진 라뽀르뜨(Jean Laporte, 1886-1948)가 추상작업의 문제(1940)에서 시도했던 추상의 비판이 제시한 바는 추상된 관념은 어째거나 허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 속에서 불가능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정신 속에서도 불가능성이다. 사물 속에서 불가능인 이유는, 추상이라는 것은 실재성 속에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사물들을 따로 떼어내는 데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사물 속에서 불가능이란 다시 말하면, 정신은 자신의 실재물에 대한 표상에서 실재상으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을 떼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추상적 착각”이 있어서, 그 착각은 어떤 대상을 경향에 연관하여 우리의 표상으로 설명하려 한다. “만일 대상의 인식이 여전히 실천적으로 허용한다면, 한편으로 현재 있는 것이고 불가분일 수 있는 자료(un donné 현상자료)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그 자료에 의해서 우리에게 각성된 경향들이 있는데 …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이원성이 이중화(dédoublemnt)의 현상에 길을 연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 다양한 경향들이 자료 자체에 실행될 것이라는 기분을 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향들은, 의식에서 자료의 틀처럼 또는 자료의 무매개적 분위기[공감]처럼, 경향들 자체에 이미 적합한 분할[이중화의 분기]을 형성한다. 라뽀르뜨는 심지어는 버클리가 인정했던 약화된 형식 하에서 철학자들이 정신에게 부여한 능력들을 거부했다. 마치 그가 자료에 대해 단순한 정신적 조작에 의해 저 세상에까지, 즉 본질과 형상에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가 추상에 대한 토마스주의자의 이론에 관해서 “호박을 마차로 변하게 하는 것”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정신의 능력을 거부했다. 이와 유사한 영감을 받은 다른 작품, 필연의 관념(1941)에서, 그는 논리적 수학의 필연성과 물리학의 필연성은 정신의 범주의 자격으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양자를 사람들이 주시하자마자, 이 양자의 필연성들은 검토를 거쳐보면 가공되지 않고서 만들어진 것 또는 협약일 뿐이거나, 또는 이 두 경우에서는 합리적인 것의 대척점에 있는 경험적인 어떤 것일 뿐이다. 소위 합리적이 필연성이라는 것도 모든 형식 하에서 의사-관념이다.” 이것은 바로 실재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칸트가 가능한 경험의 조건을 실재성으로 만들면서, 실재성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정신적 구조의 가능성도 부정하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우리가 필연성을 향한 우리의 열망의 실재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공 자체의 관념에 의해, 이 허공 관념은 우리들 심장에 내재하는 빈 것을 상징하고, 또 다른 인식질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식질서 속에서도 저 세상에 대한 우리가 지닌 깊고 불만스런 욕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인간 조건에는 알맞지 못한 일종의 지적 자만에 의해, 우리는 인식의 출발점들로서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금지되어 있는 몇몇 단언들(추상관념들, 범주들)을 주장한다. 게다가 단하나 우리 자신의 것일 뿐인 자료로 향한 정신의 회귀적 방향은 이 자료와는 다른 영역으로 되어있는 저세상에, 즉 초월에 연관을 맺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반대급부는 우리가 곧 다른 예들에서 보게 될 것이다.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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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리학의 근본적 개념들을 - 마치 질량과 같은 개념을 - 추상화에 비추어 심리학적 분석의 결과물에 대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들은 수리물리학을 구축하는 데 쓰인 단순하고 추상적 용어들이다. 이리하여 뉴턴(1642-1727)은 버클리(1685-1753)에 대립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섬세한 경험과 구체적 상황에 호소하는 이 과학의 새로운 전개방식들은 추상적 개념들의 불충분성을 보이게 한다. 사람들이 과학에게 질문하는 역할을 질량이 해내기 위해서, 그 질량은 속도에 독립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가 그런 개념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스스로를 단순화하는 데 만족하는 정도에서는, 개념들을 이제부터 단순한 것으로 다룰 수 있다. 예전에 사람들이 개념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적용할 수 있음에 있다고 상상했다. 그런 사람들은 개념들을 점점 더 잘못 적용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개념들 그 자체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개념들 단순하고 순수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새로운 사유에서 정확성의 노력은 적용의 계기에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노력은 개념과 원리의 수준에서 기원에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개념들을 그 조건들로부터 더 이상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 이 조건들 안에서 사람들이 실험한다. 이런 주장은 바슐라르가 과학적 철학의 작업들에 대해 일반적 의미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 과도하게 단순화된 선천적인 것과 경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파악된 실재성 사이에 대립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천성의 불충분함을 제시하는 경험들은 선천성 자체의 내적 변화에 의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경험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이 변형의 정신적 작업은 실재론을 부정하는 작업을 함축하고 있다. 실재론은 진실한 진보를 허용하지 못한다. “철학이 있고, 거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철학은 모든 것을 동화시키고 또는 적어도 모든 것을 흡수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이미 구성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물이란 여건이라기보다 오히려 바슐라르가 명명한 “구축하는 활동성”의 결과물이이다. 변증법은 우리를 구체물로 향하여 이끌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또 변증법은 “가득 찬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창조하는 것, 과학이 사유 자체 와 마찬가지로 초기 연구에서 무시했던 모든 변수들을, 즉 질식시키고 깎아내렸던 변수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이 변증법으로 제시한 예들, “부정적 질량”의 개념, 즉 “비실체적 원자”의 개념, 그리고 자신의 부정성들을 포함할 것 같은 개념들 등은 무엇보다 새로운 변증법의 논쟁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변증법은 정신에게 자기의 개념들로 스스로를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을 금지했고, 그리고 그 정신을 밀고 나가게 해서 그 개념들의 부정성을 생각하게 했다. (1005)
이러한 것이 물리학적 개념들의 변증법에 대한 생각이다. 이 생각은 스테판 뤼파스코(Stéphane Lupasco, 1900-1988)의 최근 저작을 지배하고 있다. 그 작품이 미시물리학적 경험과 인간적 사유(1940)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그를 새로운 논리학을 창작하는 데로 이끌었다. “동적 모순”에 대한 생각은 (아마도 저자도 모르는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의 옛 주제를 다시 다룬 것이다. 이 주제에서는, 모든 변화가 하나의 반대물로부터 그 반대물의 반대물로 가는 것이며, 그 결과로서 변화는 한 반대물이 다른 반대물의 잠재작용을 동반하다는 것이다. 양자 물리학이 특수한 형식으로 고전 물리학에서 잊혀진 원리들 밝힐 것이다. 결국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결정론을 비결정론으로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두 가지의 공존과 상충을 제시했다. 고전 물리학은 실재성을 여러 축들 중의 하나, 즉 결정론의 축에 놓았다. 그런데, 만일 고전 과학이, 현상의 정확한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개연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고전과학이 생각하기에 여러 경우에서 현상의 조건들 중의 몇몇을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현상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사물들의 구성자체를 통해서”(이 책 148쪽) 결정론의 예견가능성을 금지한다. 사람들이 예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전자의 위치와 운동이라는) 고려된 두 항들 중에서, 하나를 점점 더 정확하게 결정할 때, 다른 하나는 비결정이라는 것이다. 뤼파스꼬는이 변증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부터 분명하게 분리했다. 그는 “동적 모순율”이 헤겔에서처럼 “상위 종합에 쓰이도록 단순히 도구적 가치를 지닌다.”(위 책 131쪽)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이 생각은 바슐라르의 생각과 아주 다른 것이다. (1006)
내가 현대물리학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내가 강조했던 경향들 중의 첫째 경향의 표현이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절대적 종합으로 나가는 노력이 아니라 멜로디의 모델이라기보다 (저음과 고음을 뒤섞어놓은) 조화의 모델에 비추어 상상하게 될 구체로 나가는 노력이다. 이 문제에 관한 그들의 입장은 라뽀르뜨의 입장과 반대이다. 라뽀르뜨에 있어서 추상은 인간 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나며, 구체란 무매개적으로 그들의 수준에 맞는 여건이다. 불확실성론자들에게 있어서 반대로, 스피노자의 전통에 따르면, 추상은 결핍과 정지의 결과이다. 그것은 단순화 된 것이다. 그리고 구체라는 능동적 변증법의 끝에서만 도달한다. (1006)
가치들의 철학에서 사람들은 작업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게 된다. 벨기에 철학자인 뒤프레엘(Eugène Dupréel, 1879-1967)이 심도 있게 쓰기를 “철학자는 보충적인 것들을 결코 추상하지 않는 사상가”이라 한다. 그런데 라뽀르뜨처럼, 리고 훨씬 더 강하게 뒤프레엘은 필연성을 추상에 연결한다. 만일 과학자가 자신의 탐구에서 필연적인 결론들을 얻기에 이른다면, 그 이유는 그가 대상을 정의하면서 대상을 결론에서 떼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성에 이렇게 정의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할 때, 사람들이 실재성을 모호한 개념으로 채워 넣기를 강요당한다. 이 모호한 개념들은 거기서 가지적인 것을 추출해내기 위하여 사람들이 여건으로부터 제거했던 모든 것을 대략적으로 첨가한다. 예를 들어 순수 지적인 것 즉 정태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질서에다가 사람들은 자신의 “보충물”을, 즉 역동적 활동성으로 혼재된 개념을, 첨가할 것이다. “하나의 개념은 일종의 억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억제란 사람들이 자기 내포 속으로 들어가게 하지 못한 것 전체에 대해 비규정 속에서 억제를 의미한다. 개념은 자기의 반대 개념의 보완재를 부른다. 이 반대 개념은 자기의 반대를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자기의 보충물을 의미한다.” 이 보충적인 비결정화된 것에 대하여, 과학자에게는 어떤 것을 추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어떤 것이란 과학자가 최우선으로 인정했던 것에 충실하게 남아있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데모크리토스는 아톰의 보충으로서 빈 것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빈 것은 그에게는 단지 아톰의 개념과 양립할 수 있는 변화를 생각하게 해준다. 반대로 그 철학자의 의지는 척도에 관한 보충적인 개념을 제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리들의 비인칭적 실물모형에 소용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순서와 활동성의 종합에 의해서만 여건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합된 요소들 중의 하나는 다른 하나와 연관하여 하부적이지도 않고, 파생적이지도 않다.” (1007)
이것은 이원성의 인식이었다. 이원성은 가치의 개념을 이해하게 한다. 가치는 질서와 힘의 종합을 가정한다. 우선 순서에 대하여 말하자면, 순서란 가치가 더 높은 것만큼이나 더 완전한 일관성과 정합성에 의해 표현된다. 또한 규율에 복종하는 도덕적 품행은 정념의 변동에 의존하는 도덕이전의 품행보다 더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의지의 힘에 관해서 말하자면, 왜냐하면, 도덕적 품행이 효과적이기 위하여, 그 품행에 찬동하기 위한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가치의 두 근원이다. 일관성 그 자체는 능동적 주체의 동의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결국 가치는 첫째의 관점에서 어떤 질서이다. 예를 들어 질서란 도덕적 질서 또는 시장의 현장에서 정해진 경제적 가치 같은 것이다. 이 질서는 그 질서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됨이 없이 다른 것에 중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념의 질서 또는 개인적 원시물물교환 같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자유의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관성이 크면 클수록, 이 동의는 덜 분명하며, 다시 말하면, 가치는 더욱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이 불안정은 일관성과 더불어 증가한다. 질서와 활동성의 만남은 개연성을 띨 뿐이다. 이 개연성은, 질서의 요구가 이 만남에 더 어렵고 복잡해짐에 따라서, 감소한다. (1008)
다음 사실은 아주 명백하다. 이런 학설 속에서 반대 개념의 보완재가, 즉 불안정이나 개연성의 보완재가 헤겔식 방식에서 필수적인 변증법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구체의 감정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구체의 감정은 하늘로부터 찬란한 고립 속에 가치들을 내버려 주는 것을 거절한다. 가치들은 주체 없이도 하늘의 최고의 권리자들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은 남는다. 질서에 연결되어 있는 어떤 가치의 일관성의 정도는 가치의 유효성을 이룬다. 그것이 바로 뒤프레엘이 그런대로 받아들인 사실의 주장이며, 그것은 마치 지난 자료인 것처럼 있다. 이 질서적인 요구는, 그 절대적인 것을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조건에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설명은 앞선 시대에 매우 자주 있었던 것으로, 오히려 가치의 질서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환원에 속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가치의 판단이 가치의 판단과 다른 것에서 연역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 문제는 가치들의 철학의 십자가로 남는다. 일반적으로 가치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경제학자들, 도덕론자들, 지식 이론가들, 미학자들)은 가치들이 이끄는 활동성의 내부에서, 즉 그것들의 구체적 표현 안에서 가치들을 연구하기 위해 그 문제를 젖혀두었다. 이 학자들은, 만일 가치들이 그 문제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었다면, 그 가치들이 모든 의미를 상실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덕적으로 고립(떨어져 있음)은 “나르시즘의 오류”이다. 나르시즘의 오류이란, “자기 자신하고만 사귀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고독 속에 가두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르센(René Le Senne, 1882-1954)이 매우 잘 표현하였듯이, 그것이 “분리의 변증법들”이라 부른 것이다. 이 변증법은 절대적인 것들로서 장애물들을 고려하는데 있다. 여기서 장애물들이란 우리를 신으로부터, 타자로부터, 세계로부터 분리한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으로 이런 태도는 인식이론에서 모든 것을 몇 가지 선천적 진술들로부터 연역한다는 주장이리라는 것에 상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치들의 독창성을 돋보이게 하는 보다 실증적 탐구를 위하여, 이 옹색한 방법을 가치의 연구에서 포기하는 것을 보게 된다. 모리스 프라딘(Maurice Pradines, 1874-1958)의 최신 작품 종교의 정신(1941)에서 그는 특히 종교의 연역될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을 강조하면서, 특히 도덕과 더불어 종교의 이질성을 강조하면서, 가치의 독창성에 대한 간단한 예를 제시했다. 미학자인 샤를 랄로(Charles Lalo, 1877-1953)는 항상 원칙적으로 미학에서 아름다움과 예술가적 활동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의 최근 저작 삶에서 먼 예술(1939)에서 그는 “구조의 법칙들”을 심리-미학적인 어떤 전형으로 규정하면서, 전적으로 구체성으로 간다. 심리-미학적 전형은 삶을 예술로부터 분리하는 예술가적 전형이다. 은총의 미학(1933)을 쓴 베이에(R. Bayer, 1898-1959)는, 미학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을 재껴두고서 사람들은 예술 작품의 질적 분석을 통해 고려된 형식을 분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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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구조들의 탐구 방법은 최근에 독창적 방식으로 낡은 의문에 대해, 즉 철학의 본성에 대해 적용되었다. 마치 철학적인 것처럼 공통 견해인 것으로서 생각되고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철학의 정의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선천적’이란 정의는 임의적이 될 위험에 처했고, 또 완전히 정의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위험에 처했다. 모든 작품에 공통적인 무엇을 찾으면서 얻어진 귀납에 의한 정의도 찢어지기 쉽고 아주 여린 조직망을 달성할 위험에 처해있다. 작업 완수나 완성이라는 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철학적 작품이, 마치 연극 드라마나 음악 교향곡의 구조에 대하여 말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처럼, 어떤 구조나 어떤 형식을 갖는 것이 아닌지를 찾아내는 것이 남았다. 이것이 에띠엔 수리오(Etienne Souriau, 1892-1979)가, 이미 알려진 중요한 작품들을 거치면서 철학적 창설(1939)에서 시도했던 작업이다. 이 중요한 작품들이란 살아있는 사유와 형식적 완전(1925), 미학적 미래: 생겨나는 학문의 목적에 관한 시론(1929)을 말한다. 철학적 작품을 통해서 그가 이해한 것은 사유의 언어적 실행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의 내적 완수, 건설, 창설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으려했던 것, 그것은 “철학의 보편적 법칙”(철학적 창설, 338쪽)이었다. 이 창설은 일련의 연속적인 수정처럼 이루어졌고, 각각의 수정은 실재물에 대해 포기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힘쓴다. 실재물이란 그것을 전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쓰는 철학자에게 표현의 필연성이 부여한 것이다. 이제 “건축술적 연구”라는 그 중요한 제4장에 따라서, 그러한 것에 대한 생각을 부여하자. 철학자는 다른 모든 관점을 배제하는 하나의 관점을 우선 선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의 둘째 방식이 있다. 그는 이 관점으로부터 자신이 제기한 것을 어떤 반대물의 보완물로서 제시하면서 실재물을 다 써버리고자 한다: 예를 들어 반대의 보완물로서는 유한과 무한, 현상과 물자체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의 대립자들은 매개항에 의하여 조화롭게 된다: 예를 들어, 칸트(Kant, 1724-1804)에 있어서 실재물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도덕이성에서이다. 그런데 너무도 형식적인 이런 변증법은, 균형잡힌 조화 중항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빠져 나가게 내버려 둔다. 여기에서, 파스칼(1623-1662)이 말하는 의미에서 다른 “질서”를 솟아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질서는 음악적으로 불협화음 같고 회화에서 “밝게 튀는 붓질”과 같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독창적 학설이 자기 비평가들에게서 체계적이고 정합적이 되는 만큼이나, 그 학설이 체계적이고 정합적인 것은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연속적 수정들에도 불국하고, “관점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파괴의 법칙”을 이끌어 낸다. 실재물에 관한 모든 주제는 희생물들을 강요한다. 벩송(1859-1941)은 부동물(움직이지 않는 것)의 실재성, 즉 조각화(파편화) 된 실재성을 사라지게 하면서, 생명 도약의 실재성만을 확신했다. 아마도 한 학설에서 완성되지 못하는 것, “쇠퇴한” 것, - 예를 들면 플라톤에서 하데스의 신화처럼 - 그것은 필연성과 동시에 희생제물들에 대한 후회를 표현한다. 그러한 것이 모든 학설로부터 독립적인 철학적 사유의 밑그림이었으리라.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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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이해한 대로 구조란 조립의 법칙이 아니라, 즉 무기물질로 나란히 묶여있는 조립과 같은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재구성되지 않고 서술되게 내버려져 있는 불가분의 것일 뿐이다. 구조의 개념은 우리가 13장에서 말했던 니꼴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이 사용한 것이고, 존재론의 기초(1935), 가능성과 현실성(1938), 실재 세계의 구축: 보편 범주의 요강(1939) 등에서 존재에 관한 최근의 탐구들에서 깊이있게 다루었다. 범주에 대한 그의 이론에서 하르트만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칸트(Kant)에서부터 소피스트편의 플라톤으로 되돌아온다. 그에게 있어서 범주들은 사물들이 이해되는 방식과 독립적으로 현존하는 물 자체의 규정들이다. 이 범주들에 비추어서 제기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범주들의 연결과 범주들의 분리의 문제이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존재의 구조는 그가 인정한 양상들로 정의 된다. 이 원리의 적용으로부터 그는 실재존재와 이상존재 사이의 구별을 기초로 하는 새롭고 중요한 관점들을 끌어냈다. 나누어가짐이라는 난점들을 회피하면서도 플라톤이 행한 고대의 구별을 보존할 의도에 의해 그런 관점들로 이끌어내진 것 같다. 실재존재는 전통적인 세 가지 양태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가능적 것, 효과적으로 실현된 것,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양태들은 그것들 사이에는 동등하다. 사람들은 필연적인 것을 제외하고 모든 조건들이 실현되는 존재를 일상적으로 가능적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이 조건이 주어져 있지 않는 한, 오히려 불가능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조건이 주어지자마자 존재는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는 효과적으로 실현되고, 그리고 이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실현된다. 하르트만은 고대의 메가라학파처럼 잠재적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따른 모든 형이상학적 의미를 거부했다. 반대로 이상적 존재의 구조는 새로운 양상들을 허용한다. 이상적 존재를 통하여 하르트만은 유클리드 공간과 19세기에 발견된 두 종류의 비유클리트 공간과 같은 본질들을 이해한다. 단지 이런 종류의 존재에 대하여 사람들은 세 가지 새로운 양상들을 말할 수 있다. 즉 공가능성, 불공가능성, 우발성(accident). 예를 들어 사람들은 동일한 이름의 도형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세 공간의 각각에서는 공가능성이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도형들은 불공가능성이며, 세 공간의 분할은 우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존재 사이에서, 즉 실재적 또는 주어진 존재와 사유가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상적 존재 사이에서 사람들이 연관을 잘 못 파악하는 이질성, 즉 둘 사이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질성이 있다. 바로 거기에 그 학설의 난점이 있다.
구조의 철학 소묘(1930)를 쓴 레이몽 뤼이에(Raymond Ruyer, 1902-1987)의 장점은 메카니즘을 형식 또는 구조처럼 이해했다는 점이다. 17세기 이래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메카니즘은 정확하게 사물들로부터 환원할 수 없는 특성처럼 구조의 부정을 내포하고 있고, 모든 명백한 구조를 충격 또는 인력과 같은 기본적인 일괄 현상들로 환원을 내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모든 메카니즘은 유물론적이다. 반대로, 이 메카니즘으로부터 결과하는 연결과 기능 작업의 양태는 본질적이다. 그것은 한 메카니즘에서 다른 메카니즘으로 환원할 수 없이 구별되는 것이 있다. “그 진실한 메카니즘은, 실증주의처럼 이질적 실재성의 단계들을 인정함이 없이, 형태의 각 질서에는 자기 실재성, 자기 행동들, 자기 고유한 법칙들이 있다는 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해 준다.” 살아있는 존재는 하나의 메카니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물리 화학적 현상들에 환원되지 않는다. 심리학적 활동성은 이미지들의 속성들과 그것들의 고유한 연결에 따라서(예를 들어 꿈 또는 상상작용 속에서) 정신적 이미지들의 기능함에 있을 것이다. 또는 그 이미지들이 외적 형식들과 상응함에 따라서 또 형식을 (추론 속에서) 기호로 변형되는 속성들에 따라서 정신적 이미지들의 기능작용에 있을 것이다. (1012) (45RNA)
제4절 주관주의적 경향들과 그 경향들의 비판들
객관주의적 관점의 거절은 필연적으로 합리주의의 부정이다. 이미 인용된 논문에서 후설은 합리주의의 두 형식 사이의 구별, 즉 객관주의와 선험주의의 사이의 구별의 중요성을 알렸다. 객관주의, 그것은 “순진한” 합리주의이며, 이미 예전에 18세기부터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합리주의는 모든 실재성을 대상으로 전환시키고, 그리고 모든 주관주의적 착각을 흩어버릴 수 있다고 믿고서, 실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도 않는 구축으로 대체하면서 실재물을 절단했다. 반대로 선험주의는 과학의 객관적 세계를 “상위 등급 형성물”로 본다. “상위 등급 형성물”은 선과학주의의 삶에 속하는 주관적 형성물에 앞서있다. “이 주관성에로 근본적 회귀, 즉 과학 안에서처럼 과학이 전에도, 세계의 모든 내용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평가를 최종적으로 생산하는 주관성으로 회귀, 즉 이성의 생산작업들의 본성과 양태에 관한 질문으로 회귀는 단지 객관적인 실재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러고 나서 최종 의미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초월주의는 칸트의 영감을 따르기보다 데카르트의 영감을 따른다. 칸트는 결국 대상에서 주체로 갔었고, 주체를 경험조건으로서 즉 사전에 과학에 의해 규정된 대상의 경험조건으로서 정의했다. 반대로 주체의 분석을 잘 이끌어내기 위하여 대상으로부터 추상해야만 했다. 이 주체는 심리학적이 아니라 현상학적이어야 했다. 그 방법은 데카르트를 상기시키는 용어로 지적되었다. “내가 인도하려고 한 시도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본 것을 제시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1013)
그럼에도 주관주의는 후설에서만 합리주의로서 유지되었다. 그가 추상적 특성을 간직하는 초월적 주체가 아니라 구체적 주체를, 모든 정서적 반작용과 더불어 “세계내의 존재”를 생각했을 때, 철학적 탐구는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 83)의 마지막에서 마주 강하게 강조했던 제한된 범위만을 갖는다. 시람들은 다음사항을 알고 있다. 하이데거가 그 책에서 존재론을 예고했고, 그래도 그는 인간 현존재의 해석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 현존재와 인간 현존재가 아닌 현존재 사이에 차이는 존재론적 문제의 출발점일 뿐이지 철학이 멈출 수 있는 점이 아니다.” 틀림없이 “사람들은 (고대인들처럼) 형식논리의 추상을 수단으로 해서 그리고 질문과 응답의 정해진 지평없이는 존재의 기원과 가능성을 탐구할 수 없다. 기초존재론의 문제를 밝히기 위하여 길을 찾아야만 한다. 사람들이 제시하는 길이 오직 좋은 길인가? 사람들은 사후에야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응답해야 했던 존재와 시간의 둘째 권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길이 막다른 골목이 아닌지를, 그리고 유한한 주관성이 우리를 거기서 벗어나게 할 끝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를, 그 주관성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지를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의 반성 중심인 자신의 주관성은 틀림없이 실재성이다. 그러나 나의 실재적인 자료로서 주관성을 사물일반에 관한 판단 규칙으로서 나의 주관성과 구별하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야스퍼스에게서 일어난 것처럼, 철학 학설이 인격적이고 자유재량의 선택에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철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 즉 죽음의 문제에서, 어떻게 스토아적인 태도보다 파스칼적인 태도를 정당화하는가? 사실상 실존주의에 많은 영향을 준 키에르케골(Søren Kierkegaard, 1813-1855)은 “초월”에 의해, 말하자면 신앙에서 오며 다른 실재성과 갖는 신비로운 접촉에 의해, 주관성으로부터 구출될 수 있다. (1013)
동시대인들 가운데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1971)의 견해가 그러하다. 그르니에는 르끼에(Jules Lequier, 1814-1862)의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르니에가 쓰기를 “우리의 근엄함의 중심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나 무엇보다도 우리들 존재 전체는 동의하는, 우리의 자아의 바깥에, 그리고 그 위에 그렇게 있다.” 따라서, 실존의 시대적 특성은 관점을 변하게 한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이 실존은 실재적인 것이 점진적으로 달아나는 것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기똥(Jean Guitton, 1901-1999)이 그렇게 지적했듯이 시간과 영원의 연관을 고려했는데, “시간의 최고 직책은 의식적인 각 존재를 위하여 비전과 삶의 기관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기관들은 현재의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위하여, 죽음은 정신 바깥에 살아있는 신체를 진행하게 내버려 두는데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철학의 끝에 있고, 그리고 사람들은 아마도 이 경계를 넘어섰다. (1014)
가브리엘 마르셀(Gabrel Marcel, 1889-1973)이 쓰기를 “나의 살아있는 조건이 나로 하여금 하나의 존재이게 한다. … 이 존재는 하나의 다른 실재성과 더불어 제시되어 있고, 또는 내가 원한다면 열려있으며, 나는 이 다른 실재성과 함께 어느 정도 거래 관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셀에 있어서 이 관계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통일성의 표시(le signe)로서 소통의 양식에 관한 수많은 의문들의 출발점이다. 타자의 영향을 받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그것[영향]을 수동적으로 감내하고 경우이거나 또는 주인으로서 타자에게 헌신을 하는 경우이거나 간에, 많은 뉘앙스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경우 사이에서 노예의 구속에서부터 자유로 거쳐 가는 모든 정신적 삶이 흘러나온다. 마르셀의 학설 속에서 개인은 사회화되는 것도 공적인 역할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우주적이고도 정신적인 불가사의한 에너지의 운반자이다. 이 에너지에 대해 개인 자신은 어렴풋하게 초월을 느낀다.” (같은 논문 13쪽) (1014)
루이 라벨(Louis Lavelle 1883-1951)의 철학에서는, 주관성과 초월성이 대답한 난점들이 제기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현실화에 대하여(1937)에서 그는 처음부터 위의 두 개념들을 저 넘어, “자기 자신과 세상의 내부 기원”인 현실화 속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현실화란 데까르트의 코기토 또는 멘느드비랑의 노력과 같은 주관적 본성의 초기의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재로는 “어떤 이중 사실이거나 또는 사람들이 원한다면 어떤 관계인데, 그 관계에 의해서 특별한 나의 존재는 총체적 존재 속으로 개입되고, 개인적인 나의 사유는 보편적 사유 속에 개입되고, 나의 유한한 의지는 무한한 의지 속에 개입된다.”(위 책, 50쪽) 라벨은 신앙에 호소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균열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무한과의 관계, 즉 참여는 “무매개적 경험”속에 주어진다. 그리고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는 이 관계(우리의 고유한 자유와 함께하는 현실화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거나, 또는 정신적 경험을 서술하는 것이다. 정신적 경험에 의하여 우리는 자유의 현실화 관계를 우리 것으로 만든다.”(위 책 221쪽) 이러한 낙관적 해결책은 분리로부터 오는 일종의 불안과 대조를 이룬다. 이 불안이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지배적이지만 말이다. (1014)
그러나 이것들이 개관성의 제한(les limites) 자체이다. 이 제한들은 매우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 데는, 사람들이 우선 객관적으로 정의된 실재성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부터이다. 러시아출신이며 프랑스 정신의학자인 민코프스키(Eugène Minkowski, 1885-1972)가 쓰기를 “통상적 견해에 따르면, 원초적인 자료들은 자아에게 만 연관될 수 있을 뿐이다. 사실상 원초적 자료와 관계 맺는 그 자아는 비-자아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만, 더 잘 말한다면 우주와 더불어서 만, 나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나의 고유한 자아에 제한하기에 앞서서, 나는 세계 속에서 내가 있음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살아있음 스스로 본다. 반대의 운동 방향에 따르면, 러시아 철학자이며 프랑스로 이민 온 베르디아에프(Nicolas Berdiaeff, 1874-1948)는 “사물들과 대상들 세계의 소멸”은 “현존의 수수께끼로 접근”과 한 짝을 이룬다고 제시한다. (1015)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은 심리물과 물리물 사이에 균열의 도식이 변형되고 있음을 본다. 프랑스 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블랑셰(Robert Blanché, 1898-1975)는 “정신적인 것은 둘째과학의 대상을 이룰 수 있는 둘째 실재성으로서 물리적인 것 옆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관여하는 모든 실재성은 물리적이다. 정신적인 것은 철학적 반성이 과학의 구성 조건들로서 실재적인 것의 객관성의 조건들로서 재발견한 것이다.” 또한 감각에 관한 연구를 인용해보자. 라벨의 아름다운 작업으로 감각적 세계의 변증법(1922)과 프라딘의 아름다운 작업들을 뒤따라 나온다. 사람들은 감각 속에서 단순한 것을 보기만을 그친다. 그 단순한 것은 자기스스로를 구성하면서도 심리적 삶의 짜임새를 형성한다. “지각에 앞서서 사물들의 현존이, 그리고 다른 한편 감각적 성질들로부터 오는 외재성의 현존이 불러일으켰던 극복할 수 없는 난점들은, 사람들이 오직 감각적인 것 그 자체로서 또 초기의 사실로서 생각하고자 원했던 것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상들이 거리를 두고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해서 물체로부터 분리되는지를 찾지 않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 분리는 이미 필요 속에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각의 자연적 문제는 우리의 고유한 상태의 불가사의한 투사의 문제이라기보다 오히려 매개의 탐구에 있다.” 그리고 살찌(Pierre Salzi, 1889–1965)는 다른 관점에 서 있으면서, “역설”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다. 감각과 물리적 세계로부터 추론된 개념은 동일한 등급이며, 감각들은 개념들이 제공한 동일한 정신적 활동에서, 다시 말하면 추론에서 유래한다. (1016)
구체적이고 풍부한 주관성을 위하여 이 취향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순수논리학에서, 형식적 단순 연결에서, 실재물에 대한 대립물을 거부하는 수학들의 거부였다. 이 형식적 단순 연결은 과학들에게 모든 대상을, 즉 실재적이거나 이상적인 대상을 박탈한다. (1016)
프랑스 철학자인 르네 뽜리에(René Poirier, 1900-1995)가 쓰기를 “모든 엄격한 수학이론은 필연적으로 대수적이다. 이 단어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또한 그가 쓰기를, “모든 수학과학은 논리학의 대수학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마음에 드는 규칙들에 따라서 대상들을 모으는 것을 우리가 자유롭게 하듯이, 추상이란 면에서 우리가 기하학적 협약들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롭다. ‘선천적인 것’은 없다. 그런 이유로 또한 기하학은 경험에 법칙들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하학은 경험에게 정식들, 즉 상징적 표현들을 제안한다.” 수학적 언어와 마찬가지로 언어 일반도, 피타고라스학자들과 플라톤이 믿었던 것처럼, 사물들의 기초에 관한 계시적 인식이 아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재주가 좋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꼬마가 달은 거의 공과 같은 둥근 것이고 그러한 크기일 것으로 알기 때문이고, 또 그가 달을 문학적 정식에 맞게 서술할 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꼬마는 달을 자기 가까이에서 거의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지각할 수는 없다. 반면에 달빛은 침묵하며 내려오는데, 마치 맥박이 뛰는 것처럼 우리에게 달의 우정으로 감싸면서 내려온다. 이 언어가 우리를 감싸고 있고 우리를 진실한 세계로 우회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를 진실한 세계로 이끌어가는 철학의 임무이다.” (1016)
수학들에 관한 이런 견해는 “비엔나 서클”의 학설이 논리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다음에는 물리학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던 마지막 발전 단계에 연결되어 있다. 이런 두 경향은 미국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이 취했던 형식에 접근되어 있다. 거기에서, 수학, 물리학, 심리학, 각각만큼이나 먼 영역들 사이에 기대하지 않는 접근들이 있다. 이 접근들을 돋보이게 하여 주관주의를 더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1017)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의 공리화작업과 비엔나학파의 논리주의는 서로 매우 가까운 수학들의 해석에서 두 가지 형식들이다. 첫째 형식에서 얼마간의 수학적 단언들이 주어져 있어서, 사람들은 거기에서 공리의 이름으로 명제들을 선택한다. 이 명제들로부터 다른 모든 명제들이 연역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형식에서는 초기 개념들이 순수하게 논리적 기원에서 온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두 학설들이 나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내적인 영역의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사실상, 힐베르트 체계 속에서 모순 명제들에 이르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논리주의자들이, 초기개념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산술학의 명제를 심지어는 물리학의 명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수학들을 하나의 순수한 논리적 놀이로 환원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저항이 특히 루이첸 브로우베르(Luizen Brouwer, 1881-1966)의 직관주의에서 표시되었다. 브로우베르는 수학들을 산술학에 의존하게 했고, 산술학을 시간의 직관에 의존하게 했다. 게다가, 유용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환원되는 이미 이루어진(toute faite) 수학에 대해 창조적 수학자들은 이루어지고 있는(se faire) 과학과 대립시켰다. (1017)
다른 한편, 수학적 형식주의는 어떤 방식에서든 수학들을 구체적 실재물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 형식주의가 잘 형성되어있어서 수학들을 실재물에 접근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힐베르트의 체계에서 공리는 그 기능에 의해 정의되어 있으며(그 명제로부터 다른 명제들이 논리적 변형에 의해 연역되며, 어떤 다른 것으로부터는 연역되지 않는다), 명증한 내속적인 어떤 기호에 의해서가 아니다. 공리화의 방법은 “수학들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영역에서도, 역학에서도, 빛의 방사의 이론에서도, 화폐의 경제이론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논리주의는 그 자체적인 측면에서, “공리들이란, 미리 주어진 규칙들에 따라서 구축된 표현들에 관하여 실행할 수 있는 연산들의 단순한 서술들로부터 나온다.” 완전히 구체적인 이 연산이란 개념이 중심적이다. 이 개념이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에 전개되었듯이, 아마도 이 개념이 우리가 이미 말했던 예기치 않은 접근들을 설명해줄 것 같다. 이 개념은 과학의 통일성을 실현할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이 희망은 한 세기 전에는 이미 포기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미국 물리학자인 브리지만(Percy Williams Bridgman, 1882-1961)이 썼듯이, “우리는 개념에 의해 이해하지 않으며, 오직 연산들의 체계에 의해서만 이해한다.” 예를 들어, “길이를 측정했던 연산들이 고정되었을 때, 이미 길이의 개념은 고정되어 있었다.” 길이라는 것, 그것은 척도 자체이다. 길이의 개념처럼, 주어진 상황에 연관하는 개념들 옆에는, 그것과 다른 개념들이 있다. 이 다른 개념들은 주어진 것이 아닌 추론된 물리적 상황에 적용된다. 이러한 것으로는 전압 또는 전기장과 같은 개념이 있다. 주조된 또는 구축된 이 개념들은 오직 수학적 연산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수학적 연산은 물리적 연산으로 당연히 인도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심리학이 이 동일한 틀 속에 다시 들어간다. 즉 미국 행동심리학자인 에드워드 톨맨(Edward Tolman, 1886-1959)에게서 행동주의가 취한 형식이 하에서 “심리학적 문제는, 연산적 해결 방식이 항상 허용하는 대로, 그런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사실상 행동주의자들에게서 중요한 것은 어떤 행실을 자극들과 조건들(유전, 앞선 경험, 나이 등)에 연결하는 기능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조건들에서 자극은 자기 행위를 실행하게 한다. 이런 탐구는 본성상, 어떻게 예를 들어 전기장 안에서 주어진 성질을 부여 받은 천연의 물체가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아는 탐구와 다르지 않다. 한다. 툴맨이 쓰기를 “물리학은 논리적 구축의 체계, 규칙들과 방정식들의 체계이다. 규칙들과 방정식들은 무매개적 경험의 계속적인 계기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의 길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심리학은 규칙들과 방정식을 닮은 다른 체계일 뿐이다. 물리학의 규칙들과 체계들에 덧붙여진 이 체계들과 규칙들은 경험(즉 자극)의 계기에서 다음(행실)에 이행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보충적 도움을 준다.” (1019)
사실상 연산주의 안에는 하나의 난점이 있다. 이 난점은 “논리 실증주의”의 난점 자체이다. 논리적 개념들이 적용에 있어서 하나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 개념들을 무매개적 경험들과 대질 시켜야 한다. 독일 물리학자인 모리쯔 슐리크(Moritz Schlick, 1880-1936)가 말했듯이,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논리적 명제들(Sätze)을 사물에 관한 진술들(Aussage)로 변형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같은 학설에 따르면 무매개적 경험은 본성상 소통불가능하며, 따라서 증명할 수도 없고, 의미작용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주의는 일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무매개적 경험이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이다. 인식(Erkenntnis)과 인상(Erlebnis) 사이에 우선 비엔나 서클에 의해 인정된 대립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 당시 제기된 문제가 해소되었는가? 그것은 소위 말하는 무매개적인 자료가 지각적 판단이라고 주장하면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각적 판단이란 한 사물을 다른 사물들 가운데서 분간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나는 붉은 것을 본다’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지각적 판단은 있는 그대로 소통가능하다. 따라서 인식은 도처에서 동질적이다. 언어와 진실한 세계 사이에 구별은 없고, 도처에 단지 설명 가능한 것들만 있다. (1019)
이러한 해결의 난점들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의도는 분명하다. 빈 것으로 공들여 만들기는 커녕, 형식주의, 물리주의, 행태주의, 모두는 이들의 집합 속에서 구체적 상황들을 생각하는 세 가지 의지를 표시했다. “선천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 자기에 의한 명증을 거부하는 것, 현상들의 현존을 부정하는 것, 이것은 결국에는 이런 종류의 추상들을, 즉 실재성 속에서 ‘작은 공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추상으로서 공간은 초기적 개년들이기도 하고 소위말해서 정신적 사실들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밀접하게 유지되어 있다. 어느 주장(단언)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는 수학적 과학이 구성하는 형식적 구축 속에서 선두로서 주장될 권리도 없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물리적 현상들의 일체와, 다른 한편으로 물리적 현상들과 인간적 환경이 맺는 관계 속에서 인간적 또는 동물적 행실은 마치 이 양자들이 과학의 언어 속에서 표현되는 대로 그러한 것이다. 주관주의는 실재물에 매우 가까이 있다고 허풍을 떨지만, 실재성의 쪼가리들에 심지어는 착각하는 환영에 도달할 뿐일 것이다. (1020)
우리가 보기에, 주관주의자들은 인간과학에서 특히 역사에서 객관성의 비판적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던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주관주의자들의 모델 중의 하나인 키에르케골(Kierkegaard, 1813-1855)은, 최근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저술 속에서, 헤겔의 단언을 자기 비평의 주요 주제로서 삼았다. 헤겔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 자신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면 역사를 매개로 해서이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인식의 요구들이 무수히 많다면, 인간을 위한 가장 절박한 문제들의 해결을 무한정 후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에서 어느 정도 역사를 흡수하는 헤겔의 시도는, 주체에게 현실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주 다른 형식들에서라 할지라도 새롭게 재생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징적인 작품으로 아롱(Raymon Aron, 1905-1983)의 역사 연구 입문: 역사의 객관성의 한계에 관한 시론(1938)이 있다. 이 책에서 “인간은 역사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 속에 그가 탐험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11쪽) 그러한 것이 이 책의 근본적 주제이다. 이 책은 역사를 그가 쓰고 있는 역사의 현재에 연관시키고 있으며, 이 책에서 그는 주제가 현재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주제 속에서만 볼 뿐이다. “우리 지성의 과거는 그 과거 자체 속에서 현재이거나 또는 마땅히 현재이어야 할 정도에서만 우리에게 흥미를 유발시킨다.(56쪽) … 현재는 과거를 밝혀준다.(83쪽)” 왜냐하면 우리가, 이 시대의 인간이 예견할 수 없었던 과거시대로부터 현실적 귀결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사건의 해석은 역사가들이 할당한 목표에 의존한다.(93쪽) … 각 시대는 자기 과거를 선택한다.(103쪽)” 이런 많은 단언들은 역사적 객관성을 제한하는데 만족시키지 못했으나, 역사로 하여금 현재 행위를 정당화하게 하면서(게다가 그게 필연적으로 착각인데), 그나저나 그 객관성을 부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관성은 그 자체에서는 사색의 자료와 내용으로서 파악되지 않으나, 역사적 대상의 인식에 그 가치와 의미작용을 부여하는 것으로써 파악되었다. 각각의 그룹, 각각의 개인은 각자의 역사 철학을 가질 것이다. (1020) (45SKD) (17:05, 58T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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