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가족일까요? 누가 진짜 부모일까요?
이연신,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
가족하면 떠오르는 것은 결혼과 혈연을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가족의 범위를 결혼과 혈연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런 가족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가족’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이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비정상 가족’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일하며 만난 그런 가족들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7살 연서는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났고, 1살 은지는 미혼부인 아빠가 홀로 키우고 있다. 동수와 철수는 아동학대로 친가정에서 분리되었다. 이런 아이들이 시설이 아닌 위탁가정**으로 오며, 위탁가정으로 온 아이들은 전입신고를 하면 그곳에 ‘동거인’으로 기재된다. 위탁가정은 일하면 만나는 대표적인 비정상 가족이다.
위탁부모는 매일매일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그들의 여권이나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친부모가 필요하다. 아이가 아파 동의서에 사인이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할 때도 위탁부모는 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탁부모는 아무런 자격이 없으며 ‘동거인’이라는 낯선 단어가 위탁가정을 계속 따라다닌다. 성이 다른 비혈연가족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위탁가정은 계속 상처 받아야 한다. 또한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위탁부모는 아무런 권한이 없기에 친부모가 언제고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하면 아이를 보내야 한다. 아이가 친부모의 소유물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큰 위탁부모와 그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함께 눈 마주치고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슬프고 힘든 일도 함께 헤쳐 나간다. 그렇게 아이와 위탁가정은 가족이 되어 간다. 이런 위탁가정이 가족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영화에도 대표적인 비정상 가족이 나온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6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하츠에 할머니, 부모님이 있지만 혼자 떨어져 사는 아키, 남편의 폭력에 참다못해 살해한 노부요, 그녀를 도운 오사무, 차 안에 버려진 쇼타, 학대받은 유리까지. 하츠에 할머니의 연금과 도둑질로 살아가는 여섯 식구는 가족이었을까?
6명이 함께 살지 않았다면, 하츠에 할머니는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아키는 할머니의 따스함을 느껴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쇼타와 유리도 아동학대로 고통 받았을 것이고 노부요와 오사무도 고통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들이 한집에 모여 밥을 나누어 먹고 서로를 걱정해 주고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낀다. 좁은 집일지라도 함께 하는 이가 있기에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힘듦 속에서도 충전하는 게 아닐까. 혈연은 아닐지라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게 가족이 아닐까. 서로 선택했기에 더 강한 유대를 갖는 건 아닐까. 영화에서 하츠에와 노부요의 대화 속에 가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츠에: (유리가) 집에 돌아간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노부요: 선택받은 건가, 우리가?
하츠에: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순 없으니까.
노부에: 근데, 스스로 선택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겠어?
하츠에: 뭐가 강해?
노부에: 그러니까… 유대… 정 같은 거.
하츠에: 나도 널 선택했지.
그러나 이 가족이 외부에 노출되자마자 혈연이 아닌 가족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얘기한다. 아동학대로 몸에 상처 자국 선명한 유리를 데려온 것은 유괴라 말한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아이를 때리는 엄마가 가족일까? 아이를 낳으면 다 엄마가 되는 걸까?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죽은 후 할머니의 시체를 방에 묻은 가족들은 할머니의 연금 때문에 속이고 사는 것이 된다. 부모를 떠난 아키와 함께 사는 것은 할머니가 돈이 필요해서이다. 쇼타는 도둑질을 시키며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가 된다. 비혈연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가족이 아닌 게 된다.
영화 끝에 5명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노부요는 감옥으로, 오사무는 원룸으로, 아키는 떠돌이로, 쇼타는 시설로, 유리는 학대하는 엄마 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안겨주는 혈연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이다. 그들에게 진짜 가족은 누구였을까?
위탁가정과 함께 일하며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이에게 진짜 가족은 누구일까? 사랑을 주고 마음으로 이어진 위탁부모일까, 혈연으로 이어진 친부모일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위탁부모와 친부모에 대한 정해진 답이 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가 위탁가정에 있을 때에 가족으로 인정받았으면 한다. 더불어 아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에게 아이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혈연이라는 둘레를 떠나 진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위탁가족들의 호칭을 보면 제각각이다. 은지처럼 아기 때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는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서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는 큰엄마, 큰아빠, 이모, 삼촌이라고 부른다. 한집에 이모랑 삼촌이 부부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위탁가족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남남이 만나 가족이 되는 과정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식성이 닮아가고 습관이 닮아가면서 진짜 가족이 된다.”
“누구라도 붙잡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엉엉 울면서 은지와 평생 가족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 적도 있었다. 위탁가족들은 지금도 숨을 죽이고 이목을 살피면서 아이를 품는다. 분명 가족인데 가족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아이를, 내가 키우는 아이인데 내 아이라고 할 수 없는 아이를, 우리는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위탁가족이다.”
「천사를 만나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배은희, 놀, 2021)
민법 제779조로 가족의 범위를 정의하는 시대는 점점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감당할 수 없다.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되어 있는 ‘정상 가족’의 비율은 점점 줄고 있으며, 한부모 가족, 미혼부모 가족, 비혼 동거 가족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는 2000년 15.5%에서 2020년 31.7%인 664만 3천 가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2020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하였다.*** 위탁가정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시기다. 진짜 가족을 선택하여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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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친부모의 질병, 수감, 학대, 사망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 아이들이 일정 기간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게 된다.
***2020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69.7%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하였으며, 함께 거주하지 않고 생계를 공유하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갖고 있는 친밀한 관계이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비율은 39.9%로 나타났다.